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건축공방無 식구들에게 아침을 대접하며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이 사람들을 본지 얼마나 되었다고 15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불러 아침을 해 먹일까?'
내가 살던 서백마을 원티 할머니는 처음 보는 낮선 이에게도 밥 먹었냐 묻고
밥이 없다면 라면이라도, 식사를 했다면 커피 한잔이라도 대접하셨다.
할아버지도 방에 누워계시다가도 나오셔서 자세를 바로잡고 인사를 하셨다.
귀농사모 2030 까페 정모장소로 1박 2일동안 집을 제공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장아저씨 딸이 시집갈 때 잔치마당으로 집을 제공하셨다.
개울에서 멧돼지 잡아오면 집에 솥을 걸어놓고 마을잔치 준비와 뒤치닥거리를 다 하셨다.
우연히 읍에서 친구를 만난다.
밥 먹었냐 묻고 안 먹었다면, 있는 반찬 꺼내 먹인다.
집에서 엄마가 보내온 반찬들, 단지 꺼내어내기만 해도 맛있게 잘 먹는다.
"진짜 집밥이다!"
단지 엄마가 보내온 반찬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하니"먹으라며 주신 쌀로 지은 밥을 내놨을 뿐이다.
멀리서 친구가 온다고 한다.
원주에서, 해남에서, 대구에서, 산청에서, 목포에서, 서울에서, 일본에서, 오창에서, 대전에서
또 다른 어딘가에서 나를 보러 온다고 한다.
먼 길을 오는 손님을 마다할 수 있나?
가장 먼 길을 빨리 가는 방법은 친구와 함께 가는 것, 혹은 친구에게 가는 것.
나는 어린왕자를 기다리는 여우가 되어 친구들을 기다린다.
사람들이 온다고 하면 가능한(중복되지 않는한)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집이 좁아서, 어수선해서..
2006년 해외활동 단기순례때 한석구선생님 원룸에서 15명이 잤었다.
미경언니 또한 본인이 집에 없음에도 오라며 먼저 연락이 왔었다.
따뜻한 밥, 방, 이야기,,
나는 단지 그들의 흔적을 답습할 뿐이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당근이랑 과일 보내니까 누구 주지 말고 하루에 하나씩 먹어"
이미 남은 것이 없다.
한의원, 까페, 같이 일했던 선생님,, 똑같이 나눠 먹었다.
떡을 몇번 해서 한의원과 까페, 3층과 나눠먹었다.
한의원에서 아예 쌀과 쑥을 주며 떡을 부탁한다.
떡도 받고 떡값도 받았다.
이런 나눔은 내가 먼저 시작한 것이 아니다.
쓰레기를 버리러 갈때면 불러다 커피 한잔 대접하던 사장님,
귤 줘서 고맙다며 광파오븐에 치킨을 굽고 스파게티를 해서 점심초대한 한의원.
나는 단지 그들의 선의에 답했을 뿐이다.
되돌아보면 나는 참 좋은 사람, 좋은 경험이 많다.
전국 어디를 가도 잘 곳이 있고, 차값을 받지 않는 까페들이 있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같이 살자고 살러오라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랬을까?
누군가 온다면 자고가라 하고, 만나고 싶었다고 기다렸다고 보고싶었다고 반기고,
같이 살자며 여유를 부리는 사람이었을까?
나를 기억해주고 잊지 않음에 감사할 따름인데;
어제는 창원마을 사시는 정노숙 선생님이 매운 것을 못 먹는 나를 위해 우리집까지 백김치를 갖다주시고,
예전에 수업했던 아동의 어머니가 놀러오시며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이전에도 그랬다.
손님이 오면 밥을 사고 대접을 해야 하건만,
손님들이 밥 사고, 차 사고, 보일러 기름도 놔 주고, 먹거리도 주고 가고,,
나는 집에서 가만히 밥을 하거나 잠만 재워주면 된다.
먼 길을 찾아와 재잘거리는 이야기도 듣고, 그들의 기운도 받는다.
백두대간 때 선웅오빠의 이야기처럼,
그들의 말을 가장 잘 귀기울여 듣고 반응하고 싶다.
그동안 이렇게 잘 살아왔구나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나날이 성장하고 있구나
제 자리에서, 각자의 삶터에서 자신답게 살고 있구나
힘든 시련의 순간에도 굽히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구나
"아!"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지구인을 꿈꾸는 나로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혹은 더불어 살고 있는 순간.
"너와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아름다운 것들을 나눌 수 있다면 좋겠네,,"
- 오지은의 "작은 자유" 中
첫댓글 2006년의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네^^
아마도 나는 시골사회사업 농활 1기 할 때였나 보다.
그러고보면 단지 비어있는 집을 해외활동단기순례팀에 내어줬을 뿐인데,
화인은 아직도 기억하고 고마워하니, 작은 나눔은 자신을 위해서도 남는 장사 같아.
화인의 말처럼, 장소만 제공했을 뿐인데 서로에 대한 관심은 더 깊어져.
결국 누군가를 대접하는건 나를 위한 일이고,
대접할 사람이 있다는게 감사한 일임을 알게 돼.
화인의 섬김이 날이 갈수록 섬세해져서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싶게 해.
화인, 고마워요~
2006년의 일....
얼마나 좋은 추억이 되었으면... .
언니^ㅡ^
존재만으로 행복해지는 서로에 대한 감사함!
주변에 섬세하게 저를 섬겨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저도 닮아가나봐요,
그렇다면 좋은거죠!
언니를 생각하다 보니 갑자기 떠오르는 추억 하나!
농활 1기 제주도 왔을 때
단둘이 자전거 데이트; 탑동에서 제주항까지!
그때도 너무 좋았어요^ㅡ^ 아, 그리워라! 꽃피는 봄날오면 또 같이 자전거 타요!
화인이의 섬김.
나도 많이 받았지.
군포에서 만나 칼국수 사주려던 계획은 틀어졌지만 김제에 맛있는 칼국수집 여러군데 있어..^^
기다리고 있을께
오빠가 이끌어주셔서 저도 많은 힘이 되었어요^ㅡ^
밥 나눠먹는 사이 ㅎㅂㅎ
전주서 만났던 친구가 김제쪽으로 놀러 간다길래 오빠생각 났어요!
멀리서 이렇게 불러주고 기다려주는 오빠가 있어서 참 좋네요^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