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천 바닷가에 다녀오는 길에 보령 탄광박물관에 다녀왔다.
이제는 오래된 이야기처럼, 막장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재현한 곳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광부의 아내는 정성스럽게 준비한 도시락을 출근하는 남편에게 건네주었을 것이다.
갱도안에 들면 암흑천지이고 지열로 사지에 흐르는 땀은 공중에 떠다니는 분탄에 까맣게 얼룩이 지고
식사시간이 되면 안전지대로 나와 찬 꽁보리밥을 먹었을 것이다.
바닥에 도시락을 놓아두면 쥐들이 시식을 하는 통에 매달아 두어야 했다고 한다.
'동물농장'과 '1884'를 쓴 조지 오웰이 33살때 한 단체로부터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잉글랜드 북부 노동자들의 실상을 취재해 글을 써 달라는.
오웰은 직접 노동자들의 삶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탄광지대 노동자들이 보내는 하숙집에서 잠시 기거하며,
그들과 관계를 맺기도 하고, 또 그들을 따라서 탄광 속 막장에 가보기도 했단다.
그는 그 안에서 일하는 탄광들의 대단한 철인 능력이라고,
오웰은 그들을 보고 '철의 인간 같다' 라고 표현하는데,
그 노동력을 보고 자신이 광부가 된다면 몇주만에 죽어버릴 것이라고.
육체노동자가 되는 일이 없기를 신께 기도했다고 한다.
본디 막장이라는 말은 ‘갈 데까지 갔다’ 또는 ‘이젠 꿈이고 희망이고 뭐고 없다’ 등의
극단적인 부정의 상황에서 주로 표현하는 말이다.
그 말의 시작은 60년대와 70년대 석탄 산업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광부들이 땅을 파다가
'더 이상 무연탄이 안 나온다'는 절박한 상황에서 '막장이다.'라는 말을 사용했다.
물론 막장은 메주가루와 보리쌀 등으로 만드는 장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막장 드라마’처럼 다양한 분야에다,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한 번에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대중성으로 인해 최근 자주 회자되는 말이 되었다.
아침 출근길, 산길에 쓰러진 두더지를 만났다.
두더지는 쥐와 계통분류를 달리한다. 두더쥐가 아닌 이유다.
지하 갱도가 아닌 지상을 통과하다가 가끔 지나던 차에 치었을 것이다.
지하갱도는 반영구적으로 처소와 화장실, 식량창고를 따로 두고 산다고 했다.
시력이 퇴화된 두더지는 봄햇살을 피해 이른 아침으로 꽃구경을 나왔을 것이다.
어린 시절, 이맘때였을 것이다. 배고픈 시절이었다.
해는 길어져 가는데 퉁가리안의 고구마는 바닥을 들어낸지 오래이고 살강에는 군둥내나는 짠지뿐이었다.
어느 해 봄이었던가, 심한 감기에 기력을 차리지 못하고 한동안 누워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구수한 냄새까지 나는 국물을 대접에 담아오셨고 나를 일으켜 그 국물을 삼키게 했다.
그 국물 덕분이었는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국물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작은 양은솥단지에 두더지가 있었던 것이다.
두더지는 밭고랑속으로 길을 내고 지렁이며 지네 굼벵이로 고단백 식사를 즐긴다고 했다.
대식가이고 일부 다처로 살며 , 일명 토삼이라고도 한다.
두더지야 먹이를 구하기 위하여 땅굴을 파는 것이었지만 곡식들의 뿌리를 해쳐 말라갔고 둑을 무너트려
격멸의 대상이었다.
긴 겨울을 지나며 두더지도 봄을 무척이나 기다렸을텐데, 두더지에게 사월은 잔인한 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