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초 사건으로 박살나버린 70년대 한국 록씬을
멱살 부여잡고 끌어올린 GOAT 밴드 산울림
기타리스트이자 메인보컬인 김창완,
베이시스트이자 서브보컬인 김창훈,
드러머 김창익
총 삼형제가 이룬 가족 밴드로서
현재도 청춘, 너의 의미, 회상, 나 어떡해 등 많은 곡들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 산울림의 결성 과정은 참으로 드라마틱했다
때는 1971년, 당시 대학교에 막 입학했던 김창완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통기타와 교본을 사 오게 된다
양희은의 통기타 사운드가 전국의 캠퍼스에 울려 퍼지던 년도였으니 아마 그러한 영향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고등학생이던 둘째 김창훈은 창완의 기타를 보며 신기해하다가 이내 자기도 고물상에서 싸구려 기타를 사와서 형과 합주를 하게 되었고
형들의 기타를 보고 흥미가 돋친 중학생 막내 김창익은 어머니가 아끼시던 은수저를 몰래 꺼내들고 교과서에 내리치며 드럼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설프지만 어느 정도 밴드의 형상이 갖춰졌으며
1974년까지 3년동안 거의 4백 곡에 달하는 매우 많은 자작곡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1974년까지 삼형제들의 음악 장비는 아마추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1975년 대격변이 일어나는데
바로 둘째 김창훈이 대학교에 입학하자 부모님이 원하는 선물을 사준다고 제안한 것이었다.
김창훈은 형과 합심하여 밴드 악기를 사달라고 부탁했고
지출이 너무 커 일단 부모님께 돈을 빌린 다음 일렉기타, 베이스, 드럼, 앰프를 구매하여 밴드로서의 구색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자 또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동네에서 시끄럽다고 난리가 난 것이다.
삼형제들의 집은 흑석동 주택가에 있었는데
이전까지는 통기타 퉁퉁 튀기는 소리라 별로 말이 안 나왔지만
일렉기타에 앰프, 드럼까지 갖추니 달동네 수준의 집집마다 삼형제들의 합주 소리가 울려퍼진 것이었다.
그러자 삼형제들은 방을 계란판으로 덮어 방음 시설을 만들었고
그래도 여전히 시끄러운 록음악이 새어나왔지만 동네 사람들은 이 삼형제들을 마냥 나쁘게만은 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김창완이 서울대학교 잠사학과
김창훈이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였기 때문이다
당시 삼형제들은 동네에서 공부를 잘하기로 소문이 자자했고
동네 주민들이 삼형제들을 "공부를 하면서 음악도 잘한다" 는 점 때문에 별로 터치를 안 했던 것이다.
이후 막내 김창익마저 고려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입학하자 동네에서 삼형제들의 음악 소리로 불평하는 목소리는 크게 줄어들었다.
1977년 대학가요제 1회가 개최되었을 때
삼형제들은 "무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하여 예선 대상에 올랐으나
김창완이 졸업생 신분이라 자격이 박탈되어 엎어지게 된다.
그러나 예선 2위였던 서울대 밴드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는 김창훈이 쓴 곡이었고
"나 어떡해"가 대학가요제 1위에 입상하게 되면서 삼형제들의 음악 생활은 큰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당시 예선 1,2위가 모두 자기들의 곡이라는 걸 본 김창완은 취업 전에 음반이나 하나 만들자는 다짐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서라벌레코드에 찾아간 후
사장 이흥주에게 녹음한 테이프를 들려주며 음반 하나만 제작해달라고 말했는데
테이프를 들은 이흥주는 깜짝 놀라며 음반 제작비는 전부 지원할테니 당장 녹음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러자 웬 떡이냐 생각하며 바로 콜한 김창완은 창훈과 창익을 데리고 스튜디오에서 첫 녹음을 진행하였는데
그렇게 1977년 12월에 출시된 음반이 바로
산울림 1집이다
이후 산울림은 드러머 김창익의 사망으로 2008년 해체되기 전까지 13집의 정규앨범, 4집의 동요앨범, 기타 20장이 넘는 음반들을 출반하였는데
만약 삼형제가 SKY에 입학하지 않았다면 시끄럽게 합주하는 삼형제들을 동네 주민들이 가만 두지 않았을 테고
대학가요제에 참가하지 않았으면 예선 1위라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고
서라벌레코드를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퇴짜를 맞았을지도 모르니
어찌 보면 우연의 연속이라 할 수 있겠다
여담으로
삼형제들이 모두 대학을 졸업하자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학생 신분으로 하는 음악"이라 사람들이 좋게 봐주었지만
학교를 졸업하니 "딴따라"로 시선이 바뀐 것이다.
때문에 음반사 문예부장에 취직했던 김창완을 제외하고
김창훈과 김창익은 자신의 전공을 따라서 음악과 전혀 상관없는 해태식품, 대우자동차에 입사했다
동생들의 회사생활로 녹음이 힘들자 김창완은 산울림을 1인 밴드 형식으로 운영했으며
ㅊㅊ - ㅇㅉㅈㅈㅅ
첫댓글 거참 될사람은 된다….
우리나라 뮤지션중
제일 존경하는 두명이
김창완 김민기 입니다.
정말 노래 하나하나가 놀라울 정도로 천재적입니다.
여기가 서태지가 나온 그 그룹이죠. 김종서도 여기출신
그건 시나위..
산울림은 가족사업이라 ㅜ
흑석동 산이라면 언론사주가 계신…
본문첫줄에 비속어 좀 그렇지 않나요? 읽자마자 깜짝 놀랐네요
긁어오느라 마음이 바빠 미처 신경 못 썼었네요. 고쳤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
이번에 아침창 MC 바뀔때 정말 아쉽더군요.
창완 아저씨 건강하세요!!
https://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zskmc&logNo=222502173091
김창완 아저씨 어릴 적에 참 좋아했었지만 이 인터뷰 한 방으로 완전히 돌아서게 됐습니다.
사람 좋아보이는 웃음 뒤에 가끔씩 세어나오는 냉소감은 제가 잘못느낀게 아닌군요 😑
저도 그렇게 잘 아는건 아니지만 그 블로그와 인터뷰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블로그에서는 탄압받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산울림 1집의 모든 노래는 모두 심의에 걸렸었고
그로 인한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은유적 표현의 가사들이 많았죠.
그리고 2008년 한나라당 의원 유세를 도왔다지만, 2006년에는 열린우리당, 2010년에는 민주당 의원을 지지하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사건에는 추모 노래를 내기도 했구요.
3형제가 서울대-서울대-고려대 라 .. 지금도 대단한데 그 당시엔 엄청났겠네요.
개인적으로 국내 음악쪽에서 천재 2명 꼽습니다.
김창완, 김수철.
그리고 비틀즈가 너무 부럽고 영국이 너무 부럽지만 산울림이 있고 김창완이 있어서 정말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산울림이 없었다면 정말 비틀즈가 부러웠을텐데 정말 많이 메워줬어요. 고마워요. 산울림.
그리고 구울림도 아주 좋아요. 너무 좋아요ㅎㅎㅎ
김수철, 작지만 위대한 거인.
산울림이 말씀처럼 그나마 비틀즈의 카운터 파트너가 돼 줬는데 김수철 님은 누구의 카운터 파트너였을까요? 궁금합니다. ㅎㅎ
워크맨으로 서편제 오에스티 엄청 들었는데, 진짜 천재 중 한 분 같아요. ㅎ
@인생이다그런 김수철은 가요 국악을 넘나들며 모두 어느 정점을 점한 분이라 천재라 꼽아요. 그리고 뮤지션으로 워낙에 훌륭한 이력이 짱짱하셔요. (최근에도 평창올림픽 음악감독이셨나 했어요)
어쨌건 장르를 넘는 천재로 김수철 꼽습니다.
나이들어도 정말 멋져요.
@어떤이의 꿈 https://youtu.be/u_6VllwxZVA?si=dz08EB0-121PnD2j
이거 보고 그날 오후에 바로 저 야마하 SG 사왔더랬죠..다만 저같은놈이 다루기엔 성질 사나운 악기더군요ㅎㅎㅎ
PLAY
@어떤이의 꿈 영상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
근데 보고 지를만 하네요. 며칠 아내 분에게 등짝은 내줘야겠지만요. ㅎㅎ
성질 더러운 저 친구랑 잘 지내셨으면 좋겠네요.
처분 하셨다면 몰라도, 연습 열심히 하셔서 나중에 얼마나 저 성질과 사이 좋게 지내는지 영상 한번 올려주세요. ^^
얼마전 라디오스타에 김창완님이 나오셨는데 왜 무대에서 항상 양복을 입으셨나고 질문하니 그게 예의라 생각했다더군요. ㅎㅎ 막상 지금은 락커처럼 입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