위조여권으로 한국에 들어오려다 중국공안에 체포됐던 국군포로 전용일(72)씨가 포로생활 50년4개월,중국억류 41일만인 24일 오후 4시 반에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전씨는 이날 오전 중국 옌지(延吉) 공항에서 중국항공(CA-143)에 탑승, 꿈에도 그리던 귀국길에 올랐다.
전씨의 입국으로 지난 94년 10월 조창호 소위의 입국 이후 지금까지 북한을 탈출해 입국한 국군포로는 모두 33명이 됐다.
1953년 8월 6.25 전쟁때 실종된 그는 50여년만인 지난 6월 북한을 탈출,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을 통해 한국행을 시도했으나 대사관측의 미온적인 대응에 실망, 위조여권을 지닌 채 독자적으로 입국을 시도하다 지난 달 13일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 공항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체포된 전씨는 북한과의 접경지역인 투먼(圖們)의 한 수용소로 이송됐으나 그가 국군포로임이 확인되고 그의 북송을 제지해야 한다는 재향군인회 등 국내 보수단체와 국제 인권단체들의 여론이 거세게 일어나자 이를 의식한 중국 공안당국이 전씨를 '제3의' 장소로 옮겨 그동안 조사를 해왔다.
외교부 등 정부 당국은 전씨의 조기 송환을 위해 중국 정부와 숨가쁘게 물밑 접촉을 벌여 마침내 그의 입국을 성사시켰다.
전씨의 경우 여권위조 및 밀출ㆍ입국 등 중국법 위반혐의로 처벌이 불가피하지만 우리 정부의 외교적 노력으로 중국 정부가 전씨에 대한 약식 사법처리에 동의해 국내 송환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입국한 전씨는 포로당시의 계급은 일병이였지만 '국군포로대우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하사로 복무한 것에 준하는 3억7천여만원 정도의 연금과 함께, 주거시설을 보장받게 된다.
경북 영천 출신인 전용일씨는 고향과 대구에 남동생 수일(64)씨와 누나 연옥(78)씨등 4명의 가족을 두고 있다.
"50년만에 형님을 만날 수 있다니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습니다"
24일 오후 국군포로 출신 탈북자 전용일(72)씨 부부가 귀국한다는 소식을 접한 경북 영천시에 거주하는 동생 수일씨는 기쁨에 겨워 말을 잇지 못했다.
한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4일 국군포로 전용일씨의 귀환과 관련, "귀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됐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전씨의 귀환 사실을 보고받은 자리에서 "예상보다 조속히 귀환하게 돼 매우 기쁘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윤태영(尹太瀛) 청와대 대변인이전했다. 앞서 노 대통령은 전씨 문제와 관련,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에 대해 국가는 마땅히 보호하고 지원할 책임과 의무가 있으며, 이러한 국가의 도덕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문제해결에 임해야 한다"며 "조기송환을 위해 관계부처가 모든 노력을 다하라"고 지시했었다고 윤 대변인은 소개했다.
- 국군포로 전용일씨 탈출에서 입국까지 -
◇탈북과 입국시도= 탄광에서 일해오던 전씨가 북한 국경을 넘어 중국 땅을 밟은 것은 지난 6월로 알려졌다.
국경을 넘은 전씨는 생계를 위해 중국 국경지역을 떠도는 일반 탈북자들과 달리 국내 입국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곧바로 베이징(北京)으로 이동, 9월 중순 한국 대사관을 찾고 국군포로라는 본인의 신분과 국내 입국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대사관의 반응은 썰렁했다. 대사관 무관부가 국방부를 통해 전씨의 국군포로 여부 확인 요청을 했지만 500명의 국군포로 생존 명단을 확인한 국방부가 명단에 전씨의 이름이 없자 이같은 사실을 무관부에 통보했다.
대사관측은 전씨를 다른 일반 탈북자들과 동일하게 취급했고 대사관 경내에 머물며 기다려달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최근 베이징 주재 한국 대사관에는 국내 입국을 희망하는 탈북자들로 넘쳐나 국내에 들어오기까지는 대략 2개월 넘게 걸리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독자입국 시도와 체포= 대사관측의 미온적 대응에 실망한 전용일씨는 대사관을 나와 독자적인 국내 입국을 결심했다.
중국 공안당국의 경비가 심한 베이징을 떠나 저장(浙江)성으로 이동, 11월 13일 항저우(杭州) 공항에서 위조 한국여권을 이용해 국내에 들어오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공항에서 체포되고 말았다.
전씨는 체포 후 북한과의 접경지역인 투먼(圖們)의 한 수용소로 이송됐다가 그가 국군포로라는 신분이 알려지고 그의 북송을 막아야 한다는 국내외 여론이 일면서 제3의 장소로 옮겨져 조사를 받았다.
탈북지원활동을 펼쳐온 국내 민간단체들은 전씨의 체포 사실을 언론에 알리고 조속한 송환을 위한 정부의 노력을 촉구하면서 전씨 문제는 한ㆍ중간 외교 현안으로 떠올랐다.
◇외교노력과 입국= 전씨의 체포가 알려지고 국군포로임이 확인되자 외교부는 중국에 요원을 급파하는 등 본격적인 송환노력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뒤늦게나마 전씨의 호적등본 등을 중국 정부에 전달하고 외교채널을 통해 우리의 입장을 전하는 등 북한으로의 송환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같은 노력의 결과로 지난달 말 류젠차오(劉建超)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전용일씨의 안전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우려를 잘 알고 있으며 그의 신변 안전은 보장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방부와 외교부 등 관계부처는 전씨의 조기 송환을 위해 중국과의 물밑 접촉을 가속화했으며 중국은 우리 정부의 입장을 수용하면서도 북측과의 관계 등을 고려, 이번 사건이 조용히 처리되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전해온 것으로 알렸다.
결국 지난 주말께 송환을 위한 한ㆍ중간 외교접촉이 대충 마무리된 가운데 전씨는 24일 오전 11시 10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고향을 향해 출발, 6.25 전쟁때 인 53년 8월 실종된지 50년4개월만에 남한땅을 밟았다.
- 전용일씨 지원금 최소 4억2천만원 -
중국 공안당국에 억류됐다가 24일 귀국한 국군포로 전용일씨(72)는 정착 지원금 등의 명목으로 최소 4억2천만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씨에 대한 지원은 지난 99년 공포된 `국군포로 대우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뤄진다.
이 법률은 병사의 경우 연금지급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점을 감안해 국군입대일로부터 기산해 3년이 지난 날로부터 하사로 특례임용해 하사 4호봉의 보수와 군인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포로억류 기간 국가에 대한 공적이 현저한 자는 특별진급이 가능하다는 단서조항이 있어 중사 이상의 계급 대우를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전씨가 강원도 금화지구전투에서 북한군에 포로로 잡힌 지난 53년 7월 당시 계급이 일병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최소 하사로 특진돼 하사 4호봉 기준의 봉급 지원분 2억2천여만원을 수령하게 된다.
퇴직연금 명목으로 일시금 9천여만원 또는 매월 60만원을 받을 수 있으며, 특별지원금과 보로금 명목으로 최대 2억5천만원을 추가로 받을 수도 있다.특별지원금 액수는 귀환포로가 제공한 정보나 지참장비의 활용가치에 따라 차등지급된다.
전씨는 아울러 20평형 규모의 아파트 구매가격으로 환산한 주택지원금 1억10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는데 정착지역이나 포로기간에 따라 지원금 액수가 늘어날 수도 있다.
귀환포로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함께 국가에 헌신한 공로를 선양하는 행사와 서훈 추서도 이뤄진다.
군은 공개적으로 면역행사를 실시할 경우 전씨의 재북가족 등의 신변위협을 고려해 전씨가 포로로 잡힐 당시 소속 사단이었던 6사단에서 이르면 내년 1월말 사단장과 장병들이 참석한 가운데 면역식을 가질 예정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국가를 위해 싸우다 적의 포로가 된 군인에 대해 고국에서 편안하게 여생을 마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진다는 국가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면역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귀환한 국군포로 32명 가운데 12명이 보국훈장 통일장을 비롯한 각종 훈장을 추서받은 전례에 비춰 전씨도 훈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 관계자는 "육군본부와 국방부 포로대책위원회가 전씨가 제공한 첩보가치와 6.25전쟁 당시 전공 등을 종합 판단해 서훈여부와 훈장종류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첫댓글 잘된일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