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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교복은 동복과 하복으로 딱 두 벌이었는데 하복은 5-8월까지 3 개월을 입었기 때문에 얄개 트레이드마크는 동복입니다. 스마트 교복을 입던 우리 시대 동복은 제일 합섬이면 명품이었어요. 교복 값 2만 원에 가봉까지 다 해줬어요. 날라리인 저는 아예 내피(우라, 뽕)를 빼고 상의를 맞추었고, 엉덩이 아래까지 기장을 길게 내린 것이 유행이었어요. 하의는 스즈키로 하거나 주머니 각도와 뚜껑(후다)을 꼭 달아야 했어요. 바지통을 12인치 배 바지를 입어야 먹어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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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와룡 정점은 폴리에스텔 80% 면 20% 로고가 자음과 모음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제일 모직이나 경남 모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는 것 아닙니까? 우리 고3 졸업식장부터 교복 위에 외투를 걸치기 시작했던 것 같고, 이후로 The North Face 패딩이 중 피리 교복이 되었고(지금은 한물갔지만), 잘나가는 고 삐리들은 Nepa 패딩 900빵 짜리를 교복 위에 입고 다니는 것까지 확인을 했는데, 요새 고딩들은 포스트 히틀러들처럼 이태리 탐 브라운 4선을 가-오 뿜뿜 내면서 입고 다닌다는 기사가 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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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원래 멋은 학생 때 부리고 다녀요. 돈은 학생들이 쓴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명품이 되라는 둥 월세 산 사람들이 겉멋이 들었다는 식의 비아냥거림은 하지 마시라. 그 자체가 부럽다는 것으로 밖에 안 들리니 말입니다. 속없는 나는 우리 딸내미들에게 하나를 사더라도 명품을 사라고 합니다. 명품을 입어야 명품이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각설하고 누구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자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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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할 권리(행복추구권)가 있다는 뜻입니다. 얼마 전에 일본에서 아르마니 80만 원짜리 교복을 맞춘다고 난리가 난 적이 있었어요. 일본에서, 그것도 초등학생 교복으로. 내가 아는 한 패션 쪽에서 현재 가장 돈을 많이 번 브랜드가 아르마니입니다. 노가다해서 라도 한 번 꼭 입고 싶었던 형님 교복 아르마니 160수, 지금은 좀이 먹어서 질척거리는 옷이 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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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를 다룬 독립영화 <여공의 밤>을 채널 돌리다 보았어요. 99분짜리 다큐인데 40년의 시간이 파지처럼 다가와 허리 통증도 잊은 채 타임 슬립했습니다. 영등포 유통 상가 내, 주) 대우 자동차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영등포 구청 어느 다방에서 아내를 소개(중매) 받았습니다. 이후로 대림동 영업소의 나와바리인 여의도-당산-대방동-신길동-구로동-가리봉동-구로 공구상가-문래동-시흥 공구상가까지 20대를 이곳에서 불사질렀으니,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꼽사리 낀다고 너무 야박하게 흉보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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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는 다들 미인인가, 감독이 이렇게 예뻐도 되나 몰라. 프로필을 아무리 찾아도 나와 있지가 않으니 사진으로 감 잡을 수밖에 없는데, 언제 찍은 사진인지 몰라도 사진상으로는 50 이상은 절대 불가로 자체 판정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시간을 해석하는 걸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60은 됐을 것입니다. 서울 영등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감독이 <여공의 밤 2023>을 통해 일제 강점기부터 존재하던 방직 공장과 당시 총동원령으로 그곳에 끌려와 일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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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노인이 된(1931) 여성을 만납니다. 방직공장과 기숙사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아파트, 구청의 철거 조치 공지문이 붙은 홈리스의 짐, 텅 빈 공장과 꽉 채워진 복합 쇼핑몰이 동시에 존재하는 영등포엔 '영등포까지 울며 왔다"라고 말하는 이옥순 씨의 기억, 수많은 여공들의 애환이 있습니다. <여공의 밤>은 영등포의 엣 방직공장을 중심으로 복합 쇼핑몰, 골목, 모텔촌, 사거리 등을 조명합니다. 전체 촬영 기간은 어느 정도였는지, 어느 규모를 촬영하려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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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은 그해 8월에 시작했고 테스트 촬영은 3년 남짓이었고요. 영등포의 다양함, 시간이 얽혀있는 요소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한 영화에 담기는 좀 어려워서, 방직공장의 터를 조명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뒀고요. 그 외에도 공간의 젠더적 특성이 확 바뀌는 경우를 촬영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현재 공구 상가엔 주로 남성들이 있지만, 거기에도 여성들이 있었다는 점을 기억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여성의 공간이었지만 남성의 공간으로 바뀐 곳을 촬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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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넣는 게 맞을지 고민이 많았어요. 여성이 있는 곳이지만 굉장히 남성의 공간이라고 여겨졌거든요. 사실 그 공간도 일제 강점기부터 있었고, 미군부대가 들어오면서 더 활성화가 됐죠. 모텔 촌의 경우도, 영화에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원래는 여성들이 방직공장으로 끌려가지 않았을 때는 여관 같은 데에 가둬두기도 했다는 점을 짚고 싶었어요. 모텔을 쓸고 닦고 관리하는 게 거의 여성들이기도 하고요. 그들이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궁금했어요(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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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당산> , <청파동을 기억하는가>처럼 공간을 조명하는 영화가 많아요. 감독님이 각별하게 느끼는 공간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기자)" "의문이 남는 공간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여기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이 드는 이상한 곳이요.(웃음) 공간을 보면 직감이 와요. 사실 영등포와 당산은 제가 오랫동안 살았던 곳이어서, 지금과는 또 느낌이 다른데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치안이 안 좋았어요. 공장과 아파트 등 성격이 다른 건물들이 얽혀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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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맥락이 있는 공간이라고 할까요? 청파동의 경우 재개발 문제로 논의 많았던 공간인데요. 사라질지 모르는 공간에 대한 궁금증, 그 공간을 남기고 싶은 욕구가 있어서 작업을 하는 것 같아요(김건희)" "조명이 교차하는 장면은 마치 네온사인을 포착한 듯해요. 빛을 활용한 장면들이<여공의 밤>에서 중요했던 이유는 뭘까요?(기자)" "네온사인이 영등포를 상징하는 요소라고 생각했어요. 휘황찬란하고 밤인데도 밝게 빛나는데 피해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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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대 말 영등포로 동원됐을 때는 그런 것들이 하나도 없었죠. 빛 자체가 귀한 시기였잖아요. 뭔가 잘 보이지 않고, 피해자들의 역사도 가시화되지 않는 것에 비해 영등포는 너무 화려하고 모든 걸 볼 수 있는 환경이라 대비를 두고 싶었어요. 특히 정월대보름에 달 빚을 태우는 영등포구 행사 장면을 촬영할 땐, 그 광경이 어색하게 느껴졌어요. 농촌에서 하는 행사가 도시에서 열린다는 것, 소원을 적은 종이를 불에 태운다는 것이 그렇게 다가왔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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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동원 피해자들이 어린 시절 공장으로 끌려가셨잖아요. 당시 가족들도 소원을 비는 마음으로, 피해자들이 건강하게 돌아오길 바라지 않았을까 싶었고요. 그리고 이 행사가 규모가 굉장히 커서... (중략)(김건희)" "<당산>을 만들고, 당산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셨다고요.<여공의 밤> 이후 영등포를 대하는 마음은 어떻게 변화하셨나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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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에서 오래 살았는데도 늘 불편했거든요. 무섭기도 했고요.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를 고민했어요. 한동안 밀착된 공간이었다가 이제 거리를 두고, 영등포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아주 편안하진 않지만, 영등포도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라는 생각이 강해졌어요.(김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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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주가 미전을 문래동에서 2년 전(2024)에 했고, 47세 때 <민속 윷놀이> 50대를 유통 상가에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89년) 로열 살롱이 비카 번쩍했던 유통 상가가 퇴물이 되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민속 윷놀이>로 꽤 오래 오락실을 했습니다. 23살 10월(1986)에 전역을 했고, 안방학동 원 약국 앞에서 임대로 당구장을 했을 것입니다. 겨울에 준석이 친구들과 친구를 먹고 뭉쳐 다닌 일 중에 미아리 사창가에서 총대 메고 무전 취식했던 기억이 가장 아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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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돌이 마크가 기억나는 걸 보니 88년까지 안방학동에 처박혀 있다(2년은 따로 다루기로 하고 패스)가 89년 1.6일쯤 대우자동차(주)에 입사했으니 내 나이 25살입니다. 그때 빌보드 차트를 휩쓸었던 마이클 잭슨 <빌리 진>이 대한민국을 강타했을 것입니다. <<우리 시대 영업 사원은 보험, 제약, 자동차 분야를 최고로 쳐주었습니다. 제대를 하고 대부분 영업사원 시절을 거쳐 각 분야로 진출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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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년대 산업화의 주역이었던 영업사원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요? 현대자동차 영업사원이 고객 돈 약 11억을 닦아 쓰고 자수를 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약 23명의 피해자가 발생했고, 횡령한 돈은 도박을 했다고 합니다. 도박이라? 무슨 도박을 했을까요? 강원 랜드에 갔을까나? 일개 Car 딜러가 어떻게 거액을 빼돌려 쓸 수가 있을까요? 물론 고객 돈을 현금으로 받아 품의서를 넣고 출고 때까지 돌려 막기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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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올라온 제가 대우자동차 영업사원을 한 시절이 있습니다. 대우-현대-쌍용 3파전이었고, 기아 봉고, 현대 소나타, 대우 로열 살롱! 1989년도에 영등 포 유통 상가 건물 남구 대우자동차(주)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정 태욱이라는 직원이 로열 시리즈 5대분 3,000만 원을 현금으로 받아 개인 통장에 넣고 몇 달간은 돌려 막기 식으로 버티다가, 고객이 본사로 찾아와 차 언제 나오느냐고 묻자 막간에는 잠수를 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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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강원도 탄광촌에서 잡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는 현금으로 차를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정 씨는 상당히 영리한 선배로 기억합니다. 제가 25살이었으니까 놈은 30살쯤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차량 대금도 높아졌고 부자 고객이 훨씬 많아졌으니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횡령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속아 넘어가는가 하는 부분(고객 7입장)을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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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에 의하면 시험은 개연성 면에서 누구에게든 올 수 있습니다. 다만 내 안에 욕심이 있으면 시험에 '걸려들기 지수'가 퍽 높아집니다. 그러나 저처럼 의심이 많고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평범한 원칙만 지키면 사기를 피해 갈 수 있습니다. 영업사원은 고객에게 본인의 통장으로 차량 대금을 받고, 그 돈으로 본인이 결제를 하면 5.8%의 캐시 백을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거짓말입니다. 보이스 피싱으로 사기를 당할 때도 이와 유사하니 주의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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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공공기관은 절대로 비상식적이지 않아요. 예컨대 밤에 검찰에서 전화가 온다거나 돈을 입금시키라는 것, D. C 혜택을 준다는 건 정상이 아닙니다. 정리하면 시험(test)이란 중립적인 단어인데 받아들이는 내게 욕심이 있으면 십중팔구는 유혹( temptation)이 됩니다. 그러나 시험이 왔을 때 상식을 대입해서 얼마든지 유혹 받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라. 상식 공부 좀 하겠습니다. 자동차란 주문생산이 아니라 생산라인에 있는 차를 고객이 주문하면 찾아다가 탁송해 주는 시스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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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냐면 라인에 있는 차에 맞춰서 고객에게 파는 것이지 고객이 선루프를 주문했다고 해서 지정 차에 선루프만 따로 달아서 나올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출고 라인만 확인하면 출고 일을 정확히 알 수 있어요. 요즘 워낙 차량 출고기간이 길다 보니 이 점을 악용하여 본인에게 계약하면 차량 출고기간을 줄일 수 있다고 할 것입니다. 속지 마시라. 과거에도 그랬고 자금도 자동차 회사는 공장 상황에 따른 차량 납기를 매달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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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차량 계약 시 순번 자체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 계약을 한다고 해서 차량 출고를 앞당길 수는 없습니다. 단 과거엔 연식이 지난 쇼룸 전시차를 처분하는 과정에서 500만 원 이상을 D C 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차는 연식이 1년을 묵혀 출고합니다. 지금도 렌터카, 리스의 경우 각 회사에서 보유하고 있는 물건이나 특판 물량이 나오기 때문에 종종 빠른 출고가 가능한데, 자동차 지점 또한 대리점에서는 불가능하니 이 점도 유의하셔야 합니다. 자, 그럼 피해 보상을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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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역 종합 쇼핑몰 타운 '영등포 타임스퀘어(탐스)'는 경방이 모체입니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왕십리역에 세워진 종합 쇼핑몰과 비슷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아침 일찍 일비(4000)를 타 영등포 오거리 김안과 근처 김밥 집에서 라면을 때리고 대우 다방에서 커피 한 잔을 했을 것입니다. 어느 날부터 교회 다니는 임규탁이가 조인트 하면서 나는 운신 폭이 좁아지긴 했지만 7-8명 되는 수컷들의 대장 놀이하는 데는 크게 지장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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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주 공주가 첫 전시회를 한다는 것 같습니다.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가야 하는데 같잖은 숍 때문에 발이 묶여 있습니다. 예주가 이렇게 움직 이는 것을 보니 아비 마음이 흐뭇하네요. 언니가 화환도 보냈고 여기저기 축하 메시지도 보냈으니 아비는 성금을 계좌로 보낼 생각입니다. 혹여 아비가 못 갔다고 섭섭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문래 동은 80-90년도 신입사원 때 자동차 팔러 나다니던 나와바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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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가 한창이던 시절 구로 공단-시흥 공구상가-문래 철공소 거리를 이 잡듯 뒤지고 다녔어요. 회사가 영등포 유통 상가 내에 있어서 역전-문래 동-신도림-영등포까지 허구한 날 걸어서 다녔어요. 그때 동기들이 영표, 영재, 호선, 재화, 충만, 규탁, 김한국이 정도가 생각이 납니다. 영등포 구청 어느 레스토랑에서 아내와 첫 선을 보았을 것입니다. 일비 타서 라면을 주로 먹었고요. 대우 누나와 한국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도 아스라이 노스텔지아를 불러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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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차를 로열 프린스 1.9 코발트 컬러로 출고했는데 문래 동 어느 금형회사였어요. 환상적인 컬러 코발트가 사고율이 가장 높다는 것 아닙니까? 예주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전시회를 영등포에서 여는 것도 나름 운명의 장난이 아닐까요? 김예주 리스펙트!>> 에예공! 시간은 모든 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은 지우고 어떤 것은 다른 모습으로 돌려준다. 그라고 우리가 기억한다는 것은 사라진 것을 붙잡는 일이 아니라, 그 시간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비의 오래된 영등포 위에 이제 네 시간을 한 겹 더 올려놓으시라!
2.
도시가 기억하는가, 인간이 기억하는가? 사라진 공장과 골목, 교복과 자동차, 첫 직장과 첫사랑의 장소는 없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기억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계속 존재하는가? 우리 시대 교복은 동복과 하복, 딱 두 벌이었습니다. 하복을 입는 기간보다 동복을 입는 시간이 길었으니 얄개의 트레이드마크는 아무래도 동복이었습니다. 제일합섬이면 제법 알아줬고, 날라리들은 내피와 어깨뽕을 빼고 상의를 길게 맞췄습니다. 바지는 주머니 각도와 뚜껑까지 신경 쓰고 통도 유행에 맞춰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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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지만 그때 우리에게 교복은 단순한 옷이 아니었습니다. 몸에 입는 시대정신이었습니다. 오늘날 학생들이 비싼 패딩이나 명품 브랜드를 입고 다닌다고 혀를 찰 일만은 아닙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옷을 통해 자신을 표현했고, 또래집단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해 왔습니다. 부르디외의 표현을 빌리면 취향은 단순한 개인적 취미가 아니라 계층과 문화자본을 드러내는 하나의 사회적 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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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명품을 입으면 명품 인간이 된다”고까지 밀어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옷은 사람을 표현하지만 사람 전체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젊은 시절 옷을 통해 멋을 부리고 자신을 연출하는 욕망을 무조건 허영으로만 보는 것도 지나칩니다. 인간은 먹고사는 존재인 동시에 자신을 꾸미고 보여주며 의미를 만드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교복 이야기를 하다가 영등포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은 생각보다 자연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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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을 돌리다가 독립영화 『여공의 밤』을 보았습니다. 99분 동안 40년의 시간이 파지 묶음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영등포 유통상가의 첫 직장, 영등포구청 근처에서 아내를 처음 소개받았던 기억, 대림동 영업소를 중심으로 여의도·당산·대방동·신길동·구로동·가리봉동·문래동·시흥공구상가를 돌아다니던 20대. 영화를 본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지나온 시간을 다시 걸었습니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공간을 단순한 빈 그릇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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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사회적 관계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보았습니다. 공장에는 노동의 시간이 쌓이고, 시장에는 거래의 시간이 쌓이며, 골목에는 사랑과 싸움과 가난과 욕망이 쌓입니다. 그래서 영등포는 지도 위의 행정구역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여공의 기숙사이고, 누군가에게는 철공소이며, 누군가에게는 자동차 영업구역이고, 누군가에게는 첫 직장이며, 누군가에게는 첫 선을 본 장소입니다. 하나의 공간 안에 수많은 시간이 겹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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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공의 밤>이 흥미로운 것도 바로 그 점입니다. 오늘날 영등포는 쇼핑몰과 아파트, 네온사인과 거대한 상업시설의 도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번쩍이는 표면 아래에는 방직공장의 여공들, 강제 동원의 기억, 골목의 노동자들, 모텔과 공구상가를 지켜온 여성들의 시간이 깔려 있습니다. 발터 벤야민이라면 이런 도시를 하나의 폐허이자 아카이브로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새 건물이 올라간다고 옛 시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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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새로움은 언제나 무엇인가의 폐허 위에 세워집니다. 방직공장이 사라진 자리에는 아파트와 쇼핑몰이 들어서고, 철공소가 밀려난 자리에는 카페와 갤러리가 들어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발전이라고 부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철학은 여기서 한 가지를 더 묻습니다. "무엇이 새로 생겼는가?”뿐 아니라 “그 새로움 때문에 무엇이 보이지 않게 되었는가?” 그 질문이 없다면 발전은 너무 쉽게 망각과 동의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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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등포를 보면서 유난히 시간여행을 하는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1980~90년대 산업화의 한복판에서 자동차를 팔던 영업사원들, 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다방에서 커피 한 잔 마신 뒤 공구상가와 공장지대를 돌아다니던 젊은이들. 지금은 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흔히 산업화를 공장과 수출액과 GDP의 역사로 기록합니다. 그러나 실제 산업화는 사람의 다리로 걸었습니다. 누군가는 공장에서 미싱을 돌렸고, 누군가는 선반을 깎았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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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자동차를 팔러 하루 종일 골목을 돌아다녔습니다. 한국 산업화의 진짜 역사는 숫자뿐 아니라 닳아버린 구두 밑창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동차 영업사원의 횡령 이야기도 단순한 범죄 이야기를 넘어섭니다. 영업은 기본적으로 신뢰를 거래하는 직업입니다. 고객은 자동차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영업사원의 말까지 함께 삽니다. 그래서 욕망이 개입하면 신뢰는 순식간에 유혹의 통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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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싸게 해주겠다.”
“조금 더 빨리 출고해주겠다.”
“나를 믿고 돈을 맡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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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의 많은 부분은 완전히 터무니없는 거짓말이 아니라 우리 욕망이 믿고 싶어 하는 작은 예외에서 시작됩니다. 야고보서의 언어를 철학적으로 바꾸어 말하면 이렇습니다. 시험(test)은 외부에서 오지만 유혹(temptation)은 내부의 욕망과 결합하면서 완성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속이는 가장 강력한 사기꾼은 때때로 타인이 아니라 <내가 믿고 싶은 것>입니다. 상식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상식은 화려한 철학이 아니지만 욕망이 폭주할 때 우리를 현실에 붙잡아주는 작은 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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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는 다시 문래동으로 돌아옵니다. 예주가 그곳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 자동차를 팔러 돌아다니던 문래동에서 딸은 그림을 걸었습니다. 이 장면은 생각보다 묘합니다. 아버지에게 문래동은 영업과 공장과 철공소의 공간이었고, 딸에게 문래동은 전시와 예술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같은 장소인데 전혀 다른 시대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것만도 아닙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물건을 팔며 삶을 개척했고, 딸은 그곳에서 작품을 보여주며 자신의 삶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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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공간이 예술의 공간으로 바뀌었지만,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고 자기 존재를 증명한다는 점에서는 두 세대가 이어져 있습니다. 베르그손은 시간을 단순히 시계처럼 흘러가는 것으로 보지 않고 지속(durée)이라고 불렀습니다.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 안에 스며들어 계속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1989년의 문래동과 2024년의 문래동은 완전히 다른 두 장소가 아닙니다. 아버지가 로얄프린스를 팔러 걷던 길 위에 딸의 전시장이 생겼다면, 과거가 현재 속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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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겹쳐지는 층입니다. 내 첫 직장과 첫 선, 자동차와 다방, 영등포 유통상가와 문래동 철공소, 그리고 딸의 전시회가 어느 순간 하나의 장면으로 포개집니다. 그래서 오래된 도시를 걷다 보면 이상한 감정이 생깁니다. “여기가 이렇게 변했나?”하면서도 동시에“나는 아직 여기를 알고 있다.”고 느낍니다. 도시가 기억하는 것인지 내가 기억하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 둘 다일 것입니다. 사람은 공간에 기억을 남기고, 공간은 다시 사람에게 기억을 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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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노스탤지어는 단순히 “옛날이 좋았다”는 감상이 아닙니다. 현재의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확인하는 존재론적 행위이기도 합니다.다만 과거를 아름답게만 기억해서는 곤란합니다. 영등포의 옛 공장지대에는 산업화의 활력도 있었지만 여공의 저임금 노동과 강제동원의 상처, 가난과 폭력도 함께 있었습니다. 철학적 기억은 과거를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빛과 그늘을 동시에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노스탤지어가 역사적 성찰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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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여공의 밤>이 내게 던진 질문도 바로 이것이었을 것입니다. 당신이 그토록 그리워하는 그 시절, 당신 곁에는 누구의 시간이 함께 흐르고 있었는가? 나는 자동차를 팔러 영등포를 뛰어다녔습니다. 어떤 여성은 그곳의 공장에서 밤을 보냈을 것이고, 누군가는 모텔방을 청소했으며, 누군가는 철공소에서 쇳가루를 뒤집어썼습니다. 같은 도시를 살았지만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았습니다. 그래서 기억은 개인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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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추억만 기억하면 향수가 되지만, 그 공간을 함께 살았던 다른 사람의 시간까지 기억하기 시작하면 역사가 됩니다. 그리고 이제 딸의 전시가 그 역사 위에 새로운 층을 하나 더 얹습니다. 아버지의 영업구역이 딸의 예술공간이 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운명의 장난이라고 불러도 좋겠습니다. 하지만 철학적으로 말하면 운명이라기보다 지속의 귀환에 가깝습니다. 과거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돌아옵니다.교복은 바뀌고, 자동차는 바뀌고, 공장은 쇼핑몰이 되고, 철공소 골목에는 갤러리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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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늙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장소 하나, 노래 한 곡, 오래된 상표 하나만 만나면 40년이 순식간에 접힙니다. 그리고 스물다섯 살의 내가 다시 걸어옵니다. 그래서 인생은 어쩌면 앞으로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앞으로 걸어가면서 끊임없이 과거를 데리고 갑니다. 영등포는 변했습니다. 나도 변했습니다. 딸의 시대도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길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한때 자동차를 팔며 걷던 문래동에서 딸이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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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모든 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은 지우고 어떤 것은 다른 모습으로 다시 돌려준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한다는 것은 사라진 것을 붙잡는 일이 아니라, 그 시간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김예주, 리스펙트! 아버지의 오래된 영등포 위에 이제 네 시간을 한 겹 더 올려놓으시라!
2026.8.15.sat.악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