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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점에 대한 냉철한 인식 없이는 이번에 얻게된 소중한 기회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그 것은 그 어떤 나라의 그 어떤 역사에서도 증명되어온 일입니다.
현재 일이 많아 글을 길게 적을 시간이 도저히 없어 명예의 전당 신불해님의 글 일부를 인용하여 달아둡니다.
이하 신불해님 글
[중화의 황혼] 마지막 황혼, 강건성세의 여명(43) ─ 역사의 거인
http://cafe.daum.net/shogun/MqaT/12
(중요 발췌)
"짐이 태어났을 때 결코 신령스럽거나 기이한 징조들이 보이지 않았다. 또 자라날 때도 신기한 징조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여덟 살에 제위에 오른 후 지금까지 57년 동안 역사책에 실려있는 상서로운 별, 상서로운 구름, 기린과 봉황, 지초가 나타나는 경사라든가 궁궐 앞에 불타는 진주와 옥이 나타나거나 천서가 하늘의 뜻을 나타내려고 떨어지는 것 따위의 하늘에서 내려준다는 상서로운 조짐은 사람들로 하여금 말하지 못하게 하였다. "
"이는 모두 헛된 말일 뿐이다. 짐은 감히 그렇게까지 (잘 다스렸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하루하루의 일상을 진실된 마음을 갖고 실제에 도움이 되도록 다스렸을 뿐이다."
(전문)
강희 61년 11월이었습니다. 1722년 10월 20일. 그 아시아의 거인은, 결국 61년 318일의 치세를, 68살의 나이로 마감했습니다. 사황자 윤진은 아버지를 대리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의례를 지내고 있다가 기도를 받고 달려왔습니다. 셋째, 넷째, 일곱째, 여덞째, 아홉째, 열째, 열두째, 열섯째 해서 모두 팔황자가 모였고, 융과다도 자리를 지켰습니다.
수많은 의혹과 여러가지 이설들 사이에서, 한가지 확실한것은, 결국 다음 후계자가 윤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사황자 윤진이 아닌, 청나라의 5대 황제 옹정제(雍正帝)가 되었습니다. 60년만에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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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제라는 인물은 어떤 인물일까.
지금까지 연재를 해오면서, 강희제 통치 시기의 일화만 10편을 훌쩍 넘어가는등, 강희 치세와 여러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확실히 그는 대단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가 즉위하던 시점에 그는 열살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국의 황제가 되었고, 나라 안팎으로 수많은 적이 있었으며 조정 내부에서도 권신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조정의 주도권을 장악한 그는, 삼번의 난을 평정하여 중국에서 청의 판도를 확실하게 하였으며, 대만의 정씨 왕조를 굴복시켰고, 러시아와 협상을 통해 북방의 변경을 안정시키는 한편, 준가르를 여러차례 원정하여 가르단의 위험을 분쇄시켰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티베트까지 청나라의 판도 아래 두었습니다.
또한 그는 내정에서도 여러 업적을 남겨 치수 사업을 안정화시켰고, 명사와 같은 저작물을 간행했으며,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비교적 평탄하게 바꾸어 후세에 넘겨주었습니다. 그 황제로서의 업적을 말하자면 확실히 강희제의 업적은 대단하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강희제라는 인물을 제대로 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하고 자문해 볼 수 있습니다.
고금의 역사에 수많은 제왕들이 있었고, 저마다 자기들의 능력을 살려 여러 대단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리하여 명성을 날린 군주들은 당대는 물론이고 후대에도 칭송을 합니다. 하지만, 말하자면 이것은 연예인이 방송에 나왔을떄의 모습만을 가지고, 우리가 그 사람을 다 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것이 아닌, 이러이러한 업적과 실책을 남긴 황제로서 아는것이 될 것입니다.
물론 그러면서도 어느정도의 인간성을 후세에 남겨서 보여주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거의 대다수의 경우 이런 것들도 어느정도는 황제라는 이미지에 맞춰 가공된 형태로, 그 인간성이 전해져 오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사람의 모습과 성격이라는것은 악랄했다, 현명했다, 유유부단 했다, 결단력이 강했다 이런 한두마디로 결정지을 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강희제는 다릅니다. 공식적인 기록에서 그는 물론 성조(聖祖)라는 시호에 맞게, 용맹하고 현명하고 사려깊은 위대한 군주로서 그 면모가 가공되어 있고, 그 과정에서 결국 그 미묘한 인간성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자연스럽게, 혹은 의도적으로 배제되어 결국 온화하고 따뜻하고 상투적인 방식으로 장엄하게 꾸며지는 위대한 군주로서의 면모만 남게 됩니다. 다음은 이러한 시각이 반영된, 그가 사망하고 발표된 강희제의 유조(遺詔)입니다.
"종례 제왕(帝王)들이 천하를 다스림에 하늘을 공경하고, 조상(의 가르침)을 본받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하였다. 하늘을 공경하고 조상을 본받는다는 것의 내용은 이렇다. 먼 곳에서 온 자를 자상하게 대하고, 능력 있는 자를 가까이 두며, 백성의 세금을 낮춰주어 재력이 넉넉하게 하고, 모든 사람에게 이로운 바를 골고루(나눠 주는 것을 진실한) 이로움으로 여기며,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것을 (참된) 마음으로 여기며, 여러 신하들을 친근하게 대하고 백성들을 자식으로 여기며, 위태로움이 생기기 전에 나라를 보호하고 혼란스러움이 생기기 전에 잘 다스리며, 언제나 부지런하고 한가로이 쉬지 않고 나라를 위한 장구한 계책을 도모하는 것이다.
짐은 이제 칠순이 되었고 제위에 오른 지 예순한 해가 되었다. 이는 모두 하늘과 땅, 조상들의 드러나지 않는 도움때문이었고 짐의 보잘 것 없는 덕 때문은 아니었다.
역사책을 살펴보니 황제(黃帝)의 (다스림이 시작된) 첫해로 부터 지금까지 4,350여 년이 흘렀으며, 황제(皇帝)를 칭하여던 자는 301명이었지만 짐과 같이 제위에 오래 있는 황제는 아주 드물었다. 짐이 제위에 오른 지 20여년이 되던 날에는 30년간 제위에 있을지는 미리 알지 못하였고, 30년이 되던 날에는 40여년간 제위에 있을지 미리 알지 못하였다, 이제는 제위에 오른 지 61년이 지났다. 상서(尙書) 홍범(洪範)에서는 다섯 가지 복(福)을
첫째는 오래 사는 것이고
둘째는 잘 사는 것이며
셋째는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것이며
넷째는 덕을 쌓는것이며
다섯째는 수명을 다하고 죽는것이라 하였다.
오복(五福) 가운데 수명을 다하고 죽는 것을 다섯번째에 둔 까닭은 참으로 그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짐은 나이가 일흔에 가깝고 부유함으로 말하자면 온 중국을 소유하였으며 자손도 백 오십여명에 이른다. 천하(백성)도 평안하고 즐거워하니 짐의 복 또한 많다고 하겠다. 혹시 갑자기 죽을지라도 마음은 태연하다. 생각해 보니 제위에 오른 이래 비록 풍속을 바로 잡는데까지는 이르지 못하였지만, 천하를 평안하게 하고 모든 사람들이 여유있고 넉넉하게 하고자 애썻다. 짐은 항상 부지런하였으며 조심스러웠고 한가로이 쉬지 않았으며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다. 수십년 동안을 하루같이 온 마음과 힘을 다하였다. 이런 정황을 어찌 노고(勞苦)라는 두 글자로 모두 표현 할 수 있겠는가?
옛날의 제왕 가운데 혹 수명이 길지 못하였던 자들에 대해 사론(史論)에서는 대게 너무나 방탕하고 주색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평하였다. (그러나) 이는 모두 서생(書生)들이 참으로 순전하고 훌륭한 군주에 대해서라도 흠을 들추어 내려고 비평하기를 즐겨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짐이 옛날의 제왕들을 위해 변명하자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이 너무 번거로우므로 힘들고 고달픈 바를 감당하지 못해서 (일찍 죽은 것)이다. 제갈량은 "죽을 때까지 온갖 정성을 다바쳐 나랏일을 돌본다." 라고 하였는데, 남의 신하로서 (이렇게 행한 자는) 오직 제갈량 한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제왕들의 책임은 막중하고 벗어날 수도 없다. 이를 어찌 신하들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인가?
신하들은 벼슬살이를 할 만하면 벼슬을 살고 그만둘 만하면 그만둔다. 늙으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손들을 돌보면서 유유자적하게 보낼 수 있다. 그러나 군주들은 평생토록 부지런히 수고하고 쉴 수가 없다. 순(舜) 임금과 같은 사람은 무위지치(無爲之治)하였다고 일컫어지지만, 남순(南巡)하다가 창우에서 죽었다. 우(禹) 임금은 손발에 못이 박히도록 수레를 타고 다니며(치수에 힘쓰다가) 후이지에서 죽었다. 이처럼 정사를 돌보는 데 힘껏 노력하고 두루 다니며 순행하여 한가로이 쉬지 않아으니, 어찌 무위청정을 숭상하여 자신을 돌바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주역의 돈 괘에 나타난 육효는 군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으니, 이로부터 군주는 본래 편안히 쉬는 바가 없고, 은퇴하여 자취를 감출 수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죽을 떄까지 온갖 정성을 다바쳐 나랏일을 돌본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자고로 천하를 얻는데 그 올바름이 우리 청과 같은 왕조는 없었다. 태조와 태종꼐서 처음부터 천하를 얻으려는 마음을 품은 것은 아니었다. 일찍이 우리의 군대가 베이지에 가까이 왔을 때 여러 대신들은 모두 마땅히 명나라를 취해야 한다고 아뢰었다. 태종 황제께서는 "명나라와 우리 나라는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으므로 취하기가 매우 쉽다. 그러나 중국의 군주를 생각해서 차마 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라고 하셨다. 후에 유적 이자성이 베이징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숭정제가 스스로 목을 메어 죽자 대신과 백성들이 성문을 나와 (우리를) 맞아들였다. (이에 우리는) 이자성의 무리를 소탕하고 대통을 계승하였다. 그리고 전례를 살펴서 숭정제를 장사지냈다.
옛날 한 고조는 일개 정장에 불과하였다. 명 태조는 황각사의 일개 승려에 지나지 않았다. 항우가 군대를 일으켜 진을 공격하였으나 마침내 천하는 한에게 돌아갔고, 원 말에는 진우량 등이 봉기하였으나 마침내 천하는 명에게로 돌아갔다. 우리 청조는 명나라를 계승하였으며 우리의 조상들은 하늘의 뜻에 따르고 민심을 거스르지 않아서 (마침내)천하를 어루만져 (평안하게) 하였다. 이로 보건데 (우리 청조의) 참된 군주들이 난신적자들을 모두 제거하였던 것이다.
무릇 제왕에게는 천명이 있어서 마땅히 장수를 누리도록 (천명을 받은 자는) 장수를 누리지 못하도록 할 수 없고, 태평을 누리도록 (천명을 받은 자는) 태평을 누리지 모하게 할 수 없다. 짐은 어려서부터 책을 읽어 고금의 도리를 조잡하게나마 깨우쳤다. 또 젊어서 힘이 넘칠 때는 강궁을 쏠 수 있었다. 군사를 움직이거나 전투하는 일에도 모두 뛰어났지만 평생에 한 사람이라도 제멋대로 죽이지 않았다. 삼번의 난을 평정하고 막북을 공략함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전략을 짰고 호부의 재정은 군비나 기근구제비가 아니면 헛되이 쓰지 않았으니 이는 모두 백성들의 기름(을 짠 것)이기 때문이었다. 각지를 순행하면서는 수놓은 채색비단으로 행궁을 장식하지 않았으며 한 곳에서 쓴 비용도 일이만 냥을 넘지 않았으니, 매년 하공에 지출하는 300여 만 냥의 비용에 비교하면 100분의 1에도 못미친다.
옛날 양 무제는 나라를 세운 영웅이었지만 늙어서 후경에게 핍박받아 화를 당하였다. 수문제 역시 왕조를 처음으로 연 군주였지만 그 아들 양제의 악함을 미리 알 수 없었으므로 마침내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였다. 이는 모두 일찍이 (일을)처리하지 않은데서 비롯된 것이다.
짐은 자손이 100여 명이고 나이는 이미 일흔이다. 제왕, 대신, 관원, 군인과 백성 및 몽골인들 모두 짐의 나이가 많은 것을 안타까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이제 나이가 많아 죽는다 할지라도 짐은 기쁘다.
태조 황제의 아들인 예친왕 다이샨과 여요왕 아바타이의 자손들도 모두 평안하게 살고 있다. 짐이 죽은 후에 너희들이 마음을 합하여 (나라를) 보존하면 짐도 또한 흔쾌하고 편안하게 죽을 것이다. 넷째아들 옹친왕 윤진은 인품이 고귀하고 신중한 것이 짐을 아주 닮았으니 반드시 대통을 이을 수 있을 것이므로, 짐을 이어서 제위에 올라 황제가 되게 하라. 전례를 준수하여 상복을 입은 후에 27일이 지나면 (상복을) 벗어라. 이를 천하에 포고하여 모두가 듣고 알게 하라."
하지만, 이 말들은, 강희가 죽기 전에 남긴 상유(上諭)와 비교했을때, 본래 강희제 자신이 고통스러워하고, 의심하던 인간의 모습, 그리고 황제의 인간적인 면모를 지우고 존엄함의 화신으로 만들어 버리는 역사적 전통 속에, 과연 그 자신이 "성군 황제" 가 아닌, "그 자신 그 자체" 로서 그대로 정직하게 기억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을 하던 모습들이 사라져 있습니다. 이 유조에서 강희제의 모습은 단지 그림자로서 나타날 뿐이며, 상투적인 어투들만 남았으며, 그의 넘치는 힘과 분노, 그리고 정직함과 고통스러움이 모두 빠져 있습니다.
존엄함과 위대함으로 둘러 쳐진 황제의 파편 속에서, 단편적인 인간적인 편린을 찾는 일은, 역사적으로 볼때 그다지 의미있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 강희라는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우리에게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1697년, 강희는 자신이 신임하던 환관인 구원싱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편지들은 상자에 들어가 자금성 내에 보관되어 있었고, 1911년 신해혁명 이후에 학자들이 발견하여 원문을 베꼈습니다. 일전의 포스팅에서 아들에게 강희제의 편지들을 언급했지만, 역시 이런 편지등을 남긴것도 강희가 거의 유일합니다.
2월 8일
구태감에게 유하노라. 7일에는 바다링의 갈림길을 지나서 묵었다. 8일에는 화이라이 현에서 묵었다. 기후를 살펴보니 베이징과는 크게 달라서 더 춥게 느껴진다. 예전에 창고에는 이리가죽 안감과 모래여우 가죽 안감이 있었는데 직접 보지는 못했다. 이 두 가죽 안감으로 (옷을 만들되) 소매에는 우단을 대고, 몸통에는 영령주를 사용하여 만들라. 다 만들었을 때는 상주문들과 함께 보내되, 너무 몸에 꽉 끼도록 만들지는 말라. 지난번에 상주문들과 함께 보낸 옷은 너무 꽉 끼어서 아주 불편하니, 조심하라! 짐이 이곳으로 떠나올 때 덕비가 편지 못하였는데, 지금은 나았는가? 홍역에 걸렸던 황자들도 모두 상태가 호전되었으니, 궁중 분위기도 자연히 유쾌해질 것이다.
이번에 데리고 온 낙타와 말은 아주 살찌고 사랑스러우며 달음박질도 잘한다. 베이징 성문을 떠난 이후 여러 번 유쾌한 소식을 전해 왔다. 짐은 아주 평안하니, 특별히 상유하노라.
3월 4일
지금은 늦봄이 시작하는 때로서, 얼음이 아직 다 녹지 않았고 청명절이 가까웠지만 찬바람도 아직 불고 있다. 올해 베이징의 날씨도 이와 같은지 모르겠구나. 짐의 몸은 아주 편안 안하며, 순행하는 중에 음식도 아주 풍족한데 흰 국수는 특히 맛이 좋다. 궁궐 안의 사람들은 모두 잘 지내는가? 가르단의 일은 조만간에 마무리되겠지만, 그 시점이 꼭 언제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짐이 선무 현에서 이곳 고유의 간식 두 가지를 받아서 연회궁과 익곤구으로 보내니 보고 웃으며 즐기도록 하고, 선무 현의 흰 누룩 한 통도 (황태후께) 삼가 보내니 안부를 전하라.
3월 7일
하미의 이슬람교도들이 가르단 반역도들을 압송하면서 함께 보내준 토산물 중에서, 태양별에 말린 참외가 제일 맛있었다. 지금 답신과 함께 적어보낼테니, 그 먹는 방법을 모를까 염려되니 특별히 적어서 보낸다.
먼저 말린 참외를 찬 물이나 뜨거운 물로 깨끗이 씻어야 한다. 뜨거운 물에 잠깐 담그면 참외가 말랑말랑 하게 될텐데, 식혀서 먹어도 되고, 뜨거운 채 먹어도 되는데 그 맛이 아주 신선하며 참외(가 우러난) 물은 꿀물에 말린 복숭아를 탄 것과 비슷하다. (참외가 차지하고 남은) 빈 곳에는 작은 포도를 채워라.
너는 이 사실을 비들에게 전하여 알려주거라. 물건은 비록 보잘것 없지만, 마음은 참으로 먼 곳에서 전하는 것이다. 허니 비웃지는 말아라.
윤 3월 26일
구태감에게 유하노라. 지난번에 보낸 오이는 아주 맛있었다. 이후로 매번 상주문을 보낼 때 꼭 반드시 함께 보내라. 무와 가지도 함께 보내라. 짐은 이미 바이다 지방에 도착하였다. 특별히 류허오얼을 사신으로 보내어 황태후께 문안인사를 드리고 별다른 일은 없으신지 (여쭙게) 하였다. 이 사람은 괴이하며 담대하니 어찌 가까이 두고 부리겠는가? 그는 참으로 악하니 이곳으로 돌려보내지 말고 경사방에 가두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라. 특별히 유하노라.
4월 3일
구태감에게 유하노라. 짐은 황허 강변에서 몽골의 여러 부락민들과 여러 날 놀고 웃었더니 마음과 정신이 상쾌하다. 짐은 여러 번 나다녀 보았지만 이처럼 마음을 넒혀 주고 뜻에 흡족한 경우는 없었다. 너는 궁궐 안의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여 걱정하지 않게 하라. 황허 강변에서부터 장자커우를 거쳐서 베이징으로 가면 900여리이다. 만일 사허커우와 다퉁을 거쳐 베이징으로 가면 1,200여 리이다.
짐은 닝샤로 사람을 보내 음식과 곡식, 국수 등을 구해 오게 하였다. 국수는 궁궐에서 먹는 것보다 더 낫고 포도도 아주 맛있다. 우리가 주둔한 곳과 변방은 아주 가까워서 온갖 물자가 다 있다. 다만 날씨가 춥지 않아 강물이 얼지 않으니, 이동하기 곤란한 것이 아쉽다. 집에 있는 너희들은 도리어 짐을 위한답시고 춥지 않을까 걱정하는데 이는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4월 29일
구태감에게 유하노라. 짐은 29일 사후커우를 지났다. 여기서 장자커우를 지나 베이징으로 갈 터인데, 대략 5월 15일을 전후하여 도착할 것이다. 지난 번 여러 상유에서 하지 무렵에 베이징에 도착할 것이라 말하였지만, 황허의 풍랑이(일정을) 그르치게 하였으므로 늦어지게 되었다. 사후커우 밖은 시원하며 무덥지 않다. 지금도 아침에는 가죽 마고자를 입는 자도 있고, 길가의 물과 풀들도 서쪽 변방과는 아주 다르다.
짐은 아주 평안하고 시중드는 자들도 모두 잘 있으니, '마음이 너그러워 몸이 살찐다.' 고 할 만하다. 짐은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특별히 유하노라.
강희제는 제위에 오른지 예순한번째 되던 해, 열한번째 달 열세번째 날, 곧 1722년 12월 20일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유조가 반포되었습니다.
하지만 1717년 12월 23일, 건청궁의 동난각에 여러 황자, 만한대학사, 학사, 구경, 침사, 과도관 등을 불러모은 강희제는 다음과 같은 상유를 반포했습니다. 그가 살아있을 시절이니, 죽고 나서 반포된 유조에서 빠진 부분들이 이 상유에서는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강희제가 우리에게 남겨주고 싶었던 그 말, 자신의 말을 뒷사람들이 고쳐, 그리하여 들려줄 수 없게 되었을지 모르겠다고 고민했던, 바로 강희제가 뒷사람들 ─ 즉 우리에게 들려주는, 그 자신의 말이 될 것입니다.
"짐은 어렸을때, 하늘이 건강함을 주셔서 병에 걸린다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올 봄에 병이 나서 비로소 머리가 어지롭고, 몸이 점차 쇠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올 가을에 변방 너머로 사냥을 나갔는데 몽골 지방의 기후와 풍토가 아주 좋아서 정신은 나날히 맑아지고 얼굴에 살이 올랐다. 매일 말을 타고 활을 쏘았지만 피곤하여 짜증나는 적이 없었다. 베이징으로 돌아온 뒤에는, 황태후께서 편치 않으셨으므로 짐은 낙담하여 어지럼증이 생겼다. 짐은 평소에 꼭 일러두고 싶은 말이 있었으므로, 특히 그대들을 불러모아 얼굴을 마주보고 상유를 내리노라."
"종래 제왕이 천하를 다스림에 하늘을 공경하고, 조상의 가르침을 본받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하였다. 하늘을 공경하고 조상을 본받는다는 것의 내용은 이렇다. 먼 곳에서 온 자를 부드럽게 대하고, 능력 있는 자를 가까이 두며, 백성의 세금을 낮춰 주어 재력이 넉넉하게 하고, 모든 사람에게 이로운 바를 골고루 나눠 주는 것을 진실한 이로움으로 여기며,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것을 (참된) 마음으로 여기며, 여러 신하들을 친근하게 대하고 백성들을 자식으로 여기며, 위태로움이 생기기 전에 나라를 보호하고 혼란스러움이 생기기 전에 잘 다스리며, 언제나 부지런하고 한가로히 쉬지 않으며, 관대함과 엄격함에 조화를 이루고, 원칙과 임시변통을 적당히 섞어 사용하여 나라를 위한 장구한 계책을 도모하는 것이다."
"자고로 천하를 얻는데 그 올바름이 우리 청과 같은 왕조는 없었다. 태조와 태종꼐서 처음부터 천하를 얻으려는 마음을 품은 것은 아니었다. 일찍이 우리의 군대가 베이지에 가까이 왔을 때 여러 대신들은 모두 마땅히 명나라를 취해야 한다고 아뢰었다. 태종 황제께서는 "명나라와 우리 나라는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으므로 취하기가 매우 쉽다. 그러나 중국의 군주를 생각해서 차마 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라고 하셨다. 후에 유적 이자성이 베이징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숭정제가 스스로 목을 메어 죽자 대신과 백성들이 성문을 나와 (우리를) 맞아들였다. (이에 우리는) 이자성의 무리를 소탕하고 대통을 계승하였다. 그리고 전례를 살펴서 숭정제를 장사지냈다."
"옛날 한 고조는 일개 정장에 불과하였다. 명 태조는 황각사의 일개 승려에 지나지 않았다. 항우가 군대를 일으켜 진을 공격하였으나 마침내 천하는 한에게 돌아갔고, 원 말에는 진우량 등이 봉기하였으나 마침내 천하는 명에게로 돌아갔다. 우리 청조는 명나라를 계승하였으며 우리의 조상들은 하늘의 뜻에 따르고 민심을 거스르지 않아서 (마침내)천하를 어루만져 (평안하게) 하였다. 이로 보건데 (우리 청조의) 참된 군주들이 난신적자들을 모두 제거하였던 것이다."
"짐은 이제 칠순이 되었고 제위에 오른 지는 50여년이 지났다. 이는 모두 하늘과 땅, 조상들의 드러나지 안은 도움 덕분이었고, 짐의 보잘것없는 덕 때문은 아니었다. 짐은 어릴 적부터 책을 읽고 고금의 도리를 어설프게 나마 깨우쳤다. 무릇 제왕에게는 천명이 있어서 마땅히 장수를 누리도록 (천명을 받은 자는) 장수를 누리지 못하도록 할 수 없고, 태평을 누리도록 (천명을 받은 자는) 태평을 누리지 모하게 할 수 없다."
"황제의 첫해로부터 지금까지 4,350여년이 흘렀으며 황제를 칭하였던 자는 300여명이었다. 그러나 진나라에서 분서하기 이전 삼대의 일에 대해서는 모두 믿기 어렵다. 시황제 원년으로부터 지금까지는 1,960여 년이 흘렀고 황제를 칭하면서 연호를 가졌던 이들은 모두 211명이었다. 그러면 짐은 어떤 사람인가?"
"진한 이래로 황제 자리에 오래도록 앉았던 사람 중에서도 가장 오래도록 앉아있는 사람이다."
"옛 사람 중에 자랑하지 않고 족함을 알고 그칠 줄 알았던 자만이 처음처럼 끝도 조았다. 삼대 이후 제왕을 살펴보니 제위에 오래 있었지만 후세에 유조를 남기지 못한 분도 있고, 수명이 길지 못하여 세상의 질고를 알지 못한 분들도 있었다. 짐은 이미 늙었고, 제위에도 오래 있었으니 후세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미리 알지 못하겠다. 또 눈앞의 일 때문에 통곡하며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먼저 붓 가는 대로 기록해 놓았으나, 오히려 천하 사람들이 나의 고통과 슬픔을 알지 못할까, 그것이 두렵다."
"옛날의 제왕들은 죽음을 꺼리는 일로 생각하여, 미리 준비하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의 유조를 살펴보면 제왕의 어투도 아니고, 마음 속에서 말하고 싶었던 진정한 바도 아니다. 이는 숨이 넘어가려는 찰나, 문신을 찾아 그들 마음대로 기록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짐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 이제 미리 너희들에게 짐의 진심어린 마음을 알리려 한다."
"짐이 제위에 오른 지 20여년이 되던 날에는 30년간 제위에 있을지는 미리 알지 못하였고, 30년이 되던 날에는 40여년간 제위에 있을지 미리 알지 못하였다, 이제는 제위에 오른 지 61년이 지났다. 상서(尙書) 홍범(洪範)에서는 다섯 가지 복(福)을
첫째는 오래 사는 것이고
둘째는 잘 사는 것이며
셋째는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것이며
넷째는 덕을 쌓는것이며
다섯째는 수명을 다하고 죽는것이라 하였다.
오복(五福) 가운데 수명을 다하고 죽는 것을 다섯번째에 둔 까닭은 참으로 그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짐은 나이가 일흔에 가깝고 부유함으로 말하자면 온 중국을 소유하였으며 자손도 백 오십여명에 이른다. 비록 풍속을 바로 잡는데까지는 이르지 못하였지만, 모든 사람들이 여유있고 넉넉하게 하도록 하였다. 짐은 항상 부지런하였으며 조심스러웠고 한가로이 쉬지 않았으며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을 하루 종일 온 마음과 힘을 다하였다. 이런 정황을 어찌 노고(勞苦)라는 두 글자로 모두 표현 할 수 있겠는가?"
"옛날의 제왕 가운데 혹 수명이 길지 못하였던 자들에 대해 사론(史論)에서는 대게 너무나 방탕하고 주색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평하였다. (그러나) 이는 모두 서생(書生)들이 참으로 순전하고 훌륭한 군주에 대해서라도 흠을 들추어 내려고 비평하기를 즐겨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짐이 옛날의 제왕들을 위해 변명하자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이 너무 번거로우므로 힘들고 고달픈 바를 감당하지 못해서 (일찍 죽은 것)이다. 제갈량은 "죽을 때까지 온갖 정성을 다바쳐 나랏일을 돌본다." 라고 하였는데, 남의 신하로서 (이렇게 행한 자는) 오직 제갈량 한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제왕들의 책임은 막중하고 벗어날 수도 없다. 이를 어찌 신하들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인가?"
"신하들은 벼슬살이를 할 만하면 벼슬을 살고 그만둘 만하면 그만둔다. 늙으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손들을 돌보면서 유유자적하게 보낼 수 있다. 그러나 군주들은 평생토록 부지런히 수고하고 쉴 수가 없다. 순(舜) 임금과 같은 사람은 무위지치(無爲之治)하였다고 일컫어지지만, 남순(南巡)하다가 창우에서 죽었다. 우(禹) 임금은 손발에 못이 박히도록 수레를 타고 다니며(치수에 힘쓰다가) 후이지에서 죽었다. 이처럼 정사를 돌보는 데 힘껏 노력하고 두루 다니며 순행하여 한가로이 쉬지 않아으니, 어찌 무위청정을 숭상하여 자신을 돌바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주역의 돈 괘에 나타난 육효는 군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으니, 이로부터 군주는 본래 편안히 쉬는 바가 없고, 은퇴하여 자취를 감출 수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죽을 떄까지 온갖 정성을 다바쳐 나랏일을 돌본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언제나 '제왕은 마땅히 일의 크고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고 말해왔다. 그러나 짐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한 가지 일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온 천하에 근심을 끼치고,한 순간을 부지런하지 않으면 천대, 백대에 우환거리를 남긴다. 작은 일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마침내는 큰 덕에 누를 끼치게 되므로, 짐은 매사를 꼼꼼하게 살펴 왔다. 만일 오늘 한 두 가지 일을 처리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내일은 처리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 더 많아진다. 내일도 다시금 편안하고 한가롭기만을 힘쓴다면 훗날에는 처리해야 할 일이 더욱 많이 쌓이게 된다."
"황제가 처리해야 할 일은 지극히 중요해서 미루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짐은 크든 작든 모든 일에 관심을 쏟고 있다. 상주문에 한 자라도 틀린 것이 있으면 반드시 고쳐서 돌려준다. 모든 일을 소홀히 못하는 것은 짐의 천성이다. 50여 년 동안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에 미리 손을 써왔고, 천하의 많은 백성들도 짐의 덕을 기려왔으니 사소한 일에는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는 말에 어찌 집착할 수 있겠는가?"
"짐은 어려서부터 강건하였고 근력도 상당히 좋아서 강궁을 쏠 수 있었다. 군사를 움직이거나 전투하는 일에도 모두 뛰어났지만 평생에 한 사람이라도 제멋대로 죽이지 않았다. 삼번의 난을 평정하고 막북을 공략함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전략을 짰고 호부의 재정은 군비나 기근구제비가 아니면 헛되이 쓰지 않았으니 이는 모두 백성들의 기름(을 짠 것)이기 때문이었다. 각지를 순행하면서는 수놓은 채색비단으로 행궁을 장식하지 않았으며 한 곳에서 쓴 비용도 일이만 냥을 넘지 않았으니, 매년 하공에 지출하는 300여 만 냥의 비용에 비교하면 100분의 1에도 못미친다."
"짐은 어렸을 때 책을 읽으면서 주색을 조심해야 하며, 백성들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점을 깨우쳤다. 그래서 늙어서도 병에 걸리지 않았으나 강희 47년(1708년)에 큰 병에 걸린 뒤에는 정신이 많이 상하여 이전만 못해졌다. 하물며 매일 돌보아야 할 정사가 있고 이 모두를 결재해야 하였으므로 정신은 날마다 밖으로 빠져나가고 떄로는 안에서도 닮아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혹시 변고를 만나 일시에 한마디도 못하게 되어 짐의 진정한 뜻을 밝히지 못하게 된다면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정신이 맑은 때에 미리 하나 하나 언급하여 짐의 일생에서 중요한 일들을 모두 밝혀 놓으면 어찌 유쾌한 일이 되지 않겠는가?"
"사람의 삶에는 반드시 죽음이 뒤따르니, 이는 주희가 '천지가 순환되는 이치는 낮이 끝난 다음에 밤이 오는 것과 같다.' 라고 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공자도 '만족하면서 살고 하늘의 뜻을 기다려라.' 고 하였다. 이는 모두 성현의 말씀이니 어찌 짐이 노쇠함과 죽음을 두려워하겠는가?"
"요즘에는 많이 병들고 정신이 흐릿하여 육신도 쇠약해져 움직일 때 부축해 주지 않으면 걷기도 힘들다. 이전에는 마음을 쏟아 천하를 다스리는 일을 짐의 업무로 생각하고 그러다가 죽더라도 대수롭지 않다고 여겼다. 이제 짐은 병들고 두려움도 많아지고 건망증도 심해져, 옳고 그른 것을 거꾸로 판단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일에 혼란을 가져올까 두려워하고 있다."
"짐의 마음은 천하를 보살피는 데 다 쏟아부었고, 정신은 온 세상을 다스리느라 흩어져 버렸다. 몸은 쇠하고 정신은 멍하여 몸을 지켜 주지 못하고, 마음은 양분을 공급하지 못하고, 눈은 원근을 분간하지 못하며, 귀는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하며, 먹는 것은 적은데 할 일은 많으니 어찌 오래 지탱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평화가 오래도록 지속되어 사람들의 마음이 게을러지면, 복이 다하고 화를 부르며 평안함이 떠나고 쇠퇴함이 찾아온다. 군주가 자질구레한 일에만 정신을 쏟으면 신하들이 게을러져 만사가 뒤틀리게 된다. 그 다음에는 반드시 하늘의 재앙과 사람의 해악을 불러오고 마침내는 이 두가지가 함께 닥쳐 온다. 그렇게 되면, 비록 마음으로는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정신력이 미치지 못하게 되니, 후회해도 어쩔 수 없다. 떨쳐 일어나고자 해도 그러지 못하고, 침상에서 신음하며 죽더라도 눈을 감지 못하니, 아직 죽지 않았다 한들 어찌 통탄스럽지 않겠는가?"
"옛날 양 무제는 나라를 세운 영웅이었지만 늙어서 후경에게 핍박받아 화를 당하였다. 수문제 역시 왕조를 처음으로 연 군주였지만 그 아들 양제의 악함을 미리 알 수 없었으므로 마침내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였다. 또 독이 섞인 단약을 먹고 자살하거나, 떡을 먹고 중독이 되거나, 송태조가 멀리서 촛불 그림자를 본 것 따위는 기록된 기이한 사건들이니 어찌 우리에게 전철이 되지 않겠는가? 이는 모두 일찌감치 일을 처리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며, 나라의 살림살이와 백성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이다."
"한 고조는 여후에게 임종시의 부탁을 남겼고, 당태종은 황태자 결정문제를 장손무기와 의논하였는데 짐은 읽을때마다 이를 수치스럽게 여긴다. 소인들은 창졸지간에 (황태자를) 폐하고 세우는 일에 관여하고 그것을 도모하여 한 사람을 추대하고 훗날 복이 굴러오기를 바라기도 한다. 짐의 마지막 숨이 붙어 있을 때까지, 어찌 이런 무리들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
"짐이 태어났을 때 결코 신령스럽거나 기이한 징조들이 보이지 않았다. 또 자라날 때도 신기한 징조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여덟 살에 제위에 오른 후 지금까지 57년 동안 역사책에 실려있는 상서로운 별, 상서로운 구름, 기린과 봉황, 지초가 나타나는 경사라든가 궁궐 앞에 불타는 진주와 옥이 나타나거나 천서가 하늘의 뜻을 나타내려고 떨어지는 것 따위의 하늘에서 내려준다는 상서로운 조짐은 사람들로 하여금 말하지 못하게 하였다. "
"이는 모두 헛된 말일 뿐이다. 짐은 감히 그렇게까지 (잘 다스렸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하루하루의 일상을 진실된 마음을 갖고 실제에 도움이 되도록 다스렸을 뿐이다."
"이제 신하들은 황태자를 세워서 다스리는 일의 책임을 분담하라고 상주하고 있다. 짐이 갑자기 변고를 당할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죽고 사는 일은 정해진 이치이며 짐도 이에 관해 이야기하는것을 꺼리지 않는다. 다만 천하를 다스리는 대권은 한 사람이 모두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짐은 10년 이래로 짐이 행하였던 일과, 짐이 품었던 마음을 모두 적어서 봉해 놓았는데, 아직도 이 일은 끝나지 않았다. 황태자를 세우는 일을 짐이 어찌 잊었겠는가? 제위는 가장 귀중하므로 만일 짐이 이 임무를 잊어버리고 편안히 쉬면서 모든 일에서 풀려난다면 더 오래도록 살 수 있었을 것이다.너희 신하들은 짐의 깊은 은혜를 잆었거늘, 어찌 짐 더러 모든 일을 그만두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이제 짐은 기력이 쇠야해져도 힘껏 버티고 있다. 천하들 다스리는 일을 자칫 그만두게 되면 지나 온 57년 동안 부지런히 다스려 온 것이 아깝지 아니한가? 짐의 고충과 진실된 마음은 이처럼 한결같다. 늙은 대신들이 짐더러 물러가 쉬기를 청하며 오릴는 상주를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은 때가 없다. 너희들은 물러가 쉴 곳이라도 있지만 짐은 물러가 쉴 곳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수십일간 휴양하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 된다면 짐의 기쁨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도 세월은 끝없이 흘러갈 터인데, 짐도 송고종처럼 장수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짐의 나이가 쉰일곱 되었을 때, 흰 수염이 몇 가닥 생기자 검게 물들이는 약을 가져온 자가 있었다. 짐은 웃으며 물리치고 '여지껏 흰 수염이 난 황제가 몇이나 있었는가? 짐의 수염이 하얗게 된다면 만세에 전해질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닌가?' 라고 말하였다. 짐이 제위에 올랐던 초기에 함께 일하였던 자들은 지금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고, 그 뒤에 새롭게 벼슬이 올라, 힘을 합쳐 직무에 힘쓰며 공정하고 법을 준수하는 자들의 흰머리가 조정에 가득하니 참으로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짐도 이에 만족한다."
"짐은 천하의 존귀함과 온 세상의 부유함을 다 누렸다. 해보지 않은 일도 없고, 겪어 보지 못한 일도 없다. 그러나 늙어서도 한순간 쉬지 못하게 되자, 천하가 마치 낡아서 못 신게 된 신발 같고 부귀가 진흙이나 모래처럼 생각되었다. 이제 무사히 평온하게 죽는 것을 짐은 원하며, 그것으로 족하다.
짐이 50여년간 태평스러운 세상을 만들려고 애쓴 천자로서 근신하였다는 것을 기억하라. 진정 간절한 마음으로, 거듭해서 나의 삶이 평온한 죽음으로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이 상유는 10년 동안 준비해 왔다. 만약 최후의 유조가 발표된다고 해도, 이 상유에서 언급되지 못한 말은 없을 것이다.
짐은, 간을 드러내고 쓸개를 끄집어내고, 오장을 보여주는 것처럼 진심을 털어놓았다."
짐은, 말을 맺노라.
"……성인께선 당신의 집안 사람인 아들에게, 시경과 예를 배우도록 하셨다. 나라는 집안 일과는 다르지만, 배우는 것은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 강남에 있고, 너는 삼천리나 떨어진 곳, 먼 베이징의 구름 아래 있지만, 나의 생각은 너를 떠난 적이 없구나. 새벽에 편지함을 열어, 촘촘히 쓰인 너의 편지를 꺼낸다."
"너는 솔직하게 한마디 한마디 이야기해 주는구나. 어떻게 사서 읽기를 끝마쳤나 마이다. 나이가 들면 지식은 늘어나야 하는데, 네가 이를 깨닫고 그러려고 애쓰니 참으로 기쁘구나. 일취월장하고, 힘쓰고, 중단하지 말아라."
"사람들이 옥을 항상 보물로 여기는 것처럼, 너는 흘러가는 시간을 귀중히 여기거라. 네가 펼치는 책 속의 옛사람으로부터 배우고, 사건 속에 그리워진 깊은 뜻을 살피거라. 고기맛을 알아가듯, 시간이 지나면 가슴으로 기쁨을 느끼거라."
강희제, 1684년. 남순 중 난징에서, 황태자로부터 사서 읽기를 마쳤다는 연락을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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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의견
지지자와 숭배자는 엄연히 다릅니다. 저는 지지자로서 살 것이지 문재인 대통령을 숭배하며 구원해 주기를 청하기 보다는 저 스스로 저를 구원하는 것을 우선 시도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솔직히 지난 정부들의 정책을 바라보면서 정말 마음이 무거웠던 사람으로서 저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나름의 구원자였다는 점도 고백합니다.
하지만 저는 문재인 대통령을 숭배하기보다는 지지하는 사람으로 살 것입니다. 그 것은 신민이 아닌 시민이라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지지자라고 한다면 그 것은 지지하는 사람의 대의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아야 합니다.
충고와 비난과 비판은 비방과 중상모략과는 엄연히 다른 것들입니다. 이는 분명히 구분되어야만 합니다.
비판과 충고의 무거움과 그 날선 가시를 감당하는 것은 대정치가들이 반드시 감당해야 하는 숙명과 같은 것입니다. 503 정권의 말로가 그러했던 것은 그러한 숙명을 전혀 감당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지지자라는 사람들의 숙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것은 한 인물의 업적과 선택을 '온당하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무작정 칭찬만 한다면 아무리 굳건하고 올바른 사람도 발전할 수 없고, 오히려 자신이 믿는바에 매몰되어 망가지게 됩니다.
PS 정치가의 존재와 그의 행동 및 결정은 우리 모두의 운명을 결정할 만큼 중대한 것입니다만, 여전히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영역에 있어서는 삶을 살아가려 해야 합니다. 우리 삶 모두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한 인간에게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오늘도 건강하십시오.
panchan1 배상
첫댓글 메시아니즘은 반드시 한국이 발전하려면 극복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백마탄 초인이라면서 열광했던 안모씨의 사례를 보듯. 문재인 대통령도 66세의 노인에 불과합니다. 재임하는 기간동안에 다음 대통령이 상식적이고, 제도화된 국정을 물려받을수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이런 글은 정사게시판에 박제를 해야함.
제가 안철수 정계 초기에 백마탄 초인정도로 생각했었기에 반성하는 삶을 살고 있죠. 정치란것도 따지고 보면 개인 호불호라서 100명의 지지자를 가져도 다 맞출수 없고. 1명의 지지자라도 자신과 같을수 없다는것을 인정하고, 각각의 사안의 경중에 따라 지지하기도, 비판하기도 하는게 지지자로써 당연히 가져야 할 덕목이죠. 안그러면 누구들과 다를게 없으니. 요즘 문제는 사안의 경중따위 상관없이, 같은급으로 맞추려고 하는 의도가 보이니. 지지자지만 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막상 조금만 조사해보면 지지자 아녔던 사람들이 그러니. 의도가 있는 공격으로 보이는거고.
오늘자 안선생. .하 ..정말 안습이던데~우짜다 그리 됐는지..장군님 요즘엔 누구를 지지하시는지요?혹여나 좋게 생각하누 정치인이 누군지 급 궁금해지네요^^
@희동왕자 전 다른 안성생을 괜찮게 생각합니다. 실제로 본적이 있는데, 좋더군요. 앞으로 좀더 다듬어진다면, 크게 될 수 있을거 같습니다.
@명예의 장군 희정 아재? ^^
@희동왕자 네. 지켜보고 있습니다. ㅋ
@명예의 장군 민주당은 뭐 안지사, 거지갑 등등 10년전과 달리 인재풀이 있으니 장기적으로는 당내 후계구도도 지금 짜야되지 않나 싶네요. 5년 정부가 4년 연임이 될 지 안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명예의 장군 사실 숭배자를 바꾸셨다ㄱㅗ...읍읍!!!
굿~굿~굿~ 판첸님 숭배하고 싶다능^^
예..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프레임을 이용해서 "다 똑같은 행위" "다 똑같은 놈들"이라고 매도하며, 자기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자들을 매도하고, 여론 몰이를 하며, 그게 정의로운 일인것마냥 날뛰는 인간들은 배제해야할 필요는 있습니다.
세상살이는 절대 간단하지 않으며, 다원적인 측면이 있는데 어떤 정책, 역사를 이해함에 있어 그걸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하나의 기준만을 강요"하는 행위도 마찬가지로 지양되어야 합니다.
애초에.. 상대가 어떤 메카니즘을 통해서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이해하고자 하지 않고, 자극적인 구호, 작위적인 문체를 이용하여 매도를 통한 정신적 자위질을 하는 존재는 배격해야 마땅할 겁
니다.
신격화와 왜 그렇게 했는지 접근하는 것은 다르며, 대부분 다원적인 측면을 접하는 순간, "나가 동의하진 않지만 그런 방향성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할 여지는 생기죠.
ㅇㄱㄹㅇㅂㅂㅂㄱ
원론적으로야 맞는 말씀인데 진짜와 가짜가 뒤섞여 있고 서로간에 딱지붙이기가 만연한 상황에서 이것을 기쁘게 바라보고 심지어 조장하는 외부세력이 있음을 감안한다면 사태에서 한걸음 떨어져서 크게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판첸님 흐흐님 글에 공감합니다.
정론이십니다.
이야~ 정론입니다
정치적인 문제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지요
그런데도 댓글에 비난이 어떻니 하는 사람들은 여전합니다
내 생각과 다르면 비난하는거지 아무런 비난도 받지 않고 모두가 만족하는 정책만 한다면 그건 신을 모시고 사는건데
그러다간 누가 집권해도 비난만 하다가 시간 다 보냅니다. 모두 다 ㅂㅅ이면 그나마 괜찮은 ㅂㅅ을 밀어줘야죠. 안 그러면 그 중에서 가장 악질적인 ㅂㅅ이 정권잡습니다.
@으흐흐 그 괜찮은 ㅂㅅ의 기준이 뭘까요
내가 원하는 정책을 한다=좋은정치
이런거죠
@니맘대로하세요 문제는 원하는 정치가 다 다르다는거죠. 그래서 분열을 하다보면 기득권이 정권을 잡고 내가 원하는 정치는 점점 멀어지는겁니다. 그러니까 뭉칠 때는 뭉쳐야 하고 지금은 뭉칠 때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공감하고 저도 반성을 하겠습니다
사실 문통이 박근혜보다는 나을 지 모르지만 결국 그도 완벽한 인간은 아니겠지요...
원하는 정치는 다 달라도 최소한의 타협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아서 자연스레 뭉칠 수 있게 하는게 "좋은 정치"지 않습니까. 그것을 오판하여 삽질을 했기 때문에 분열이 일어나는 거죠. 그런 오판을 되풀이하는 것은 더 이상 '좋은 정치'가 아니거든요.
그런 오판을 인정하고 다음부터 실수하지 않도록 노력하면 뭉치지 말라고 해도 자연스레 뭉칩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문제의식을 갖기는 커녕 "분열해서 다 같이 망하자는 거야? 니네 자한당에게만 좋은 일 해주는거야!"라는 마인드를 내비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사람들의 반감이 더 커지는 건데요.
정론 중의 정론임
정부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지지자일수록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다음 번에 보다 제대로 된 판단 내릴 수 있도록 정부에 견해를 전달할 방법을 고민해야겠습니다"라는 겸허한 태도를 보였더라면 애초에 이런 논쟁 발생하지도 않았어요. 정부를 지지하고 힘을 실어주겠노라면서 온갖 병크에 오바에 삽질을 하는 사람들이 나와버리니까 논쟁이 발생하죠.
사람들이 분열한게 아니라, 지지자들의 맹목적인 행태가 분열을 낳는 겁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발라 모굴리스
메멘토 모리
모든 사람이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맑은 정신으로 사물을 보길...(저부터 반성해야 할 듯.)
맑은 정신이란게 있을까요...
근데 문재인을 신이라 생각하는게 누구인지는 참 우습죠. 뭔 일만 터져도 다 '문재앙' 때문이라고 난리치는것들이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