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에서 책을 펼쳐
십이월 초순 수요일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와 인접한 농협 마트에서는 수요일과 토요일이면 매장 바깥에서 알뜰 장터를 열어 주민들이 신선한 채소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요새는 김장철이라 그와 관련된 재료들이 인기리에 팔려나갔다. 우리 집은 김장김치를 담글 여건이 아니라 그냥 스쳐 지났지만 고구마는 간간이 사 왔다. 찐 고구마는 끼니를 대신하거나 간식거리로 삼는다.
날이 밝아온 아침 식후 산책을 머뭇거리다 알뜰 장터로 나가 볼 요량이다. 올가을 들어 고구마는 농협 알뜰 장터에서나 홈쇼핑에서 사보기도 했다. 제과점의 빵도 간식으로 삼을 수 있으나 가성비나 영양 면에서는 고구마가 더 나은 듯했다. 탄수화물이 많은 고구마를 즐겨 먹으니 자연히 식사량은 줄여도 되었다. 퇴직 후 귀촌한 대학 동기가 농사지어 보내준 고구마도 잘 먹었다.
수요 장터로 나가니 나보다 먼저 시장을 봐 오는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이 쇼핑 캐리어에 무와 배추를 가득 채워 끌고 왔다. 농협 옥외 장터로 가니 과일을 비롯한 여러 가지 농산물이 진열되어 있었다. 판매업자는 오늘은 특히 김장 부재료에 해당할 당근과 파와 갓을 할인가로 판다고 홍보에 열을 올렸다. 임시 계산대에는 장터 시장을 본 부녀들이 줄을 길게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장터 펼쳐둔 고구마를 한 상자 사서 집으로 옮겨다 놓았다. 그 길로 현관에서 돌아서서 도서관으로 가는 걸음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 보도를 걸으니 갈색으로 물든 메타스퀘어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 반송 소하천 냇바닥에는 여름 철새와 겨울 철새가 공존 공생했다. 중대백로와 쇠백로는 남녘으로 내려가지 않았고 겨울 철새 흰뺨검둥오리는 텃새로 머물렀다.
원이대로 건너 창원 레포츠타운 동문에서 폴리텍대학 후문을 거치니 대상공원 개발 공사 현장은 어수선했다. 폴리텍대학 구내는 학생들이나 교직원들 모습을 볼 수 없어 휴일이나 방학처럼 여겨졌다. 공업 전문계 고등학교 사잇문에서 교정을 가로질러 창원도서관 책담으로 향했다. 도서관에 닿으니 업무가 시작되어 열람자들이 간간이 보였는데 2층으로 올라 대출 도서를 반납했다.
신간 도서 서가에서 이극로 전집을 펼쳐 보려니 대출 중인지 서가에 보이질 않아 다른 책을 살폈다. 전에는 역사나 환경에 관한 책을 관심 있게 봤는데 근래는 심리나 건강에 관한 책을 골라 보는 편이다. ‘흔들릴 줄 알아야 부러지지 않는다’와 ‘나이를 이기는 심리학’ 외 3권을 더 뽑아냈다. 열람석으로 돌아와 학부생들에게 심리학을 강의하는 현직 교수가 쓴 책을 펼쳐 읽었다.
점심때가 되어 휴게실로 내려가 컵라면으로 한 끼 때우고 자판기 원두커피를 뽑아 양치를 대신했다. 열람석으로 돌아와 도서관 내에만 열람이 가능한 책을 2권 골라 읽었다. 당뇨병학회 전문의가 펴낸 건강서와 대학에서 도자기를 평생 연구한 이의 ‘옹기’에 관해 화보를 겸한 해설서였다. 옹기 관련 책에서는 사라진 장독대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어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오후에는 평소 교류가 있는 문우가 도서관을 찾아와 잠시 뵌 후 그는 별실에서 글쓰기 워드 작업을 하러 갔다. 나는 오전에 골라둔 책 가운데 미처 열람 못한 ‘탐조일기’를 펼쳐봤다. 철새와 텃새 관찰 입문서로 그림과 함께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놓았다. 이번 도청에서 퇴직하는 사진작가 최종수님이 생태에 관심이 많고 새 박사로 통해 언제 주남지로 찾아뵙고 싶은 생각이다.
하교 시간이 다가와 도서관을 나서면서 ‘처음 만나는 한시’는 집에서 읽으려고 대출받았다. 도서관에 와서 글을 쓰던 문우는 가을 냇가 냇바닥에 흔한 ‘고마리’를 글감으로 삼아 음률을 고르다가 귀갓길에 동행했다. 폴리텍대학 캠퍼스에서 원이대로 건너 무학상가 커피숍에서 꽃대감과 같이 앉았다. 창밖은 어둠이 내려앉아 가로등이 켜지는 거리를 바라보며 커피를 들고 일어났다. 23.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