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강변 마트로
근래 재래시장 저잣거리에 냉이를 파는 할머니가 보였다. 나는 지난달 중순 의령군 지정면 성당리 남강 둔치 경작지 가을 냉이를 캐와 식탁에 올려 향긋한 맛을 봤다. 내가 텃밭 농사를 짓지 않지만 귀촌해 농사를 짓는 대학 동기가 무청을 보내와 얼마큼 말라갈 때 삶아 데쳐 냉동실에 보관하고 일부는 된장국을 끓여 잘 먹었다. 시장은 내가 봐 나르기에 다시 마트로 갈 때 되었다.
십이월 둘째 금요일은 무척 포근했다. 앞으로 추워져 땅이 얼어붙기 전 냉이를 한 번 더 맛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아침 식후 동마산병원 앞으로 나가 합성동 터미널을 출발해 칠원과 대산을 거쳐 지정 두곡리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탔다. 우리 집에서는 자연에서 구하는 산나물이나 들나물이 밥상에 오르기 일쑤다. 철마다 내가 발품을 팔아 길을 나서면 얼마든지 구해 올 수가 있다.
차창 밖 시골 텃밭 풍경은 이제 된서리가 내린 후라 한해살이 초본은 모두 시들어 겨울을 날 채비를 마쳤다. 추위에 약해 동해를 쉽게 입을 수 있는 무는 먼저 뽑혀 저장 단계로 들었다. 무보다 추위를 덜 타는 배추는 미처 수확하지 못한 채 밭이랑에 그대로 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칠원 읍내까지는 타고 내린 승객이 간간이 보였으나 대산을 지나서부터 나와 한 할머니뿐이었다.
남강 하류 강물이 암반을 휘감아 돌면서 폭이 좁아지고 뱀처럼 S자로 사행하는 곳에 송도교가 놓여 내 고향 의령 지정과 함안 대산이 경계를 이루었다. 마을로는 지정 마산리와 대산 구혜리였다. 마산리에서 국도를 따라 계속 가면 유곡 세간에서 신반을 거쳐 적교에 이르렀다. 내가 탄 버스는 지정에서 강변 산골 마을 두곡리가 종점이었다. 나는 송도교를 건너 마산리에서 내렸다.
마을 앞에서 구 송도교 강변으로 뚫어둔 길로 가니 폐업된 찜질방과 식당이 나왔고 전망이 좋은 곳에 독립가옥이 한 채 보였다. 당국에서는 벼랑에서 쏟아질 낙석을 염려해 개방을 통제한 구간이 나왔으나 개의치 않고 울타리를 넘어가니 현지에 사는 한 할머니가 톱으로 뭔가를 찾아 자르려고 해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아는 정보라곤 지명뿐이라 마산리에 사시느냐 여쭈고 지나쳤다.
벼랑이 끝난 구간부터 드넓은 둔치 경작지가 펼쳐졌다. 마산리에서 성당리로 가는 도로는 시멘트로 포장이 되긴 해도 여름 태풍 통과 시는 강물이 넘쳐 통행이 제한될 농로였다. 4대강 사업 때 큰 강은 바닥의 모래흙을 파내었으나 지류인 남강은 중장비가 드나들지 않아 둔치 경작지는 남겨져 있었다. 마산마을과 성당마을 주민들은 모래흙이 충적토를 이룬 둔치는 옥토와도 같았다.
지난번 찾았을 때는 비닐하우스에 꽃상추가 싱그러웠는데 그새 모두 뽑혀 나가고 뒷그루를 심으려고 이랑을 갈아엎어 놓았더랬다. 비닐을 덮어씌운 이랑에 심은 마늘과 양파는 따뜻한 날씨에 웃자라다시피 잎줄기가 길쭉하고 굵었다. 상류로부터 강물이 실어다 나른 기름진 모래흙이라 다른 지역보다 농사가 잘되어 무엇이든 심으면 작물이 잘 자라 품질 좋고 수확량도 많을 듯했다.
무와 배추를 거둔 밭뙈기 곁에 휴경지가 나왔다. 앞 작물이 무엇을 가꾸었는지 몰라도 겨울을 넘긴 이른 봄에 감자를 심지 않을까 여겨지는 밭이었다. 이랑을 짓지 않고 묵혀둔 밭에 자라는 여러 식생 가운데 단연 냉이가 주인공이었다. 현지 농부에게는 냉이는 작물 재배에 도움 되지 않을 잡초에 지나지 않을 테다. 이방인은 배낭을 벗어두고 호미를 꺼내 냉이를 캐 모아 흙을 털었다.
묵정밭에 가득 자라는 냉이를 캐기는 수월해 시간이나 힘을 들이지 않고 비닐봉지를 채울 수 있었다. 배낭을 추슬러 둘러매고 농로를 따라 마산리에서 송도교를 걸어 구혜리로 나갔다. 합성동에서 의령 지정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오는 버스를 만나 탔더니 아침에 지나간 길을 되짚어 왔다. 집 근처에 와 지기와 친구에게 봉지에 든 냉이를 나누고 왔더니 평소보다 하교가 이른 때였다. 23.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