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첫 아이를 품에 안은 이금희순간입니다.
어제 출산 전까지 며칠을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피로도가 극에 달했는데요,
아직 생생할 때 기록하지 않으면 영원히 잊게 될까봐 병원에서 쭈그리고 앉아 부랴부랴 썼네요.
참고로 글에서 또린이는 아내를 부르는 애칭이고, 뚝배기는 머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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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출생
10월 1일 국군의날. 당구 약속을 기대하며 잠을 자고 있는데 이른 아침부터 또린이가 통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뭔가 하고 일어났더니 병원에 가잔다. 진통이 좀 왔다며. 예정일보다 한 달 가까이 일찍? 황급히 준비를 하고 출발하는데 마음이 붕 떴다. 차고에서 나와 오른쪽 일방통행 도로로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 길로 갈 정도였으니.
원장샘은 자궁입구가 1.5센티 정도 열렸다고 했다. 한 번 열리면 되돌아가지 않는, 즉 돌아갈 수 없는 길로 왔다는 거다. 오늘 분만해야 한다. 완전 한 방 얻어맞은 느낌. 준비고 뭐고 하나도 안 됐는데. 일단 버틸 만해서 집에 가기로 했다. 또린이는 요양을 하고 나는 급한 대로 집 정리와 청소를 시작했다. 키키가 집에 올 때 지저분하게 먼지를 날리는 환경을 제공할 순 없으니까.
3시간 정도 있으니 또린이가 병원에 가야겠다고 했다. 최대한 조심조심 차를 모는데 그날따라 방지턱이 그리 높아만 보였다. 입원수속을 하고 각종 동의서에 사인을 하게 되니 겁이 덜컥 났다.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 하는. 태아를 위한 각종 검사와 산모를 위한 영양제 등 돈을 아낌없이 풀어내고 본격적인 태동검사가 진행됐다. 아이는 건강하고 산모의 진통도 굉장히 미미한 수준이라는데 또린이는 이미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다. 한 시 정도에 분만 과정이 30%진행됐다고 했지만 이후 얼마나 걸릴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잘 진행되면 오늘 안에, 조금 지지부진하면 자정을 넘길거라고. 그 와중에 우리 둘 다 자정을 넘기면 256,000원짜리 병실 요금이 하루 추가될 걱정을 하고 있었다.
또린이의 신음소리가 커졌다. 점점 통증이 심해진다는 뜻. 아이가 빛을 볼 시간이 점점 가까워져온다는 뜻이기도 했다. 또린이는 무통주사를 찾았다. 자궁입구가 4,5cm는 열려야 쓸 수 있다고 해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또린이가 안쓰러웠다. 몸이 저절로 꼬이고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보였다. 어떤 자세를 잡아도 아프고,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 존재 자체가 짜증을 유발하는 것만 같았다. 청주월드컵 마지막 날이라 경기를 봐야 하는데 음소거로 해놓고 눈치 보며 봐야 했다.
무통 주사를 맞기로 했다. 일단 주사할 경로를 잡고 척수에 관을 꽂았다. 주사를 맞을 때가 되면 그 관에 주사액을 주입하는 방식이었다. 주사를 맞고 10,20분 뒤에는 약효가 도는지 표정이 밝아졌다. 이날 처음으로 웃음을 보인 때이기도 하다.
무통 주사를 맞으면 진통이 약해져 아이를 밀어내는 힘이 약해진다. 즉 분만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 의료진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리라. 대기 시간이 길어지니까. 수시로 와서 태동과 진통 강도를 살펴보는데 만족스러운 것 같지 않았다. 그 와중에 또린이가 자세를 자주 바꾸니까 태동검사기 위치가 달라져서 간호사들이 와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짜증이 날 것 같은 타이밍엔 늘 웃으며 말한다. 극한직업이다.
5시 30분, 분만실로 향했다. 그냥 병실 같은 곳에서 그냥 병상 같은 곳에 누워 있었다. 잔잔한 어린이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조명은 타이마사지처럼 적당히 은은하게 어두웠다. 분만실 입장 때는 당장이라도 태어날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70%가 진행됐다고는 하지만 산모의 진통이 약하면 얼마든지 더 길어질수도 있었다.
또린이의 통증이 더 심해져 2차 무통을 맞았다. 오래 고생해도 안 아픈 게 최고라는 신념. 얼마나 아프면 그럴까. 하지만 무통을 맞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태아의 자세를 돌리거나 위치를 더 내려오게 하기 위해 간호사들의 잔업이 시작됐다. 또린이의 자세를 바꾸고 호흡도 시키고 각종 요법이 들어가자 조금씩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무통을 맞았음에도 통증이 제법 강하게 와 의료진이 상황 파악에 나섰다. 자궁입구가 크게 열려 이제는 힘을 줘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다리를 벌리고 손잡이를 잡고 숨을 참으며 밀어내기를 시도한다. 한 번에 될 리가 없다. 두 번 세 번 네 번. 그러다가 통증이 사라지면 숨을 고른다. 통증 주기가 짧아져서 3분 정도 간격으로 통증이 오는 듯했다. 아무리 아프고 힘들고 괴로워도 통증이 오면 다시 죽을 힘을 다해 밀어내기를 했다. 보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하는 사람은 형언할 수 없는 괴로움 속에 힘을 내야 했다. 격통에 시달리다보니 요령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팔다리 같은 불필요한 곳에 힘이 들어가 좀처럼 분만이 진행이 안 됐다. 5번에 한 번 정도 제대로 들어가는 듯 했다.
10시 30분 정도 되니 간호사들이 의사를 부르러 갔다. 원장님이 막타를 치러 온다는 뜻. 잽싸게 카메라를 설치하고 음성 녹음을 준비했다. 예민해진 또린이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각도를 최대한 신경 썼다. 의사가 오고 분만 준비를 마쳤다. 슬쩍 보니 이미 아이 머리가 보이고 있었다.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로 산소마스크까지 낀 또린이가 죽을 힘을 다 해 용을 썼다. 잘하고 있다, 거의 다 왔다, 힘내라고 옆에서 거들고 호흡도 같이할 수 있도록 유도했지만 별 도움은 안 된 것 같다.
30분 정도 막연한 힘주기와 사투를 벌인 끝에 간호사가 만세 자세를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이윽고 양수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고 세상을 향한 함성이 터져나왔다. 깔끔한 응애응애가 아니라 뭔가가 성대에 걸려 있는 듯한 거친 응애 소리. 두 손바닥으로 다 가려지는 이 작은 아이가 그렇게 우렁찬 소리를 낸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저절로 눈물이 그렁거리게 되는 부모 자식 간의 첫 만남. 이 순간을 위해 살아온 느낌마저 든다.
태지와 양수, 피로 뒤범벅이 된 태아는 곧바로 엄마 품에 안겼다. 또린이는 서럽고 아프고 힘들고 후련하고 반가운 세상 모든 감정이 뒤범벅이 된 듯한 울음을 터뜨리며 아이와 인사를 나눴다. 2월 2일부터 10월 1일까지 딱 8개월을 품에 안고 있던 아이. 단 한 번도 본 적 없고, 얘기도 나눈 적 없지만 존재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확실하게 알고 있던 바로 그 아이. 또린이는 키키를 가슴에 올려놓고 어찌해야할 바를 몰랐다. 우린 초면이었으니까.
원래 르바이에 분만이라고 해서 출생 직후 한 시간 동안 부모와 태아만의 시간을 갖게 해주는 게 이 병원의 특징 중 하나였다. 하지만 키키는 엄마 뱃속에서 태변을 봤고, 그 태변이 섞인 양수를 많이 먹은 바람에 바로 신생아실로 올려보내 처치를 받아야 했다. 그 보드랍고 뽀송뽀송하고, 약간은 끈적하고 찜찜한 태지가 묻어 있었음에도 사랑스러웠던 우리 아기. 너무 일찍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했지만 혈육이라는 게 왜 끈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지 알게 됐다. 2.735kg으로 태어난 우리 천사. 우리 집엔 천사 두 명과 뭉치 한 명이 살게 됐다.
첫댓글 축하드려요! 중간에 또린님 실명 거론된 거 같은데.....ㅎㅎㅎ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병원 이름도 써놨네요 ㅋ
읽는 내내 숨죽이고 봤어요!ㅠㅠ 정말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항상 아나운서관련 글들에 유용한 댓글 많이 남겨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있었는데..한 아이의 부모가 되셨다니 저도 기쁜마음입니다~^^ 축하드려요^^^
그 날 어땠는지 머릿속에 그려지는 느낌이에요. 같이 아팠다가 기분 좋아지는...! ㅎㅎ
순산 정말정말 축하드리고
새 식구와 함께 행복한 가정 잘 만들어나가시길 바랍니다!! ㅎㅎ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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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실이어서 조금 비싸더라고요. 그래도 자연분만이고 밤 11시에 태어나서 이틀 입원했지, 제왕절개에 자정 넘겨 태어났으면 4,5일치 나갔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다들 감사합니다. 이상하게 보이더라도 모르는 사람 붙잡고 자랑하고 싶은 기분이네요. 헤헤
축하드려요! 날 닮은 아기와... 넘 신기할 것 같아요
ㅠㅠ 보는내내 눈물이 글썽글썽.... 정말 축하드립니다... 저도 언젠가 엄마가 될텐데... 너무 감동이예요... 키키야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렴❤️
축하드려요^^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