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산폰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에서 소비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사후서비스(AS) 정책'이다. 국내 시장 진출 5년여 만에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30%를 넘어선 '애플'은 지난해 'X3' 스마트폰을 내놓으며 도전장을 내민 '화웨이'에겐 아직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은 존재지만, AS 정책에 있어서는 애플이 화웨이보다 한 수 아래인 듯하다.
고압적인 AS 정책 유지하는 '애플'
지난 2010년 10월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예기치 않게 애플 본사 임원이 출석했다. 당시 국감에서는 애플의 AS 정책에 대한 질의가 나왔는데, 출석한 애플코리아 직원의 답변이 부족하다며 아예 본사 임원 출석을 요구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아이폰이 출시된 지 1년이 채 안된 시점이었는데, 소비자들의 AS 불만이 폭주하면서 국정감사에도 이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국감현장에 나타났던 파렐 파하우디 애플 본사 아이폰 서비스 부문 디렉터는 "한국에도 애플이 직접 운영하는 직영점이 생기면 (중국에 준하는 수준으로) 조정할 의사가 있다"며 "국내 해당 법규를 확인하고 준수할 것으로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후면이 깨진 '아이폰' (이미지=온라인 커뮤니티)
그로부터 4년 뒤, 애플의 AS 정책은 다시 한 번 소비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오원국씨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부터다. 지난해 12월 광주지법 민사 21단독 양동학 판사는 아이폰 사용자 오원국(30)씨가 애플코리아 유한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내용은 이렇다. 구입한 지 1년이 안 된 아이폰5를 애플 서비스센터에 맡긴 오 씨는 수리가 불가능하니 34만 원을 내고 중고 제품인 '리퍼폰'을 가져가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에 불응한 오 씨는 자신의 아이폰을 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애플 정책상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당했다. 수리 취소는 안 되고, 제품도 돌려받을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부당한 처사라고 생각한 오 씨는 광주지법에 민사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고, 재판부는 애플에게 아이폰5 기계값(102만 7000원)에 정신적 피해보상금(50만원)을 더한 152만 7000원을 오 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던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애플의 한국어 홈페이지에는 한국어로 수리관련 약관을 친절하게 표기해 놓고도 약관 적용 국가를 명기한 8항에 '대한민국'을 쏙 빼 꼼수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또 아이폰이 고장 났을 경우 리퍼폰을 받기 위해 짧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2주일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됨에 따라, 수십만 원의 리퍼 비용을 지불하고도 제품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용자들의 불만 가득한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애플 AS 정책에 대한 변동사항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숱한 언론의 지적과 소비자들의 불만제기가 그대로 묵살됐다는 지적이다.
이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성명을 통해 "애플이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하는 일방적인 수리정책을 운용하고 있어 소비자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며 "지난해 법원이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한 애플 수리정책이 잘못됐다고 판결했는데도 계속해서 소비자 기본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뜨끔한 '화웨이', 이제는 소비자 목소리에 귀 기울여
애플 아이폰과 비교해 우리나라에서 훨씬 미미한 수준의 'X3' 스마트폰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는 화웨이는 시장 진출 초반, '엉터리 AS 정책' 논란에 휩싸였지만 이후 소비자들의 목소리에 경청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화웨이는 지난해 9월 LG유플러스의 알뜰폰 자회사 미디어로그를 통해 'X3' 스마트폰을 출시하고, AS센터를 운영했지만 서울 14개 센터 중 수리 받을 수 있는 곳이 단 1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소비자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
화웨이가 우리나라 시장에 진출하기 전부터 AS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는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화웨이는 지속적으로 소비자 AS와 관련된 개선책을 내놨다.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운영하는 AS 정책 수준은 아니지만, 적어도 불만 섞인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묵살하지는 않았다는 평가다.
먼저 화웨이는 전국 40여개 센터에서 소비자들이 문제없이 AS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간혹 물량이 없어 예약을 해야 하는 경우에도 1~2일을 넘기지 않도록 했다.
또 지난 1월에는 보증기간 내 택배 및 퀵 서비스를 통한 스마트폰 AS를 실시했다. 서울을 제외한 타 지역에서는 1~3곳 밖에 AS센터를 운영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 직접 찾아오기 어려운 고객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전략이다.
품질보증기간 이내의 무상 수리건에 해당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전국 모든 이용자를 대상으로 무상 택배 서비스를 받아 볼 수 있도록 했으며, 퀵 서비스의 경우 서울지역 거주 고객에 한해 무상 적용했다.
'카카오톡'을 통한 1:1 상담을 실시하는 서비스도 시작했다. 카카오톡 '친구찾기'에서 ID 검색란에 '@화웨이코리아디바이스'를 검색해 친구로 추가하면, 화웨이의 모든 디바이스와 관련된 문의 사항을 채팅을 통해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에는 단말기 수리 기간 중 휴대폰 사용을 원하는 고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무상 대여폰' 서비스도 내놨다.
화웨이의 대여폰 서비스는 휴대폰의 이상 증상을 시간을 두고 확인해야 하는 경우, 서비스센터 사정으로 수리시간이 지연돼 당일 수리가 어려운 이용자를 대상으로 했다. 이는 전국 각지에 위치한 모든 서비스 센터에서 제공돼 서비스 대상 이용자라면 누구나 가까운 AS 센터를 방문해 대여폰을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도록 했다.
화웨이의 이 같은 AS 정책 개선의 배경을 살펴보면, 불편사항을 겪은 자사 스마트폰 이용자의 목소리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1월 초 충남 천안에 거주한다고 밝힌 한 여성은 제품 결함으로 화웨이코리아 측에 AS센터와 관련된 상담을 요청했지만, 가까운 지역에 수리 받을 수 없는 센터가 없다는 이유로 '나몰라라 식'의 답변을 받았다고 언론사에 하소연 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제품 수리 기간 동안 쓸 수 있는 임대폰에 대해서도 문의를 했지만 관련 정책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는 입장도 전했다.
이런 소비자의 불만은 화웨이코리아 측에 전달됐고 내부에서도 AS 정책에 대한 잘못된 점을 인지, 개선책을 마련해 실질적인 서비스를 내놓은 것이다.
한 스마트폰 AS센터 관계자는 "소비자들에게 AS는 상당히 민감하고 또 그만큼 중요한 부분"이라며 "화웨이가 꼭 올바른 정책을 펴고 있다고 볼 순 없지만, 적어도 소비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개선책을 찾으려 노력한 점은 분명 애플이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