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뉴에이지 운동의 정체III
/""""""
/""""""
/""""""
/""""""
_____________/""""""//////////////////////////////////////////////////////////
I. 뉴에이지 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
서방 사회의 정신세계는 특별한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 서방세계의 정신적, 영적 생활의 지주 역할을 하여 온 것이 이른바 유태교-기독교(Judeo - Christian)의 영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2천년 역사를 내려오는 동안 여러 가지 굴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서방 기독교가 그들의 정신생활의 구심점이 되었고 구심력 역할을 하여 왔다. 그런데 지금에 이르러 당면한 문제가 우리의 관심을 끌게 되는 것은 이와 같이 오랫동안 기독교의 영향 밑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선교하는데 앞장섰고, 특히 지난 2,3백년 동안은 선교하는 일에 온갖 힘을 집중하여 힘써 온 서방세계 내의 정신문화와 종교 생활 가운데 염려할 만한 질병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고 이것은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에게 어떤 질병이 있게 될 때 그들의 영향을 직접 간접으로 받아 온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가 일어날 것이냐 하는 점은 너무나 분명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서방 국가의 정신세계의 약화나 몰락 현상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른바 뉴에이지운동의 발생의 원인을 생각할 때 미국 사회 현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뉴에이지운동의 사상적 배경은 1,2백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미국에서 표면화하기 시작하여 대중 속에 (교회를 포함)깊이 파고들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로 볼 수 있다. 1960년대 중반에 아시아인들에 대한 미국 이민법의 개정으로 많은 아시아 사람들의 이민 붐(boom)이 일어나게 되었다. 잘 아는 대로 이민법 개정의 결과로 수많은 한국 사람들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 이민들 가운데는 특히 힌두교 계통의 종교 지도자들(Guru)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은 미국에서 적극적인 포교에 나섰다. 대표적인 인물은 다음과 같다. ⌈크리슈나 무르티, 마하리쉬 마헤시 요기, 메허바바, 요가난다, 라즈니쉬, 스즈끼⌋등이다. 미국 안에는 그렇지 않아도 기성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약화되어 가고 있고, 아울러 이것은 전통 가치관과 윤리관의 몰락, 폭력과 마약의 성행, 그리고 한계를 모르는 자유와 욕망의 세계 등, 정신적 영적으로 지칠 대로 지친 서방세계, 특히 미국 사회에 새로운 관심이 아니될 수 없었다.
여러 계층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이른바 동방 종교들(동방영성등)에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뉴에이지운동은 현대인의 복잡다단한 문제를 해결하여 줌으로써 만족을 줄 수 있는 길을 동방 종교 사상과 그 세계관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며, 2천년 동안 이끌어 온 유대교-기독교 중심의 서양 세계관에 깊은 회의를 나타낸다.
출발점의 기초를 힌두교에 둔다고 말하는데 필자의 견해로는 그 이상 더 넓은 폭을 가졌다고 본다. 어쨌든 뉴에이지운동의 가르침의 주요 부분은 힌두교의 범신론적 교리를 짙게 풍기고 있으며 여러 가지 사상(동학 사상 참고)과 복합된 혼합성을 지니고 있다.
뉴에이지 운동이 구체적으로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은 1875년 뉴욕에서 러시아 여인 헬레나 페트로바 블래바츠키에 의한 『신지식 협회』 또는 『접신학 협회』의 창립이었다.
‘신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의미로써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지혜는 “모든 종교안에서 발견될 수 있으며 모든 종교는 그들 사이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진리”를 가지고 있어서 하나의 통일된 종교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기본 명제이었다.
II. 뉴에이지 운동이란 무엇인가?
『이 뉴에이지운동이라는 것은 영적인, 사회적인, 정치적인 것의 혼합체이며 사회학, 신학 그리고 순수 과학을 다 포괄하고 있는 운동이다. 또한 그것은 의학이나 인류학, 역사학까지도 포괄하는 운동이며, 인간의 잠재력을 중요시하는 운동 가운데 하나요, 스포츠, 공상과학소설, 영화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운동이다.』
이 운동을 신봉하는 사람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이렇다.
『이 세계는 심오한 돌파구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낡고 오래된 사고방식에 젖어 왔다. 이 세계는 아주 혁명적인 사고의 변화(전환)가 일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사고의 전환이 앞으로 계속해서 일어나게 되면 20년 후, 이 세상엔 평화와 번영이 찾아올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옛 윤리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뉴에이지운동에 입각하여 새롭게 선과 악을 구분하는 사고를 갖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발행된 한 잡지는 이 뉴에이지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것은 일종의 종교이다. 그것은 기독교와도 어느 정도 희미한 연관을 갖고 있고 또한 동양의 여러 신비 종교와 연관을 갖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마술이나 범신론도 관련되어 이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를 도래시키기 위해서 합리적인 사고를 다 벗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도의 기술 문명을 배제시킨다. 그 사람들은 우리에게 특별한 통찰력이 생겨서 이 우주와 특별한 접촉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와같이 뉴에이지가 도래하게 되면 모든 사람에게 행복이 주어지고 번영이 약속된다고 주장한다.』
뉴에이지 운동이란 한마디로 서양의 세속적인 인본주의와 동양의 고대 신비주의적인 인본주의 운동을 통해서 하나님과 관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없이 인간성의 회복과 참된 평화, 그리고 참된 행복이 실현되는 새로운 시대를 이룩하려는 범세계적인 종교 운동이다.
뉴에이지운동의 가르침의 내용 가운데 몇 가지 중요한 점만을 추려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첫째, 그들은 ‘모든 것은 하나(All is one)’라는 주장을 한다. 인간, 동물, 식물, 책상 등 모든 것은 하나이고 동시에 그것들은 하나의 여러 측면이라고 말한다.
둘째, ‘모든 것이 신(All is God)’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크리스챤이 믿는 것처럼 유일한 분,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이고 동시에 신이다.(범신론)”라고 말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에 이상이 생기도록 한다. 사실, 뉴에이지운동 자체는 이른바 일원론(Monism)인데 모든 것은 하나요 한 개의 원천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신은 모두요, 모두는 신이라는 뜻이다. 즉, 모든 인간은 신인데, 바로 “당신은 신이다”라는 말이 된다. 이런 주장은 창세기 3:5절에서 처음 인간을 유혹한 뱀을 연상할 수 있는데, 하나님처럼 되기 위하여 인간을 유혹한 것이다. 즉 하나님처럼 되기 위하여 그의 명하심을 거역했다는 말이다.
셋째, ‘모든 인간은 신’이라고 주장한다. 당신도 신이고 나도 신이고 모두가 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맥클레인이라는 여배우는 세미나에 나가서 “나는 신이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당신은 다른 어떤 신을 경배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바로 신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이다.
사도행전 12장 내용을 보면 21절 이하에, 사람이면서 신이라고 추앙 받는 한 인물의 종말을 보게 된다.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행12:21-24).⌋
넷째,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계몽’이다. 우리 모두는 신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게 되면 이것을 얼마든지 삶 속에서 적용할 수 있게 되고 우리가 사업하는데 성공할 수 있게 되고 우리가 하는 사업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이 사업하는데 성공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병들었을 때도 그렇게 염려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지금보다도 더 나은 세계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바로 무제한적인 인간의 잠재력이 표출되는 그런 세계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 세계에서는 우리 각 사람이 자기가 따라야 할 도덕을 정하는 자기 중심적인 도덕이 있는 세계이다. 그 세계는 우리가 어떤 것을 상상하기만 하면 그것은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다섯째, 뉴에이지운동의 가르침 가운데, 『모든 인간은 다시 난다』 곧 윤회한다는 것이 있다. 이 윤회설은 불교나 힌두교에서 가르쳐 온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인간이 죽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으로 끝장인가. 어떤 형태로 계속될 것인가 또다시 이생으로 환원할 수 있을 것인가. 이른바 환생금세(還生今世)라는 것이다.
뉴에이지운동의 중요한 관심을 차지하는 것은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정신세계와 물질 세계, 이생과 저생의 연결 혹은 어떤 신적인 황홀경이나 신비경의 체험, 무아 상태에 이른 것을 시행하는 이른바 차넬링(channeling)이라는 것이다. 무속 종교에서 언급하는 무당, 점술사, 치병자, 마술사, 샤만 등과 비교할 수 있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뉴에이지운동에서 이러한 중매자의 사상은 가장 위험스런 사상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에는 중보자, 중매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특별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로서, 다른 사람이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는 사람들이며, 마치 점쟁이나 동양 종교에서 말하는 스승(구루)에 해당된다. 그래서 어떤 신봉자들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무조건 다 믿으며, 그것이 궁극적으로 진리인 것처럼 따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성경을 보면 이와 같은 중매자들에 대해서 굉장히 경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은 이런 중매자들이 하는 이야기는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진리라고 선언한다.
또한 여섯번째로 뉴에이지운동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깨우침을 약속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깨우침을 얻을 필요가 없이 그들 세미나에 가면 생명력 있는 어떤 세력에 접붙임을 받아서 여러분도 생명력을 얻게 된다고 말한다.
일곱 번째, 그들은 합리적인 생각 없이도 얼마든지 성숙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열심히 일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개발하면 할수록 사람은 점점 성숙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뉴에이지운동에서는 그런 것은 필요없다고 말한다. 생각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성숙할 수 있다고 말한다.
끝으로 그들은 고난 또는 실재가 없는 낙관주의를 주장한다. 낙관주의적 사고만 가지면 되지 현실주의적이 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이것은 동양의 신비주의가 서양의 옷을 입은 모습이다.
III. 뉴에이지 운동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
뉴이지 운동은 사회 전반에 걸쳐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체적으로 볼 때 이것은 주로 잠재력의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한 예를 비즈니스 세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비즈니스계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뉴에이지운동'의 원리를 이용한다. 그들은 세미나 방에 모여 명상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잠재력을 개발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명상하는 것이 아니라 환상 속에 빠져드는 자아 개발이란 점에서 매우 위험한 접근이라 하겠다.그들은 우리 속에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로버트 슐러라는 사람은 어떤 '가능성 있는 사고'를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는 어떤 것이든 계속 상상하면 결국에는 그것이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다. 슐러의 ‘적극적인 사고방식’속에는 상당히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슐러의 가르침 가운데 어떤 부분에 비판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것을 계속 상상하면 그것이 성취된다는 약속이 성경에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상을 아무리 해도 성취되지 않은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그는 좋은 면과 긍정적인 면만을 강조하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반면에 제자로서 치뤄야할 값이라든지 회개해야 할 측면들은 언급하지 않는다. 슐러를 뉴에이지운동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고는 절대로 생각지 않지만, 뉴에이지적인 사고방식이 슐러의 가르침 속에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초월 명상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나타낸다. 여기에는 힌두교적 요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어느 하버드 대학 교수가 사람들이 초월 명상을 통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기도 하였지만, 크리스챤은 초월 명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명상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을 비우는 것이란 점에서 한치의 양보 없이 반대해야만 한다. 개인적으로는 나도 여러분이 초월명상에 빠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 생각한다. 또한 아브라함 메슬러라는 사람도 우리의 잠재력을 최대로 살려서 개발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자기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작업하고 격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메슬러의 사고에서는 죄와 회개를 찾아볼 수 없다. 인격적이고 전능한 하나님은 더군다나 찾아볼 수 없다. 셜리 맥클레인이라는 뉴에이지운동 지도자는 자주 세미나를 통해 인간의 잠재력에 대해 말한다. 자아실현이란 자아를 최대한 개발하자는 것인데, 맥클레인의 자아 개발은 모든 주장의 핵심에 하나님이 빠지고 인간이 그 중심에 놓여 있다. 물론 크리스챤으로서 그 사람의 잠재력을 개발하도록 격려하고 도울 필요는 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챤은 성령께서 우리 속에 살아 계시고 우리에게 힘을 공급하며, 우리로 하여금 죄를 멀리하고 은사를 주어 그 은사의 활용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데 사용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아의 잠재력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잠재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 속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개발시키고 우리를 도와서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는 그런 인물이 되도록 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IV. 뉴에이지 운동이 크리스챤에게 끼치는 영향과 위험성
이 운동이 크리스챤에게 위험한 첫 번째 이유는 그리스도가 없는 복음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에게 헌신함이 없이도 우리가 얼마든지 해방되고 자유롭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는 회개나 중생이 없이도 얼마든지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약속한다. 죄를 믿지 않으니까 죄를 용서해 달라는 요청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뉴에이지운동 세미나에 참석하면 여러분의 사고가 완전히 전환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죄를 속죄 받을 필요가 전혀 없게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세 번째로 뉴에이지운동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깨우침을 약속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깨우침을 얻을 필요가 없이 그들 세미나에 가면 아까 말한 생명력 있는 어떤 세력에 접붙임을 받아서 여러분도 생명력을 얻게 된다고 말한다.
V. 대중 문화 속에 나타난 뉴에이지 운동
뉴에이지 운동은 처음에 반전, 반핵, 군축, 평화 운동등을 기치로 걸고 사람들의 관심을 끈 다음 건강 생활 프로그램을 앞세워 사회 각계 각층에 침투해 들어갔다. 최근 뉴에이지 운동가들은 자연보호 활동을 내걸고 활동하고 있다. 물론 이것 자체로는 아무 문제가 없을 지 모르나 그들이 생각하는 자연이란 ⌈인간이 섬겨야 되는 존재⌋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은 이러한 인식을 용납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1) 의식을 통한 침투
(1) 철학
대표적으로 초현실주의라고 하는 포스트 모더니즘(Post Mordenism) 철학이다.이것은 부조화의 조화가 특징이고 이것은 기존의 가치 체계를 부정할 뿐 아니라, 가치의 절대 진리를 부정하고 다원주의 시대로의 새로운 시대의 의식을 형성시키고 있다.
(2) 신학
포스트 모더니즘 신학, 이것은 종교 보편주의와 종교 다원주의를 주장한다. 특히 이 신학은 기독교의 절대주의에서 상대주의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 사상에서 인간의 절대 주권 사상으로 변질시키고 있으며, 다른 종교에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미지의 그리스도 의식”을 심어 주고 있다.
(3) 대체 종교
대체 종교로 대학생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선, 단, 역학, 그리고 요가 등을 내용으로 한 써클 등이 있다. 그리고 힌두교들이 하는 요가 훈련이나 선불교에서 행하는 좌선, TM, 마인드 컨트롤, 명상, 등 여러 가지를 하게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른바 의식 훈련의 중요성과 정신 통일을 중요시하는 다음의 신비 명상 센터들이 있다. 한국 TM 센터(창조 지성 학회), 실바 마인드 콘트롤 한국 본부(한국 정신 조절 연구회), HCP(Cosmic Power)연구소, 스핑크스 체질 개선회, ESP과학 연구소, 라즈니쉬 명상 모임, 한국 라에리안 협회등 명상 모임 센터들, 사주 명리학의 한국 역술인 협회등.
2) 문화를 통한 침투
(1)영화
패트릭 스웨이지가 주연한 『사랑과 영혼』, 캐빈 코스트너 주연의 『꿈의 구장』, 그외 주술적이고 반 윤리적인 요소가 내포되어 있는 『사랑의 기쁨』, 『영혼의 목걸이』, 홍콩의 『강시』, 『천녀유혼』등의 귀신 영화, 『엑소시스트』를 소재로한 심령 주술과 같은 『나이트 메어』와 같은 공포의 악마 영화, 『양들의 침묵』, 『13일의 금요일』과 같은 공포 영화, 『택시 드라이버』와 같은 폭력 영화, 『터미네이터』와 같은 폭력 S.F영화 등이 있고 영화 감독으로는 『스타워즈』의 ⌈죠지 루카스⌋, 『E.T』, 『제 3의 방문객』,『백 투 더 퓨쳐』, 『인디아나 죤스』 시리즈의 ⌈스티븐 스필버그⌋감독 등이 있다.
(2) T.V
뉴에이지의 마법이나 악마 숭배 사상을 표방하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그 예로 진화론의 표본을 보여주는 『환타지아』, 『개구장이 스머프』의 파파 스머프의 악을 막기 위한 주문, 『우주 정복자 히맨』에서의 피라밋, 수정의 힘, 뱀, 사탄을 상징하는 수양의 머리, 해골, 마녀의 주문 등과 해골 인간, 마법사, 동물 인간, 반인 반조 등이 있다. 그리고 코카인의 사용을 미화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만화 『마이티 마우스』. 성인을 대상으로는 『늑대와 미녀』, 『미녀와 야수』 같은 귀신과 인간의 만남, 인간과 동물의 만남 등을 소재로 한 프로들이 있다.
(3) 음악
음악적인 면에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예전의 비틀즈의 리더였던 존 레논은 그가 힌두교의 구루와 같이 찍은 사진을 비롯, 많은 노래에 뉴에이지적인 사상을 심었고, 또 1979년 뉴스위크지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언젠가 나는 완전해져서 인간적인 존재도 아닐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될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과거의 하드락이나 헤비메탈과는 다른 명상을 돕기 위한 음악 기법이 나왔고 이것은 뉴에이지 운동의 등장에 의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음악들의 특징은 주로 가사가 없이 상상력과 직관을 주관하는 오른쪽 뇌를 자극시키는 것이다. 그 외에도 프로그레시브나 환경 음악, 명상 음악, 태교 음악, 힌두교 구루의 우주의 음악들이 이 계열에 속하는 데 대표적인 음반 회사로는 윈드햄 힐과 나라다 레이블이 있고 국내에는 심포니사(社)가 윈드햄 힐의 뉴에이지 음악을 전문적으로 출반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죠지 윈스턴의 『December』, 마이클 죤스의 『After The Rain』, 데이빗 렌쯔, 반젤리스, 소지로, 기따로 등이 있다.
(4) 출판물
뉴에이지의 잠재의식을 전함에 있어서 충실한 매개체의 역활을 담당하는 것으로는 출판물을 빼놓을 수 없다. 200백만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한 라즈니쉬의 『배꼽』, 작가 이 외수의 『벽오 적벽도』, 무학도인의 이야기를 담은 『단』, 그 외 『성경 속의 참 진리』, 『우주인과 예수』, 『부시맨의 하나님』, 『성서 속의 붓다』, 『성서 밖의 예수』, 『성자가 된 청소부』, 『빵장수 야곱』, 『꼬마 성자』, 『빠빠라기』, 『어느 꼬마의 마루밑 이야기』, 일본의 작가 도리야마 아끼로의 『드래곤 볼』, 『북두 신권』등과 심령 기법을 다룬 『초월 명산 입문』, 『마인드 콘트롤 입문』, 『명상의 세계』, 『요가』등의 책과 이와 같은 맥락의 미래학 서적 『2000년의 신세계 질서』, 『메가트랜드 2000』등이 있다. 이러한 종류의 책들은 대개 정신 세계사나 고려원, 장원, 김영사, 서림 문화사등에서 펴내고 있으며 공공연히 다음과 같은 문구로써 뉴에이지 운동을 알리고 있다. “영혼의 스승들 소개, 명상 수행을 통한 깨달음, 삶의 지혜, 새로운 세계로의 열림, 영혼과 초자연의 세계”등이다.
(5) 예술
하나님의 일반 은총으로 인간을 기쁘게 하기 위한 예술의 원래 목적과는 다르게 사탄에 의해 조정 받고 있는 것도 있다. 한 예로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죽음을 새롭게 해석하는 『그 연인에 울다』라는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연극등이 있다.
(6) 정치 조직
정치 조직으로 U.N 삼각 위원회, 외교 관계 위원회, 아스펙 인류학 연구회, 로마클럽, 프리 메이슨, 일루미나이트 결사조직, 장미 기사회, 록펠러 재단, 핀드혼 재단, 포드재단, 빌더버그 그룹 등과 공동체로써 스텐리, 라즈니쉬 공동체 등이 있다.
VI. 교회 내에 숨어 있는 뉴에이지적인 요소들
1) Kerygma(말씀 선포가 중심이 된 예배) 측면에서
(1) 말씀(설교)
어느 교회이든 그 교회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강단에서의 설교의 내용이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나라는 점차로 경제 성장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고 아울러 교회도 그 영역을 넓혀 나가기 시작했다. 교세가 확장되면서 교회는 교회 성장에 관심을 쏟게 됐고 특히 오순절 계통의 교회가 세계적으로 또 국내적으로 관심과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이 때 강력하게 주창된 것이 “적극적 사고 방식(Positive Thinking)”이었고 이것은 아직까지 위세를 떨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전래의 소극적인 자세에서 바뀌어 ‘우리도 할 수 있다’ 라는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적극적 사고 방식”은 심리학에서 다루게 되는 잠재력 개발의 대표적 유형이고 인간 잠재력 운동(Human Potential Movement)은 뉴에이지사상의 기본 골격을 이루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세상에서 성공의 기본 명제로 되어 있는 PMA(Positive Mental Attitude - 긍정적 정신요소)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논제에서 주의를 요하는 것은 심리학적인 요소로서의 ‘자기 암시’ 또는 ‘자기최면’과 흡사한 ‘정신력’과 기독교 신앙에서 말하고 있는 ‘믿음’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뉴에이저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신비주의적 요소로서의 ‘우주 정신’ 즉 어떤 초자연적인 힘(Force)이나 정신력(Mind Powers), 또는 심령력(Psychic Powers)과 교회에서의 성령의 권능(The Power of the Spirit)을 혼동하는데서 오는 오류와도 같다.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히 분별하여 짚고 넘어가야 될 것은 신앙(信仰)과 신념(信念)의 구별이다.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푯대로 바라보는 -仰- 믿음으로서의 신앙(信仰)이며, 결코 인간의 지혜로서 생각하고 정신 통일하여 -念- 어떤 의지적 발산에의 힘(念力)을 믿는 신념(信念)이 아니다. 이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만이 하나님 중심주의인 ‘신본주의’와 인간 중심주의인 ‘인본주의’를 분별할 수 있는 힘다운 힘 즉 진리의 힘, 성령의 힘을 덧입을 수 있는 것이다.
(2) 기도
기도란 나의 뜻을 하늘 아버지께 굴복시킨 채 (주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처럼) 내 삶의 모든 것 안에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조용히 자리를 내 드리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보이는 현상에만 급급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사랑을 요구하기보다는 당장 보이는 그 무엇을 요구하게 된다. 자신의 머리 속으로 자신이 갖고자 하는 모든 것을 청사진으로 그려 놓고 기도의 맨 끝에 결재만 해 주십사고 ‘믿습니다!’로 끝나 버리는 것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이기적 요구일 뿐이지 하나님과의 대화가 될 수 없다. 이럴 경우 어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기도의 응답이라는 것은 대부분 자기의 신념과 의지에 따른 노력의 결과이지 하늘로부터의 능력을 덧입은 기적의 축복을 체험하는 것은 아니다. 방언 기도 역시 성령께서 자신의 입술을 주장하여 말하게 하는 것인데, 만일 어느 누가 자신의 뜻하는 바에 따라 방언을 자유자재로 한다면 이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그 어떤 다른 것일 수가 있다. 성령은 절대 주권자로서의 영이지 결코 인간에 의해 부려지는 영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방언은 결코 인위적인 방법에 의해 배우거나 또는 전수받을 수 없다.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해서만이 가능할 뿐인 것이다.
(3) 찬양
전에는 세속 문화에 대한 대응으로 기독교 문화가 없었던 터에 교회는 많은 젊은이들을 세상에 빼앗겨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웬만한 교회에는 거의 청년회가 구성되어 있고 찬양팀이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기독교의 핵심 교리인 십자가와 부활에 있어 한국 동란을 전후한 전전(戰前)2세대에서의 십자가의 고난이 약화되고, 전후(戰後)세대로 내려와 부활 찬송만이 강조되어 신앙(또는 신학)의 흐름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이 경우 찬양 역시 위의 설교에서처럼 ‘고난의 신학(십자가의 신학)’은 없어져 버리고 모든 것이 세상의 가치관과 동일하게 ‘성공의 법칙’에만 귀결되어 ‘고난의 주’는 보이지 않고 ‘왕되신 주’만 나타나므로 결국은 신앙의 약화를 가져오게 된다.
2) Diake(교육) 측면에서
(1) 주일 학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주일학교의 교재 내용은 거의 프로그램 중심이며, 언뜻 보면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는 듯하나 실상은 예수님보다는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의 주일학교 교육을 보면 거기엔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고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신 그 고맙고 거룩하신 ‘구세주 주님’은 아니 보이시고 언제나 코흘리개 아이들의 친구나 되어 주고 계신 ‘친구 예수님’만 존재하고 계신다. 아이들로 하여금 십자가의 주님을 올려다보는 훈련과 교육이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 즉 ‘예수님을 위한 어린이’를 길러야 한다.
(2) 중․고등부 학생회
오늘의 청소년 교육의 시급성은 위험 수위의 상한선에 육박해 있는 실정이다. 특별히 대학 입시에 대한 문제는 교회 안에서도 심각한 상황이다. 사회에서 믿지 않는 가정의 자녀들이나 별로 큰 차이가 없다. 이것은 ‘실제적 무신론(實際的 無神論)’이다. 하늘에 소망을 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세상의 성공관이나 가치관을 그대로 따르고자 하는, 그래서 입으로는 주(主)를 찾지만 실제로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지 않는 것이다. 뉴에이저들은 사람들의 마음에 하늘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을 가장 싫어하며, 선과 악 또는 천국과 지옥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여 내세관을 변질시켜 이 땅위에 참다운 낙원을 세우자고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인간의 성공과 번영을 강조하고, 윤회설에 기초하였기 때문에 앞으로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대학 입시에 대한 또 다른 태도는 특별히 입시철이 되어 합격을 기원하는 ‘특별 기도회’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세속적인 성공관을 부채질하는 것이다. 오히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채 실업계 학교를 나와 사회의 일원으로 일하게 되는 사회 진출반 학생들을 더욱 용기와 위로의 말로 북돋아 주는 것이 훨씬 더 그리스도다운 성서적 방법이 될 것이다.
(3) 성경 공부
한국 교회의 성장 요인 중 성경 공부 활성화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과거 부흥회 스타일의 신비주의적 또는 감정적 열기로 인한 파급 효과에 있어서도 한국 교회가 크게 흔들림없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신학적으로 잘 정립이 되어 있는 젊은 목회자들이 그들의 활동을 말씀 중심의 성경 공부로 전개함으로써 적절한 조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의 문제로 제기된 것은 이러한 성경 공부의 교재가 거의가 외국의 것을 그대로 받아 들인 것이고 성경 공부의 주된 대상이 젊은 층(주로 대학생 위주)이었기 때문에 그 내용이 주로 증명 논리의 합산인 ‘귀납적인 방법’이었고, 이것은 결국 과학적 사고의 합리주의적 이해력은 도모할 수 있었으나 가슴이 아닌 머리로 채워진 신앙 교육이 되버려 이론적으로는 무장이 되어 있지만 실제적 적용면에 있어서는 그 취약성이 드러나 기성교인의 지지도를 잃게 되었다. 천국 시민은 특히 젊은 청년들은 ‘가다가 와 보니까 천국’식의 신앙이 아니라, 즉 여러 가지 상황들 속에서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발견하고 논증되어진 결과로서의 ‘귀납적인 믿음’이 아니라, 결과로서의 믿음을 대전제로 하여 그 말씀을 우리 삶속에 적용해 나가는, 그러므로하여 자연히 검증되어지는 ‘연역적인 믿음’으로 환원되어져야 한다.
(4) 평가회
여름 수련회, 하기봉사회, 또는 학생들의 ‘문학의 밤’ 등의 꽤 굵직한 교회 행사가 끝나면 대부분의 교회는 의례적으로 자신의 일들을 돌아보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자는 그래서 다음의 행사에 반영하자는 식의 ‘자체 평가회’를 갖는다.
교회의 일은 하나님의 일이고, 하나님의 일은 영적인 일이며 이 영적인 일은 사람의 머리로써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빌려서 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이 영적인 일마저도 세상적인 방법으로 하려 하였기 때문에 번번히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세상일은 그렇지만 하나님의 일은 그렇지 아니하다. 하나님의 일은 기도로써 시작하고 기도로써 끝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성령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고 성령의 도우심은 기도로써 간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사를 시작하기 전에 철저한 기도가 있어야 하고 행사중에도 철저히 하나님의 손에 의탁하는 기도와 마음으로 임한 후에 일단 행사가 끝나면 다만 하나님께 감사로써 영광을 돌릴 뿐이다. 그런데도 가볍게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에 대해 평가토록 하는 것은 결국 기도의 능력보다는 사람의 판단력을 더 신뢰하는 결과로 되고 만다. 이것은 심리학적인 접근이다. 뉴에이저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이러한 심리적인 방법으로 심령술을 이용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예 인간의 이성(理性)을 초월하는 신비주의적 방법으로써, ‘평가회’는 심리적 방법이며 이는 하나님께 기도로 의존하는 믿음 자체를 회의하며 부인토록 하게 하는 술책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로 준비하고 믿음의 눈으로 결과를 지켜보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요일 3:21-22)
3) Diakonia(봉사, 전도)측면에서
(1) 봉사
먼저 누가복음 10장을 보자.
열심으로 주의 일에 봉사하는 교인이 결코 문제될 수 없다. 문제는 그 열심이라는 것이 어떤 종류의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인간의 뜻에 의한 ‘인간의 열심’일 때, 그 열심은 결국 다른 사람마저 자신의 뜻에 따르도록 강요하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비협조하는 것처럼 여겨져 분란과 불화를 일으키고 말게 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말한 것과 같은 ‘하나님의 열심(고후 11:2)’으로 자신도 아닌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하여 내는 열심이라면 그 열심은 마땅히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아울러 다른 사람에게도 덕을 끼치며 유익을 가져오게 하는 결과를 만든다. 문제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열심 내는 ‘인간의 열심’인 것이다. 이러한 인간적 열심의 봉사는 결국 교회 내에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데, 이는 자칫하면 ‘율법주의(Leagalism)’에 빠져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게 되는 잘못을 범하기 쉽다. 또 이러한 열심은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지 못하고 자신의 의지를 앞세워 하는 것이므로 일을 하면 할 수록 기쁨이 없는 채 힘만 들고 그 결과는 스스로 힘에 지쳐 짜증을 내게 되며 자신의 일을 돌아보기보다는 남의 일에 간섭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열심으로 일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 이는 결코 자신의 뜻이나 방법을 주장하지 아니하며 다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성령의 바람부는대로 움직여진 ‘노아의 방주’와도 같이 언제나 화평을 도모하며 일을 해 나가는 것이다.
(2) 전도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전도하자’라는 말이 있다. 열두 제자들이나 또는 칠십인의 제자들을 전도하러 내보낼 때, 또 스데반의 순교 후에 그리스도인들은 그 핍박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흩어져 복음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행 8:4, 11:19-21). 그러나 사도 시대와는 달리 요즘은 교회들이 선교(전도)를 위해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을 모은다는 생각으로 서로 모여 하나의 공통된 움직임을 이뤄 보고자 하는 교회 일치 운동(敎會 一致運動)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교회들끼리 서로 반목하고 흩어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우리가 이 점에 주의해야 할 것은 뉴에이저들이 노리고 있는 목표는 세계가 하나로 되는 ‘단일 세계 정부’이고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 먼저 종교가 하나되도록 하는 ‘세계 교회 일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며 이러한 단계적 방법을 통해 결국 적그리스도가 등장하여 세계를 다스리게 된다는 것이며, 바로 이렇게 될 때 이 셰상은 비로소 ‘새시대(New Age)’가 열린다는 것이다. 위의 예로 보건대, 전도(선교)의 이름 아래 교회 연합 선교운동을 벌이고 있는 단체 및 개인들은 하나님의 절대주의와 그 신권(神權)의 회복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인간의 행복을 위한 인권(人權)쟁취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일하는 ‘신이성주의(Neo-Rationalism)’자들이거나, 아니면 ‘신비주의(Mysticism)’자들이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들이 결코 뉴에이지의 반기독교적 해악성을 말하지 않을 뿐더러 전혀 뉴에이지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뉴에이지에 관한 ‘영분별’의 일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도 없거니와 알지도 못하고, 또 어느 정도 알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기독교에 미치는 해악성이나 그 문제점을 전혀 인식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4) Koinonia(성도의 교제)측면에서
(1) 감수성 훈련(Sensitivity Training)
‘인간 관계 훈련’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성도의 교제를 이룸에 있어서 서로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이 훈련을 통해 친교의 첫 번째 장애벽인 어색함이나 서먹한 분위기를 깨뜨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서로가 친숙하기 위한 분위기의 어색함을 깨뜨려 주는 역할은 잠시 될 수가 있으나, 서로가 그리스도안에서 동질화(同質化)되는 ‘참 교제로서의 장(場)’으로 극복케 하는 것은 못된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심리적 요법중의 하나로 ‘집단 요법(Group Therapy)’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고 이 역시 위(하늘)로부터의 능력을 입은 변화가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잠재된 그 무엇을 끄집어내는 것에 불과하므로 그 당시에는 어떤 새로움을 맛보게 되지만, 어느 정도의 훈련 기간이 지나면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결국 더욱 깊은 육체적 접촉을 통해 또 다른 경험을 갖기 원하는데, 이것이 잘못 진전(進展)되면 성적인 자극에로 옮겨가는 위험이 있다. 또 이와는 달리 교계 일각에서 이른바 ‘영성 훈련(Spiritual Exercises)’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영성 개발 훈련은 영어의 원 해석대로 ‘영적 훈련’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영성(靈性, Spirituality)은 개발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은혜로 위로부터 내려와 덧입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발되어지는 영성이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령(Holy Spirit)이 아니라, 다만 잠재능력을 일깨우는 정신 개발(또는 신념 개발)일 뿐인 것이다. 잠재력 개발이 그러하듯 9영성의 개발 영성의 개발 역시 진화론(進化論)적 개념이다.
(2) 흑백 논리(黑白 論理)로서의 대화
하나님의 속성은 ‘사랑과 공의’의 두 가지로써 나눌 수 있고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 역시 이 두 면에서의 품성을 잘 조화시켜야만 그나마 가까스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하다. 어느 한쪽으로든가 약간은 기울기 마련이다. 문제는 기울어 졌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기울어진 쪽을 확인하고 시이소오의 가운데에서 균형을 잡는 것처럼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 이상적인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즉 문제의 해결을 바로 자신이 서 있는 자리의 시점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점차로 풀어 가는 것이다. 때문에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흑과 백의 어디쯤인가를 아는 것이 첫 번째로 중요한 일이고 그 다음으로는 자신과 상대방이 색깔이 다르다고 하여 서로가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 배합색을 만들기 위해 내게 부족한 것을 상대방에게서 취해 오고 또 상대방의 부족한 것은 내가 보충해 주는 식으로 균형을 맞춰 나가는 것이 옳은 방법일 것이다.
(3) 실제적 무신론(實際的 無神論)
교우끼리의 ‘교회 안의 모든 송사(訟事)’는 불꽃같은 눈동자로 살피며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교인들끼리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회 안의 문제를 교회 밖으로 갖고 나가 세상에 내놓고 해결함을 받으려 한다면 이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보다 더 실제적인 불신 행위이므로 그는 겉으로는 교인이라 할지나 실제에 있어 그는 무신론자가 되는 것이다.
VII. 뉴에이지 운동을 막기 위한 대책( 크리스챤의 대책)
앞에서 교회 내에 숨어 있는 뉴에이지적인 요소들을 살펴보았으나 그 심각성이 날로 더해 가고 있고 넓게 확산되어 가고 있다. 이상은 물론 뉴에지운동의 일부이지 전체는 아니다. 그 밖의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상과 같은 뉴에이지운동의 거창한 도전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모두가 큰 과제이기 때문에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뉴에이지운동 자체의 문제도 문제려니와 그들이 가르치고 있는 가르침에 직접 간접으로 동조하는 많은 지식인과 종교인들, 예술인들을 말할 것도 없고, 크리스챤을 생각할 때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는 미흡하나마 그 대책을 한번 세워 보기로 한다.
1) 성경 연구에 계속 역점을 둘 것
기독교의 유일한 경전이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이야말로 뉴에이지운동이 제기한 모든 질문과 가르침에 대한 대답이요 대답의 원천일 수밖에 없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성경 연구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의 세계성에 각별한 관심과 역점을 두고 전달해야 하겠다.
2) 복음으로 완전 무장하는 일이다 (엡6:10 이하 딤전6:12) 방어와 공격에 있어서 필요한 “하나님의 전신 감주“을 입고 담대히 증거하고 악과 더불어 싸우는 일이다.
3) 영적 실재(Spiritual Reality)를 인정해야 한다. 성령의 존재를 믿고 성령의 역사를 지금 현재(Now & Here !) 믿는다면, 아울러 악령(사탄)의 존재도 믿고 그 역사도 일어날 줄 믿어야 한다. 인간 배후에 교묘히 위장한 채 숨어 있는 사탄과의 싸움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적 싸움이다.(엡 6 :12)
3) 오늘의 교회는 '윤리 부재'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스도를 닮은 크리스챤의 “life style“ 을 개발하여 세상의 “본“이 되어야 한다.(빌2:5,3:17,살전1:7) 몇 만명 밖에 안된다는 이단 종파나 진리를 왜곡하는 그릇된 사람들이 전체사회를 뒤흔드는데, 1천만명 크리스챤들은 무엇하고 있는가를 묻게 된다.
4) 우리는 뉴에이지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인간의 가치에 대한 견해에 주의를 해야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은 높고 낮음이 없으며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식하고 그대로 삶에 반영시켜야 한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원받은 자유인인 동시에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하는 봉사자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5) 그리스도의 사랑 그리고 크리스챤으로서 구비하여야 할 빛과 소금의 사명을 충실히 실천하도록 힘써야 한다. 개인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에 실제로 적용해야 할 것이다. 이 점이 실패할 때 뉴에이지운동같은 두려운 사상이 우리를 위협하게 된다. 기독교는 윤리종교는 아니지만 윤리적 종교임을 기억하고 이에 따르는 종교(신앙) 생활이 일반 생활 면에 직접 반영해야 될 것이다. 기독교가 우리 나라 사회의 정신적, 윤리적, 도덕적 지주 역할을 못하게 될 때 다른 종교가 대신하게 되고, 기독교는 점차로 외면 당하게 될 것이다.
6) 우리는 이 운동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바울은 아덴에 있을 때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그들의 시까지도 인용할 정도로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물론 바울은 그들의 문화와 사고방식 뿐 아니라 자신이 진정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망각하지도 않았다. 바울은 바로 복음을 전해야 된다는 목표 의식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뉴에이지 운동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함과 동시에 우리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늘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바울이 아덴에서 설교할 때 아덴 사람들에게 여러분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 경배하지만 나는 여러분에게 진짜 신을 소개하겠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사상이나 입장을 알고 난 뒤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긍극적인 목표가 될 것이다.
7)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이 운동에 참여해야 된다는 것이다. 참여한다는 말에 오해 없길 바란다. 그것은 관심을 적극적으로 가져야 된다는 것이다. 연예계에는 이미 이 운동이 깊숙이 침투했고 교육계와 비지니스계 그리고 세속 심리학 속에도 상당히 침투한 것으로 안다. 어떤 사람은 그런 현상을 보고 ‘그렇다면 나는 이 분야에서 손를 떼겠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도피하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운동을 잘 알고 참여하여 복음으로 그들과 대처해야 할 것을 요구하신다.
8) 교회 안에서 뉴에이지운동을 하는 사람을 가려낸다고 남을 무조건 의심하거나 비판해서는 안될 것이다.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조그만 결점을 가지고 그 사람을 헐뜯고 비난하면 교회만 분열될 뿐이다. 극심한 교파주의나 교회 분열 경향은 뉴에이지 운동 같은 이단 사상 운동을 부채질한다. 뉴에이지운동은 기독교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
9)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기 때문에 (고전 2:13) 이 마지막 시대에는 더욱 더 영분별의 은사를 간구해야 한다.
10) 올바른 기독교 문화를 정립하여 교회 안에서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즐거움마저 세상 문화에 잠식되어 빼앗겨 버리게 된다.
VIII. 결론
뉴에이저들의 철학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을 소멸키는 것이다. 즉 과학과 미신을 같은 단계로, 모든 가치론의 파괴, 선과 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천국과 지옥의 두 개념을 인정하게 되면 주의 진노의 날에 있게 될 심판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다가오는 마지막 때의 심판에 대한 불안을 긴장 없는 유토피아의 ‘세계 사회’로 도망함을 통해 해소해 보고자 이원론을 파기하고 윤회설을 주장하면서 천국과 지옥은 없다고 한다. 또한 그들은 종교간의 대화를 통한 교회 일치 운동과 더불어 종교 보편주의 및 종교 다원주의 그리고 포스트 모더니즘과 같은 시대 사조를 통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전통적 질서를 부정하고, 그 어떤 고정관념의 틀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모든 것들을 부정하는 가운데, 그 어느 경전을 토대로 하여 이미 제도화되고 규범화된 그 어떤 형태의 종교도 부인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그들은 성경을 경전의 토대로 삼는 기독교마저도 부인한다는 것이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마태복음 24장 23-24절 말씀은 미혹 받기 쉬운 현대인에게 경종이 된다.
## 참고 서적 ##
뉴에이지 운동의 도전 : 지원용 (컨콜디아 신학교 교수, 루터교 목사)
뉴에이지 운동을 저지하라 : 게리 콜린스 (리버티 대학 상담학 교수)
뉴에이지 운동의 정체 : 김 웅광 (1992. 6. 20 국민 일보사)
뉴에이지 음악 : 곽 용화 (1992. 8. 15 CANA REPORT , 예영 커뮤니케이션)
교회내에 숨어 있는 뉴에이지적인 요소들 : 조 규남
(1992. 8. 15 CANA REPORT , 예영 커뮤니케이션)
대중 문화속에 나타난 사탄의 전략 : 신 상언
(1992. 8. 15 CANA REPORT , 예영 커뮤니케이션)
뉴에이지 운동의 세계관 : 이 양림
(1992. 8. 15 CANA REPORT , 예영 커뮤니케이션)
뉴에이지 운동과 크리스쳔의 자세 : 박 종암
(1992. 8. 15 CANA REPORT , 예영 커뮤니케이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