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리듬화 하기
꿍따리리 꿍따리리 꿍-따따…꿍따리리 꿍따리리 꿍-따따…
웬 풍악을 울리느냐구요? 아무리 자유시라 해도 완전히 리듬을 배제하면 산문으로 추락하니, 리듬화하여 작품을 완성해보자고 울렸습니다.
이 장에서는 먼저 리듬의 유형과 우리말에서 리듬을 만드는 자질을 알아보고, 이제까지 써온 작품을 리듬화 해보기로 합시다.
꿍따리리 꿍따리리 꿍-따따…꿍따리리 꿍따리리 꿍-따따…
1. 리듬의 유형과 기능
☺ 예로부터 시는 노래라고 했습니다. 현대시 비극은 노래임을 부정하는 데서…
리듬의 유형은 크게 정형시에서 채택하는 <정형률(定型律)>과 자유시와 산문시 사이에서 채택하는 자유율(自由律)또는 내제율이라는 <리듬(rhythm)>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정형률은 <운율(韻律)>로 이뤄집니다. 이 운율은 <운(rhyme)>과 <율(meter)>의 복합어로서, <운(韻)>은 대구(對句)를 이루는 시행의 같은 위치에 유사한 음운을 배치하는 <압운법(押韻法)>을 구사하여 시를 음악의 멜로디처럼 만드는 걸 말합니다. 그리고 율(律)은 한 번에 읽을 수 있는 마디 안에 유사한 길이의 음량(音量)을 배치하여 박자화(拍子化)하는 걸 말합니다.
운은 다시 <모운(母韻, assonance) >과 <자운(字韻, consonance)>으로 나눠집니다. 모운은 유사한 모음으로 이뤄진 운을 말하고, 자운은 유사한 자음으로 이뤄진 운을 말합니다. 모운을 취할 때는 자음이, 자운을 취할 때는 모음이 달라져야 합니다.
또, 운은 그런 음운을 지닌 어휘를 어디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다시 나눠집니다. 그러니까, 각 행의 첫머리에 배치하면 <두운(頭韻, alitera-tion)>, 중간에 배치하면, <요운(腰韻)>, 마지막에 배치하면 <각운(脚韻, rhyme)>이라고 부릅니다.
정형시는 또 그 언어의 성질을 이용하여 <음성율(音聲律)>을 채택합니다. 음성율은 강약(accent)을 중시하는 영어와 독일어에서는 액센트가 붙은 단어와 붙지 않은 단어를 교차적으로 조직하는 <강약율(强弱律)>을, 장음과 단음 차이를 중시하는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는 <장단율(長短律)>을 채택합니다. 그리고 높낮이를 중시하는 중국에서는 변화하는 측음(仄音)과 평음(平音)으로 조직하는 <성조율(聲調律)>을 채택합니다.
율(律) 역시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순수 음수율(純粹 音數律)>과 <복합 음수율(複合 音數律)>로 나눠집니다. 전자는 하나의 율행(律行) 안에 일정한 음절(音節) 수를 배치하여 형성되는 박자감을 말하고, 후자는 일정한 수의 음보(foot)를 배치하여 형성되는 박자감을 말합니다. 유럽어처럼 어형을 바꾸는 굴절어(屈折語)와 우리말처럼 어근(語根)에 문법소를 첨가하여 바꾸는 교착어(膠着語)는 복합음수율을 택하고, 중국어처럼 각 글자가 독립된 의미를 지니는 고립어(孤立語)는 순수음수율을 택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시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정형율을 만들까요? 우선 압운법부터 살펴보면, 각운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두운과 요운도 발달되지 않았습니다. 각운이 불가능한 것은, 운을 설정할 때 자음이나 모음 중 어느 하나는 같고 다른 하나는 달라야한다는 원칙에 따를 경우, 우리말의 종결형 어미는 '다', '라', '오/요', '네' 등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두운과 요운이 발달하지 않은 것은 압운법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고정적인 음성율도 채택할 수 없습니다. 국어에서 강약은 화자가 강조할 곳에 임의로 부가하는 요소이고, 장단은 동음이어(同音異語)를 구분할 때만 부가합니다. 그리고 성조는 15세기 이후 경상도와 함경도 방언에만 남아있고 다른 지방에서는 사라졌습니다. 그로 인해 낭송할 때 발생하는 <임의적 강약율>을 자질로 삼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시에서 고정적인 율적 자질은 음수율뿐입니다. 그리고 이 음수율은 음보(音步)를 기준으로 삼는 복합 음수율입니다.
음보(foot)가 뭐냐고요? 낭송할 때 관습적으로 붙여 읽는 <덩어리(colon)>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라는 어군(word group)이 있다고 합시다. 이 어군은 관형사와 명사와 조사의 세 개 품사로 나눠집니다. 그리고 어절로는 ‘한’과 ‘사람이’ 나눠집니다. 하지만, 읽을 때는 '한사람이'라고 붙여 읽습니다. 이처럼 관습적으로 붙여 읽는 덩어리를 기본 음절수로 보고, 여기서 한두 음절이 초과하거나 모자라는 것은 음보로 취급합니다.
이와 같이 각 행을 운과 율에 맞추면 그 시는 음악적인 상태에 도달합니다. 앞에서 예로 든 ‘꿍따리리 꿍따리리 꿍따따/꿍따리라 꿍따리리 꿍따따’만 해도 그렇습니다. 어쩐지 풍악을 울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각 행에 <기본음절 3±1>의 음보를 세 개씩 배치하여 3박자가 되도록 하고, 각 음보의 첫음절을 ‘꿍’하고 울리는 음으로, 그 다음은 ‘따’하고 입을 크게 벌리는 음으로, 마지막은 ‘리리’하고 떠는 음을 배치했기 때문입니다.
꿍 따리리 꿍 따리리 꿍- 따따
꿍 따리리 꿍 따리리 꿍- 따따
그런데 정형율을 채택하려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 틀에 맞춰야 합니다. 그로 인해 기준에서 넘치면 하고 싶은 말도 생략하고, 모자라면 늘여야 합니다.
「진달래꽃」의 경우만 해도 그렇습니다. 현실에서는 ‘나보기가/역겨워/가실 때는//말없이/고이/보내드리우리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좋아요. 요즈음 당신은 통 내게 관심도 안 보이고…. 내가 싫어서 그런다면 언제든지 떠나세요'라고 말할 것을 수정한 게 이 작품입니다.
이렇게 음절이나 어휘 수를 조절하다 보면 표현이 부자연스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의미와 느낌도 단순해집니다. 현대로 접어들면서 정형시가 퇴조하고 자유시와 산문시가 세력을 떨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운율을 포기하면, 시와 산문의 구별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자유시에서는 아래와 같이 비슷한 의미와 어휘 및 통사구조를 배치하여 비슷하게 느껴지는 <내재율(內在律)> 다시 말해 <리듬(rhythm)을 채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따라서 운율이 물리적(物理的)인 소리가 만들어내는 질서감이라면, 리듬은 심리적(心理的) 요인들이 만들어내는 질서감으로서, 운울보다 상위 차원의 질서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님은 갔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 한용운(韓龍雲), 「님의 침묵」에서
이 작품에는 정형율을 이루는 요소들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리듬미칼하게 읽히는 것은, 각 행에 <님은 갔습니다>라는 의미를 배치하고, <주어(S)+서술어(V)>의 통사구조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동일한 의미와 통사구조가 리듬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에서 운율과 리듬은 어떤 기능을 지니고 있을까요? 첫째로, 시와 산문을 구분하는 구실을 합니다. 이론상으로는 시와 산문은 화제부터 다릅니다. 하지만, 현대시는 산문에서 채택하는 3인칭 지향형까지 받아들여 리듬과 어법으로밖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둘째로, 주제를 강화시키는 기능을 꼽을 수 있습니다. 리듬은 <주제(A)>와 <반 주제(B)>를 <A-A-B-A>처럼 규칙적으로 배치할 때 형성됩니다. 이와 같이 규칙적으로 반복하면 <주제(A)>가 강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로, 독자들의 이성적 판단을 약화시키는 기능을 꼽을 수 있습니다. 독자들은 작품을 접하는 순간, 노력을 덜 들이며 읽기 위해 전체를 지배하는 질서를 찾으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첫머리에서 <A>를 발견하면 다음 단락도 <A>인가 확인하고, 그 예측이 적중하면 쾌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B>로 바뀌면 "아, 이렇게 바뀌었구나' 하고 경이감을 느끼고, 다시 <A>로 되돌아오면 '그렇지. 내 예측이 틀리지 않았어'라며 또 다른 기쁨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리듬의 변화에 신경을 쓰다보면 내용을 따질 여유가 없어지게 됩니다.
왜 내용을 따지지 못하게 만드느냐구요? 진달래꽃을 설명할 때 말씀드렸듯이, 시의 화제는 곰곰이 따지면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독서 속도를 조절하여 미적 쾌감을 자극하는 기능을 꼽을 수 있습니다. 리듬화된 곳은 따지지 않고 읽기 때문에 독서 속도가 빨라집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곳은 따지며 읽기 때문에 느려집니다. 그로 인해 독서의 <원활(圓滑)과 지체(遲滯) 현상>이 교차적으로 일어나고, 그런 질서가 미적 쾌감을 자극합니다. 칸트(I. Kant)가 미적 쾌감은 질서(秩序)와 변화(變化)의 조화에서 발생한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리듬성이 강한 작품이 반드시 좋은 작품은 아닙니다. 이런 작품은 낭송할 때 임의로 독서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율격 이외의 시간 (extra metrical time)’을 마련할 여지가 없어 단순한 작품이 됩니다.
【우리가 할 일】 ○ 리듬의 기능을 시작 노트에 정리해 두시오. ○ 자기 시를 살펴보면서 리듬화할 곳을 찾아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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