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에 찾은 분재원
십이월 초순 목요일은 대설이었다. 눈이 귀한 남녘에서 스무날 전 새벽녘에 첫눈이 내려 잠시나마 세상을 순백으로 덮은 적 있었다. 그날이 소설을 이틀 앞두었고 지난가을은 비교적 포근한 날씨여서 지상에서 눈을 본 시간은 짧았더랬다. 이후 빙점 근처로 내려간 날이 있기는 했지만 올겨울은 아직 포근한 편이다. 절기는 대설이지만 쾌청하게 맑은 하늘에 따뜻하기는 봄날 같았다.
아침 식후 산책 행선지를 정하지 못한 채 일단 용지호수 어울림 도서관으로 향했다. 집을 나선 때가 도서관 업무가 시작되기 전이라 반송시장 저잣거리를 한 바퀴 둘러 용지호수로 갔다. 길 건너 낮은 아파트단지를 지나는 즈음 지기가 연락이 오길 도서관으로 가려는데 도중에 변수가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어쩌면 같은 동네 사는 선배 문인과 같이 교외로 나가게 될지 몰라서였다.
일전 지기는 거리에서 같은 동네 이웃에 사는 선배 문우를 뵈어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로 틈날 때 셋이 함께 겨울 햇살 아래 산책을 가보자 약속했단다. 이러고 내가 근처 어울림 도서관으로 가는 중이라 했더니 방향을 선회하면 셋이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용지호수 들머리에 이르자 지기로부터 전화가 오길 선배 문인과 연락 닿아 산책에 동행한다고 했다.
도서관으로 가던 길을 바꿔 옛 도지사 관사 앞으로 나갔다. 다른 활엽 가로수들은 대부분 나목이 되었으나 메타스퀘어는 바늘잎이면서도 갈색 단풍을 달고 있었다. 단풍이 물든 메타스퀘어 바늘잎은 겨우내 시나브로 자유낙하 해 해를 넘겨서도 볼 수 있었다. 자연보호협회에서 가꾸는 꽃밭을 지나 도지사 관사 앞에서 지기와 선배를 뵈었는데 차로 이동하기로 하고 사모님도 모셨다.
선배 부부는 올해를 넘기기 전 꽤 나이 든 자제의 혼사를 앞두어 주변에서 뒤늦은 축하 인사를 받는 중이지 싶었다. 사모님과는 코로나 펜데믹이 막 풀렸던 지난해 가을 통도사 서운암에서 선배가 받게 된 어느 문학상 시상식에 함께 다녀온 이후 처음이었다. 셋이 창원대학 근처나 용추계곡으로 들려던 계획은 일행이 넷으로 늘어 낙동강 강가로 산책을 다녀오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선배가 운전대를 잡아 도청 뒤에서 25호 국도 정병산터널을 빠져나갔다. 동읍에서 주남삼거리를 지나 우회 지방도 화목교차로 진입을 앞둔 대형 비닐하우스 분재원에 차를 세우도록 했다. 나는 거기서 지나간 정초 한겨울 대한 무렵 분재에서 피어나던 매화를 본 적 있다.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매화 분재를 인터넷 경매를 통해 전국에서 구매를 희망한 낙찰자에게 택배로 보내주었다.
이번에 선배 내외와 방문하니 겨울철에 때를 맞춘 갖가지 분재들이 전시되어 택배로 포장하고 있었다. 평소 야생화에 관심이 많은 선배는 분재가 매단 열매와 꽃망울에 눈을 떼지 못하고 폰 카메라로 연신 사진을 담느라 발걸음이 더뎠다. 한두 달 뒤 꽃을 피울 매화 분재는 꽃망울을 맺어가는 중이었다. 진달래나 벚나무도 철을 당겨 벌써 꽃망울을 달아 소비자에게 배송을 준비했다.
분재원을 나와 화목 교차로에서 우회 신설 지방도를 따라 봉강에서 본포로 나갔다. 본포 수변공원에 차를 세우고 넷은 강변을 거닐었다. 창녕함안보를 빠져나온 낙동강 강물은 임해진에서 본포로 향해 흘러왔다. 본포 양수장 생태보도교를 따라 걸어 샛강으로 흘러온 신천 하류 어귀에서 발길을 되돌려 차를 둔 곳으로 와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려 제1 수산교를 건너 추어탕집으로 갔다.
맛깔스러운 밑반찬과 같이 차려낸 추어탕으로 점심을 먹고 다리를 건너와 아까 지나친 길을 되짚어 시내로 돌아왔다. 오후에 선배는 불편한 무릎을 치료받는 침을 맞으려고 한의원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아침에 들리려던 용지호수 어울림 도서관을 찾아 대출 도서를 반납하고 은행잎이 떨어져 바스락거리는 보도를 걸었다. 반송시장을 둘러 동네 커피숍에서 꽃대감을 만났다. 23.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