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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공권력과 한국사회 |
물이 흐르듯이 사회의 힘있는 계층도 시대가 변하면서 변해가야 인간사회가 제대로 움직이는 것인데... 한번 상류층은 영원히 상류층이 되려 하는 것은 인간으로 보면 동맥경화나 마찬가지였다. 우주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하여 지구의 한국에 파견되어졌던 나는, 인간사회에는 바로 그런, 인간사회의 원활한 순환을 방해하는 악의 조직이 침투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최문석씨는 십여 년간 파푸아뉴기니와 필리핀을 오가며 건설업과 무역업을 해온 사업가였다. 한국으로 보면 그리 큰 사업체는 아니었지만 이제는 사업기반도 든든해져서 인구 사백만 정도의 파푸아뉴기니에서는 유명인사이며 실력자로 대접받을 수 있었다. 그 나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인사가 되다보니 선거 때가 오면 정치권에서도 협조요청이 오곤 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최씨가 지지하는 후보가 총리가 되지 못했다. 어느 날 사업파트너인 현지인이 제안했다. "자네가 여기서 존경을 받는 인사가 되려면 이곳에 터를 완전히 잡아야 되겠네. 포트모르스비(파푸아뉴기니의 수도)에 만이천평의 토지가 있는데 한번 구매해 볼텐가?" "싼 데. 어디서 내놓은 땅인데?" "와키와키사(社)에서 자금이 딸려서 급매물로 내놓은 모양이더군." 와키와키사는 목재와 석재를 수출하는 회사였다. "무역업체였다면 그 터가 쓸모가 있겠는걸. 한번 구입해보지." 최씨는 회사를 찾아가 토지매입 계약을 했다. 계약금을 지불하고 이전등기를 하려는데 그 장소에서 기왕에 했던 무역업무들이 아직 정리되지 않아서 문제가 많았다. 땅의 소유주는 다른데 그곳에서 물품을 하역하고 선적하는 일을 하면 누가 책임을 지고 누가 비용을 대냐는 것이 모호했고 무엇보다도 먼저의 주인은 운영비를 댈 능력이 없었다. "대신 아예 저희 회사를 인수받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기왕에 무역을 하시는 분이니 충분히 운영하실 수 있을 건데요. 부채를 인수받으면 토지가격과 별 차이도 안 납니다." 경영난에 지쳐서 핼쓱해 보이는 젊은 영국인 사장은 제안했다. "그렇게 하지요." 최씨는 즉석에서 받아들였다. 뚝심 있어 보이는 그의 인상에 어울리는 결정이었다. 현지의 신문들은 최씨가 와키와키사를 인수받았다는 사실을 1면에 비중 있게 보도했다. 한국인 무역상으로서 이제 이 나라의 손꼽는 경제인에 속하는 최씨가 사업규모를 확장했다는 것은 곧 이 곳에서 그의 영향력이 더욱 커져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최씨는 기존에 했던 의류와 생필품 무역 외에 원목과 자연석을 한국으로 수출했다. 다음해 봄 그가 한국에 와서 거래상담으로 분주한 중에, 판매처에서는 그에게 60줄에 접어든 한 남자를 소개하여주었다.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으면 투자하실 분입니다. 유성준 사장님이십니다." "최문석이라 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 악수를 했다. "내가 5억원 정도의 자금이 있었는데 투자할 곳을 찾던 중입니다." 소개받은 유성준의 말에 최씨는 "제가 파푸아뉴기니에 땅이 있습니다. 항구에 접한 곳이라서 무역업을 하기에도 좋습니다. 거기의 내 토지에 건물을 지어 분양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제안했다. "좋습니다. 거기서 건물 임대업도 하고 무역업도 하면 되겠군요." "그럼 여기서 제 볼일이 끝나면 한 달 후에 함께 가보도록 합시다. 그 해 4월이 되어 최씨는 유씨와 함께 현지를 답사했다. 현지에는 예나 다름없이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둘이 다니며 시장조사를 하고 보니 토지는 제법 경제성이 있었다. 항구에 가까우니 무역업체를 운영하기에도 좋고 높은 지대에는 해변이 널리 바라다 보여 전망이 좋은 고급주택가를 만들 수 있었다. "아직도 집이 원시가옥들이 많으니 현대식 가옥에 대한 수요가 많을 겁니다." 최씨는 설명했다. "건물도 짓고 이곳 기후에 맞는 시원한 의복도 공급하면 되겠군요." 유씨는 끄덕였다. "그럼 동업계약을 합시다." 유씨는 이윽고 투자를 수락했다. "제가 토지가 속한 회사지분 50%를 드리도록 하죠." "우선 최사장 개인 용도로 6천만원을 드리겠소. 그 다음 건축 공사비를 5억원 내에서 투자하기로 하죠." "투자하신 자금은 조금도 놀려두지 말아야죠. 포트모르스비에 잡화점을 열기로 하죠." "잡화점은 누가 맡겠소? 최사장은 바빠서 안될 것이고." "글쎄요. 현지인을 고용하기도 그렇고... 한국에서 찾아볼까요?" "좋은 수가 있소. 내 아들이 마침 한국에서 판매사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영업을 해봤으니 장사를 할 줄 알 거요. 내가 불러와 소개하겠으니 그 애한테 맡깁시다." 기실 유씨는 아들의 해외사업진출을 위해 투자를 하려했던 것이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성화에 겨우 취직을 했지만 실상 다니는 회사는 얼마 안되어 그만두곤 해서 유씨는 사업체를 만들어주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것도 외국과의 무역을 하도록 하고 싶었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영업 아이템을 찾아보기로 하죠. 나이가 얼마 됩니까?" "34살이요." "결혼은 요?" "아직 안 했소." "허허, 여기는 여자들이 놀러 다닐 때는 거의 벗고들 다니는데 그렇다고 여자들 건드리지 말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셔야 할겁니다. 집사람이라도 있으면 기왕이면 여기 함께 살라고 하려고 했는데... 그럼 옆에서 붙잡아주기라도 할텐데." "걱정 마시오. 내 아들놈은 글쎄 여자를 본체만체하고 통 생각도 안 하는 쑥맥 같은 놈이오." 유씨는 아들을 파푸아뉴기니로 불러들였다. 최씨는 한국에 와서 부산에서 신발을 한 콘테이너만큼 사들여 현지로 보냈다. 최씨는 양국을 오가며 무역을 했고 가게운영은 유씨 부자가 맡았다. "아들놈도 이제 가게를 잘 보고 있으니 일단 한국에 가보고 오겠소. 아직 해결 안된 문제들이 많아서." 최씨가 파푸아뉴기니에 있을 때 유씨는 한국으로 갔다. 그 해 11월이었다. 유씨의 아들 유인현은 밤늦게 사무실에 혼자 있었다. 몇 달 동안 혼자 이곳에서 지내려니 불편이 많았다. 이곳은 여자들의 노출이 거의 무제한인 듯하고 겉보기는 한국보다 훨씬 자유스러운 사회인 것 같지만, 작은 사회이다 보니까 오히려 인간의 자유분방한 감정이 끼어들 틈새가 없이 꽉 짜여진 느낌이었다. 그는 요즘 들어 더욱 갑갑함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는 근무중인 경비원 하나를 전화로 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한밤중에 갑자기 호출을 하자 젊은 경비원은 다소 당황하는 눈치였다.. "수고가 많네." 유인현은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열대지방 사람의 검은 손은 더욱 인간의 뜨거운 체감이 전달되는 것만 같았다. "자리에 앉게." 경비원은 소파에 앉았다. 유인현은 경비원이 앉은 소파의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당신 일하는데 고충은 없나?" 그는 주머니를 열어 한국 돈 10만원쯤에 해당되는 돈을 꺼내 쥐어주었다. 경비원은 어리둥절했지만 자기의 상사인 유인현이 돈을 주면서 자기를 가까이하는 것을 섣불리 의심하며 뿌리치지는 못하였다. 그에게 이 직장에 들어온 것은 정말 행운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쉬다가 가라고. 그러면 돼." 유인현은 경비원의 어깨를 쓸어안았다. 그리고 그의 혁대를 풀고 그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경비원은 멈칫 했으나 유인현이 그의 어깨를 감은 팔에 강하게 힘을 주어 누르고 있어서 선뜻 과감히 떨치지를 못했다. "문을... 잠가두십시오." 경비원은 떨면서 말했다. "아참 그래야지." 유인현은 문을 잠그기 위해 일어났다. 그 때 뛰어오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들이닥쳤다. "실장님 긴급 보고사항이... 남쪽 울타리에 좀도둑의 침입흔적이... 앗." 그들은 바지를 끄르고 소파에 누워 있는 동료를 보고 소스라쳤다. "조금 있다 들어오게." 유인현은 말했다. 들어온 경비원들은 나갔다. 그런데 사태는 생각보다 중대했다. 누워있던 경비원은 겁이 나서 얼른 일어나 옷을 추스려 입었다. "크, 큰일 났습니다." "뭐가 어째서? 남자끼리 물건 보인 것이 그렇게 대단해?" 유인현은 웃었다. "그게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는 동성연애자는 징역 10년입니다." "뭣이?" 유인현은 놀라 물었다. "아니, 강제로 한 것도 아닌데 그럴 수가?" "워낙 많아서 사회문제가 되니까요. 방금 보았던 그네들도 다 눈치채었을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얼른 그들에게 무마조로 돈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유인현은 같이 있는 경비원에게 이십만원을 더 주고 급히 나가 먼저의 두 경비원들을 찾았다. 그들을 불러 아까의 상황보고를 듣는 척하며 각각 십만원씩을 주었다.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 안했지?" "섣불리 안 합니다. 그러다 저희도 의심받을 수 있는데요." 그러나 회사에서는 안 알려질 수가 없었다. 다음날 유인현과 동성연애를 할 뻔한 경비원이 갑자기 사직하려하자 그 이유를 최씨가 물어보니 한동안 대답을 못하다가 사실을 말해버렸다. 다른 두 사람도 받은 돈은 받은 돈이었고 이미 그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최씨는 난감했다. "어찌하나, 이대로는 당신은 있기 곤란할 것 같소." 유인현은 아무말없이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소식을 듣고 한국에서 유성준이 왔다. 최씨 앞에 선 유성준은 부끄러움 때문에 인상이 구겨져 있었다. 그러면서 결국 하는 말은 "젠장, 이젠 다 때려치워야 겠소." 였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나는 아들 때문에 해외투자를 했는데 이놈이 더 이상 파푸아뉴기니에 있을 수 없게 됐으니 투자를 할 수가 없소." "참, 내 잘못도 아닌데..." "누구잘못이든 그렇게되지 않았소? 당신이 관리를 잘못했다고도 할 수 있소." "할 수 없지요. 그럼 넘겨준 토지 지분 오십프로를 되돌려주십시오." 유씨는 말과는 달리 선뜻 토지지분 반환을 하려하지 않았다. "나도 지금 새로 일을 해야 하니 돈이 필요하오. 먼저 내가 투자했던 돈을 돌려주고 한국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인수해 주시오." "토지지분을 주면 2700만원을 돌려드리겠는데요. 구입한 물건들은 내가 받지 못하겠습니다." 유성준은 최씨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화가 났으나 아들이 동성연애 사건으로 체포될까 두려웠다. 그는 서둘러 아들을 데리고 떠나야했다. "당신 뜻대로 처리하시오." 유성준은 짐을 챙겼다. "조만간에 다시 돌아오겠소." 그러나 그는 몇 달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일은 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가 했다. 최씨가 다시 무역을 위해 한국으로 갔을 때 유성준을 만날 수 있었다. "어떻게... 정리를 하셔야지요." 최씨는 유씨에게 재산문제를 어서 처리해 달라고 했다. "여기서도 사업이 잘 안되고 하니 내가 아예 파푸아뉴기니에 체류해서 장사를 해야겠소." "마운트하겐에 시작해놓은 포커머신가게가 있습니다. 당신 물건들을 모두 양도하도록 하지요." 이후에 최씨는 파푸아뉴기니에서의 사업을 일단 접고 주로 필리핀에서 사업을 했다. 그가 필리핀에 있을 때 한국의 동업자 김한기로부터 전화가 왔다. "최사장, 당신 집에 고소장이 왔네, 부인이 자꾸 전화에 시달리고있어. 왜 귀국 안 하느냐고" 유성준은 최씨를 한국에서 고소했다는 것이었다. 파푸아뉴기니에서 기대했던 만큼 사업이 잘 안되어서 원금도 도저히 찾지 못할 것 같자 최씨가 자기 돈을 빼돌렸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최씨는 서울의 관할 경찰서에 전화했다. "내가 사기를 했다는 것은 사실무근입니다. 팩스로 중요한 계약서류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직접 출두하셔서 해명하시는 것이 제일 좋을 건데요." 담당자는 귀국을 종용했다. 그러나 최씨로서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자기 일을 갑자기 중단하고 귀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일단 진술서를 보내드리고, 여기서 중요한 일을 마무리짓고 귀국하겠으니 조금만 시일을 주십시오." 진행되는 일은 쉽게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집에서는 고소인의 전화가 자꾸 오고 집에 찾아오기도 하며 가족이 시달린다는 소식이 왔다. 최씨는 그 동안 가족과 떨어져 살아온 터라 함께 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집의 가족이 편히 지내지를 못하자 최씨는 서둘러 필리핀으로 가족을 부르기로 했다. "여보, 내가 여기 집을 사놓았으니 모두 데리고 함께 오시오." "여기 이삿짐들은 다 어떻게 하고요?" "전부 주라고. 줄 수 있는 건 다 주고 당신과 아이들만 오면 되는 거요." "컴퓨터 같은 건 너무 아까운데..." "다 주라고. 여기서 훨씬 더 좋은 걸로 사 놓을테니." 가족들은 모두 필리핀으로 이사왔다. 그것은 오랫동안 해외를 다니면서 가족과 떨어져 사는 날이 훨씬 더 많았던 최씨의 오랜 숙원이었다. 중학생 딸과 고등학생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사는 이국 생활에 신기해하고 기뻐했다. "야, 이제 아빠와 함께 사는 거야?" "집이 굉장히 크다." "한국에서 이런 집 가지면 재벌이라고 소문날 거야." 아이들은 처음으로 맞는 이국 생활의 긴장감을 가지면서도 난생 처음 뛰어다닐 만한 정원이 있는 큰 집에 살게 되어 마냥 들떠 있었다. 다만 그 시기가 좋지 않아 최씨 가족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음, 내가 여기 또 나왔네..." 현지 교민신문을 본 최씨는 자기 이름을 발견했다. 해외거주 기소중지자 자수기간이라며 자수 권유자 안내기사가 게재되고 있었다. 최씨는 다시 당국에 팩스로 서신을 보냈다. "곧 귀국하여 조사를 받겠습니다.". 최씨는 유성준에게도 편지를 썼다. "나는 곧 귀국해서 조사를 받을 건데 당신을 무고죄로 고소할 것이오. 귀국 전에는 사건의 진원지인 파푸아뉴기니에 가서 진실규명에 필요한 증빙서류를 갖고 올 것이오." 연락을 보낸 지 한달 쯤 뒤였다. 필리핀에 함께 있는 그의 사업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장님 송규학입니다." 그는 필리핀에서 최씨와 수 차례 만나며 새로 시작한 무역업을 의논하고 있었는데 자금이 제때에 돌지 못해 최근 사업에 어려움이 있었다. "무슨 일이오?" "용돈이 좀 필요합니다. 조금만 발렸으면 하는데요." "어디서 만나려고?" "오후 2시에 산타 메사 백화점에 있겠습니다." 약속장소에서 최씨는 송규학을 만났다. "자 일단 이것을 받게." 최씨는 5000페소를 주었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이 때 갑자기 둔탁한 구둣발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더니 "꼼짝마라!" 최씨의 주위에 기관총으로 무장한 경관 대여섯명이 둘러쌌다. "아니, 무슨 일이오?" "당신을 사기죄 및 국제범죄조직구성 혐의로 체포한다." 필리핀 경찰은 영어로 대답했다. "송규학, 어찌된 일이냐?" 최씨는 송규학에게 물었다. "나도 사실 당신에게서 피해자요. 당신에게 사기 당했소." 송규학은 말하며 지켜보고 서 있었다. 그가 유인했다는 것이 분명했다. 최씨가 체포되어가고 경관 중에 하나 남은 자는 송규학에게 와서 "수고했소. 이건 우리가 받은 것 중에 십프로나 되는 것이오." 하며 돈다발을 건네주었다. 최씨는 이민국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그곳에는 한국인터폴 책임자 전창환 경정이 있었다. "이 자는 공권력을 우습게 아는 자야. 한국에서 고소를 당했으면 당장 올 것이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반년 동안이나 피해다녔어." 전창환은 체포를 승인하였다. "어차피 한국에 곧 갈테니 집안 일이라도 정리하고 가게 해주시오. 가족들은 영어를 전혀 못하니 내가 없으면 하루도 살수 없소. 시장까지도 내가 봐주고 있는데..." 최씨의 부탁에 전창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송환하겠다면 가족들도 한국으로 나갈 수 있도록 조치해주시오." "안되오. 늦어도 이틀 내로 송환되니 돈이나 준비해서 식사나 제대로 하시오." 최씨는 이민국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이민국 형무소는 10여 개국 50여명의 이민법 위반자들이 수감되어 있는 곳이었다. 그곳은 불법과 부패가 판을 치는 무법천지였다. 돈이 없으면 밥도 못 먹고 약도 사먹을 수 없었다. 같은 나라 사람끼리 한 패거리가 되어 술을 마시며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더러는 창녀를 데리고 들어오기까지 하는 등 감옥이면서도 규율도 없었다. 이 곳에서 최씨는 유일한 한국인인데다 유일하게 인터폴에 의해 체포된 경우였다. 인터폴에 수배된 사람을 보고도 귀찮아서 결코 체포하지 않는 것이 필리핀 경찰이었다. 그러나 돈만 주면 생사람도 체포하는 것이 필리핀 경찰이라고들 했다. 필리핀 판사에게서 영장심사를 받은 자리에서 최씨는 자신이 죄가 없음을 최대한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인터폴로 잡혀 들어왔군요. 이 경우는 안돼요." 필리핀 판사는 자기가 석방해줄 수 없다고 했다. 다시 형무소로 들어왔다. 이틀이 지나도 송환시킨다는 말은 없었다. "당신 인터폴 케이스야?" 험상궂은 검은 얼굴의 덩치 큰 자가 물었다. "그런데..." "돈이 많겠군." "..." "당신은 하루 이틀 후면 송환될 것이니 있는 동안 우리 어려운 사람들 좀 도와줘." 고참재소자는 손을 벌렸다. 최씨는 가진 돈을 쥐어줄 수밖에 없었다. 고참의 뒤에는 같은 패거리로 보이는 여러 명이 눈을 부릅뜨고 쏘아보고 있었다. "당신은 남들 위에서만 살아온 것 같애. 밑바닥 세상 경험도 좀 해봐야지. 여기 우리들 자리 청소 좀 해보시오." 그 뒤로 최씨는 형무소에서 궂은 일을 맡아했다. 친구 윤형모가 면회를 왔다. "인터폴 케이스는 송환되면 필리핀 입국이 정지된다는데 나는 가족들이 있기 때문에 재입국을 해야 하니까 변호사에게 재입국이 가능하게 조치해 주게." 최씨의 부탁에 윤형모는 "변호사를 통해 알아보았더니 체포 자체가 불법이니 며칠 내로 석방된다고 하던데." 하고 말해주었다. 최씨는 하릴없이 석방되기만을 기다렸다. 그 다음 일주일 후 밤늦게 윤형모가 면회를 왔다. 정식면회는 저녁 6시에 마감인데 이례적인 것이었다. "이민국 검사의 석방건의를 이민국장이 기각했어." "그런 법이?" "배후에는 전경정의 로비가 있었지. 지금 자네와 나는 국제 범죄조직의 일원으로 취급되고 있어." "그럴 수가! 그럼 자네도 가만있을 수 없잖아?" "그가 사람을 풀어 자네를 면회오는 사람들의 뒷조사를 하고있으니 앞으로는 나도 면회 올 수가 없겠어." 그후 윤형모는 발길을 끊었다. 영어한마디 못하고 낯설고 길도 선 필리핀의 가족들에게는 가장인 최씨가 전부였는데 하루아침에 가장을 이국의 형무소에 보낸 것이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필리핀 고교에 편입학을 위해 영어교습에 열중하던 두 아이는 최씨의 구속 다음날부터 교습을 중단했고 아내는 금식기도 등으로 오직 남편의 석방만을 고대했다. 최씨가 구속되고 한 달이 지난 무렵 중3의 딸아이는 심신이 급격히 무너져갔다. "아빠... 왜 안 오는 거야!" 딸은 엎드려 누워 울기만 하면서 밥도 먹지 않았다. 가족들은 필리핀 이민국에 최씨의 면회를 간청했다. 너무 참담한 현실을 보여줄 수 없어 면회를 미뤄왔던 최씨도 면회를 허락했다. 최씨와 아내와 아이들의 면회가 이루어졌다. 철창 너머에는 검고 험상궂은 모습의 국제적 범죄자들이 득실거리는 가운데 초라히 있는 가장의 모습을 본 순간 가족들은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아빠." "아빠." "여보." 면회 현장은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저렇게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던 사람을 가두는 것일까? 우리 같은 놈들이야 떠돌이 밑바닥 인생들이니까 그렇다지만..." "현지 경관에게 잘못 보였던 것이라던데." 그 광경을 보고 수십명의 외국 수형자들도 같이 눈물을 흘렸다. 수감된 지 87일만에 최씨의 가족은 모두 한국으로 돌아갔다. 6년여의 이산가족 생활 끝에 가족이 모두 모여 산 지 4개월만에 최씨의 가족이 한국으로 돌아가던 날은 엄동설한을 앞둔 11월이었다. 최씨의 가족은 추운 고국에 와서 당장 있을 곳이 없었다. 다니던 교회의 옥상을 빌려 살았다. 그전에는 그래도 잘 살았다는 집이었지만 지금은 빈민 신세가 된 것이었다. 대책 없이 석방을 기다리고만 있다가 간신히 비행기표를 마련해서 세 식구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최씨 아내의 수중에는 단돈 9만원이 있었다. 교회 5층 옥상에서 기거하며 류머티즘 환자인 아내는 절뚝거리면서 전단지 등을 돌리면서 하루에 7천원씩을 벌었다. 딸아이도 자기 어머니를 도와서 같이 다녔다. 두 아이는 한 학년씩 유급되어 중3과 고2에 복학했다. 가정 형편은 깡통을 들지 않은 거지 그 자체였다.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동사무소에서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해주었고 처제가 돈을 모아 지하셋방을 얻어주었다. 필리핀으로 이사갈 때 모든 가구류, 심지어 컴퓨터도 모두 주변 사람들에게 주고 갔는데 다시 돌아와서는 길거리에 버려 둔 가구를 주워 모아 살림을 꾸렸다. 가족들이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최씨는 귀국하기까지 5개월 동안을 이국의 형무소에서 수형 생활을 했다. 가족에 대한 근심으로, 갓 잡혀와 철창에 갇힌 맹수처럼 절망적인 심정으로 지내는 그의 하루하루는 피를 말리는 생활 그 자체였다. 형무소의 식사는 커피 한 잔에 식빵 한 조각이 전부였다. 각국 출신 재소자들의 입맛을 다 맞출 수 없다는 핑계였다. 그래서 모든 재소자들은 자기 돈으로 밥을 사먹었다. 몸이 아무리 아파도 자기 돈이 없으면 약도 사먹을 수가 없었다. 재소자들끼리는 칼부림이 나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이 자식들 죽고 싶어? 조용히 해!" 타타탕-. 술 취한 간수들은 예사로 권총발사를 했다. 어느 날은 열이 나고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풍토병이었다. "이대로 죽는 것이 아닌가..." 최씨는 식사를 중지하고 기도했다. 금식기도로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를 하소연도 했다. 때로는 철창에 머리를 부딪혀 죽어버리고픈 유혹이 들었다. 선임한 변호사가 면담을 왔다. "여긴 불법 체류자를 잡아두는 곳이니 본국에서 책임지고 데려가지 않고 당사자도 그냥 있으면 3년이고 4년이고 석방되지 않는 곳입니다." 이 말에 최씨는 크게 놀라 "방법을 강구해 주시오." 하며 20만 페소의 돈을 주었다. 최씨는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에게 즉시 송환해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해달라는 간절한 청원서를 보냈다. 다른 재소자의 핸드폰을 빌려 대사관에 전화를 했다. "없다고 그래!" 민원담당 영사는 통화를 거부했다. 최씨는 전화 받는 여직원에게 매달렸다. "제발 한국으로 송환되게 해주시오." "제가 뭘 아나요?" "당신도 상식이 있는 사람 아니오? 무슨 죄가 있든 빨리 한국에 가서 심판을 받아야 하질 않겠소?" "제가 아는 사람한테 얘기해 볼께요. 하지만 어떻게 될지 전 몰라요. 저 바쁘거든요. 알았으니 그만해 주세요." 미국, 일본 등의 영사관에선 일주일에 한 번쯤 영사가 와서 수형자들을 면회하고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필리핀 이민법을 위반해서 필리핀 경찰에 체포된 경우고 인터폴에 의해 체포된 경우는 없었다. 간혹 일본, 대만 등의 인터폴에 의한 피검자는 하룻밤만에 자국으로 송환되었다. 최씨는 필리핀에서는 어떠한 위법사실도 없는 인터폴에 의한 피검자였다. 그렇지만 4개월이 넘도록 단 한사람의 한국 공관원도 나타나지 않았다. "여보세오. 전창환 경정입니까? 나 이민국 경찰대장인데." "아, 예 나 전창환이오." "다름 아니라 여기 있는 한국인 말이오. 체포이유도 불분명한데 여기 그대로 놔둬도 되는 거요? 만약 불법체포라면 곧 석방하는 게 원칙인데." "아니오. 석방시키지 마시오." 전창환은 단호히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실 작정이오?" "그냥 놔두시오. 3년이고 4년이고 두시오. 책임은 내가 지니까. 내가 언제 한잔 사겠소." 칼부림이 나기 일쑤고 권총발사가 예사인 장소에 최씨를 구금한 전경정은 모든 면회까지 차단하였다. 구속 4개월이 넘어 유엔에 고발하기 전까지 한국에서는 단 한사람의 공관원도 찾지 않았다. 그가 과연 누구의 지시 또는 부탁으로... 무슨 배짱으로 그런 행위를 할 수 있었는지는 지금까지도 베일에 싸여 있다고 한다. 아침에 최씨는 나가는 다른 재소자에게 부탁했다. "내 사정을 가족에게 일러주시오. 그래서 유엔 인권위원회에도 알려주었으면 좋겠소." 출소자의 가족이 유엔 인권위원회에 불법구금에 대한 호소를 전하였다. 그날 저녁 드디어 유엔 인권위에서 조사를 나와 최씨를 면담했다. "인터폴에 의해 체포된 뒤 본국으로 가서 재판도 못 받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당신의 불법구금에 정식으로 항의하겠습니다." 이 때 마닐라의 중심 환락가에서 전창환은 술집에서 무희들의 쇼를 보고 있었다. 그와 함께 자리한 자는 필리핀 이민국 경찰대장이었다. 색불조명 밑에 기름기 흐르는 얼굴의 전창환 경정은 허연 앞니를 보이며 이민국 경찰대장에게 "알겠소? 그 자는 석방시키지 말고 3년이고 4년이고 두라고. 책임은 내가 질테니까." 하고 다짐하듯 말했다. "그 자가 있는 동안 말썽만 안 나게 좀 해주시오." 전경정에게서 한바탕 크게 접대를 받은 이민국 경찰대장은 다음날 사무실에서 유엔에서 조사를 왔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런 그 한국 놈이 다 책임진다더니... 우린 그럼 뭐가 되는 거야!" 이민국 경찰대장은 재소자들을 인정사정 안보며 다루는 자로 그들 사이에 악명이 높았다. 그런 그가 직접 부하들을 데리고 감방에 나타났다. "누가 유엔에 알렸어?" 이민국 경찰은 감방을 뒤져서 재소자의 휴대폰을 모두 압수했다. 형무소는 공포분위기에 싸였다. 최씨가 유엔에 알렸다는 것은 재소자들이 다 아는 사실이었으므로 최씨는 재소자들 사이에서 면구스럽게 되었다. 이민국 경찰대장은 다시 전창환에게 전화를 했다. "당신만 믿고 나만 곤란하게 됐잖아?" "그런 일이 있었던가?" 전화를 받은 전창환은 아무래도 너무 오래 끌면 안되겠다 싶었다. 최씨의 수감 4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최문석씨 면회요." 간수가 불렀다. "이름은?" "짐이라고 하오." "짐? 모르는 사람인데." "그럼 면회 거부할거요?" "아, 아니오. 면회하겠소." 최씨는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어서 모르는 면회객이라도 혹시 무슨 도움을 주러오지 않을까 기대되었다. 짐이라는 사람은 예상외로 한국경찰이었다. "대사에게 보낸 편지를 읽었습니다."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편의를 봐드리죠. 한국에 갈 수 있도록 협조하겠습니다." "예, 부탁합니다." "혐의사실에 대해 전경정에게 편지를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짐이란 사람은 식사비에 보태라고 500페소(16000원)를 주고 갔다. 최씨는 반갑기는 했지만 조금 어리둥절했다. 여태까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구금을 방치해놓고는 이제 와서 또 무슨 선심을 베풀겠다는 것인지... 전경정에게는 또 무슨 내용의 편지를 보내란 말인가. "잘 얘기해줬나? 알아듣도록?" 전창환은 사무실로 돌아온 부하경관 '짐'에게 물었다. "예 그랬습니다. 곧 편지가 올 겁니다" "그래야지. 좌우간 공권력을 우습게 보는 족속들은 사서 고생이란 말이야. 잘못했다고 다신 안 그러겠다고 빌면 다 집행유예로 금방 나오게 될 것을 지가 무슨 대단한 존재라고 공권력의 결정에 대드냔 말야. 참내." 최씨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편지를 보내야할지 난감했다. 자기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뭘 잘못했다고 꾸며내란 말인가. 전창환에게 편지가 오지 않자 한국경찰에서는 그 뿐으로 더 이상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아무 근거 없이 무조건 전경정에게 사과하라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다시 최씨는 불법구금에 항의하여 필리핀에서 정식재판을 신청했다. 결국 재판결과 보석금 8000페소(24만원)에 석방선고를 받았다. 최씨는 재판이 끝나고 판사를 면담했다. 필리핀 판사는 판사실에서 최씨를 별실로 안내했다. "당신 정말 추방명령을 받고 싶소?" "그렇습니다." "그럼 일단 추방 명령을 내리지요." 최씨는 드디어 이민국형무소에서 나왔다. 이민국경찰에 의해 호송되어 필리핀공항에서 전경정에게 인도되었다. "당신 그렇게 고집 피우더니 이제야 오는군. 사죄편지 하나만 보냈어도 진작에 나왔을 텐데." 전창환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최씨는 아무 말도 더 하지 않았다. 한국으로 송환되기 위해 필리핀 공항 인터폴 사무실에 대기했다. 최씨는 거기 오가는 필리핀 경찰 중의 한 명이 예전에 자기를 체포했던 경관임을 발견했다. 최씨는 그 경관을 불렀다. "당신 먼저 그 경관 아니오?" "아... 그 때... 인제 돌아가시오?" "내 체포를 도대체 어떻게 한 거요?" "시키니까 한 거지요. 뭐... 사실 체포영장에는 정말... 문제가 있었더라고요." "당신도 알고 있소? 그 체포가 엉터리라는 것을?" 최씨는 자기가 추측했던 체포의 불법성이 서류로도 드러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긴장했다. "날짜가 95년도 발행으로 되어 있었는데 벌써 한참 지난 날짜였죠." "아니 내가 기소중지 된 때가 97년 10월인데 무슨 그런 엉터리가 있나?" "같이 일을 끝낸 사람들끼리도 체포영장에 관해 말이 있었더라고요. 영장은 원본이어야 하는데 복사본이고 인터폴에 의한 체포영장에는 일련번호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없고, 필리핀 인터폴과의 공조를 위한 협조전도 첨부되지 않았죠. 한 가지만 해당돼도 국제법에 의한 범인 강제송환이 어려운데 4가지가 다 불법이면서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참 이상해요." "도대체 그런 불법을 감행하면서까지 시급히 나를 체포해야 했던 이유가 뭐요?" "나도 몰라요. 하지만 당신의 구속은 한국 경찰의 승인 하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 같은 말단한테는 책임이 없어요." '아니, 필리핀 말단 경관도 아는 불법체포를 경찰대학 출신의 엘리트 한국경찰관이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최씨는 자신의 체포가 명백한 불법인데도 억지로 감행되었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더욱더 황당한 마음이 들었다. 최씨는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관할 경찰서를 거쳐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명백한 불법감금이니 한국의 관계자들이 알면 금방 석방되겠지 하고 기대했지만, 재판상의 절차만 따르게 할 뿐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6개월 동안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아내는 한 달에 두 번 정도씩 면회를 왔다. 전단지 돌리기 등을 해서 생활을 꾸려가야 하기 때문에 더 자주 오지를 못했다. 아내는 당초부터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영문을 알리 없었다. "여보 내 서류들 가지고 왔지?" 집안일과 서로의 안부를 나눈 뒤 최씨는 아내에게 물었다. 필리핀에서 왔을 때 자기의 사업관련 서류를 제대로 챙겨왔는지 걱정이 되었다. 그것만이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예." "얼만큼이었지?" "서류 같은 건 박스에다 모아뒀어요. 두 박스쯤 돼요." "그 정도면 다 가져온 것 같은데. 거기 유성준이라는 이름 있는 것 봤소?" "모르는데요. 영어로 된 게 많고 해서요." "그래 그 중에서 찾아보시오. 영어로 된 건 왼쪽 위에 지구표시그림이 있고 와이 오..." 이 때 면회시간의 종료를 알리는 벨소리가 울렸다. 최씨와 아내는 손 인사만 하고 헤어져야 했다. 그 다음 번 면회 때 최씨는 다시 그 이야기를 꺼냈으나 아내는 먼저 해준 말을 전혀 기억 못했다. 최씨는 그 서류의 특징을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주어야 했다. 그러나 아내는 통 알아듣지 못했고 그러다 다시 벨이 울렸다. 허탈한 마음으로 감방으로 돌아온 최씨는 다음 번에 면회를 오면 해줄 이야기를 미리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안부인사는 간략하게 끝내고 서류의 특징을 요점을 외워서 아내에게 전달해 주기로 했다. 그러나 두 주일 후 면회가 올 때쯤 아내는 면회를 오지 않았다. 최씨의 철저했던 면회준비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준비해두었던 말을 밖으로 내보내지 못해 안타깝던 최씨에게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국선변호인과의 면담이 있다고 했다. 변호인과의 면담은 시간제한이 없으니 할 이야기를 다 해놓아서 무죄를 증명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왼쪽 위에, 납작한 지구그림이 있고 그 위에 굵은 영문자 글씨가 써진 마크가 그려있는 용지에 내가 필리핀에서의 유성준과의 계약사실이 적혀 있고 유성준의 서명도 있단 말입니다." "그게 어디 있단 말입니까?" 최씨의 말에 변호사는 물었다. "어디라니요. 내가 필리핀에 수감되어 있을 때 아내가 귀국해 집으로 오면서 박스에 모아둔 서류들 중에 있지요." "거기서 찾아야 합니까?" "그렇지요." "저는 맡은 사건이 이 사건뿐만이 아니거든요. 서류는 부인을 통해 가져오라고 하시지요." "아내는 영어를 몰라서 설명이 잘 안됩니다." "허허, 제가 남의 부인만 있는 집에 들어가서 세간을 엎어서 서류뭉치들을 찾아내란 말입니까? 제게는 내용만 말씀해 주시고 그 서류는 부인이 찾아서 제출하게 하시죠." "그렇게 하지요. 그런데 면회올 땐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자세한 설명을 못하니까 제가 말씀드린 것을 아내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았습니다. 저 또 가봐야 할 곳이 있어서 오늘은 이만 하도록 하지요." 변호사는 재판이 열리기까지 다시 오지는 않았다. 두 주일이 더 지나서야 아내는 면회를 왔다. "여보 지난번에는 선거한다고 전단지 돌리는 일이 많아서 면회를 못 왔어요." "그래. 잘 있기만 하면 됐소. 그러니까 왼쪽 위에 납작한 지구표시 그림이 있고 굵은 영문자 글씨로 티 비 오 글씨가 마크로 그려있는 용지에 유성준의 이름이 와이 오 유 에스... 로 되어 있고 아래쪽에는 내 이름이 씨 에이치...로 씌어 있고 그 아래 유성준의 이름도 있고 나는 작은 동그라미 두 개에 큰 동그라미 하나가 붙어있는 모양의 서명이 있고 유성준은 세 번 고개를 넘다가 아래로 찍 긋는 모양의 서명이 있고... " 최씨는 한달 동안 벼르고 있던 서류특징에 대한 설명을 아내에게 빠르게 읽어가듯이 했다. "모르겠어요. 지난번에 서류뭉치 다 쏟아서 하나하나 보았는데 지구그림 있는 건 없던데요." "그럴 리가. 다 가져왔다면 분명히 있소. 가운데 계약문은 한 여섯 줄 정도 될거요." "전부 비슷하던데... 몇 줄 짜리인가 다시 세어봐야 겠어요." "아니 줄 수가 확실히 여섯줄이라는 건 아니고 대강..." 면회종료의 벨이 울렸다. 아내는 쫓겨 나가면서 "찾아서 제출할께요." 하고 말했다. "참 변호사에게서 연락이 왔느냐를 물었어야 하는데." 감방으로 돌아가면서 최씨는 변호사에게 부탁했던 사실을 잊고 아내에게 설명하려고만 애썼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변호사가 왔다면 아내는 그 얘기를 할 것인데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 번 면회 때 아내는 서류를 찾아서 제출했다고 했다. "그런 그림 있는 것 찾아서 재판부에 제출했어요." "수고했소. 변호사에게선 연락 없었소?" "없었는데요." "서류 밑에 서명은 내가 말했던 것과 같은걸 확인했소?" "다 비슷하던데요." 아내는 영어를 전혀 모르니 최씨가 설명해줘야 하는 것은 그림을 묘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은 아무런 문학적 능력도 없는 그로서는 불가능했다. 아니, 문학적 묘사가 가능한 자였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최씨는 일단 수감중에 확실한 변론서류를 제출하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아내는 무지했고 변호인은 성의가 없었다. 짧은 면회시간을 안부의 정담도 없이 그런 이야기로 금방 보내기도 아쉬웠다. 다시 최씨는 아내가 면회오면 가족의 안부를 묻고, 그저 구멍 뚫린 유리창 너머 아내의 서러운 눈물을 보면서 찢기는 가슴의 통증을 감내하는 것으로 면회시간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 뒤에 알았지만 아내는 엉뚱한 서류를 재판부에 제출했을 뿐이었다. 자기에게 유리한 증거를 메모 한 장 제출할 수 없었던 최씨는 국선 변호사의 형식적인 변론에 의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최씨의 몸은 비로소 햇빛은 보았지만 진실은 아직도 가려져 있었다. 집에 와서 서류박스를 뒤집어보니 최씨가 그토록 찾았던 유성준과의 계약서가 서류뭉치 속에 그대로 있었다. "아니 그럼 먼저 번엔 무엇을 제출했소?" 최씨가 묻자 아내는 "그거... 있잖아요? 필리핀 섬 그림이 그려져 있는..." 하고 서랍속에서 복사한 것을 꺼내 보였다. 딴에는 완벽을 기한다고 복사까지 해놓고 제출했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구 그림이라는 말이 잘 이해가 안되니까 아내는 필리핀 관광안내지 중에 낙서가 되어있는 것 한 장을 계약서로 알았던 것이었다. 최씨는 어이없었지만 지난 일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불구속 재판인 항소심에서 진실을 밝히면 되었다. 석방되어 사건의 전모를 아는 자기 스스로 모든 증거물을 모아서 제출할 수 있게 되니 항소심 재판은 훨씬 수월했다. 변호인도 필요 없이 최씨는 명백한 자신의 결백을 밝혔고 드디어 무죄판결을 받았다. 수백명이 넘는 필리핀 거주 기소중지자중 그 해 체포된 사람은 최씨 한사람뿐이었다. 더구나 그는 사건을 피해 필리핀으로 간 사람도 아니고 애초부터 생업을 해외에서 영위했던 사람이었다. 가족까지 거느린 가장으로서 국사범도 살인범도 흉악범도 아니었다. 최씨는 구속되기 전까지는 파푸아뉴기니 수도 포트모르스비에 만이천평의 토지도 있었고 두개의 법인체도 소유하고 있었다. 필리핀에서도 50여평의 집에 네 식구가 희망차게 살다가 새로 마련한 가재도구 등을 고스란히 남긴 채 빈손으로 돌아왔다. 7년여 동안의 생업의 터전이었던 파푸아뉴기니와 필리핀 두 나라 모두에서 범죄자로 간주되어 입국정지가 되어서 재산권은 몰수되었다. 이제 최씨는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뭍에 던져진 물고기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생계를 위해 또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 법질서의 실상이었다. 한국의 법질서에서는 관련자의 처벌도 어렵지만 이것은 한 두 명 관련자들만의 처벌이 된다고 해서 끝날 일이 아니었다. 근본적인 구조를 수술해야 하는 것이다. 공권력에게 피해를 당한 다른 사람들의 사정도 들어보면 모두들 비슷한 양상을 띄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그러한 일을 계속 일어나게 만드는 악의 힘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 문제공무원들이 조작한 모든 사건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 문제공무원들 사이에는 오래 전부터 암암리에 내려오는 사건조작의 정석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모(某)기관 안가(安家)의 담을 넘어 들어가 그들의 정체를 확인했다. 기득권층의 수호자인 그들은 지하실에 차트를 걸어놓고 수시로 선발된 공무원들에게 그 사항을 암송시키고 있었다. 그 현장을 찾아가 챠트를 빼앗고 더 이상 그 조항을 따르는 공무원을 양성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국의 부패사슬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곳은 경찰, 검찰 등 수사기관 중에서 기득권층의 보위를 위해 선발된 요원들을 하루 동안 훈련시키는 곳이었다. 이곳으로 훈련을 받으러 오는 요원들은 소속 기관에서는 엘리트에 속하는 자들로서, 훈련을 수료하고 나면 승진 등에서 우선권을 갖게 되며 재직 중에 비리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불체포의 특권을 받게 된다. - 공권력에 의한 사람 죽이기 - - 전문(前文) 인간사회는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사회신분계층의 급격한 변동은 사회혼란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명문가적 배경이 없는 자가 갑자기 사회적으로 성장하여 사회적 영향력이 증대되면 심각한 혼란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최대한 막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회적으로 갑자기 너무 클 것 같은 자들을 수시로 골라서 가지치기를 해야 이 사회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그들을 손보는 시기는 적당히 잘 잡아야 한다. 특히 문인, 예술인 등의 경우 시기가 너무 늦으면 이미 그 자에 대한 체포가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서 오히려 더 영향력이 증대될 수 있으므로, 아직 대중적인 지명도가 올라가 있지 않을 때 서둘러 조치를 해야 한다. - 실천 방법 1. 대상자의 인간관계를 조사하여 그에게 앙심을 품을 만한 자를 부추겨 사기, 명예훼손, 성폭력 등으로 죄를 엮는다. 2. 이 때 대상자의 혐의사실이 미미하여 죄목이 성립될 가망성이 적으면 일단 대상자를 구금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를 제출 못하도록 한다. 혹 구속을 위한 여건에 법률적 미비점이 있다 하더라도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구속을 시킨다. 만약 선정한 사건의 공소시효가 지났다면 적당한 날짜를 조작한다. 3. 대상자의 가족 중에는 자신의 입장을 대신 해명할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고 오직 자기만이 할 수 있어서, 대상자가 구금되면 가족 등 주변인들도 대상자가 비리가 있는 듯이 믿게 할 수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집안 배경이 약하고 자수성가한 자들은 대개 이 경우에 해당된다. 4. 다른 범죄인들의 행패가 있을 수 있는 곳에 되도록 오래 구금하여 혹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기대한다. 사망 등의 사고가 발생하여 모든 음모가 영원히 묻히고 대상자가 더 이상 자기변호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우리의 거사는 가장 말썽 없이 깨끗이 끝나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설사 가족이나 친지들이 나선다고 해도 그들은 사건의 핵심을 알지 못하므로 단순사고사 등으로 처리하면 두려울 것이 전혀 없다. 5. 여럿이 공조하여 한 사람을 몰아세운다.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같은 목소리를 내면, 대중은 설마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 효과가 있고, 대상자 일인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고 무슨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 여러 사람을 공모에 끌어들이고 동조 규합한다. 지하실 안에는 침침한 형광등 조명만이 있었다. 챠트 앞에 모인 이십 여명의 젊은 요원들은 앞에 있는 교관이 막대로 가리키는 대로 한 조항 한 조항 복창하고 있었다. 그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일사불란하고 절도 있는 목소리로 내야 했으므로 그 소리는 마치 혼자서 읽는 것처럼 또렷이 알아듣게 들렸다. 잠시 쉬는 시간에 요원들은 벽면의 소파에 삼삼오오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 하나가 앉아있는 교관에게 물었다. "요즘 같은 사이버 시대에 무슨 저런걸 만들어서 이런 음침한 곳에 오게 합니까? 그냥 이메일로 보내면 되지 않나요?" "이 사람아 무슨 큰일날 소린가. 이메일이든 편지든 전화든 요새 안 드러나는 것이 어디 있나? 여기는 연수받으러 왔다 회식하고 나간다 하면 그만이고 저 챠트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니 와서 외우고 가면 그 뿐이네. 이 방은 철저히 보안 속에 있으니 이 방만 안전하면 외부로 나갈 염려는 없네. 밖에서 사람 머리 속을 조사할 순 없는 거니까." "혹시라도 이 내용을 외부로 알리는 자가 나타나면..." "우리 실장은 독심술과 관심법에 통달해서, 그런 염려가 있는 자는 애초에 선발되지도 않지만, 만약 그럴 만한 자가 생기면 어김없이 조치를 취해 놓지. 이제까지 크게 문제된 일은 없지만 젊고 철없는 순경 중에 그런 위험이 있던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렇게 되면 러시안 룰렛게임으로 총기사고를 일으켜서까지 입을 막아놓네." "어떻게 총기사고를 유발합니까? 누가 그 지시를 수행합니까?" "그것까지는 말할 수 없네. 자네도 조심하게. 하지만 어긋나는 생각만 안 하면 자네의 장래는 이미 탄탄대로로 보장되어 있으니 염려 말게." 말할 수 없다는 그 방법은 이미 인간의 현실적인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들 음모자의 핵심수뇌부는 이 사회의 발전을 저해시키고 타락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하기 위한 악마들의 조종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극한 상황에서는 인간의 마음까지도 조종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마치 우연한 사고인 것처럼 제거상대자를 제거할 수도 있고, 가해자의 색출과 처벌문제 등 나머지 인간세상의 법적인 문제는 은폐조작 전담요원에게 맡겨 얼버무리는 것이다. '저 음모를 여기서 중지시키려면 저 챠트를 빼앗아야 한다.' 교육이 끝나면 더 삼엄한 경계가 있을 것이니 그 전에 빼앗아야 하겠다 생각되었다. 밖에서 관찰만 하던 나는 지하실로 내려갔다. 그 때 내게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이 음모를 분쇄하는 것은 그대의 선에서는 불가능하다. 이 음모는 전 우주적인 대결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서 그대가 저 챠트를 빼앗고 저들의 음모를 폭로한다고 해서 지구상에서 악마의 행위가 종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곳이 가장 핵심적인 곳이기는 하지만 한국에만 해도 이런 곳이 여기만 있는 게 아니다. 악마의 사주(使嗾)는 공권력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교육... 심지어 문학에까지 속속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것을 뿌리뽑기는 아직도 인류의 투쟁의 역사가 계속되어야 할 지금에 있어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돌아가서 더 작은 일들을 해결하도록 하라." 나는 지시에 순종했다. 보통 인간의 용사라면 자존심이 상해서 고집을 부릴 수도 있겠으나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는 은하제국의 요원이기에 천상에서의 지시가 오면 그것을 완전히 소화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저들을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저들과 싸워 이기는 것이 지금의 할 일이다." (2001.5) |
첫댓글 쩝~~ 츠암나.. 부패 부조리가 않섞인곳이 없고.. 잔머리 굴리고 돈푼께 쓰는 사람에게는 법도 아무런 힘을 발휘못하고 정당한 사람에게는 죄를 뒤집어씌우는 참 더럽고 더러운 세상.. 이 런 세상에 살고있었으니.. 참. 답답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네... 한숨 밖에 않나온다.. 답답한지고.. 개나리봇짐 싸인팬씹쌕
닝기리 뽕뽕뽕이다~~~ 가래 침이라도 뱉아버리고 싶은 심정이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