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2022. 4. 29. 금요일.) 오후에 서울 강동구 길동에 있는 '한국국보문학' 사무실에 들렀다.
총괄본부장 김종대 님은 문학지가 잔뜩 든 상자를 힘겹게 운반하시고....
편집장 맹신형 님한테서 '월간국보문학 2022년 5월호'와 동인지 '내 마음의 숲 제33호'를 받아서 두 개의 보따리에 나눠서 넣고는 어깨에 둘쳐맸다.
가득이나 허리가 약한 나로서는 두 종류의 책 무게에 짓눌려서 숨을 헉헉거리면서 지하전철역으로 향했다.
송파구 잠실새내역에서 내린 뒤 쉬엄 쉬엄 걸으면서 집에 돌아왔다.
두 권을 문학지를 펼쳐서 시간이 나는 대로 문학활동에 관한 사진을 보고, 회원들이 쓴 글을 읽기 시작한다.
오늘은 4. 30. 토요일.
은근히 지치고 피곤해서 아침밥을 먹고는 쓰러지듯이 자리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두 시간 남짓.
성당 다녀온 아내가 뭐라고 하는 소리에 문뜩 잠이 깼다.
1.
<한국국보문학> 카페에 들어와서 문학-글을 검색해서 읽기 시작했다.
'일반 자작시방'에서 어떤 시를 보았다.
내가 아래처럼 댓글 달았고, 퍼서 여기에 올린다.
나한테는 많은 추억과 기억들이 떠오르게 하기에....
내 댓글 :
정통 막걸리와 바나나로 만든 술
두 개를 사서 드렸더니
술을 안 드신단다
위 문구에서 '정통 막걸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정통'이 혹시 지명일까?
예컨대 '서울 막걸리, 산성 막걸리, 전주 막걸리, 울산 막걸리, 지평 막걸리' 등이 있으며,
또는 수식어인 '수제 막걸리, 생생 막걸리, 고급 막걸리' 등?
혹시 '전통'의 오타일까 하는 생각조차도 든다.
옛방식으로 빚는 막걸리이라면 '전통 막걸리'로 표현해야 할 듯..
수십 년 전... 나는 시골에서 보았다.
어머니가 가마솥에서 술을 빚고, 시큼털털한 막걸리를 광에 숨기고...
이따금 술 제조를 단속하는 사람(경찰과 함께)이 나와서 시골집을 조사하고...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엄지 척!
위 댓글에 대해서 시를 올린 작가는 아래처럼 댓글 달았다.
전통 막걸리를 정통성 있게 만든거라
생각 합니다 퓨전식이아닌요^^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정통성 막걸리인가, 아니면 전통 막걸리일까?
1.
나는 1949년 1월 생.
충남 보령 서해안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다.
두 팔로 감싸안은 듯한 마을이기에 곳곳마다 산자락이 흘러내리고, 구석구석마다 소규모 단위의 집들이 듬성 듬성 있었다.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밭과 다랑이논이 구불거리면서 밑으로 흘러내렸다.
산비탈에는 밭이 조금씩 딸렸다. 어떤 밭 밑에는 다랑이논이 이어져 내렸다.
밭과 논의 면적은 하도 비좁아서 소가 끄는 쟁기조차도 들어가지 못하고는 고작 삽과 괭이로 농사를 져야 했다.
산 하단에 있는 다랑이논. 그제서야 면적이 넓어져서 소가 끄는 쟁기로 논바닥 흙을 갈고는 벼를 심었다.
늦가을철 벼 바슴을 끝낸 뒤 나오는 짚으로 이엉을 엮어서 낡은 지붕을 덮은 초가들.
내 어머니는 제사가 엄청나게 많은 종가집의 며느리.
제사 많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3년상 삭망(매달 초하루, 보름날에 지내는 제사)을 치루려면 몰래 보리싹을 틔워서밀주를 담가야 했다. 장에 가려면 십리길 산길을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해야 했기에 제주(술(은 집에서 슬쩍 담기도 했다.
밀주는 작은 광속에 숨기고...
뒤켠 땅을 파고는 술독을 묻고는 그 위에 솔가지 나뭇단으로 덮어서 숨겼다.
이따금 밀주 단속반이 나왔다.
내가 기억하는 그 당시(1960년대~ 70년대 초)에는 식량이 부족한 시절이었기에 쌀로 술을 빚지 못하도록 정부는 단속했다.
면내 지서(경찰)에서 나온 경찰관과 밀주 단속반이 마을어구에 나타나면 온 동네가 다 시끄러웠다. 숨기고, 도망치고, 적발되고... 마을 개들은 컹컹컹 마구 짖고...
우리집도 그랬다. 밀주 단속에 걸리지 않으려고.... 하지만 막걸리 쉰내가 나면...
이런 경험이 있는 나.
내가 기억하는 1960년대, 70년대 초(그 이후로는 청년인 나는 객지로 떠났음)는 정말로 어수선한 시절이었다.
특히나 '5·16혁명'이 일어났고, '국가재건국민운동, 새마을운동'이 불길처럼 번지던 시절이었다.
벼-농사를 크게 진작시키던 시절이었다.
* 우리 집도 서해안 산골마을에서 벼농사를 짓고는 늦가을철에 벼-가마니를 구루마(달구지)에 실어서 면내 농협 공출장으로 나가서 농지세를 벼-가마니로 냈다. 매상-벼를 팔고 ....
나한테는 정말로 많은 시간들이 흘렀다.
벌써 60년이 가까운 과거, 저너머의 세상이기에.
나중에 보탠다.
1.
내일부터는 5월 이다.
나는 지금 미칠 것 같다. 마음은 시골에 내려가서 텃밭 농사를 짓고 싶은데도...
서울 23층 아파트 안에서 갇혀서... 마치 감빵에 갇혀서 징역살이를 하는 것 같은 나날이나 이어진다.
며칠 뒤에 있을 할머니 제사를 지내야 하고...
며칠 뒤에 있을 어린이날에는 이웃 아파트 단지에서 사는 손녀 손자를 만나봤으면 싶다.
아내가 얘들 손주들한테 용돈을 조금이라도 나눠주었으면 싶기도 하고...
2022. 4. 30. 토요일.
첫댓글 건강하게 잘 지내시지요? 대전 김정희님 시가 정감이 있어요 고마워요
예.
댓글 고맙습니다.
김정희 님의 '술이 아니고 정을 먹는다'
막걸리에 대한 시의 내용이 좋더군요.
저도 어린시절에 막걸리를 빚는 것을 숱하게 보고 자랐지요.
밀보리싹을 조금 틔운 뒤에 멍석 위에 펼쳐 널어서 꼬들꼬들하게 말리고, 멧돌로 갈아서 가루를 내고...
밀주를 담았지요. 이따금 밀주단속원이 집집마다 들이닥치고... 1960년대, 70년대 초까지 그랬지요.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이라서... 읍내 양조장에서는 자전거로 막걸리통을 배달해서 소비자한테 넘겼고, 나중에는 경운기로 배달했고, 농사채가 많은 저희집에서는 커다란 막걸리통을 배달받아서 논으로 들판으로 나르고...
수십 년이 지난 2020년대인 지금... 읍내 양조장도 사라졌지요.
제 시골마을에서는 농사꾼마저도 거의 사라져서...
위 시가 주는 이미지가 좋아서 제 기억을 더 더듬고 싶군요.
응원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