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 임도에서
십이월 둘째 주말이다. 청년기 밀양에 근무할 적 교류가 있던 지인 자제가 대구에서 예식을 올리는데 참석 여부를 놓고 며칠 전부터 고심하다가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마음만 전하기로 굳혔다. 식장이 동대구역에서 지하철이나 택시로도 제법 이동해야 하는 곳이라 교통편이 여의치 못했다. 혼주를 축하함도 그렇지만 하객으로 참석할 다른 지기들과 안부를 나누지 못함이 아쉽다.
아침 식후 근교 산을 오르려고 길을 나섰다. 어제와 같이 동마산병원 앞으로 나가 칠원 방면으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탈 생각이었다. 시내버스가 마산역 앞을 지날 때 내려 주말 아침이면 서는 노점을 둘러봤다. 때가 김장철인지라 무와 배추를 비롯한 갖가지 푸성귀와 과일이 진열되어 오가는 손님을 맞았다. 역전 노점은 언제나 투박하고 소박함에서 서민들의 체취가 물씬 묻어났다.
마산역 앞에서 합성동 터미널을 출발해 칠북 검단으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타고 중리 아파트단지를 거쳐 칠원 읍내를 지난 운곡에서 내렸다. 운동이라고도 불리는 운곡 동구에는 조선 중기 당쟁 중심인물 허목이 다녀갔다고 세워둔 빗돌을 봤다. 미수 허목은 지방 고을 수령을 역임한 부친을 따라 젊은 날 창원이나 의령에 잠시 머물렀는데 그곳 칠원 운곡에도 들린 적 있었던 모양이다.
운곡 삼거리에는 자연석에다 장춘사로 가는 이정표도 세워져 있었다. 무릉도원을 연상하는 무릉산인데 북향 기슭 자리한 장춘사는 일주문까지 세울 정도가 되지 않은 암자같이 규모가 작은 절이다. 호젓한 숲길이 끝난 절집 바깥에 울타리와 담장을 대신한 대나무로 엮은 사립문이 기억에 남았다. 삼거리에서 장춘사로 가질 않고 덕암마을에서 작대산으로 가는 임도를 따라 올라갔다.
주인이 집을 비운 과수원에는 검둥이가 꼬리를 흔들며 짖어댔는데 경계심이라기보다 반가움의 표현으로 여겨졌다. 임도를 따라가니 어디선가 낭랑한 염불 소리가 들려와 의아했다. 내 뒤에서 챙이 넓은 모자를 눌러쓰고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정체 모를 인물이 불경을 음송하며 뚜벅뚜벅 걸어와 앞세워 보냈다. 긴 머리를 묶고 걷는 뒷모습이 예사롭지 않은 공력을 쌓은 여인인 듯했다.
산중에서 길을 걸으면서 트롯이 흘러나온 기기를 소지한 산행객은 심심찮게 봐 왔다. 아니면 본인이 육성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은 이도 더러 지나쳤다.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시청하느라 성량을 고음으로 해 둔 이도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 외진 임도에서 예상하지 못한 멧돼지의 출현을 막으려는 선제적 조치일 수 있다. 그런데 뜻이 심오한 불경을 외면서 걷는 여인은 처음 봤다.
불경을 음송하는 여인이 산모롱이를 돌아간 후 나는 계획했던 일에 착수했다. 지난가을 소목고개에서 작대산 산허리로 난 임도를 걸어 하산길에 봐둔 단풍마가 있었다. 단풍잎을 닮은 단풍마 잎은 낙엽이 져 넝쿨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아 길섶 비탈에서 두리번거렸다. 가랑잎이 삭은 부엽토를 집중력을 발휘해 뒤져 단풍마 줄기가 땅속을 헤집고 뿌리를 뻗어 내린 현장을 찾아냈다.
겨울치고는 날씨가 무척 포근해 조끼마저 벗고 작업을 했다. 배낭에 넣어간 호미를 꺼내 단풍마 둥치 주변 지표면을 선사 유적지를 발굴하듯 조심스럽게 헤집었다. 여러해살이인 단풍마는 묵은 그루터기였는지 생강처럼 생긴 뿌리가 아주 굵었다. 캔 뿌리가 한 무더기여서 가져간 자루에 담았더니 무게감이 묵직했다. 호미는 배낭에 챙겨 단풍마 자루는 손에 들고 덕암마을로 내려갔다.
운곡삼거리 중국집으로 들어 점심을 요기하다 아까 임도에서 불 단풍마 뿌리 캐러 경을 음송하며 지난 여인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아 한 수 남겼다. “포근한 겨울 날씨 장춘사 갈림길서 / 단풍마 뿌리 캐러 작대산 임도 들어 / 긴 머리 묶은 여인을 앞세워서 보냈다 // 암자가 없는데도 제 혼자 뚜벅뚜벅 / 뜻 모를 법경구를 또렷이 음송해서 / 먹물옷 아닐지라도 비구니와 같았다” ‘산중 임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