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은 후, 동쪽 울타리 밑의 국화꽃을 따다가 우두커니 남산을 바라보며 자적(自適)하게 산 자연주의자 도연명은 은둔 생활로 인해 많은 사람들로 부터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
서양에서는 좁은 영지를 서로 나누어 가졌던 봉건영주시대의 역사 때문에 은둔자는 염세 주의이거나 추방당한 사람으로 떳떳하지 않은 부정적인 뜻을 갖고 있지만 동양에서는 원래 물산이 풍부하고 땅이 넓으므로 유유자적하며 지내면서 학문과 사색에 힘쓰는 사람이다. 은자는 때를 기다리며 오랜시간 학문에 힘써 실력을 기르다가 세상에 나가 경륜을 편다는 뜻의 "출세(出世)" 였다. 그 대표 적인 사람이 주(周)나라 문왕에게 등용되어 위수가의 일개 어부에서 재상이된 태공망 여상(太公望 呂尙)이다. 그는 7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관로(官路)에 진출하여 출세한 사람이다. 그래서 국화=도연명=은일이라고 받아 들이게 되었으나 국화는 장수를 뜻하기도 한다.
예문유취 풍속통(藝文類聚 風俗通)에 남양국수(南陽菊水)의 고사에서 근거한 것이다.
국화밭을 여과해서 흐른 물을 마셨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장수 하였으리라는 추정을 실제로 국화의 약리작용을 확인도 하기전에 사실로 받아 들임으로써 국화가 수(壽)를 뜻하게 된것이다.
국화가 수(壽)이므로 국화 꽃을 층층이 그려놓은 그림은 고수(高壽)가 된다. 또한 바위가 수(壽)를의미하므로 바위 위에 국화를 그려 넣으면 익수(益 壽) 가 되어 더 오래 살라는 의미다.
국화를 그릴 때 함께 그리는 빨간 열매는 구기자(枸紀子)로, 구기자가 건위제(建胃劑)로서 국화와 같이 장수를 의미하므로 이런 그림은 기국연년(紀菊延年)의 뜻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