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용사 영전에 헌화하며 여정 시작
전망대 오르자 북녘땅 바로 눈앞에
저편 북한주민 보니 가슴 뜨거워져
대룡시장선 이북 먹거리 맛볼수있어
한 어린이가 강화평화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북한을 바라보고 있다. 북한과 남한 사이에 있는 바닷길 너비는 고작 2.3㎞다.
강화평화전망대에서 보이는 북한 땅. 손 뻗으면 닿을 것만 같다.
정부는 현재 경기 연천·김포와 강원 고성·철원 등 북한과 인접한 지역을 중심으로 ‘DMZ(비무장지대) 평화의 길’이라는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정전 70주년, 한반도 중간을 가로지르는 이 길은 분단의 긴장과 아픔을 몸소 느끼기에 좋은 곳이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인천 강화군에서 진행하는 DMZ 관광 프로그램에 참여해봤다.
(위부터) 6·25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헌화하는 참가자들. 여행 내내 보게 되는 철책은 분단을 실감하게 한다.
◆‘DMZ 평화의 길’ 투어로 가깝게=‘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떠나온 실향민이 북녘을 조금이라도 가까이 보기 위해 찾는 곳.’
어떤 이는 강화를 이렇게 부른다. 강화는 북쪽으로 황해도 개풍·연백군과 마주한 접경지다. 마음만 먹으면 한강 너머 북한을 볼 수 있다. 강화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서울역에서 셔틀버스를 탔다. 강화군은 ‘DMZ 평화의 길’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셔틀버스를 운영한다. 프로그램 참여 비용은 1만원. 셔틀버스에 타자 10명이 넘는 다양한 연령층의 참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이번 여행을 손꼽아 기다린 듯했다.
버스는 경기 김포를 거쳐 1시간반 남짓 달려 어느새 강화에 도착했다. 첫번째 코스는 6·25 참전용사 기념공원이다. 이곳은 6·25 참전용사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계단식 공원이다. 상단에 참전 기념비를 배치하고, 공원 가운데에 한반도 조형물을 둬 영원한 평화의 염원을 담았다. 주변은 철책으로 싸여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 유금란 강화군 문화관광해설사가 바로 흰 장갑과 국화를 나눠준다. 본격적인 여행 시작 전에 6·25 참전용사에게 헌화하기 위해서다. 엄숙한 묵념은 이곳이 DMZ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유 해설사는 참배를 마친 참가자들을 철책 쪽으로 안내했다. 철책에는 6·25 관련 사진과 간단한 설명이 붙어 있다.
“강화는 군사지역이라 철책이 있으면 ‘촬영 금지’인데, 이곳은 찍어도 괜찮아요. 젊었을 때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선열을 진심으로 추모하길 바라요.”
◆북한, 이렇게 가까웠다니=“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네.” “헤엄쳐 바로 갈 수 있겠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이 북한을 볼 수 있는 곳이 강화평화전망대다. 이곳은 6·25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떨어져 있다. 저 멀리 보이는 북한을 두고 참가자들은 벅차오르는지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그렇다. 2.3㎞의 바닷길만 헤엄쳐 가면 곧바로 북한이다. 망원경에 눈을 대면 북한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농사를 짓는 등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날씨가 맑은 덕에 저 멀리 북한 송악산이 손에 잡힐 듯했다.
유 해설사는 2.3㎞ 바닷길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물고기’들이 사는 곳이라고 말한다. 분단 직후에는 가족과 생이별한 사람들이 몰래 이곳 바닷길을 건너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 전망대 주변에 철조망이 세워진 이후 인적 교류는 완전히 끊겼다. 사람 없이 바닷물만 묵묵히 흐르니 물고기는 행복할 수밖에. 전망대에는 이산가족이 언제든 고향을 보며 제사를 올릴 수 있도록 망배단을 설치해 상시 개방한다.
전망대 근처에는 의두분초(의두돈대)도 있다. 이곳은 300여년 전 강화도 방어를 위해 설치됐는데 6·25 전쟁을 거치면서 다시 군사기지로 활용됐던 곳이다. 군사시설이라 스마트폰을 모두 반납해야 들어갈 수 있다. 의두분초는 2000년대 초반까지도 초소로 사용했지만, 지금은 유적지로 군을 통해 방문한 관광객에게만 개방한다. 철책 해변길을 따라 걸으면 강화 주민들이 농사짓는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물 찬 논에는 저어새가 먹이를 찾으러 돌아다닌다. 이산가족이 이곳에 와 지척에 있는 고향땅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새가 되어 날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북한 연백장을 본떠 만든 대룡시장. 이북에서 유래한 강아지떡을 만드는 모습.
◆대룡시장, 금강산도 식후경=잃어버린 것을 다시 만들 수 있는 게 인간이다. 강화 교동도에 있는 대룡시장은 그런 곳이다. 대룡시장은 황해도 연백군에서 피란 온 주민들이 고향에 있던 시장인 ‘연백장’을 본떠 만든 재래시장이다. 이곳에는 오래된 점포 40개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안쪽엔 피란 당시 세운 슬레이트 건물과 옛 간판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대룡시장에선 북한문화를 느낄 수 있는 먹거리도 많다. 1969년에 세워진 ‘대풍식당’은 황해도식 냉면을 판다. 황해도 일대에서 가장 많이 먹는 국수가 냉면인데, 마치 평양냉면같이 깔끔하고 간결한 것이 특징이다. 고춧가루·김가루·후춧가루를 고명으로 올리고 설탕으로 간을 하는 게 특징. 함께 파는 고기국밥은 속을 든든하게 채워준다.
‘청춘브라보’에서 만드는 이북식 강아지떡은 꼭 먹어보자. 강아지떡은 연백군에서 일제강점기부터 만들어 먹은 떡이다. 당시 일본이 쌀을 수탈하자 인절미를 갓 태어난 강아지 모양으로 빚어 “떡이 아니라 강아지”라고 기지를 발휘해 자식에게 간신히 먹였다는 일화가 있다. 인절미에 팥고물을 넣어 부드럽고 맛이 좋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분단국가라는 비극이 새삼 다가온다. 수시로 들리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은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그토록 염원하는 통일은 언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