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하나 서리한 날이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가 급정거하면서 덜컹하는 바람에
서리한 감이 앞으로 또르르 굴러갔다
어느 정도는 뒷자리여서
또 사람들이 많이 타기도 해서
나를 신경쓰지 않겠다 싶었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가방이 기울어지면서 바닥에 떨어진 감을 봤는지
빈 내 옆자리 건너편에 앉아 있던
한 어르신이 더 신경을 쓰는 듯 했다
감도 여행을 하는 중인 거야
나는 눈을 감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 졸았다
버스가 도착하는 것 같아 눈을 뜨려는데
옆 옆 자리의 어르신이 손을 뻗어 나를
툭 치더니 가리키는 게 있었으니
발밑에는 가만히 돌아와 멈춰 선
감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사진〈Pinterest〉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이 병 률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시들어 죽어가는 식물 앞에서 주책맞게도 배고파한 적
기차역에서 울어본 적
이 감정은 병이어서 조롱받는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었던 적
매일매일 햇살이 짧고 당신이 부족했던 적
이렇게 어디까지 좋아도 될까 싶어 자격을 떠올렸던 적
한 사람을 모방하고 열렬히 동의했던 적
나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만들고
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조차 상실한 적
마침내 당신과 떠나간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을
영원을 붙잡았던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