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동 들녘 복판에서
십이월 중순 화요일이다. 날이 밝아온 아침에 어제 우중 다녀온 창원천 천변과 지귀 오일장 장터 풍경으로 시조를 남겼다. “이른 봄 노란 꽃이 피었다 저문 자리 / 가을볕 고물 채워 빨갛게 물들어가 / 낙엽 진 나목에서도 눈이 부셔 보였다 // 겨우내 시나브로 새가 와 쪼아먹을 / 촘촘히 붙은 열매 물방울 겹쳐 달려 / 동짓달 비가 내리니 투명 보석 같았다” ‘겨울비 산수유’다
반송공원 북사면 창원천 산책로 산수유나무는 빨갛게 익은 열매가 가득 달렸다. 어제 낮 시간대 내린 비는 겨울치고 강수량이 제법 되었다. 우중 지귀 장터에서 메밀묵을 사서 집으로 오다가 본 산수유 열매 맺어진 물방울은 겨울비가 빚어낸 자연의 신비로움이었다. 기온이 빙점 근처로 내려갔더라면 상고대나 눈꽃으로 피었을 텐데 비가 내려서 투명한 물방울은 보석을 보는 듯했다.
아침 식후 산책 차림으로 아파트 뜰로 내려섰다. 새벽까지 내리던 비는 그쳐가고 하늘은 잔뜩 흐린 채였다. 명곡교차로로 나가 동읍과 대산으로 가는 30번 녹색버스로 갈아탔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서 용강고개 너머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사무소 앞을 지났다. 30번은 주남과 산남저수지를 돌아 대산 들녘에서 가술을 거쳐 낙동강 강변 본포로 올라가 북면 온천으로 가는 노선이었다.
녹색버스가 주남저수지를 비켜 봉강에서 죽동을 지날 때 내렸다. 본포로 바로 가는 노선은 타 봤으나 가술을 거쳐 제1 수산교에서 낙동강 강변을 따라 온천장으로 가는 버스는 처음이었다. 드넓은 들판을 빙글 에둘러 본포에서 마금산 온천장으로 가긴 가는 버스여도 차를 타고 있으면 공연히 시간만 흘렀다. 죽동에서 메타스퀘어 가로수가 끝난 윗대방에서 내려 들녘 들길을 걸었다.
추수가 끝난 들녘은 적막하기만 했다. 바깥에서 볼 때는 순수 벼농사 지대로 여겨졌으나 들녘 한복판으로 들어가 보니 의외로 다양한 수종의 과수원들과 섞인 농지였다. 북면 일대 산비탈을 일구어 심은 단감은 들녘에서도 가꾸었다. 그 밖에도 배나무나 매실나무도 흔했고 사과도 한 구역 보였다. 넓은 들녘에는 벼농사 뒷그루로 비닐하우스를 지어 풋고추나 당근 농사가 시작되었다.
농수로를 겸한 죽동천은 들녘을 가로질러 흘러 우암을 거쳐 유등 배수장에서 낙동강으로 빠져나갔다. 25호 국도가 송등마을을 지나는 곳에서 죽동마을에 이르는 길고 긴 죽동천 천변은 산수유나무가 조경수였는데 세월이 제법 지나 웬만큼 커서 빨갛게 익은 열매가 조랑조랑 달려 꽃송이를 보는 듯했다. 구름이 짙게 낀 하늘에는 북녘에서 날아온 기러기들이 선회 비행을 하고 있었다.
구산마을 어귀에서 풋고추 비닐하우스 단지를 지나자 송정마을이 나왔다. 오래전 촌락이 형성될 당시는 노송이 있었는지 몰라도 송정에는 소나무는 보이질 않고 마을 회관 앞에 고목 느티나무가 한 그루 보였다. 송정에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가니 갈전에서 1번 마을버스 종점 신전마을이 나왔다. 강변에는 연근 농사를 짓는 농지와 벼농사 뒷그루로 봄 감자를 심을 휴경지가 나왔다.
옥정마을에서 새로 뚫리는 자동찻길 교차로를 지난 본포 수변공원으로 들어섰다. 이른 봄에 수액이 오르면서 유록색이던 수양버들 가지는 겨울이 되어도 일부 잎사귀가 붙은 채 바람에 휘어져 날렸다. 이삭이 패어 은빛으로 일렁이던 둔치 물억새는 색이 바래지고 겨울바람에 점차 야위어 날씬해졌다. 본포교 아래 생태 보도를 따라 북면 수변공원으로 가다 비가 와 발길을 돌렸다.
본포 종점으로 들어온 버스를 탔더니 마금산 온천장으로 향해 달렸다. 때가 늦었지만 국밥으로 점심을 요기하고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할머니 한 분은 진해에서 왔는지 옆자리 일행에게 환승을 어떻게 하는지 물어 도중에 내렸다. 나도 한 차례 더 버스를 갈아타 집 근처로 와 동네 카페에서 꽃대감 친구를 만나 커피를 들면서 한담을 나누다 어둠이 내리기 전 집으로 돌아왔다. 23.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