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은 배경의 의인 - 성요셉 예찬
2023.3.20.월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2사무7,4-5ㄴ.12-14ㄱ.16 로마4,13.16-18.22 마태1,16.18-21.24ㄱ
어제 교황님의 강론을 요약한 제목의 말마디에 마음의 눈이 활짝 열리는 듯 했습니다. 특히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 의인 요셉을 기리는 대축일에 걸맞습니다.
“여러분의 눈을 여십시오. 그리고 하느님의 선물들에 놀라십시오.”
선물중의 선물이 오늘 대축일을 지내는 우리 요셉 수도원의 주보성인인 의인 성요셉입니다. 아니 우리 모두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놀라운 선물입니다. 이런 하느님 사랑의 선물에 감동한 삶에서 샘솟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방금 부른 화답송 역시 우리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선물같은 시편 성구였습니다. 오늘 하루 끊임없는 기도 노래로 바쳐도 좋겠습니다.
“주여, 넘치도록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 한생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아주 오래전 어느 수녀님이 넋두리처럼 던진 말마디를 잊지 못합니다.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노인은 많은데 어른이 없고, 선생은 많은데 스승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른 없다, 스승 없다, 성인 없다 탄식할 일이 아니라 내 먼저 어른이, 스승이, 성인이 되기 위해 분투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감사하게도 시공을 초월하여 참 어른이자 스승이요 성인이신 성요셉을 만납니다. 어제 점심식사시 한 수사님이 제 강론에 인용했던 만세 삼창의 기도를 언제 하느냐 묻기에 얼버무렸습니다만 지금 밝힙니다. 밤에 기상하자마자 방에서 소리내지 않고 하는데 평소 삼창에다 오늘은 성요셉을 넣어 만세 사창을 하였습니다.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수도원 만세!”
“성요셉 만세!”
이렇게 가슴을, 마음을, 활짝 열고 양손을 활짝 펼쳐 푸른 하늘을 향해 만세를 부르는 기도 역시 영육의 건강에 참 유익한 수행이겠습니다. 오늘은 한결같은 배경의 의인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입니다. 임종자의 수호자이자 거룩한 교회의 보호자이신 성요셉은 말그대로 위대한 배경의 의인이자 성인입니다.
오래전에 써놨던 자작 “산처럼! 이란 자작 애송시 역시 산같은 배경의 하느님 아버지를, 또 예수님의 양부 요셉을 상징합니다. 성가정의 한결같은 배경의 수호자 의인 성요셉입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가슴 활짝 열고
모두를 반가이 맞이하는
아버지 산 앞에 서면
저절로 경건 겸허해져 모자를 벗는다
있음자체만으로
넉넉하고 편안한 산의 품으로 살 수는 없을까
바라보고 지켜보는 사랑만으로 행복할 수는 없을까
산처럼!”
넉넉한 품의 배경이 되어 살라고 유난히 산들이 많은 우리나라같습니다. 산이 붙은 지명은 얼마나 많은지요. 제 경우 고향만 해도 예산군禮山郡에 봉산면鳳山面에, 아홉 개 바위를 품은 산동네라 하여 구암리九巖里입니다. 이제 도시 아파트촌에서 태어난 이들은 이런 추억과 꿈이 가득한 고향의 주소도 못지닐 것이니 얼마나 정서적으로 궁핍하겠는지요.
한결같은 산같은 배경의 의인 요셉의 성덕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미사후 부를 성가 280장 “성요셉 찬양하세” 역시 의인 요셉의 성덕에 대한 찬양입니다. 요셉의 성덕은 끝이 없지만 셋으로 요약하여 나눕니다.
첫째, 성요셉은 의로운 사람, 의인이었습니다.
성경의 의로움은 또는 정의는 근본적으로 법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 충실함을 뜻합니다. 요셉은 마리아와의 관계에서 참으로 마리아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니 바로 이것이 요셉의 의로움입니다. 다음 구절이 한없이 너그럽고 자비로운, 관대하고 고결한 의인 요셉의 인품을 요약합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지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말그대로 산의 배경, 산의 품같은 의인 요셉이었습니다. 존재는 관계입니다. 관계를 떠나 살 수 없는 인간이요 인간의 될 수도 없습니다. 마리아의 처지를 배려하는 요셉의 자비로운 연민의 사랑은 바로 자비하신 하느님과의 관계를 반영합니다. 얼마나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를 닮았는지 그대로 오늘 요셉의 너그럽고 자비로운 처신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래서 의로운 사람, 의인 요셉이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둘째, 성요셉은 침묵의 사람이었습니다.
말없는 무겁고 어두운 침묵이 아니라 깨어 있는 밝고 맑은 경청의 침묵, 사랑의 침묵입니다. 이런 침묵은 그대로 하느님의 언어가 됩니다. 경청을 위한 침묵이요 이런 경청에서 겸손의 덕이, 순종이 덕이, 무죄한 삶이 자연스럽게 뒤따릅니다. 오늘날 우리 수도자들은 물론 신자들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이 이런 침묵의 덕입니다.
그러나 2020년부터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하다 오늘부터 마스크를 벗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마스크를 하며 그동안 침묵을 배웠음이 큰 소득일 것입니다. 새삼 침묵 역시 의식적 선택이요 훈련이요 습관임을 깨닫습니다. 요셉의 경청의 침묵중에 수호천사도 항상 함께 했음을 봅니다.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밤새 침묵의 기도중에 고뇌하는 요셉의 꿈에 나타나 결정적 조언을 주는 수호천사입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아마도 이 결정적 말씀을 성요셉은 평생 마음에 새기고 살면서 배경의 품이, 침묵의 품이 되어 예수님을, 마리아 성모님을 성심성의껏 돌봤을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을 통해 실현되는 하느님의 원대한 꿈, 사무엘의 예언입니다. 제1독서 사무엘 하권은 이미 그 아득한 옛날 예수님을 통해 실현될 하느님의 나라 교회의 출현을 암시하는 예언입니다.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
셋째, 성요셉의 믿음입니다.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순종으로 표현되는 믿음입니다. 자발적 사랑의 순종은 믿음의 잣대이자 영성의 잣대입니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지체없이 순종하니 하느님은 얼마나 요셉의 믿음에 감동하고 기뻐하셨겠는지요!
자비하고 지혜로우신 하느님은 절대로 일방적으로 일하시지 않습니다. 인간의 자발적 협력을 필요로 하십니다. 그러니 침묵의 경청중에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사순시기 참으로 자주 나오는 시편 성구를 기억할 것입니다.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마라.”
성 요셉의 믿음의 족보는 아브라함, 다윗에 연결되어 있음을 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유전인자 DNA가 의인 요셉에게 그대로 전수되었음을 봅니다. 사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순교영성의 유전인자 DNA가 전수되고 있음을 믿습니다. 다음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의 아브라함에 대한 고백은 그대로 성요셉에게도 해당됩니다.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바로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그대로 닮은 성요셉입니다. 구약의 아브라함이라면 신약의 성요셉입니다. 역대 교황님들은 물론 신자들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았던 성요셉입니다.
지금 3월은 은총의 사순시기이자 성요셉 성월입니다. 한결같은 배경의 의인, 침묵과 믿음의 성요셉의 성덕을 닮을 수 있도록 이 거룩한 미사중 주님의 은총을 청합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2021년도 요셉 성인에 대한 교리교육을 마치면서 바친 요셉 성인께 드리는 기도로 강론을 끝냅니다.
“침묵의 사람 성 요셉이시여,
당신께서는 복음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으니,
헛된 말을 금하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올바르게 이끌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지지하는 말의 가치를 다시금 발견하게 하소서.
비방이나 중상모략과 같이 상처주는 말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다가가시고,
항상 말과 행동을 일치시킬 수 있게 우리를 도우소서.”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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