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로부터 다인종 사회였던 인도에서 피부색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다. 카스트 신분제에 따른 결혼이 철저하게 지켜졌던 과거에도 피부가 흰 여성은 자신보다 높은 신분의 남성과 비교적 쉽게 결혼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지참금을 면제받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또 13세기에 이르러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으로부터 이란, 터키계 왕조들이 인도에 들어온 것도 흰 피부 선호 사상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백인에 가까웠던 이들의 밝은 피부색에 높은 코는 곧 지배계층의 신체적 특징, 즉 보다 우월한 특징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근대에 이르러 영국의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흰 피부색에 대한 선망과 사회적인 가치는 더욱 커졌다.
물론 인도의 전통사회가 한결같이 흰 피부만을 동경해 온 것은 아니다. 인종적으로 볼 때 드라비다 계열로 분류되는 남인도 지역에서는 오히려 검은 피부를 추구하는 전통을 보이기도 한다. 13세기에 인도를 방문했던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보면, 남인도 지역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피부에 참기름을 발라주어 피부색을 더욱 검게 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물론 검은색 피부를 높이 평가하는 남인도 사람들의 전통을 말해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인도에 뿌리를 두는 신화나 전설에서는 선한 신은 검은 피부로, 악마는 흰 피부로 묘사된다.
이와 같이 남인도에서 검은 피부를, 그리고 북서부 인도에서 흰 피부를 이상적인 것으로 보았던 미의식의 확연한 차이는 종종 인도의 원주민인 드라비다인과 이후에 중앙아시아로부터 유입된 아리아인과의 민족적 차이와 갈등의 반영으로 이해되곤 했다. 그리고 이 같은 경향은 브라만을 중심으로 한 상위카스트와 하위카스트 사이의 민족적, 인종적 상이점으로까지 확대 해석되곤 했다. 사실 카스트 제도의 기원이 인종적 구분에 있었는가 하는 논의는 쉽게 결론짓기 어려운 부분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카스트 구성원들의 신체적 차이에서 인종적 구분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카스트 구분을 인종적인 문제와 연결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어 왔다. 영국의 식민 통치가 시작되던 무렵에는 많은 유럽 학자들이 유럽인들과 인도인들의 언어상, 인종상의 유사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유럽인들과의 사이에 어떤 동질성을 찾음으로써 자신들의 우월함을 인정받고자 했던 일부 상위카스트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아리안 민족 이동설’이 크게 유행했다. 이 이론은 곧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하층카스트 선각자들에 의해 차용되어 하층카스트는 원주민인 드라비다인의 후예라는 주장을 낳게끔 했다. 상위-하위 카스트 간의 인종주의적 구분은 현재까지도 하층카스트 운동가들에게 중요한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