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가 참말로 조신하고 착하게 내리고 있습니다. 한반도는 태풍 13-14-15호가 다 비켜갔고, 갈라진 대지와 텅 빈 용수로에 학도 의용군처럼 타박타박 흘러내리니 말입니다. 지난밤 15호 태풍 '찬홈'이 상륙한 도쿄는 곳곳에서 가로수가 쓰러져 도로를 가로막았고, 공사장 구조물이 바람에 뜯겨 나가면서 하네다 공항 항공기 60여 편이 결항됐다는 것 같습니다. 내가 10일 날 도쿄에 내려 오사카를 찍고 왔다는 걸 누가 알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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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 끝내놓고 1시간 동안 온몸으로 비 내음을 맡고 있습니다. 온도-습도-바람 다 좋아요. 선풍기 바람과 허리 통증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잠잠한 줄 알았던 통증이 갑자기 생긴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민주당 호남 경선에서 김민석이 승기를 잡았고, 마지막 남은 서울 선거는 볼 것도 없다고 봅니다. 문재인-유시민-조국-김어준-최민희-한민수-이성윤-추매애 보고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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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위원 순위(4:1)까지 내 바람대로 됐는데 왜 난 돈을 못 버는지 누구 아시나요? JYP 박진영이가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정말로 손을 대는 것마다 대박입니다. 슬슬 미워지기 시작하면서 꼬투리를 잡고 싶어졌어요. 나이 먹고 무슨 질투를 하냐고요? 자고로 인류는 남이 잘되는 걸 배아파하지 않은가. 주체는 내 안의 타자마저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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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직까지 스피치는 원탑이고, 8.15일 동영상에 삼위일체와 성령을 설명하면서 위치만니의 삼분설(영, 혼, 육)을 언급한 것이나, 그의 천년 왕국(전 천년설)을 보니 세대주의 종말론의 냄새가 솔솔 나더이다. 세간에 신천지 연관설이 사실무근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딴따라니까 가요계에서 판치는 건 봐주겠는데 정치/성경까지 넘보냐고. 어딜.
2.
종말론은 미래를 맞히는 지식인가, 오늘을 다르게 살아내게 하는 희망인가? 비가 참말로 조신하고 착하게 내리고 있습니다. 한반도는 태풍 13·14·15호가 다 비켜갔고, 갈라진 대지와 텅 빈 용수로에 빗물이 학도 의용군처럼 타박타박 흘러내립니다. 지난밤 태풍이 지나간 도쿄의 소식을 들으니, 불과 며칠 전 내가 도쿄에 내려 오사카까지 찍고 돌아왔다는 사실이 새삼 묘합니다. 사람은 지나온 위험을 뒤늦게 돌아보며 ‘살아 있음’의 우연과 은총을 생각하게 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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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을 끝내놓고 한 시간 동안 온몸으로 비 냄새를 맡습니다. 온도도, 습도도, 바람도 좋습니다. 정치판도 내가 바라던 그림에 가까워지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내 주머니 사정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박진영은 잘한다 잘한다 했더니 손대는 것마다 잘되는 것 같아 슬슬 미워질 지경입니다. 그런데 꼬투리를 잡으려고 보니 제법 흥미로운 것이 하나 걸렸습니다. 그의 성경 해석입니다. 최근 영상에서 삼위일체를 설명하면서 인간을 영·혼·육으로 구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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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삼분설(trichotomy)을 언급하고, 종말론에서는 전천년설(premillennialism)에 가까운 견해를 드러내는 것을 보면서 질문이 생깁니다. 삼분설과 전천년설은 어디까지 성경적이며, 어디서부터 특정한 신학 체계의 해석일까요? 먼저 삼분설은 인간을 영(spirit)·혼(soul)·육(body)이라는 세 요소로 이해합니다. 흔히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의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나 히브리서 4장 12절의 “혼과 영”을 구분하는 표현이 근거로 제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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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전통적인 서방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물질적 몸과 비물질적 영혼으로 이해하는 이분설(dichotomy)이 강했습니다. 이 관점에서는 성경의 ‘영’과 ‘혼’이 언제나 서로 다른 실체를 뜻한다기보다 인간의 내면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표현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삼분설 자체를 이단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문제는 영·혼·육을 마치 인간 내부의 세 칸짜리 구조처럼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나누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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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하는 인간은 부품의 조립체라기보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통전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몸은 죄악되고 영만 거룩하다는 식으로 발전하면 오히려 성경의 창조론과 부활 신앙에서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천년왕국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에는 사탄이 결박되고 그리스도와 성도들이 ‘천 년 동안’ 왕 노릇한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기독교 역사에서는 이것을 크게 세 방향으로 읽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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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천년설은 그리스도가 재림한 뒤 문자적인 혹은 실질적인 천년왕국이 시작된다고 보고, 후천년설은 복음의 확장으로 역사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크게 구현된 뒤 그리스도가 재림한다고 봅니다. 무천년설은 ‘천 년’을 문자적인 달력의 기간이라기보다 초림과 재림 사이 그리스도의 통치를 상징하는 묵시적 숫자로 해석합니다. 따라서 전천년설=세대주의라고 곧바로 등식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일부 교부들에게도 전천년적 기대가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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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도 세대주의와 무관한 역사적 전천년설이 존재합니다. 여기서 구별해야 할 것이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입니다. 세대주의는 성경의 역사를 여러 경륜으로 구분하고, 이스라엘과 교회의 관계를 비교적 뚜렷하게 나누며, 종말의 사건들을 휴거·환난·재림·천년왕국 등의 순서로 배열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전천년설을 믿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세대주의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여기에 휴거의 시점, 이스라엘의 회복, 7년 대환난, 문자적 천년왕국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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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식까지 결합된다면 세대주의적 색채가 상당히 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더 경계하고 싶은 것은 어느 종말론이 ‘정답’이냐보다 종말론을 시간표로 만들어버리는 태도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미래의 암호를 풀어 날짜와 사건을 맞히라고 주어진 책이라기보다 제국의 압력 속에서 고통받던 교회에 “결국 어린양이 승리한다”고 선언하는 저항과 희망의 문서입니다. 종말론의 핵심은 언제 끝나는가 보다 누가 역사의 주인인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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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천년왕국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미래 예측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천년설이든 무천년설이든 그것이 건강한 기독교 종말론이라면 결론은 현재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왕이라면 나는 오늘 무엇을 숭배하는가. 마지막 승리가 하나님의 것이라면 나는 지금 돈과 권력과 성공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종말론은 미래를 구경하는 망원경이 아니라 현재를 심판하는 거울이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삼분설과 천년왕국이 묘하게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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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분설의 위험은 인간을 지나치게 분할하는 것이고, 세대주의적 종말론의 위험은 역사를 지나치게 분할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영·혼·육의 칸으로 너무 정확하게 나누고, 역사를 교회시대·휴거·환난·재림·천년왕국으로 너무 정확하게 나누다 보면 신앙이 살아 있는 관계보다 정교한 도표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신학적 체계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도와 땅은 같지 않습니다. 지도가 아무리 정교해도 실제 산맥과 강물을 전부 담을 수 없듯, 신학 체계 역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완전히 포획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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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천년설이니 이상하다”는 식으로 공격하기보다 그가 어떤 종류의 전천년설을 말하는지를 확인하는 편이 훨씬 정확합니다. 더구나 특정 종말론이나 삼분설을 받아들인다는 사실만으로 신천지와의 연관성을 추론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합니다. 신천지의 핵심 문제는 단순히 천년왕국을 말한다는 데 있지 않고, 계시록의 예언이 특정 인물과 조직 안에서 실상으로 성취되었다고 주장하며 그 해석 권위를 독점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전천년설은 정통 기독교 내부에도 오래 존재해왔습니다.
2026.8.17.mo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