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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도행전 8:1-3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내용분해 : A. 사울이 스데반의 죽임당함을 마땅히 여김(1a절)
B. 예루살렘 초대 교회 성도들이 유대교의 대대적인 박해로 각지로 흩어짐(1b절)
C.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애도함(2절)
D. 사울이 교회를 말살시키기 위하여 남녀 성도를 색출하여 옥에 넘김(3절)
오늘도 행복한 주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호홉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핍박하고 박해하지만 하나님은 이를 이용하여 더욱 흥왕케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이제 우리 다함께 우리의 역경과 어려움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감사와 찬송으로 주님께 나아가십시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오늘 아침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사도행전 8:1-3절 말씀으로 스데반의 순교를 기점으로 한 유대교의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박해의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전체의 내용 구조는 1:8 의 말씀이 성취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 도의 지상 대명 (Great Commission) 에 따라,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그리고 땅 끝까지 전파되어 가는 과정을 차례로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확산 과정을 지리적 관점에서 볼 때, 1-7장은 예루살렘 내에서 교회가 설립되고 확장되어 가는 과정을 보도하고 있으며, 8-12장은 유대와 사마리아 및 팔레스틴 전역을 넘어 수리아의 안디옥까지 복음이 확장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고, 13장 이후부터 끝까지는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을 통해 복음이 수리아 안디옥을 중심으로 땅 끝을 향해 점점 멀리 퍼져 가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편 위의 내용 전개를 복음이 선포되는 대상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1-7 장은 주로 유대인 중심의 복음 증거라고 한다면, 13장 이후는 본격적인 이방인 중심의 복음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의 8-12장은 과도기, 곧 유대인 중심의 전도에서 본격적인 이방인 중심의 선교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 및 과도기라 할 수 있는데, 즉 8-12 장의 내용은 지리적으로는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유대, 사마리아, 수리아 안디옥까지 확장되는 것을 보도하고 있으며, 복음 전파의 대상의 관점에서는 유대인 전도에서 본격적인 이방인 선교로 전환하기 위한 과도기적 단계임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하의 8장은 8-12장까지 이어지는 연속된 일련 기사의 개시 부분으로, 모두 네문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여기서는 빌립 집사의 사마리아 지역에서의 전도 및 한 에디오피아 내시의 전도를 그 중심 내용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먼저 첫 문단인 8:1-3 에서는 스데반의 순교 사건에 즈음하여 예루살렘 교회에 불어닥친 유대교의 대박해의 바람으로 인해, 사도들을 제외한 예루살렘 교회의 온 성도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게 된 사실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회심하기 이전의 사울, 곧 바울이 교회의 박해에 앞장섰음도 간략히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태동하여 한창 성장 일로에 있던 예루살렘 초대 교회가 큰 위기에 직면하였음을 시사해 줍니다. 사실 예루살렘 교회에 임한 유대교의 대대적인 박해의 광풍은 교회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초대 교회에 불어닥친 박해의 대광풍은 타오르던 복음의 불길을 소멸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예루살렘 초대 교회에 대한 유대교의 박해는 결과적으로 복음의 불꽃길을 사방으로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박해를 피해 흩어진 성도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파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루살렘 초대 교회에 임한 대박해의 광풍은 표면적으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기득권 수호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복음을 땅 끝까지 확산시키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일찍이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당부하셨고, 이것은 제자들이 반드시 실천해야 할 지상 명령(至上命令)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도 그저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유대교의 핍박의 손을 빌어 제자들로 팔레스틴 전역과 세계 각지로 흩어지게 함으로 복음이 땅 끝을 향해 확산되게 하시되, 예루살렘 교회만큼은 보호하여 모든 교회의 모교회로서 복음 전파의 중심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8:4-13의 문단은 흩어진 성도들이 복음을 전한 대표적 사례로서, 빌립 집사의 사마리아 지역 전도를 보도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초대 교회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인 빌립은, 박해의 바람이 불어오자 사마리아 지역에 내려가 복음을 전하고 큰 표적과 능력을 행하였으며, 그 결과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믿고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뛰어난 마술로 사마리아에서 큰 명성을 떨치던 마술사 시몬까지도 믿고 세례를 받게 될 정도로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어 8:14-25 에서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를 방문한 내용과 두 사도들의 안수로 사마리아에도 성령이 임재하신 내용, 그리고 성령 강림 및 은사 매매를 제안한 마술사 시몬에 대한 베드로의 책망과 경고의 내용을 보도하고 있고, 베드로와 요한 두 사도가 단지 사마리아를 방문하여 믿는 자들에게 안수만 한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귀환 길에 사마리아 여러 마을에서 직접 복음을 전하였다 (25절)는 사실 또한 주목을 끄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어 8:26-40 에서는 빌립이 이번에는 성령의 인도로 에디오피아의 한 내시를 전도하는 내용을 보도하고 있는데, 이 에디오피아 내시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추정되는 인물로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고, 집사 빌립은 성령의 지시와 인도를 따라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줌으로써, 복음이 이방 땅에까지 전파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이후 빌립은 다시 성령의 인도로 가사 북쪽의 아소도(Azotus) 에서 가이사랴(Caesarea)에 이르기까지 서부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전도 사역을 계속하게 됩니다.
이상 8장의 네 문단의 문맥의 흐름에서 전체적으로 우리가 보아야 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장벽(障뿔)을 넘은 복음의 확산(the Spread of the Gospel beyond Barriers) 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본장에서 보도되고 있는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와 에디오피아 내시 전도는 복음이 지역적으로나 민족적으로 예루살렘과 유대를 넘어 온 세계와 민족에게 개방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사건인 것입니다.
특히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복음 전도와 성령 강림 사건은 이 점을 두드러지게 보여 주고 있는데, 사마리아는 앗수르 포로기(B. C. 722년 이후)와 바벨론 포로기(B.C. 586-539년)를 지나면서, 이방 민족과의 혼혈 결혼 정책으로 인해 선민(選民) 혈통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바벨론 포로기가 끝난 후 귀환한 유대인들은 성전 재건 과정에서 사마리아인들의 참여를 배제함으로써 충돌을 빚었으며, 이 시기에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대항하여 그리심산(the Mount Gerizim) 에 자기들만의 성전을 건축하였고, 이후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이방인 취급하였으며, 사마리아인들 역시 유대인들을 향해 적개심을 품게 되어 충돌이 그치지 않았으며, 이는 예수님 당시에도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었습니다(녹 9:53 ; 요 4:9 ; 8:48). 한마디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반복과 갈등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형성된 뿌리 깊은 것으로 사실상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사마리아에 내려가 복음을 받은 자들에게 안수했을 때 성령이 임하셨는데, 이 사건은 이를 둘러싼 신학적 해석, 곧 사도들의 안수와 성령 강림과의 관계에 대해, 구구한 신학적 논쟁의 요소가 되고 있지만, 문맥의 흐름에 볼 때 저자 누가의 강조점은 사도들의 안수와 성령 강림이라는 세부적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며, 이 사건을 통해 보여 주고자 하는 저자 누가의 강조점은 사도들의 안수를 계기로 예루살렘 교회와 사마리아 교회가 별개의 전통을 가진 두 개의 교회가 아니라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Baptized by one Spirit, 고전12:13), 곧 동일한 사도적 전통(Apostolic Tradition) 을 가진 교회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빌립의 전도의 의의는 인종적 편견과 감정적 대립의 장벽을 넘어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 것이며, 사도들의 안수는 예루살렘 교회가 그것을 하나님의 역사로 인정하고 수용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성령 강림은 하나님께서 ‘제한 없이, 차별 없이’ 성령을 믿는 자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장벽을 초월하여 전파되어야 하며, 복음 안에서 모든 장벽이 무너진다는 진리를 우리는 여기서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저자 누가는 성령의 은사를 돈으로 사고자 한 마술사 시몬의 사건을 소개함으로써 성령의 이해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는데, 누가는 본서에서 ‘성령 이라고 하는 단어를 신약 성경을 통틀어 가장 많은 횟수인 69회 사용함으로써 성령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자 누가는 본서 전체의 요절이라고 하는 1:8을 통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선교 지상 명령은 오직 성령의 능력에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밝힐 정도로, 복음 역사에 있어서 성령의 능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깊이 인식해야 하는 것은 성령은 신적 능력의 주체(主體)이시지, 객체(客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성령은 능력을 행하는 도구로 인간에게 이용될 수 없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마술사 시몬은 빌립 집사의 전도를 받고 또 빌립 집사가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세례를 받은 후 빌립을 따라다녔는데, 그는 베드로와 사도들의 안수시 성령이 임재하는 것을 보고 돈으로 그 능력을 사기를 원했습니다. 즉 마술사 시몬은 성령을 인간이 임의로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으며, 자기 명성을 높이기 위한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딤전 6:5).
오늘날에도 마술사 시몬과 같은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즉 입술로는 성령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성령을 자기 욕심을 채우는 도구 정도로 여기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성령의 뜻에 순종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성령의 능력을 받는 데에만 지대한 관심을 둡니다. 성령을 받으면 능력을 받게 된다는 것은 주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상당수의 사역자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행하려는 동기에 있어서도 자기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을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빌립 집사는 시몬이 보고 따를 정도로 성령으로 큰 능력과 표적을 행하는 자였으나, 언제나 성령의 지시를 따르며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29절). 우리는 이러한 빌립 집사의 신앙 자세를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그건, "영적인 무지가 사람에게 가장 큰 해악을 끼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사울이 스데반의 죽임당함을 마땅히 여겼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기 이전의 옛 이름입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의 초대 왕의 이름과 같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희망’ 이라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다가 그 들과 함께 희망 없이 죽임을 당한 것처럼, 청년 사울도 회심하기 전까지는 별 희망이 없는 자였습니다. 자기도 희망 없고 다른 이웃에게도 희망을 주지 못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비록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고, 또 당대의 석학으로 불리는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율법에도 열심이 있었지만, 정작 하나님의 뜻에는 무지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신실한 종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였고, 교회를 핍박하는 일에도 누구보다도 열심이었습니다 (3절) . 그는 그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일찍이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요16:2)고 예고하신 바 있습니다. 그 예고의 말씀처럼 유대인들은 기독교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성도들에 대해 큰 핍박을 가했으며, 사울도 그들중 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훗날 바울 사도는 회고하기를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저희도 아나이다" (행 22:20) 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사울이 왜 이러한 오류를 범했을 까요? 그것은 바로 영적 무지 때문입니다. 곧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를 통해 구속의 섭리 를 펴 나가신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훗날 자신이 전날에 교회를 핍박한 것은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 1:13) 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무지는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해악을 끼치는 요인입니다. 그래서 영국의 극작가인 벤 존슨 (B. Jonson) 은 말하기를 “무지는 큰 정신병이다. 이것은 치명적인 악 이며, 인생을 어둡게 하고, 이성을 어지럽게 하며, 진실을 혼란시킨다”고 했습니다. 또 설교의 황태자 스펄션 (Spurgeon) 목사는 “무지는 몰염치의 어머니다”라고도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영적으로 무지하면 사도 바울도 사울같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 영적 무지는 자기에게 치명적인 해악을 가져다 주며 다른 사람에게도 악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영적 무지에서 벗어나기 바랍니다. 과거 우리 민족은 지적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영적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늘 복음의 진리를 날마다 숙고하고 성령을 좇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의 진리와 성령에 의지할 때, 우리는 비로서 영적 무지에 사로잡히는 일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함께 기도드리시겠습니다.
<참고 문헌>
"손에 잡히는 구약개론"IVP
"성경개관 구약편" 부흥과개혁사
"ESV스터디바이블" 부흥과개혁사
"위드바이블" 바이블넷
"옥스퍼드 원어 성경대전" 제자원 바이블네트
"구약개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구약총론" 생명의말씀사
"두란노How주석시리즈"두란노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