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에는 많은 숫자가 등장합니다. 그 중 의미있는 숫자 '40'은 고난과 단련을 상징하고 그것을 극복했을 때 있을 축복을 의미합니다. 지난 12월 7일 있었던 우리 중독기독신우회도 그 과정 중에 속해 있는 걸까요? 글쎄, 모인 숫자가 딱 40명이었습니다. 저는 성경에 나타나는 '40'이란 숫자와 연관된 여러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더군요. 40 주야 장대비가 내린 홍수에서 노아 가족 8명의 구원이 있었고, 모세는 시내산에서 40일 기도한 뒤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름이면 갈 수 있는 가나안 땅을 40년 방황 끝에 들어가게 된 것도 그 의미가 결코 적지 않습니다.
중동고등학교는 잘 알다시피 미션스쿨이 아닙니다. 알려지기는 민족 사학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110년이 넘는 전통 속에서 중동을 거쳐 간 학생 교사들은 우리 현대사에 주춧돌 역할을 담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동 100년사>를 읽어보니 중동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현대사가 제대로 이어오지 못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고비고비마다 중요한 몫을 감당한 사람들 중에 중동과 연관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학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내 세우며 기독신우회를 조직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공부도 사회 그리고 나라와 민족까지도 하나님의 섭리사관 아래 놓고 본다는 것 자체가 민족 사학 중동을 더 빛나게 하는 길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이들이 모여 지난 9월 중동기독신우회를 창립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준비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참 목자이자 민족의 스승으로 일컫는 산돌 손양원 목사님이 우리 중동학교를 다녔다는 사실은 그동안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여수 손양원순교기념관에 기록 전시되어 있는 손 목사님의 연보에 보일 듯 말듯 인쇄되어 있는 것도 눈을 크게 뜨고 보지 않으면 그냥 스치기 십상입니다. 그것을 당시 중동고 총동문회장 백강수 장로가 발견(?)했습니다.
백 회장은 순간 손양원 목사님을 중동 동문으로 확정해야 하는 의무가 마치 자신에게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일을 추진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와 총동문회 임원들 및 크리스찬 동문들이 손을 잡아 생각을 모으고 또 발로 뛰어 2014년 2월 6일 중동고 제107회 졸업식장에서 고 손양원 목사님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하게 했습니다. 명예졸업장을 손 목사님의 큰딸 손동희 권사에게 대신 전함으로써 그는 정식으로 우리 중동 동문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손 목사님 관련 행사를 동문회 기독인 중심으로 개최했습니다. 손양원 목사 세미나를 열고 명예졸업장을 여수 손양원순교기념관에 전달하는 행사를 갖고 그의 출생지이자 어린 시절 신앙생활의 요람이었던 함안 생가와 칠원교회 그리고 기념관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중동기독신우회를 정식으로 발족시키고도 지난 10월 9일 강원도 일원으로 단합소풍을 다녀왔으며 또 11월 20일엔 산동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경남 함안을 방문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곳에는 손양원 목사님의 생가가 복원되어 있었고 또 고장에서 그를 기리는 기념관이 세워져 있습니다. 아마 각계각층에서 보낸 성금으로 내용을 갖춘 기념관이 훌륭하게 건축되어 사람들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 국내 성지 순례지로 자리잡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 중동기독신우회에서는 이런 성지에 손 목사님을 기리는 기념석을 세워 그분이 우리 중동 동문임을 자랑스럽게 내 보일 계획을 잡고 있습니다.
중동기독신우회에 참석해서 우의를 나눈 63회 회원들(좌로부터 신진수 목사, 성용제 권사, 김경생 장로, 전대웅 목사, 이대성 장로)
손양원 목사님은 확실히 민족사학 중동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진동하게 하신 분입니다. 손 목사님으로 인해 중동기독신우회가 태동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분으로 인해 출발한 중동기독신우회인 만큼 손 목사님처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활동으로 이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중동기독신우회가 송년 예배를 드리기로 한 것입니다. 함안을 다녀온 지 보름밖에 안 지났는데 또 신우회 모임을 갖는 것이 은근히 부담된다고 생각하는 회원들이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입니다. 우리의 약속은 회원끼리 한 약속이기도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한 것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당위론은 거스를 수가 없었습니다.
많다는 것은 희소성의 가치를 떨어뜨립니다. 여기엔 모든 것이 해당됩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하나님의 일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12월 7일 사사분기 모임이자 신우회 송년예배를 드리기로 결정하고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백강수 회장님과 황병직 사무총장님을 비롯하여 신우회를 이끌어가는 임원들과 실무적인 연락을 수시로 취해가며 송년 예배를 진척시켰습니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몇 명이 될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중동신우회 밴드와 공동 카톡 방에 행사를 공지했습니다. 이어 일단 저에게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는 신우회 회원들에게 문자로 송년예배 일자와 장소를 공지하고 꼭 참석해 달라고 특별 부탁을 드렸습니다.
참석 여부를 문자로 답장 달라고 특기(特記)했습니다만 반응들이 생각보다 냉랭했습니다. 그래도 한두 명 꾸준히 참석 숫자가 늘어가는 데 의미를 두고 계속 일을 추진하였습니다. 그런데요, 송년 예배 날짜가 다가오자 참석하겠다는 회원들의 수가 급속도로 증가해서 기쁨을 더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분들이 참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또 선물과 식사를 내겠다는 분들도 생겼습니다. 중복되는 약속을 취소하고 참석하겠다는 회원, 부부 동반으로 참석하려고 했으나 피치못할 사정으로 혼자 참석해 미안하다는 회원 등 준비가 생각한 것보다 원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신우회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송년 예배 하루 전 날, 몇몇 분들에게 또 전화를 드렸습니다, 모임은 관계 중심이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같은 기수 어느 분이 참석한다고 하니까 그렇다면 생각을 고쳐 참석하겠다고 했습니다. 신우회 모임도 친목의 성격이 있는 만큼 관계있는 사람들의 참석은 마음을 움직이는 충분한 동기 부여가 되는 듯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참석 예정자가 48명에 이르렀습니다. 감사할 일이지요. 조직의 발전은 참석자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또 줄었다 늘었다 하는 게 아니라 꾸준히 증가할 때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출범식 땐 20 여 명, 가을 소풍 땐 27명, 함안 기념관 방문 땐 30 여 명…. 꾸준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우리 중동기독신우회입니다.
중동기독신우회 송년예배에서 회장 백강수 장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아내와 함께 기차를 타고 상경 중인데도 여러 군데서 전화가 들어왔습니다. 송년 예배에 대한 문의 전화였습니다. 우리가 송년 예배를 드리는 장소는 순복음강남교회. 이곳은 직전 총동문회 회장이자 현 신우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백강수 장로님이 출석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모임 장소가 마땅치 않아 동력이 붙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점에서 우리 중동기독신우회는 작은 축복을 이미 받은 상태에서 모임이 이루어지는 셈입니다.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순복음강남교회'하면 대한민국의 한 복판 강남의 중심지에 자리잡고 있어 여러 가지로 편리합니다. 이동과 주차의 편리함에다 주님의 몸 된 교회라는 상징성까지 담지(擔持)되어 있으니까요.
이날 우리의 행사 시간표는 다음과 같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오후 5시-5시 30분/ 개인적 인사 및 친교, 5시 30분-6시/예배 전 찬양, 6시-7시 30분/예배(특송 및 가야금 연주, 기수별 소개 시간 포함), 7시40분-9시 20분/식탁 교제 시간. 사정에 따라 시간이 다소 변경될 수 있다는 안내 말이 공지 사항 맨 밑에 붙어 있었습니다. 예배 전 찬양이 5시 50분에 시작되었으니까 시간이 약간 지켜지지 않은 게 되지요. 6시 10분까지 그날 참석자 중 맨 막내 격인 박정진 집사(84회)가 찬양을 인도했습니다. 그는 순복음강남교회 안수집사로 국악찬양단을 이끌고 있는 신실한 믿음의 형제입니다. 장소도 그가 총무로 섬기고 있는 갈릴리 찬양대 연습실이었습니다. 십자가를 가운데 하고 작은 강대상이 준비되어 있고 장의자도 100 여 명이 앉을 수 있는 아담한 공간이었습니다. 예배 장소로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참석자들에게 명찰이 배부되었습니다. 문흥식 집사(72회)는 신우회 출범 때 명찰 제작을 담당한 것이 행사가 거듭될수록 그의 고유 업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도 이젠 50대 중반으로 사회에서는 중진의 반열에 들 연치이고 또 큰 회사 대표를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신우회에 참석하여 이런 사소한 일에도 기쁨을 갖고 잘 감내하고 있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런 에너지가 합력해서 신우회의 발전 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얼굴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각자 살아가는 장소는 다르고 또 하는 일과 위치하는 자리는 다르지만 주 안에서 사랑을 나누고 평안을 찾으려는 마음만은 동일했습니다. 저의 인도로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경건한 분위기는 꼭 예배당 안이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모두 품고 있는 천국 사모하는 마음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동기독신우회 송년 예배에서 '야곱의 축복'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한 최광로 목사(72회)
예배의 순서를 대강 명기(明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묵도, 찬송(197장), 기도(이승환 장로, 58회), 성경(창 32:24-32), 설교('야곱의 축복', 최광로 목사, 72회), 찬송(263장), 특송(서명석 집사, 70회/김경생 장로, 63회), 특별연주(임현숙 집사, 박정진 집사 부인), 인사말(회장 백강수 장로, 64회/ 최순영 목사, 60회), 축도(이상현 목사, 60회). 광고 및 기수별 소개(황병직 집사)
꽉 찬 내용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도를 인도한 이승환 장로님은 58회로 고희(故稀)의 연치를 갖고 있는 참석자 중 가장 연장자십니다. 설교를 해 준 최광로 목사님은 러시아로 말씀과 치유 사역을 갔다가 신우회 송년 모임이 있던 이틀 전(12월 5일 밤)에 귀국했습니다. 육신적으로 몹시 피곤했을 터이지만 영적인 힘으로 극복하고 러시아 사역 중 있었던 경험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어 많은 은혜를 주었습니다. 특송을 한 서명석 집사님(70회)은 찬양을 너무 좋아해서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진학 본격적으로 노래를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는 열(熱)과 성(誠)에 영적 소망까지 담아 간절하게 찬양을 불러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김경생 장로님은 언제 어디서든지 믿음의 아들로 부족함이 별로 발견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분입니다. 신우회 모임에 맞춰 일정을 조정 귀국할 만큼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찬양을 잘 하는 편은 못 되지만 즐겨 부른다며 고저 장단(高低長短)을 잘 조정하여 찬양함으로써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실례되는 얘기가 될지 모르지만 저는 서양 음악보다 우리 전통 음악에 더 친근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찬양 전도를 나가서도 꼭 우리 가락으로 전도를 마무리하곤 합니다. '좋은 일이 있으리라',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합니까' 등이 찬양 전도 때 마지막 부르는 전통 가락에 기반한 노래들입니다. 왜 이런 사설(私說)을 늘어놓는가 하면 우리 신우회 송년 예배 때 있었던 특별 가야금 연주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야금 연주로 재능기부를 해 준 사람은 가야금 솔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임현숙 집사님입니다. 그는 박정진 집사(84회)의 부인으로 순복음강남교회 갈릴리찬양단의 리더로 섬기고 있다고 합니다. 원래 강남 사랑의교회에 출석하며 활동했으나 순복음강남교회 박 집사와 결혼함으로 신랑을 따라 교회까지 옮기게 된 사연을 갖고 있습니다.
중동기독신우회 송년예배에 와서 가야금 공연을 해 준 순복음강남교회 임현숙 집사. 임 집사는 박정진 안수집사(84회)의 부인이기도 하다
송년 예배에 특송과 특히 가야금 연주는 우리의 마음을 더 부드럽게 만들었습니다. 모두들 은혜로운 시간이었다며 인사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상현 목사님이 축도를 한 뒤 황병직 사무총장의 광고가 뒤따랐습니다. 그는 장소를 빌려 준 순복음강남교회에 감사의 말을 전한 뒤 몇 가지 광고 내용을 전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오늘 신우회 송년 예배에 참석하신 회원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2.순서를 맡아 수고해 주신 분들께 감사 말씀 전합니다.
3.오늘 신우회 송년 모임을 위해서 좋은 선물을 보내주신 회원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따뜻한 마음을 오래 간직할 것입니다(저녁식사/김명철 장로, 휴대용충전기/백강수 장로, 유나이티드 비누와 달력/강덕영 장로).
4.신년 1월 16일(토) 여수에서 유나이티드 문화재단 주관으로 손양원기념음악회가 열립니다. 많은 참석을 바랍니다.
5.함안 손양원기념관 기념석 설치는 세울 위치(位置), 석재(石材), 문구(文句) 등을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곧 구체화 될 것 같은데 따로 보고하는 시간이 있을 줄 압니다.
중동기독신우회 송년 예배 마치고 참석자들이 찍은 단체 사진
기수 별 소개된 참석자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두 40명입니다. 귀한 숫자에 귀한 주의 종들이어서 여기에 일일이 이름을 올려놓습니다(위 기수부터 차례대로, 기수별 배치는 가나다 순, 괄호 안 숫자는 기수별 참석자 수)
58회 이승환 장로(1)
60회 박노화 집사, 이상현 목사, 최순영 목사(3)
63회 김경생 장로, 성용제 권사, 신진수 목사, 이대성 장로, 전대웅 목사 부부(6)
64회 가흥래 안수집사, 강경근 목사, 강영린 안수집사, 김형호 집사, 백강수 장로 부부, 송우용 안수집사(7)
65회 이성환 장로(1)
67회 김기혁 집사, 장인수 안수집사, 편남영 집사, 황병직 집사(4)
68회 김태일 집사(1)
69회 김근호 집사(1)
70회 김동진 장로, 백정현 장로, 서명석 집사, 양승관 집사, 이명재 목사 부부, 황영훈 목사(7)
71회 기요한 목사 부부(2)
72회 김용철 장로, 김재호 안수집사, 문흥식 안수집사, 최광로 목사(4)
76회 왕덕봉 목사(1)
84회 박정진 안수집사 부부(2)
믿음의 사람들은 만나는 것 자체가 기쁨입니다. 식탁 교제의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랑은 먹음에서 비롯되는 것인가요. 저녁 식사는 김명철 장로님(64회)이 대접하는 것입니다. 근처 음식점을 찾았습니다. 보성 갈비 2층에 40 여 명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강경근 목사님(64회)의 식사 기도로 우리의 식탁 교제가 시작되었습니다. 할 말도 많고 물어 볼 일도 많았습니다. 이런 때를 놓치면 우리의 40-50년은 그냥 덮여 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처음 참석한 분들이 조금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송년 예배를 은혜의 시간이었다는 말로 요약했습니다. 최순영 목사님(60회)은 중동 정신은 사자 정신인데, 주님의 일을 위해 중동기독신우회가 사자와 같은 적극적인 활동을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계속 함께 하겠다는 약속도 했습니다. 사회가 험하게 자꾸 변해 갑니다. 갑갑한 현실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터널을 어떻게 뚫고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는 한 우리의 소망은 소멸되지 않습니다. 40명이 참석해서 드린 중동신우회 송년 예배에서 그 소망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할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