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학교는 교육 기관이며 사회화 기관이다. 학교란 단순히 공교육을 받는 장소일 뿐 아니라 학우, 선후배와의 관계 및 교사들과의 관계 맺음을 겪으며 다른 사람에 대한 경험을 쌓는 곳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규칙을 제시하고 그렇게 제시된 규칙을 지키는 것이다.
1.
명시적 규칙을 지키는 것은 사회화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사회적 관계 대부분은 명시적 규칙이 아닌 눈치와 경험으로 대표되는 사회성을 기반으로 형성되나 그러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명시적 규칙은 사회화의 첫 걸음이다. 그리고 그 규칙의 첫번째는 바로 시간 약속이고, 두번째는 과목에 맞는 교과서를 챙기는 것이다.
2.
제도적 교육을 제외한 사회화는 부모에 의해 형성된다. 사람이 가장 먼저 맺는 사회적 관계가 바로 부모자식간의 관계이고 이 사이에서도 명시적, 암묵적 규칙은 발생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올바른 사회적 규칙을 가르쳐야 하며 이것이 잘 이루어진 아이가 사회성이 좋은 어른으로 클 가능성이 높다.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게 하고 많은 경험을 해주는 일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규칙을 잘 익힌 아이들이 학교 규칙 역시 잘 지키는 편이다. 부모가 자식 교육을 똑바로 시키지 못했거나, 그럴만한 깜냥이 되지 못하는 나쁜 부모인 경우 자식 역시 그처럼 반사회적이고 이기적일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말이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아이 때문에 부모를 불렀을 때 그 부모가 자기 자식은 잘못하지 않았다는 둥 오히려 교사에게 따지는 것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3.
한국 사회는 과거 가혹한 사회문화적 환경이 형성되었었고, 이는 학교 교육현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교사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학생들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었고 이에 대해 어떠한 불평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촌지를 비롯하여 교사에게 뒷돈을 챙겨줘야 아이에게 부당한 폭력과 차별을 하지 않을 정도였다. 이는 90년대, 비교적 최근까지 잡으면 2000년대 초반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는 한국 사회의 중요 비판점이 되었고 학생에 대한 과도한 폭력이 문제되어 체벌 자체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방침이 바뀌어갔다. 하지만 문제는 교사가 잘하는 것과 학생들이 교권을 존중하는 건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4.
어느 지점이든 적당한 합의점을 찾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과거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지나친 폭력을 행사했던 것처럼 그것을 방지하자 학생들의 과도한 방종을 막을 방법이 없어졌다. 이는 폭력만이 학생들의 방종과 교권에 대한 도전을 방지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는 만큼 교권에 대한 존중 역시도 있어야만 했다는 것이다.
즉, 현재까지 한국의 교육 현장은 적절한 중간 지점을 찾는데 실패했다는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린 아직 그 지점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는 단순히 적절한 제도적 규칙을 형성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 일부 학생들의 지나친 방종은 제한된 교권만큼이나 그들의 행위에 대한 적절한 제약 없이 발생한 반동적 현상에 불과하다.
5.
사회화에서 규칙은 아주 중요하다. 사회적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짐승이나 다를 바 없으며 반사회적이라는 평가를 받기 쉽다. 학교 교육 현장에서 발생하는 학생들의 방종과 교권에 대한 도전은 그것을 적절히 다룰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고, 그러한 근거는 규칙에 의해 마련되어야 한다.
단순히 마련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가령, 현재 교사는 학생에게 벌점을 부여할 수 있다. 그 근거는 교사의 정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았거나, 수업을 방해하거나 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대체로 아주 정당한 경우이긴 하지만 실제로 잘 집행되지 않는 경우도 아주 많다. 벌점이 내신 점수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부모가 학교에 전화하거나 직접 찾아와서 난장을 피운다. 결국 교사는 학생의 벌점을 취소할 수밖에 없고 이런 경험을 겪다보면 벌점을 부여하겠다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무의미한 공갈이 된다.
이는 제도가 있음에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예시이다.
6.
학생이 학생다워야 한다면 교사 역시 교사다워야 하고, 서로 지킬 것을 지키는 게 사회적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다. 학생은 정당한 교권에 도전하지 않고 교사는 학생에게 부당한 지시/차별을 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을 지키지 않으려는 이들은 언제든, 어디에든 있을 것이고 이러한 선을 넘는 이들에겐 분명한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먼저, 학생이 교권에 도전하는 경우 교사는 직접 체벌이나 부당한 지시를 내리는 대신 분명한 경고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지시 역시 무시한다면 벌점을 부여하고, 이것이 정당하다면 되돌려서는 안 된다. 벌점을 부여하는 것은 교사의 권리이지만 그에 대한 검증은 있어야 하고, 그 조치가 정당하다면 교육청 등 상위 기관에서는 이를 보증해야 한다. 즉, 벌점을 취소 받고 싶다면 정당한 근거와 논리를 제시하여 교육청과 같은 상위 기관과 논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를 괴롭힐 게 아니라.
만약 그러한 벌점을 누차례 받았음에도 태도와 행실에 개선이 없는 경우 더 강력한 조치들이 취해져야 한다. 가령, 미국의 Detention 조치나 Discipline card 조치 같은 것이 있다. 학교 교육 현장은 장난이 아니고 장난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행동에 대한 책임의식을 부여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성인이 되어서도 미성년자 시기의 감각으로 일을 벌이고 소아적 정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책임을 지게 되는 경우를 피할 수 있다.
만약 그럼에도 교권에 대한 도전, 수업 방해, 다른 학생에 대한 폭력 및 위압 행위가 반복된다면 정학, 전학, 퇴학, 경찰 고발 등의 조치를 시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까지 도달하는 학생은 많지 않을 것이나, 그런 만큼 그러한 조치를 받을 만한 행위를 한 학생에게는 그만큼 강경한 조치의 필요성이 인정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교사의 학생 인권 침해 역시 확실하게 제한되어야 한다. 정당한 지시가 아닌 이상 심의될 수 있고 차별이나 부당한 벌점 부과, 교사의 지위를 기반으로 학생의 행동이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 적절한 학생 지도 및 계도 없는 제재 남용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교사에게 수업 권리를 일시 정지할 수 있고 시말서(학교와 학생에게 각각 제출), 교원 자격 박탈, 경찰 고발 등의 조치가 시행될 수 있다.
물론 교사의 권위와 위계가 더 상위에 있는만큼 교사는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잘못된 조치에 대해 더 큰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관계가 교사에게 너무 불리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교사가 받는 스트레스는 해결할 수 없는 현상과 무한히 책정되는 책임 때문이니만큼,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을 분명하게 정해준 뒤 그에 따라 학생을 지도/계도/제재할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더 합리적인 교육 환경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생 역시 불필요한 말썽이나 부당한 반항 따위를 하지 않는 한 벌점을 비롯한 제재 받지 않을 것이고 아무런 문제 없이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문제 학생이나 문제 교사를 적절히 걸러낼 수 있기 때문에 더 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 있는 교사의 존재는 학교 생활을 어렵게 만들고 문제 있는 학생은 다른 학생에게 큰 폐혜를 일으킨다.
7.
이 모든 것은 지킬 건 지키고 할 건 하는 책임의식에서 비롯되며, 그 근거는 정당하고 적절한 규칙에서 찾을 수 있다. 완벽한 규칙은 있을 수 없지만 적절한 규칙은 있을 수 있으며 그렇게 적절히 제시된 규칙은 학생과 교사 양자를 적절히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한국 교육 환경은 이러한 규칙이 제대로 제시되지도, 집행되지도 않은 상황에 가까우며, 단지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가 있었고, 그에 따른 반동이 발생한 것에 가깝다.
물론 대부분의 학생-교사 관계는 건전하거나 오히려 좋다고 할 수 있고, 교사의 지시나 행위가 부당하지 않는 한 학생은 별 불만이나 문제 없이 따른다. 그러나 어떤 학교의 어떤 학생, 어떤 교사는 문제적이고 어떤 학부모 역시 문제적이며, 그들의 패악은 적절히 다뤄질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교권은 제약되었으나 그만큼 책임은 늘었고 반대 급부로 학생과 학부모의 패악질을 제어할 수단과 방법은 매우 부족하다.
이 탓에 교직을 그만두거나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며, 학생이 교권에 대한 도전을 넘어서 교사를 폭행하거나 성희롱 하는 사례 역시 발생한다. 상식적으로 그러한 상황은 반드시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 실제 제도는 그러한 현실을 다루는 데 실패하고 있다. 적절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학생들을 부당한 폭력과 차별, 지시에서 보호하는 만큼 학생과 학부모의 부당한 폭력과 괴롭힘에게서 교사를 보호해야 한다. 교사를 보호하는 것은 문제적이지 않은 대다수의 평범한 학생들을 보호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관계로, 학생(+학부모)-교사의 이분법적 관계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게 아니다.
8.
학교는 교육 기관이며, 사회화 기관이기도 하다. 자신의 지위와 역할에 따라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하면 안 되는 것, 지킬 것과 어기면 안 되는 것을 익히는 공간이라는 의미이며, 학교와 교육청이 제시한 규칙이 바로 그러한 사회적 약속이 될 것이다. 학생들이 이것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가 바로 사회화가 얼마나 잘 되었느냐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은 사회에 나가서도 기본적인 사회적 규칙을 준수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중요한 것은 정당하고도 적절한 규칙이 제시되고 실제 시행되며, 그것이 학부모의 지리한 괴롭힘, 제지되지 않는 학생의 방종 등 현실적 요소들에 의해 좌절되어서도, 형해화 되어서도 안 된다. 규칙이 부당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글좀가져가겠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본래 가정에서 해야 할 역할이지만 그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다양한 가정의 역할이 공교육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비판은 10년 전에도 유로파에서도 몇 번씩 나왔던 이야기였죠. 문제는 공교육이 가정의 역할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 그 이전에 그게 가능한 것인지가 먼저 논해져야 하는데 교육학, 교육계 쪽에선 어떻게 여기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그게 불가능하거나 어렵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훈육은 최소 3살부터는 시작되어야 하는데 그게 제대로 안 된 채 학교에 온 아이를 부모도 아닌 교사가 대신 해줄 수는 없거나 폭 넓은 권한의 전담마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보거든요.
다만 교육 환경 자체가 달라지고 있으니 교사 한명 당 소수의 학생들을 다루며 '가족같은 분위기'의 학급으로 만드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10년도 전에 그 당시 기준 30명 조금 못 되는 학생보다 교사를 더 늘리고 교사 한명당 10명 아래의 학생들을 담당하게 하는 게 교육 효과와 학생 지도, 관리 효율이 더 높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아이들이 적어져서 더 현실성 있는 방안일테고요.
저는 교육 환경에서 교사가 담당할 파트를 더 많은 이들이 분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 수업 외 학부모민원->방과후 학교 민원 전담 교사
○ 교사가 통제 어려운 학생의 난동->학생 안전 경찰관 또는 보안관
○ 학교 내 상주 변호사 제도
같이 교사 1명이 같이 맡아야할 여러가지나 교사가 송사에 엮이는 부분에 대해 전담하는 누군가가 필요할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