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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지참(天愁地慘)
하늘도 슬퍼하고 땅도 슬퍼했다는 뜻으로, 제갈량의 죽음을 표현한 말로 매우 처참함을 이르는 말이다.
天 : 하늘 천(大/1)
愁 : 근심할 수(心/9)
地 : 땅 지(土/3)
慘 : 참혹할 참(忄/11)
출전 : 삼국연의(三國演義) 第104回
제갈량의 북벌전은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그 끈질긴 노력과 그 과정에서 보이는 신출귀몰하는 전략전술 등으로 삼국지 후반부의 압권을 이룬다.
그 가운데 49개의 작은 등잔과 본명등(本命燈)을 밝히고 인간 수명을 관장하는 북두(北斗)에게 일기(一紀 : 12년)만 더 살게 해달라며 간절히 기도하는 장면에 이르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기도하는 동안 7일만 계속 본명등이 꺼지지 않고 타오르면 되는데 엿새째 되던 날 사마의 군대가 쳐들어왔다며 호들갑을 떨며 뛰어든 위연의 발길에 불은 꺼지고 제갈량은 산발한 채 짚고 있던 칼을 내려놓고 탄식한다. "죽고 사는 것이 다 명줄이 있으니 기도하여 얻을 수 있지 않도다."
이후 제갈량은 마지막 전선을 시찰하고 돌아와 ‘하늘의 뜻이 이러하니 어찌하겠느냐’면서 가을바람 부는 오장원에서 5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 일을 두고 그가 죽은 날 밤, 하늘과 땅이 슬픔에 잠겼고, 달도 빛을 잃었다(是夜天愁地慘月色無光)라고 했다.
큰 인물이 사라지면 천기도 대자연도 달리 반응한다는 데 요즘 우리 주변은 거꾸로 가는 것만 같다.
[添]
孔明強支病體, 令左右扶上小車, 出寨遍觀各營.
공명이 병든 몸을 억지로 일으켜 좌우의 부축을 받아 작은 수레로 타고 영채를 나가 각각의 영채를 두루 살폈다.
自覺秋風吹面, 徹骨生寒, 乃長嘆曰: 再不能臨陣討賊矣. 悠悠蒼天, 曷此其極.
가을 찬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한기가 골수에 파고드는 것을 깨닫고, 장탄식한다. “다시는 적과 대진하여 역적을 토벌하지 못하겠구나! 가막이득히 멀고 푸른 하늘아, 어찌 그 다함이 있으리오!”
공명이 문방사우(종이, 붓, 묵, 벼루)를 가져 오게 하여, 침대 위에서 표를 써서 후주에게 전하게 한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伏聞生死常有, 難逃定數; 死之將至, 願盡愚忠.
엎드려 말씀 올립니다. 제가 듣기에, 생과 사는 항상 있으며 하늘이 정한 운수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저의 죽음이 곧 닥쳐 오지만 저는 충정을 다할까 합니다.
臣亮賦性愚拙, 遭時艱難, 分符擁節, 專掌鈞衡.
신 제갈량은 하늘에서 받은 성품이 어리석고 못난데도, 어려운 시대를 만나 나누어 주신 부절을 가지고 큰 임무를 맡았습니다.
興師北伐, 未獲成功; 何期病入膏肓.
군사를 일으켜 북벌을 했으나 아직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데 병이 고황까지 들 줄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命垂旦夕, 不及終事陛下, 飲恨無窮.
곧 명이 다하매 폐하를 끝까지 섬기지 못하는 한이 무궁합니다!
伏願陛下, 清心寡欲, 約己愛民.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마음을 맑게 하고 욕심을 적게 하시며,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백성을 아끼십시오.
達孝道于先皇, 布仁恩于宇下; 提拔幽隱, 以進賢良; 屏斥奸邪, 以厚風俗.
선황(유현덕 )께 효도를 다하시고 폐하께서 다스리는 사람들에게 인애와 은덕을 베푸시고 깊은 곳에 은든한 현인과 어진이를 발탁하시며, 간사한 무리를 물리치시고 풍속을 아름답게 하십시오.
臣家成都, 有桑八百株, 薄田十五頃, 子弟衣食, 自有余饒.
신의 집에는 뽕나무 8백 그루와 척박한 전답이 15 경頃(100묘畝 또는 6.7 헥타르의 넓이)있으니 자손의 의식주는 넉넉할 것입니다.
至於臣在外任, 別無調度, 隨身衣食, 悉仰于官, 不別治生, 以長尺寸.
신은 외직에서 근무하여 신변용품 모두를 다 관에서 받은 것으로 의지 했으며 달리 생계에 한 치도 보태지 않았습니다.
臣死之日, 不使內有余帛, 外有贏財, 以負陛下也.
신이 죽는 날에 안으로 착복한 비단이나 밖으로 축적한 재산이 드러나서 폐하의 신의를 저버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孔明不答. 眾將近前視之, 已薨矣.
공명이 대답하지 않았다. 장수들이 가까이 가서 보니, 이미 훙(薨=고귀한 이가 죽음)했다.
時建興十二年秋八月二十三日也, 壽五十四歲.
때는 건흥 12년 가을 8월 23일이고, 그의 나이 54세다.
是夜, 天愁地慘, 月色無光, 孔明奄然歸天.
이날 밤, 하늘도 슬퍼하고 땅도 비통하고, 달빛도 빛을 잃고, 공명이 갑작스럽게 귀천(歸天) 했다.
제갈량의 북벌
천하 통일 대업을 꿈꾸다
제갈량은 촉한 건국 때부터 오나라와 협력하여 위나라에 대항하는 것을 기본 정책으로 삼았다. 그는 유비 사후 오나라와 수교를 맺고 천하를 통일하고자 북벌을 결심했다.
네 차례의 북벌에 실패한 제갈량은 그동안 문제가 된 군량 보급 문제를 보완하고 드디어 5차 북벌을 시작한다. 그러나 오장원에 진을 치고 위나라와 대치하던 중 제갈량이 갑작스레 병사하자, 촉한은 더 이상 북벌을 시도하지 못한 채 위나라에 멸망당했다.
221년, 촉한의 유비는 제갈량의 반대에도 관우의 원수를 갚고자 오나라와 전쟁을 일으켰다. 처음에 손권은 유비에게 여러 번 화친을 청했지만, 결국 유비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가 효정(猇亭)에 주둔했다.
여기에 오나라는 육손(陸遜)을 대도독으로 삼아 응전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육손은 유비의 갖은 유인과 도발에 응하지 않은 채 촉한군의 사기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렸고, 6개월이 지난 후에야 화공법으로 급습을 감행했다.
육손은 촉한군 40여 개 군영을 격파했으며, 유비는 백제성으로 후퇴했다. 이것이 효정 전투이다. 전투에서 패한 유비는 그 울분으로 병을 얻고 일어나지 못했다. 223년, 유비는 유훈으로 제갈량에게 태자 유선(劉鮮)을 부탁했다.
당시 유선은 불과 17세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촉한의 정사는 제갈량에 의해 결정되었다. 제갈량은 촉한 건국 때부터 오나라와 협력하여 위나라에 대항하는 것을 기본 정책으로 삼았다. 그러나 효정전투로 오나라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그는 유비 사후 가장 먼저 등지(鄧芝)를 보내 오나라와 수교를 맺었다.
이후 제갈량은 촉한이 천하 통일 대업의 주인공이 되고자 북벌을 결심했다. 여기에는 유비가 죽은 뒤 세력이 약해진 촉한의 존재를 대외적으로 부각시키고, 국력 신장을 꾀한다는 제갈량의 속뜻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 운남 일대에서 맹획(孟獲)이 반란을 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하자, 제갈량은 북벌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북벌을 위해서는 남방의 안정이 필수였기 때문에 제갈량은 마속(馬謖)의 진언대로 맹획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항복을 받고자 했다. 그리하여 맹획을 일곱 번 생포하고, 일곱 번 풀어 주는 칠종칠금(七縱七擒)으로 운남 지역을 평정했다.
이로써 후방의 불안 요소를 제거하고, 남방의 재원과 노동력을 확보하고, 군대의 사기를 높인 제갈량은 북벌을 위한 특별한 작업을 실행했다. 그것은 바로 위나라 사마의를 퇴진시키는 것이었다.
제갈량은 226년, 조예가 황제로 즉위한 뒤 사마의가 반란을 계획하고 있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227년, 위나라 토벌에 나선 제갈량은 출정에 앞서 유선에게 장문의 출사표를 상주하며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100여 명의 문무대관에게 촉한의 내정을 맡기고, 장군 이엄(李嚴)에게는 오나라를 경계하게 하는 등 후방을 든든히 한 뒤 군대를 한중으로 출진시켰다.
이듬해인 228년에는 조운(漕運)과 등지를 선봉으로 삼은 30만 대군을 이끌고 기산(祈山)을 공략했다.
제갈량의 1차 북벌 소식에 위나라는 대도독 하후무(夏候楙)를 출정시켰다. 하후무는 위나라 서량대장 한덕(韓德)과 연합하여 조운과 대치했으나, 한덕과 네 명의 아들은 조운에게 모두 죽임당했다. 하후무는 부하 동희와 설칙을 매복하게 해 조운을 공격하여 포위했지만, 조운은 장포와 관흥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한편 전투에서 패한 하후무가 남안(南案)에서 성문을 걸어 잠근 채 전투에 응하지 않자, 제갈량은 계책을 내어 안정(安定) 태수 최량이 하후무를 구하러 오도록 했다. 이때 촉한의 장수 장포와 관흥이 기습으로 최량을 생포한 후 죽이자 안정은 촉한의 것이 되었다. 또한 하후무도 남안을 버리고 도망쳤다.
다음으로 제갈량은 천수(天水) 공격에 나섰으나 위나라 장수 강유(姜維)에게 패해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 강유의 뛰어남을 알아본 제갈량은 그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자 계책을 내었고, 결국 강유는 제갈량에 귀순한 뒤 천수를 함락시켰다.
위나라의 조예는 위나라가 연이어 촉한에게 패하자 화흠의 건의를 받아들여 사마의를 복귀시켰다.
한편 낙양을 공격하려 했던 신성 태수 맹달이 금성 태수 신의와 상용 태수 신탐의 배신으로 죽임을 당하자, 제갈량은 가정(街亭)을 지키기 위해 마속을 보냈다. 이때 그는 마속에게 산 밑에 진지를 구축할 것을 명했으나 마속은 제갈량의 명을 어기고 산꼭대기에 진지를 구축했다.
이로써 물길을 차단당해 마속은 대패하고 말았다. 결국 촉한은 남안, 안정, 천수를 지키지 못한 채 후퇴했으며, 제갈량은 패배의 책임을 물어 마속의 목을 베고, 스스로를 우장군으로 격하시켰다.
228년, 군을 재정비한 제갈량은 위나라가 오나라와의 전투에서 패한 틈을 이용하여 제2차 북벌을 감행했다. 그는 이번에도 출정 전에 유선에게 출사표를 올리고, 진창(陳昌)으로 진군했다. 제갈량은 진창을 포위한 채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함락을 시도했지만, 위나라 장수 학소의 저항이 격렬하여 끝내 점령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무엇보다 조운 사후 촉한에 위나라를 제대로 공격할 장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촉한의 군량미가 바닥을 드러냈고, 위나라의 구원병이 이내 도착할 것이라는 소식에 제갈량은 군대를 철수시켰다.
제갈량의 제3차 북벌은 229년 진창의 학소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과 함께 시작되었다. 제갈량은 위연과 강유에게 군사 5천을 주고, 자신은 관흥, 장포와 함께 직접 공격에 나섰다.
한편 이 소식을 접한 학소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이어 제갈량은 위연과 강유에게 국경 지대인 무도와 음평을 공격하게 했고, 이에 사마의는 장합과 대릉을 내세워 응전했지만 패한 뒤 수비 작전으로 일관하였다. 이후 제갈량은 한중으로 돌아갔다.
231년 봄, 제갈량은 다시 북벌에 나섰다. 제4차 북벌에서 제갈량은 기산을 포위하고, 직접 주력 부대를 이끌고 사마의를 공격했다. 그러나 사마의는 제갈량에게 군량이 절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쉽게 전쟁에 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사마의의 부장 가후가 촉한의 도발에 응하지 않는 것은 천하의 비웃음만 살 뿐이라며 싸울 것을 종용하였다. 결국 사마의는 장합에게 군사를 주어 싸우게 했다.
제갈량은 장합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이번에도 제갈량의 발목을 잡은 것은 부족한 군량이었다. 제갈량은 하는 수 없이 귀국을 결정해야만 했다. 장합은 퇴각하는 촉한군을 뒤쫓는 와중에 촉한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귀국한 제갈량은 그동안 북벌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된 군량 보급 문제를 보완했다. 농업을 장려하여 군량미를 확보했으며, 진법과 무예를 가르쳐 군사력을 강화했고, 산지에서 사용이 쉬운 목우유마(木牛流馬)라는 새로운 운송 기구를 제작하여 군용 물자를 운송하는 데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234년, 제갈량은 10만 대군과 함께 북벌에 나섰다. 제갈량은 군량과 물자 공급 문제를 해결하고자 군사를 나누어 오장원(五丈原)에서 둔전제를 실시했다. 또한 오나라에 사신을 보내 협공 약속까지 받아 놓았다.
이에 위나라는 사마의로 하여금 제갈량을 방어하게 하고, 조예는 오나라의 군대를 막기 위해 출정했다. 제갈량은 비록 장기전을 준비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촉한군이었다. 따라서 제갈량은 먼저 사마의를 도발했으나 사마의는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절대로 응하지 않았다.
양군의 대치가 석 달을 넘어서자 제갈량은 사신을 통해 사마의의 진영에 여자 용품들을 보내 사마의를 조롱했다. 하지만 사마의는 이를 불쾌히 여기기는커녕 사신에게 제갈량의 일상사에 관해 세세하게 묻기 시작했다.
이에 사신은 대수롭지 않게 "승상께서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시어 군영의 대소사를 직접 관할하시고 밤늦게 잠자리에 드십니다. 또한 하루에 식사는 3, 4홉 정도를 드십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사마의는 "공명이 다망한데 잠도 잘 못 자고, 식사량도 적으니 어찌 오래 살겠는가"라며 수비 작전을 고수했다.
사마의의 생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갈량은 병에 걸리고 말았으며, 234년 북벌 중에 군영에서 병사했다. 제갈량의 죽음으로 촉한의 북벌은 자연스레 종지부를 찍었다.
제갈량은 삼국 중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하고, 지리적으로 불리했던 촉한이 명맥을 유지하는 방법은 북벌이라고 생각했다. 즉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불과 7년 동안 총 다섯 차례 북벌을 감행한 것은 촉한의 국력을 소진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촉한은 제갈량 사후 국력을 회복시키지 못했고, 263년에 위나라에 멸망당했다.
○ 221년 : 유비가 관우의 원수를 갚고자 오나라와 전쟁을 일으키다.
○ 228년 : 제갈량이 30만 대군을 이끌고 북벌을 시작하다.
○ 234년 : 제갈량이 북벌 중에 병사하고 촉한의 북벌은 종지부를 찍다.
▶️ 天(하늘 천)은 ❶회의문자로 사람이 서 있는 모양(大)과 그 위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 하늘(一)의 뜻을 합(合)한 글자로 하늘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天자는 '하늘'이나 '하느님', '천자'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天자는 大(큰 대)자와 一(한 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갑골문에 나온 天자를 보면 大자 위로 동그란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람의 머리 위에 하늘이 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하늘은 동그랗고 땅은 네모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天자는 사람의 머리 위에 동그라미를 그려 '하늘'을 뜻했었지만 소전에서는 단순히 획을 하나 그은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天(천)은 (1)하늘 (2)범 인도(印度)에서 모든 신을 통들어 이르는 말. 천지 만물을 주재 하는 사람, 곧 조물주(造物主)나 상제(上帝) 등 (3)인간세계보다 훨씬 나은 과보(果報)를 받는 좋은 곳. 곧 욕계친(欲界責), 색계친(色界天), 무색계천(無色界天) 등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하늘 ②하느님 ③임금, 제왕(帝王), 천자(天子) ④자연(自然) ⑤천체(天體), 천체(天體)의 운행(運行) ⑥성질(性質), 타고난 천성(天性) ⑦운명(運命) ⑧의지(意志) ⑨아버지, 남편(男便) ⑩형벌(刑罰)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하늘 건(乾), 하늘 민(旻), 하늘 호(昊), 하늘 궁(穹),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흙 토(土), 땅 지(地), 땅 곤(坤), 흙덩이 양(壤)이다. 용례로는 타고난 수명을 천수(天壽), 하늘과 땅 또는 온 세상이나 대단히 많음을 천지(天地), 타고난 수명 또는 하늘의 명령을 천명(天命), 사람의 힘을 가하지 않은 상태를 천연(天然), 하늘을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이 곧 황제나 하느님의 아들을 천자(天子), 우주에 존재하는 물체의 총칭을 천체(天體), 부자나 형제 사이의 마땅히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를 천륜(天倫), 타고난 성품을 천성(天性), 하늘 아래의 온 세상을 천하(天下), 천체에서 일어나는 온갖 현상을 천문(天文), 하늘과 땅을 천양(天壤), 선천적으로 타고난 뛰어난 재주를 천재(天才), 하늘에 나타난 조짐을 천기(天氣), 하늘이 정한 운수를 천운(天運), 자연 현상으로 일어나는 재난을 천재(天災),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뜻으로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이 썩 좋은 절기임을 일컫는 말을 천고마비(天高馬肥), 하늘과 땅 사이와 같이 엄청난 차이를 일컫는 말을 천양지차(天壤之差), 선녀의 옷에는 바느질한 자리가 없다는 뜻으로 성격이나 언동 등이 매우 자연스러워 조금도 꾸민 데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천의무봉(天衣無縫), 세상에 뛰어난 미인을 일컫는 말을 천하일색(天下一色),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이라는 뜻으로 임금이나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이르는 말을 천붕지통(天崩之痛), 온 세상이 태평함 또는 근심 걱정이 없거나 성질이 느긋하여 세상 근심을 모르고 편안함 또는 그런 사람을 일컫는 말을 천하태평(天下泰平), 하늘과 땅 사이라는 뜻으로 이 세상을 이르는 말을 천지지간(天地之間), 하늘 방향이 어디이고 땅의 축이 어디인지 모른다는 뜻으로 너무 바빠서 두서를 잡지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 또는 어리석은 사람이 갈 바를 몰라 두리번 거리는 모습을 일컫는 말을 천방지축(天方地軸), 하늘과 땅이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물이 오래오래 계속됨을 이르는 말을 천장지구(天長地久), 하늘과 사람이 함께 분노한다는 뜻으로 누구나 분노할 만큼 증오스러움 또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음의 비유를 이르는 말을 천인공노(天人共怒), 하늘에서 정해 준 연분을 일컫는 말을 천생연분(天生緣分), 하늘이 날아가고 땅이 뒤집힌다는 뜻으로 천지에 큰 이변이 일어남을 이르는 말을 천번지복(天翻地覆), 하늘에서 궂은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화평한 나라와 태평한 시대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천무음우(天無淫雨), 하늘이 정하고 땅이 받드는 길이라는 뜻으로 영원히 변하지 않을 떳떳한 이치를 일컫는 말을 천경지위(天經地緯), 천장을 모른다는 뜻으로 물건의 값 따위가 자꾸 오르기만 함을 이르는 말을 천정부지(天井不知), 하늘과 땅이 처음으로 열린다는 뜻으로 이 세상의 시작을 이르는 말을 천지개벽(天地開闢), 하늘은 그 끝이 없고 바다는 매우 넓다는 뜻으로 도량이 넓고 그 기상이 웅대함을 이르는 말을 천공해활(天空海闊), 하늘에 두 개의 해는 없다는 뜻으로 한 나라에 통치자는 오직 한 사람 뿐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천무이일(天無二日), 멀리 떨어진 낯선 고장에서 혼자 쓸슬히 지낸다는 뜻으로 의지할 곳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천애고독(天涯孤獨), 천진함이 넘친다는 뜻으로 조금도 꾸밈없이 아주 순진하고 참됨을 일컫는 말을 천진난만(天眞爛漫) 등에 쓰인다.
▶️ 愁(근심 수, 모을 추)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마음심(心=忄;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秋(추; 주름의 뜻, 수)로 이루어졌다. 눈살을 찌푸리고 걱정하다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愁자는 '근심'이나 '시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愁자는 秋(가을 추)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秋자는 '가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그런데 '근심'을 뜻하는 愁자와 '가을'은 무슨 관계인 것일까? 그것도 가을은 풍성한 수확의 계절인데 말이다. 여기에는 많은 추측이 가능하다. 예전에는 추수가 끝나면 세금을 거둬갔으니 그것이 걱정일 수도 있고 곧 추운 겨울이 올 것이니 그것 또한 걱정일 수도 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면서도 근심이 늘어나는 계절이기도 했다. 그래서 愁(수, 추)는 ①근심, 시름 ②근심하다(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 시름겹다, 시름겨워하다 ③얼굴빛을 바꾸다 ④슬퍼하다 ⑤원망하다 ⑥괴롭히다 그리고 ⓐ모으다(추)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여유가 없을 괄(恝), 근심 환(患), 근심 우(憂)이다. 용례로는 근심에 잠긴 눈썹이나 근심스러운 기색을 수미(愁眉), 근심하는 마음을 수심(愁心), 근심하여 마음이 상함을 수상(愁傷), 시름에 겨워 웅얼댐 또는 그 소리를 수음(愁吟), 근심하고 괴로워 함을 수뇌(愁惱), 근심 걱정으로 괴로워 함을 수고(愁苦), 걱정하면서 잠자는 일을 수면(愁眠), 근심스런 생각을 수사(愁思), 지나친 근심이 원인이 되어 죽음을 수사(愁死), 근심을 띤 기색을 수색(愁色), 근심하여 탄식하는 소리를 수성(愁聲), 몹시 슬프게 함이나 시름에 잠기게 함을 수쇄(愁殺), 몹시 근심스러움을 수수(愁愁),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시름을 향수(鄕愁), 근심이나 우울과 수심을 우수(憂愁), 객지에서 느끼는 수심을 객수(客愁), 객지에서 느끼는 시름을 여수(旅愁), 슬픈 근심을 비수(悲愁), 마음을 서글프게 하는 슬픈 근심을 애수(哀愁), 객지에서 느끼는 시름을 기수(羈愁), 큰 시름을 고수(高愁), 온갖 시름을 만수(萬愁), 홀로 시름함을 고수(孤愁), 대단하지 아니한 걱정을 담수(淡愁), 그리움과 근심을 연수(戀愁), 깊은 시름을 농수(濃愁), 시름하며 고생함을 고수(苦愁), 시름을 없애 버림을 소수(消愁), 땔나무는 계수나무와 같고 쌀은 옥과 같이 귀해서 근심이라는 뜻으로 양식과 땔감이 매우 귀하여 생활이 빈곤함을 두고 이르는 말을 계옥지수(桂玉之愁), 얼굴에 가득 찬 수심의 빛을 일컫는 말을 만면수색(滿面愁色), 갖가지 근심과 걱정을 일컫는 말을 만단수심(萬端愁心), 꽃이 울긋불긋하여 정서적이고 감상적인 모양을 일컫는 말을 한자수홍(恨紫愁紅), 눈에 뜨이는 것이 모두 시름겹고 참혹함을 일컫는 말을 만목수참(滿目愁慘), 근심스러운 빛이 얼굴에 가득 차 있음을 이르는 말을 수색만면(愁色滿面) 등에 쓰인다.
▶️ 地(땅 지)는 ❶회의문자로 埅(지), 埊(지), 墬(지), 嶳(지)가 고자(古字)이다. 온누리(也; 큰 뱀의 형상)에 잇달아 흙(土)이 깔려 있다는 뜻을 합(合)한 글자로 땅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地자는 '땅'이나 '대지', '장소'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地자는 土(흙 토)자와 也(어조사 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也자는 주전자를 그린 것이다. 地자는 이렇게 물을 담는 주전자를 그린 也자에 土자를 결합한 것으로 흙과 물이 있는 '땅'을 표현하고 있다. 地자는 잡초가 무성한 곳에서는 뱀을 흔히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대지(土)와 뱀(也)'을 함께 그린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地(지)는 (1)일부 명사(名詞) 뒤에 붙어 그 명사가 뜻하는 그곳임을 나타내는 말 (2)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 명사가 뜻하는 그 옷의 감을 나타냄 (3)사대종(四大種)의 하나 견고를 성(性)으로 하고, 능지(能持)를 용(用)으로 함 등의 뜻으로 ①땅, 대지(大地) ②곳, 장소(場所) ③노정(路程: 목적지까지의 거리) ④논밭 ⑤뭍, 육지(陸地) ⑥영토(領土), 국토(國土) ⑦토지(土地)의 신(神) ⑧처지(處地), 처해 있는 형편 ⑨바탕, 본래(本來)의 성질(性質) ⑩신분(身分), 자리, 문벌(門閥), 지위(地位) ⑪분별(分別), 구별(區別) ⑫다만, 뿐 ⑬살다, 거주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흙 토(土), 땅 곤(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하늘 건(乾), 하늘 천(天)이다. 용례로는 일정한 땅의 구역을 지역(地域), 어느 방면의 땅이나 서울 이외의 지역을 지방(地方), 사람이 살고 있는 땅 덩어리를 지구(地球), 땅의 경계 또는 어떠한 처지나 형편을 지경(地境), 개인이 차지하는 사회적 위치를 지위(地位), 마을이나 산천이나 지역 따위의 이름을 지명(地名), 땅이 흔들리고 갈라지는 지각 변동 현상을 지진(地震), 땅의 위나 이 세상을 지상(地上), 땅의 표면을 지반(地盤), 집터로 집을 지을 땅을 택지(宅地), 건축물이나 도로에 쓰이는 땅을 부지(敷地), 자기가 처해 있는 경우 또는 환경을 처지(處地), 남은 땅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나 희망을 여지(餘地), 토지를 조각조각 나누어서 매겨 놓은 땅의 번호를 번지(番地), 하늘과 땅을 천지(天地), 주택이나 공장 등이 집단을 이루고 있는 일정 구역을 단지(團地), 어떤 일이 벌어진 바로 그 곳을 현지(現地), 바닥이 평평한 땅을 평지(平地), 자기 집을 멀리 떠나 있는 곳을 객지(客地), 땅의 끝과 하늘의 끝을 아울러 이르는 말 또는 서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지각천애(地角天涯), 토지의 크기나 덕이 서로 비슷하다는 뜻으로 서로 조건이 비슷함을 이르는 말을 지추덕제(地醜德齊), 간과 뇌장을 땅에 쏟아낸다는 뜻으로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돌보지 않고 힘을 다함을 이르는 말을 간뇌도지(肝腦塗地),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을 역지사지(易地思之),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몸을 사림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복지부동(伏地不動),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움직이게 한다는 뜻으로 몹시 세상을 놀라게 함을 이르는 말을 경천동지(驚天動地), 하늘 방향이 어디이고 땅의 방향이 어디인지 모른다는 뜻으로 못난 사람이 주책없이 덤벙이는 일 또는 너무 급하여 방향을 잡지 못하고 함부로 날뛰는 일을 이르는 말을 천방지방(天方地方), 하늘과 땅이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물이 오래오래 계속됨을 이르는 말을 천장지구(天長地久), 지진이나 홍수나 태풍 따위와 같이 자연 현상에 의해 빚어지는 재앙을 일컫는 말을 천재지변(天災地變), 육지에서 배를 저으려 한다는 뜻으로 곧 되지 않을 일을 억지로 하고자 함의 비유를 이르는 말을 육지행선(陸地行船), 싸움에 한 번 패하여 땅에 떨어진다는 뜻으로 한 번 싸우다가 여지없이 패하여 다시 일어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일패도지(一敗塗地), 사람은 있는 곳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니 그 환경을 서로 바꾸면 누구나 다 똑같아진다는 말을 역지개연(易地皆然), 발이 실제로 땅에 붙었다는 뜻으로 일 처리 솜씨가 착실함을 말함 또는 행실이 바르고 태도가 성실함을 일컫는 말을 각답실지(脚踏實地), 감격스런 마음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감격무지(感激無地) 등에 쓰인다.
▶️ 慘(참혹할 참, 우울해질 조)은 ❶형성문자로 惨는 간체자, 惨는 속자, 憯, 懆, 㦧, 㿊는 동자이다. 뜻을 나타내는 심방변(忄=心, 㣺;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깨뜨리다, 상처를 내다의 뜻을 갖는 參(참ㆍ삼)으로 이루어졌다. 마음을 상하게 하다, 불쌍한 것, 전(轉)하여 慘酷(참혹)하다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慘자는 '잔혹하다'나 '비참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慘자는 心(마음 심)자와 參(참여할 참)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參자는 사람의 머리 위로 별을 그려 넣은 것으로 '참여하다'나 '간여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간여하다'는 뜻을 가진 參자에 心자가 더해진 慘자는 주위의 불필요한 간여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래서 慘(참, 조)은 ①참혹하다(慘酷--) ②혹독하다(酷毒--) ③비참하다(悲慘--) ④무자비하다(無慈悲--) ⑤아프다 ⑥손상하다(損傷--) ⑦상하게 하다 ⑧해치다(害--) ⑨쇠약해지다(衰弱---) ⑩수척해지다(瘦瘠---) ⑪염려하다(念慮--) ⑫애처롭다 ⑬비통하다(悲痛--) ⑭(사리에)어둡다 ⑮캄캄하다 ⑯춥다 ⑰근심 ⑱상중(喪中) 그리고 ⓐ우울해지다(憂鬱---) ⓑ근심하다(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悲(슬플 비), 暴(사나울 포, 사나울 폭/쬘 폭, 앙상할 박), 毒(독 독, 거북 대), 甚(심할 심), 苛(가혹할 가), 虐(모질 학) 酷(심할 혹) 등이다. 용례로는 딱하고 슬픈 모양을 참담(慘憺), 비참하고 끔찍함 또는 잔인하고 무자비 함을 참혹(慘酷),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일찍 죽음을 참척(慘慽), 딱하고 슬픈 모양을 참담(慘澹), 참혹한 상태를 참상(慘狀), 비참한 일 또는 참혹한 사건을 참사(慘事), 비참한 줄거리의 연극 또는 끔찍한 사건을 참극(慘劇), 참혹하게 패함을 참패(慘敗), 참혹한 소문이나 처참한 풍문을 참문(慘聞), 참혹하게 입은 손해 또는 남을 참혹하게 해침을 참해(慘害), 몸서리칠 정도로 끔찍한 싸움을 참전(慘戰), 물건값이 파는 사람에게 이롭지 못하게 뚝 떨어짐을 참락(慘落), 참혹한 화재를 참화(慘火), 참혹한 흔적이나 참혹한 자취를 참적(慘適), 참혹한 정상에 대하여 놀람을 참악(慘愕), 참혹한 흉년을 참흉(慘凶), 비참한 역사를 참사(慘史),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끔찍함을 참률(慘慄), 끔찍하고 참혹한 광경을 참경(慘景), 몹시 참혹함을 참독(慘毒), 아주 참혹함을 참렬(慘烈), 참혹한 상황을 참황(慘況), 참혹하고 흉악함을 참악(慘惡), 참혹한 변을 참변(慘變), 슬프고 참혹한 모양을 참연(慘然), 참혹하게 죽임을 참살(慘殺), 참혹한 형벌을 참형(慘刑), 참혹하기 짝이 없음을 참절(慘絕), 참혹하게 죽음을 참사(慘死), 참혹한 고통을 참고(慘苦), 참혹한 흉년을 참겸(慘歉),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을 참척(慘慼), 칼이나 창의 예리하게 날카로운 끝을 참봉(慘鋒), 끔찍스럽게 참혹함을 처참(悽慘),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슬프고 끔찍함을 비참(悲慘), 몹시 끔찍함을 무참(無慘), 흉악하고 참혹함을 흉참(凶慘), 몹시 비참함을 수참(愁慘), 몹시 참혹함을 공참(孔慘), 피로하여 괴로워 함을 노참(勞慘), 근심하고 슬퍼함을 상참(傷慘), 놀랍고 비참함을 경참(驚慘), 매우 참절함을 통참(痛慘), 한 해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는 참상을 기참(朞慘), 언행이 패려궂고 참악함을 패참(悖慘), 너무나 참혹하여 차마 말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참불가언(慘不可言),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일찍 죽는 변고를 일컫는 말을 참척지변(慘慽之變), 슬픈 바람과 처참한 비라는 뜻으로 비참한 처지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비풍참우(悲風慘雨), 너무나 참혹하여 차마 눈으로 못 봄을 이르는 말을 참불인견(慘不忍見), 눈에 뜨이는 것이 모두 시름겹고 참혹함을 일컫는 말을 만목수참(滿目愁慘), 몹시 비참함을 일컫는 말을 비절참절(悲絕慘絕), 회화나 시문 등의 제작에 골몰하여 무척 애씀을 일컫는 말을 의장참담(意匠慘憺), 몹시 애를 태우며 근심하거나 걱정을 함을 이르는 말을 고심참담(苦心慘憺)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