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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피를 줘 01
창으로 들어오는 붉은 노을이 3학년 2반을 가득 매우고 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교실.
오직 한 남학생만이 창가 쪽 책상에 앉아 턱을 괴고 지는 하늘을 넋 없이 보고 있다.
왼쪽 가슴팍에 달린 명찰 ‘이해원’ 그 남학생의 이름이다.
너무나 예쁜 남자였다.
19살, 그 나이에 맞는 다부짐보다 15살, 사춘기 소녀의 향기가 그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그에게 머무르고 있었다.
조그마한 바람에도 그의 가녀린 머리칼들은 그네를 타듯 흩날렸고
붉은 노을은 그의 하얀 얼굴을 도화지 삼아 다홍빛 채색을 하고 있었다.
잘 다듬어진 눈썹, 옅게 그리고 날카롭게 주름진 눈꺼풀,
도톰과 두툼의 사이에 있는 선홍색 입술엔 약간의 피딱지가 붙어있다.
“답답해.”
해원은 창 너머를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거두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머리칼들이 내려앉았다.
곁눈질 거리에 이리저리 엉겨 붙어 넘어진 책걸상이 보였다.
생각하기 싫다.
그런데 해원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그렇게 지독히도 싫은 30분 전의 상황이다.
젖은 갈색 눈동자로 해원은 그에게 말했었다.
“남자새끼가 왜 이러냐고. 나 남자라고. 안 보이냐고.”
교복 넥타이까지 풀어 던졌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 답답한 상황에 그렇게까지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그 앞에서 셔츠 단추까지 다 풀어보였다.
그때는 그렇게 하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남은 것은 수치심과 망신스러움 뿐이다.
그의 주먹에 피 맛이 느껴질 때야 정신이 들었다.
그는 해원을 경멸의 눈으로 보곤, 말없이 해원 주위로 난폭하게 책걸상을 집어던졌다.
그렇게 그가 떠난 지가 30분이 지났다.
“미친 새끼. 진짜.”
비소하며 머리칼을 마구 헝클었다.
해원은 다가올 내일이 무서웠다.
그리고 여전히 무섭다.
해는 저렇게나 빠르게 지고 있었다.
벌써 온 하늘은 다홍색이고 곧 어두워질 것이다.
어두워진 뒤엔 새벽이 오고 또 하루가 시작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공간에서 또 그와 마주치게 된다.
해원은 체념하듯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널브러진 책걸상을 세웠다.
떨어진 넥타이도 다시 단정하게 맸다.
어쨌거나 늦지 않게 학원은 가야했다.
그 때문에 내 생활이 방해받는 건 너무나 싫었다.
해원은 뒷문 옆에 붙은 거울 앞에 섰다.
조금은 부은 오른쪽 뺨.
찬 손을 뺨에 가져다대어 보았다.
손의 찬 기운이 뜨거운 볼에 닿아 기분 좋게 시원했다.
“노래하다가 딱지 떨어지면 어떡하지.”
하지만 오늘 노래 연습을 잘 할 수 있을지는 걱정이 되었다.
아무래도 해원이 더 마음에 쓰이는 건 부은 볼보단 조금이라도 움직일 때마다 아픈,
터진 입술이었다.
*
“야, 이해원. 누구한테 맞았어?”
해원은 뜨끔했다.
등교하자마자 앞자리에 앉는 재성이 해원의 터진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대일밴드 뭐냐?”
터진 곳을 가린다고 붙인 게 티가 더 나나보다.
“그냥, 집에 있길래 붙여봤어.”
해원은 민망하게 웃으면서 대일밴드를 조심스레 땠다.
다시 앉은 딱지 때문인지 피는 묻어나온 피는 없었다.
어제 저녁 노래를 부를 때 너무 힘들었다.
노래 선생님도 누구한테 맞은 거냐며 노발대발하셨다.
결국 원래 마치는 시간보다 일찍 집에 오게 됐다.
곧 입시철인데 자신이 집에 일찍 와있는 동안 학원에서 연습할 친구들을 생각하니 부럽기도 했고 무엇보다
억울했다.
“이야, 이해원. 너도 남자라고 쌈박질하고 다니냐?
그래도 착하다, 이 예쁜 얼굴 시푸르댕댕 만들지는 않으셨네.
누구시냐, 그분? 입술만 터진 거 가서 감사하다고 해라.”
“누구 놀려?”
“놀리는 거 아닌데? 진심인데?”
“너도 이렇게 만들어줄까?”
책가방에서 필통과 연습장, 그리고 아침시간에 하는 영어듣기 교재를 꺼내면서
해원은 재성에게 주먹을 들어보였다.
자기 딴엔 든다고 든 주먹이 아주 하얗고 작은 주먹이다.
재성은 기가 차다는 듯이 ‘어~ 때려줘~’
비아냥거리며 뒤쪽 사물함에서 영어듣기 교재를 가져왔다.
“오늘은 몇 페이지부터야?”
“50쪽. 듣지도 않으면서 맨날 페이지는 물어.”
해원은 아쉬운 소리하며 큭큭 웃었다. 볼에 깊은 보조개가 파였다.
재성은 해원에게서 이미 등을 돌리고 앉은 채 등 너머로 중간 손가락을 들어 내보이고 있었다.
등교시간 7시 50분이 가까워져오자 빈자리들이 조금씩 채워지고 있다.
절반은 아직 잠에서 못 깼는지 들어오자마자 책상에 엎드려 잔다.
해원은 교복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아침시간 20분 동안은 매일 영어단어를 외우는 시간으로 정했다.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라 20분이면 단어 5개 정도 외울까 말까지만 1학년부터 그렇게 외운 단어로 또래에 비해 어휘수준이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해원은 엠피쓰리 곡 선정을 하다가 액정 오른쪽 최상단에 있는 시계를 보고 문뜩
지금이 7시 40분이라는 걸 알았다.
평화롭고 잔잔하던 해원의 심장이 갑자기
덜컥
나락으로 떨어졌다.
20분 남았다.
그는 항상 10분 지각했다.
“야, 이해원. 지금 멜론 들어?”
굳은 표정의 해원을 쳐다보며 재성이 물었다.
“아니, 너 들어.”
“땡큐. 땡큐.”
지금부터 단어 5개를 외우면 그가 온다.
그렇게 생각하니 해원은 서랍에서 꺼낸 일일 영어단어 책을 다시 집어넣고 싶어졌다.
사실 매일매일 이 시간엔 이런 갈등을 한다.
영어단어를 외우지 않으면 20분이 가지 않을 것 같지만
그건 아니란 것
또한 안다.
하지만 왠지 시간이 조금이라도 느리게 갈 성 싶어 매일을 고민한다.
그리고 그에게 피치 못 해 결석해야할 사정이 생기길 매일을 소원한다. 휴,
그럴 일은 없다,
절대.
bluff 허세 부리다, bluff 허세 부리다.......mongrel 잡종.....
정말로 20분이 지났을까,
드르륵-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있을 무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순간
조금은 소란하던 교실에 찬 물을 뿌린 듯 그렇게
공기는 가라앉았다. 왔다.
그가 왔다.
갑자기 두 볼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아프지도 않던 입술이 갑자기 다시 따끔따끔한 것 같았다.
약간은 어색한 동작으로 영어단어책을 서랍에 넣고 꺼내놓았던 연습장을 펴들었다.
“안녕.”
옆자리 의자가 뒤로 쭉 빠지고 그 위에 한 물체가 앉는 게 곁 시선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물체는 해원에게 인사했다.
톤 없이 아주 무미건조한 목소리다.
걸걸하고 낮았다.
해원은 연습장을 넘기던 손을 잠시 멈추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조금 돌렸다.
김은규,
다리를 꼬고 뒤로 기대어 팔을 밑으로 축 늘어뜨린 채 앉아있었다.
“어, 안녕.”
목이 탁 막히는 기분이다.
매일을 느끼는 기분이지만 항상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신경 쓰지 않는 척 연습장에 오늘 외운 다섯 단어를 5번씩 써본다.
빨리 아침 자습시간이 끝나길,
그 남은 1~2분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너무도 불편한 심정에 연습장마저 서랍에 넣은 채 해원은 창밖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불안한 시선을 마땅히 처리할 곳은 저 광량한 하늘 뿐이었다.
그렇게 영겁의 2분이 지나고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해원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은 키도 아니다.
해원 역시 177cm의 큰 키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같이 일어난 은규 옆에서 해원은 그저
아담한 학생이었다.
“어디 가?”
등 너머로 소름돋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규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해원을 주시하고 있었다.
넓은 어깨로부터 뿜어져나오는 위압감에
해원은 숨이
턱
막혔다.
바로 어제 이 자리에서
해원은 은규에게 주먹으로 맞았고 입술이 터졌다.
은규는 해원에게 미친 듯 자기 책걸상을 집어던졌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다가오는 은규가 해원은 무섭고 괴기스러웠다.
“어, 그냥. 내 볼 일 보러.”
퉁명했다.
해원은 대충 대답하고 황급히 교실을 빠져나왔다.
복도에 갇혀있던 차가운 아침 공기가 스쳐가자 해원은 온 몸이 깨끗해지는 것 같았다.
불구덩이에서 빠져나온 기분이다.
계속 복도에 있고 싶다.
어디라도 좋으니 김은규가 없는 곳이라면.
해원은 오른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연거푸 쓸며 화장실로 향했다.
은규로 인해 잔뜩 긴장하고 겁 먹어서 달아올랐던 얼굴을 식히려 함이었다.
해원은 세면대 앞에 서서 허리를 구부리고 두 손으로 찬 물을 받았다.
그리고 세 네 번 얼굴을 씻어 내렸다.
아무리 축여봐도, 여전히 피부 안에는
뜨거운 열들이
채여 있었다.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자 턱 선을 따라 물방울들이 떨어졌다.
해원은 교복 엉덩이에 물 묻은 손을 닦았다.
그리고 혼자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칸막이 칸으로 들어가 커버를 내리고
털썩 주저앉았다.
“짜증나. 숨 막혀서 죽겠네, 진짜.”
거칠게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싸이코패스도 아니고.”
해원은 차가운 자신의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손바닥에도 얼굴에도 촉촉하고 냉기가 도는 물기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신기하게도 이렇게나 찬물이 덕지덕지 묻어있는데
볼은 그처럼 식을 줄을 몰랐다.
뜨거운 볼 덩어리가 붙어있는 것 같았다.
시간은 계속 갔다.
혼자만의 생각하는 시간 따위 갖지 못했다.
해원은 10분이란 시간을 볼 식히기에 쏟았다.
자존심이 상했다.
은규와 자신은 같은 남자였다.
같은 나이의 남자에게 겁 먹고 긴장한 자기 자신이 너무나
처량하고 불쌍해보였다.
그 감정들을 뛰어넘는 것, 자기 자신이 너무
우스워 보였다.
이렇게 작아질 수가 있나. 이렇게 형편 없을 수가 있나.
이런 생각들이 족쇄처럼 해원을 조여왔다.
상기된 볼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나약함을 '여기 좀 봐주세요'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10분이란 시간동안 해원에게 남은 은규의 영향력은
해원이 이겨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잠시 스쳐간,
어제의 자신과 은규의 형상에도 해원의 볼은 발갛게 달아올랐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더 이상은 외면할 수가 없었다.
해원은 겁을 먹었었다.
너무 무서웠었다.
책걸상이 바닥에 내동댕이 쳐질 때의 소리,
주먹이 뺨에 닿을 때의 그 소리.
분명 아직까지 떨고 있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1교시를 알리는 종이 울려 퍼졌다.
시간은 혼자만의 공간에서 해원을 끄집어내려 하고 있었다.
해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 매무새를 정리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번더,
차가운 자신의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 차가움은 여전히
피부에서만 맴돌았다.
이제 다시 본다,
김은규를.
해원은 요동치는 심장을 억지로 잠재우며 화장실 문을 열었다.
문이 열렸지만, 해원을 애워싸고 있던 그림자들은 빛 앞에
물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해원은 보았다,
자신과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그의 바로 앞에 서있는 한 형상을.
널따란 어깨를 펴고 주머니에 두 손을 꽂은 모습.
해원을 움츠러들게 하는 특유의
비누 냄새.
마주 보고 서있다.
그것도 1M도 안되는 이 거리에서.
다리가 떨렸다.
“찾으러 왔어.”
해원은 은규를 올려다 보았다.
은규가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기다렸어.”
.........
....
“10분동안.”
안녕하세요, 초보 소설...
모자라도 예쁘게 봐주세요T.T
첫댓글 재밋엇어요~ > <♥ 다음편도기대되요!!
첫 소설, 첫 댓글 ㅠㅠㅠ너무 감동이에요!!! 감사합니다ㅠㅠ
재밌어요 은규? 해원?캐릭터가 매력적이네요
다행이에요ㅠㅠㅠ진부할까봐 걱정햇엇는데...댓글감사합니당^^!
재미있어요~ㅎㅎㅎㅎ
앞으로도 지켜봐주세요ㅎㅎㅎ 열심히 쓰겠습니다!!
올ㅋㅋㅋ잼나네요 ㅋㅋ담편 기대 할게요~~^^
감사합니당!!!!!^ㅠ^ 열심히 수정하고2편 업로드할게요!
은규무섭.....
많이 무서운가요ㅠㅠㅠㅠㅠㅠ앞으로도 미숙하지만 지켜봐주세욧ㅎㅎㅎㅎ
오~~~작가님 잼있어요♥
곧 3편 수정본을 가지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0^!!!감사합니다^_^
재밌다
감사합니다 개척님*^^*
재밌어요^^
ㅠㅠㅠ정말 댓글하나하나 감사합니당
너무 재밌어요! 제가 왠만하면 동성 장르는 피하는 쪽이라 잘 접하지 않는데. 앞으로 너무 기대되네요 정주행 부탁드려요!
헉.....ㅠㅠㅠㅜ피하는장르인데도...정말 감격이네여ㅠㅠ흐억 네 새해복많이받으세요
동성 장르를 좋아하는 저로썬 ㅎㅎ 죄송합니다 제가좀 변태에요... 이소설 너무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