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이란 주일성수와 십일조가 아니라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신앙생활이란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입니다.
물질의 소유를 포기하고 서로 나누어 주는
물질적 코이노니아와
복음을 전하여 복음을 함께 소유하는
영적 코이이노니아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코이노니아에 힘썼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코이노니아)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4:42~45)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고린도 교회도 물질나눔코이노니아에 힘썼습니다.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코이노니아)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고후 9:13)
(고후 9:9. 롬 15:26)
"저희는 그들에게 빚을 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롬 15:27)
빌립보 교회도 물질의 코이노니아를 행하였습니다.
"내 일에 참예(코이노니아)한 교회"(빌 4:15)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빌 4:14)
참예(코이노니아)하였으니 잘하였도다."
사도바울이 코이노니아를 격려하고 권면했습니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코이노니아)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 12:13)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딤전 6:17-18)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코이노니아)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러한 물질의 코이노니아는 부유한 자들에게
엄청난 물질적 손해를 주는 가르침이지만
실제로는 이것이 부유한 자들에게 유익하며
참된 생명을 취하게 하는 길임을 사도바울은
지적하였습니다.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딤전 6:19)
코이노니아는 사도바울뿐 아니라
베드로, 야고보, 요한도 바울의 복음을
인정하는 교제(코이노니아)의 악수를 나누면서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는 것을 당부했습니다.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갈 2:9-10)
코이노니아는
신약시대의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래서 마치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물질의 이동처럼 보이는 코이노니아가 실제로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귀한 예물인 것입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코이노니아)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 13:16)
코이노니아는 영적인 차원을 포함합니다.
(빌 1:5. 롬 15:27. 고전 1:9. 고전 1:10)에서
언급된 예수 그리스도의 코이노니아와 함께
성령의 코이노니아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코이노니아)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빌 2:1)
여기서 "성령의 무슨 교제"나...는
"성령을 코이노니아함"으로 해석됩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함께 동일한 성령을 공유한다는 뜻입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빌 2:2)
성령이 주시는 이 동일한 마음(코이노니아)은
바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8) 이러한 겸손이
바로 예수 안에서 하는 성령의 코이노니아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오늘날 그리스도를 본받는 영성운동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코이노니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굶주린 북한 탈북자들에게 양식을 전하고
또한 복음을 전하려고 영하 20도를 내리도는 추위 속에
두만강변에서 숨어 기다리고, 그들이 다시
잡혀 가지 않도록 은밀히 숨겨주는 익명의 선교사들,
그들은 바로 그들에게 주어진 영광을 버리고
동포의 고난을 나누어 가지는 코이노니아의 실천자들입니다.
박사학위를 포기하고 아프리카 오지에서
이름없이 복음을 전하는 알려지지 않은 어느 선교사,
유학의 길을 포기하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살기 위해 빈민촌에 들어간 어느 목사의 길,
그리고 수많은 믿음의 성도들이
묵묵히 포기하며 내려간 길
그것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길이요,
하나님을 닮아가는 길일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무언가 추구하고 있더라도
결국 포기하고 나누어주기 위한 것이지 않고는
그리스도와 관계없는 세상 영광의 길일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는 것은..
오늘날 한국 교회, 대부분의 목사들과 교인들처럼
영광을 자꾸만 취해가고 명성을 얻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영광과 명예를 버릴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의 가진 것을 나누어 주고,
남의 고난을 나누어 가지는 길,
그것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코이노니아의 길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와 함께가는 참된 신앙의 길입니다.
(코이노니아 /신현우 교수 목사님의 글 중에서 발췌)
ㅡfrom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ㅡFrank Bogg
첫댓글 감사합니다 , 주님은혜와 평강 이루시는 귀한날 되시고 승리하세요 ~
주안에서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시간 되시고 하시는 모든 사역과 일마다 승리 하시길 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