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의 그래미상은 영화의 아카데미상, 방송의 에미상과 함께 미국 대중예술 3대 상으로 꼽힌다. 콜롬비아 MGM RCA빅터 캐피톨 데카 등 미국 서부 연안 대형 레코드사들은 1958년 '미국 레코드예술과학 아카데미(NARAS)'를 설립하고, 이듬해부터 음반 판매량과 예술성을 기준으로 삼는 시상 제도를 시작했다. 부문은 해마다 늘어, 현재는 팝 록 컨츄리 재즈 힙합 R&B 클래식 종교음악 등 모든 장르를 망라하는 80여개에 이른다. 그중 NARAS 회원 전체 투표로 뽑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올해의 곡' '최우수 신인가수' 등 4개를 대상으로 친다. 그러나 50∼60년대 로큰롤과 포크, 90년대 힙합처럼 새로운 조류나 저항적 음악을 푸대접하고 외국 뮤지션에게 인색한 보수성 때문에 비판을 받는다. 최근엔 너무 상업적으로 흐른다는 불만도 산다.
2. 글램 록(Glam Rock)
일본에선 화장과 의상이 현란한 소위 '비주얼 록'이 인기다. '비주얼 록'은 70년대 '글리터 록'과 '글램 록'에 뿌리를 대고 있다. 'glitter(광채)' 'glamorous(매혹적인)'라는 어원에서 보듯, 화려한 화장과 몸치장, 가식적 냄새가 강한 음악이 특징이다. '글리터'는 71년 짙게 화장하고 TV쇼에 나선 마크 볼란이 효시다. 글리터 밴드들은 주로 TV로 음악을 듣는 10대 소녀용 '쇼'를 추구, '타락한 록'이란 경멸을 받았다. '글램'은 데이빗 보위가 선구자다. 외견적 특징은 같지만, 록의 이념성을 거부하는 자의식을 지닌 점에서 '글리터'와 구분된다. '글램'은 70년대 중반 엘튼 존과 로드 스튜어트도 편승할만큼 유행했다. 그룹 '퀸'도 데뷔초 화려한 외모와 무대 매너 때문에 '마지막 글램 록 밴드'란 평을 들었다.
3. 리듬 앤 블루스
1940년대 말∼1950년대 초, 블루스가 스윙같은 댄스풍 재즈와 섞여 태어난 흑인음악이다. 블루스보다 댄스비트가 강하고 리듬-멜로디도 대 중적이다. 가사도 고단한 삶을 노래하던 블루스와 달리 쾌락적으로 흘렀다. R&B 는 다시 백인음악 컨트리 앤 웨스턴(C&W)과 만나 현대 팝음악 주류 로 큰롤(Rock'N Roll)을 낳는다. 그래서 초기 R&B 뮤지션 루이스 조던, 패 츠도미노, 보 디들리 등은 리틀 리처드-척 베리로 맥이 이어지는 '로큰 롤의 흑인 선조들'로 불린다. 비틀즈, 롤링 스톤즈를 비롯한 60년대 백 인 록밴드는 대부분이들 영향을 크게 받는다.
4. 랩
랩은 속어로 '지껄이다'는 뜻. 70년대 말 뉴욕 디스코 DJ들이 시작했다는게 정설이다. 80년대 들어 신보수주의로 흑인사회 상 황이 악화하면서 급진 정치성을 띤 거리문화로 확산됐다. '퍼블 릭 에너미' '런 디엠시'는 뉴욕에서 '이스트코스트(동부 연안) 랩'을 선보였다. 80년대 중후반 LA에선 '닥터 드레' '스눕 도기 독'을 중심으로 '웨스트코스트(서부연안) 랩' '갱스터랩'이 등장 했다. '동부 랩'은 사설을 툭툭 내뱉는 반면, '서부 랩'은 이죽 거리듯 늘어놓는다. 백인사회에 대한 저항과 살인, 마약, 폭력을 거침없이 담는다. 90년대 들어 일부 랩 스타들은 주류 팝과 손잡 아 대중적 기반을 넓혔다. 한국에선 92년 '서태지와 아이들' 이 후 댄스곡마다 양념처럼 넣는다. 랩을 하는 사람은 가수가 아니 라, 래퍼(rapper)라 부른다.
5. 모던 재즈
194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는 현대적 재즈를 일컫는 말이다. 1900년 전후 태동한 초기 재즈는 빅밴드 춤곡이 풍미한 1930년 대 '스윙' 시대를 맞아 대중적 열광을 받았다. 그러나 젊은 실 력파 연주자들은 꽉 짜인 빅밴드 편곡에 한정된 춤곡만 연주하 는데 불만을 품었다. '모던 재즈 아버지' 찰리 파커(알토 색서 폰)를 비롯, 실로니어스 몽크(피아노), 디지 길레스피(트럼펫) 가 변혁의 선봉에 섰다. 1940년대 들어 이들은 순간적 느낌을 살려 멜로디-리듬-화음을 자유롭게 바꾸는 즉흥연주, 복잡하고 분방한 멜로디와 사운드 변화가 특징인 '비밥(Bebop)'을 탄생 시켰다. 재즈는 춤추기 위한 음악에서 감상을 위한 음악으로 탈바꿈했다. 현대적 의미의 재즈 토대가 놓인 1940년대 이후 '모던 재즈' 계보는 '하드밥' '프리 재즈' '퓨젼 재즈' 등으로 이어졌다.
6. 모던록
Modern Rock 70년대말 디스코 열풍에 이어 80년대 여피들의 여가용 음악 '뉴 로맨틱스'가 음악시장을 점령하면서 '청년 반문화-저항음악' 록은 사망 선고를 받는다. 모던록은 전통적 록 시대가 이렇게 막을 내린 뒤 등장한 80년대 이래 록음악을 통칭하는 말이다. 그런데 60년대∼ 70년대와 달리 이 시기 록은 팝, 포크를 비롯한 다른 장르들과 활 발한 경계 넘나들기를 해왔다. 때문에 음악적으로 모던록 개념은 아주 포괄적이다. 빌보드 모던록 차트만 봐도 전통적 의미의 록이 라기보다 팝이나 포크, 테크노, 댄스에 가까운 음악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7. 발라드
원래는 중세 유럽의 이야기 형식 민요를 일컫는 말로 출발했다. 하 지만 시대에 따라 조금씩 성격이 바뀌면서 19세기엔 영국 상류사회에 서 유행하던 센티멘탈 가곡을 발라드라 부르기도 했다. 요즘 우리가 듣는 현대 대중음악에서는 분위기가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사랑노래(러브송)들을 통칭하는 말로 쓰인다. 대개 템포는 느리다. 어떤 장르와 리듬을 골격으로 삼느냐에 따라 '팝발라드' '록발라드' '힙합발라드' 'R&B발라드' '메틀발라드' 식으로 세분화 하기도 한다. 재즈에선 발라드 원곡의 멜로디를 살리며 즉흥연주하는 것을 따로 '발라드 연주'라고 한다.
8. 블루스
말 그대로 '슬픈(blue)' 음악인 블루스는 19세기 중엽 미국 흑인들 이 슬픔과 절망을 노래한 민중가요로 태어났다. 초기엔 농촌을 떠도는 방랑시인같은 가수들이 불렀지만, 1920년대 '블루스 왕후' 베시 스미 스같은 전문가수가 나왔다. 끈적하고 우울한 레#과 미, 시와 시# 사이 의 묘한 불협화음 음계(블루 노트·Blue Note)를 쓰고, 12마디를 반복 하는게 특징이다. 오늘날 듣는 비 비 킹, 앨버트 킹, 존 리 후커 등의 스타일은 1940년대에 정립된 '도시 블루스'다. 재즈 발생 토양이 됐고, '로큰롤의 어머니'라 불릴만큼 20세기 대중음악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9. 브릿팝(Brit Pop)
90년대 영국에선 기타 중심 록 사운드와 60년대 영국 팝을 접목한 음악이 고개를 들었다. 복고 느낌과 친근하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공 통적인 이런 음악은 브릿팝으로 불렸다. 팝음악이 80년대 이후 힙합 테크노처럼 복잡하고 감각적인 리듬을 받아들인 것과 달리, 브릿팝은 대부분 단순하고 안정된 4분의4박자를 고집하는 것도 특징이다. 하지 만 모던록 개념이 너무 광범위해 모호하듯, 브릿팝도 어떤 한 범주로 묶기힘들만큼 스타일이 다양하다. 같은 브릿팝 밴드라도, 60년대 로 큰롤 스타일을 재현한 오아시스, 보다 정돈된 팝 사운드에 비틀즈 화 성을 계승한 블러, 그런지 사운드에 팝 멜로디를 얹어낸 라디오헤드 처럼 여러 색깔이다. 넓은 의미의 브리티시(영국)록과도 경계를 긋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10. 얼터너티브(Alternative)
80년대 초 여피들의 여가용 음악 '뉴 로맨틱스'가 시장을 점령 하면서 전통 록은 사망선고를 받았다. '브루스 스프링스틴' 'U2' 등 몇몇 뮤지션이 분투했지만, 탐욕스런 음악자본 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에 대한 반발로 '인디 록'이 움텄다. 펑크(Punk)가 주도한 이 흐름은 80년대 중반부터 헤비메틀 등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수용했다. 주류 음악시장 규칙과 관습적 사운드를 거부하는 이런 록은 '대안'이란 뜻인 '얼터너티브'로 불렸다. '장르'가 아니라 '음악하는 태도'를 일컫는 용어였다. 그러나 90년대 '너바나' 같은 밴드들이 대중적 성공을 거두며 '얼터너티브'는 자기모순에 빠졌다. 거부 대상인 주류 시장에 편입됨으로써 존재 의미를 잃은 것이다. '얼터너티브'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용어다.
11. 싱어송라이터
Singer-Song Writer 영어 그대로, 가수(Singer)이자 직접 작사-작곡도 하는 사람(Song Writer)이다. 이 용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 60년대 포크 (Folk)시대부터다. 50년대 말 불붙은 포크 열기는 60년대 초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 흑인민권운동 같은 정치운동과 맞물리며 폭발했다. 이런 포크, 그리고 포크와 록을 결합한 60년대 중반 포크록 계열에 선 자작곡을 부르는 가수들이 대거 등장했다. 포크 뮤지션은 작곡 도구로 적합한 악기인 통기타에 능했다. 통기타 한 대로 자기가 만 든노래를 연주하며 부를 수 있는 포크는 이들의 작곡 욕구를 자극하 기에 충분했다. 개인적 세계관을 담은 메시지나 시적 가사를 주로 노래하던 음악 경향도 한 몫했다. 밥 딜런, 폴 사이먼, 닐 영 등은 그 시절 대표적 싱어송라이터들이다.
12. 스타 시스템(Star System)
대중매체 시대와 더불어 등장한 '대중 스타'는 20세기를 특징짓는 문화현상이다. 현대인들은 거의 매일 TV-신문-광고 같은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스타'라는 '문화 상품'을 소비하며 산다. '스타 시스템'은 이런 스타가 탄생하고 관리-활용되는 과정을 일컫는다. 대중음악에선 제작자가 신인을 발굴, 대중의 입맛에 맞게 음악과 이미지를 포장해 상품화하는 과정으로 볼 수있다. 그러나 점점 정교해지는 상업적 포 장술과 대중매체의 '몰아주기'로 뮤지션들의 창조적 역할이 위축되면 서 '스타 시스템'이란 말은 흔히 부정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
13. 스윙(Swing)
대공황으로 고통받던 미국인들은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이 효과를 거둔 1935년 쯤부터 실업과 생활고를 벗어나기 시작한다.라 디오에선 희망이 움트는 시대 분위기에 맞게 경쾌하고 신나는 음악 이 유행했다. '검둥이 음악' 재즈를 미국은 물론 전세계에 퍼뜨린 '스윙 재즈'였다. 스윙은 1920년대 빅밴드 재즈 댄스를 백인 취향 으로 바꾼 음악이다. 재즈에 매력을 느끼던 일부 백인 뮤지션들이 백인 입맛을 가미해 대중화시키려고 노력한 결실이었다. 그래서 당 시 뉴욕을 무대로 활동하던 스윙 스타들도 베니 굿맨, 글렌 밀러, 지미 도시 등 백인 일색이었다. 하지만 씨앗은 흑인들이 뿌렸다.그 중에도 30년대 초 뉴욕에서 활동하던 '재즈의 전설' 듀크 엘링턴은 몇년 뒤의 스윙 붐에 불씨를 지핀 '스윙의 아버지'로 일컬어진다.
14. 스카
서인도 제도 자메이카 DJ들은 50년대부터 민속음악 '멘토'와 미국 R&B 를 섞어 흥겨운 느낌을 주는 '스카' 리듬을 만들었다. 4박자 중 뒷박자에 악센트를 주는 스카는 60년대 템포가 느려지고 베이스 라인을 강조한 '레게'로 발전했다. '난 보안관을 쐈다(I Shot The Sheriff)'의 밥 말리는 스카-레게를 세계적 유행 장르로 끌어올린 전설적 뮤지션이다. 밥 말리의 스카-레게는 60년대말∼70년대초 비틀즈, 폴 사이먼 등 백인 뮤지션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70년대말 영국 백인 펑크(Punk)밴드들은 스카-레게와 펑크록의 접목을 실험했다. 80년대초 미국으로 건너간 이런 움직임은 90년대 '랜시드' '노 다웃'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15. 샘플링
전자기술은 80년대 중반 샘플러(Sampler)를 탄생시켰다. 악기와 목소리는 물론 자연음까지 손쉽게 음원(Source)으로 만들고 재생하는 기계였다. 샘플러 탄생은 미리 심어놓은 음원만 재생하는 신디 사이저의 한계를 깨는 '소리 혁명'이었다. 곧이어 기타 드럼 베이스 같은 악기 연주를 새로 녹음하지않고, 기존 팝-클래식 음반의 연주 음원을 그대로 따서 쓰는 샘플링(Sampling) 기법이 등장했다. 미국 래퍼 퍼프 대디는 히트 팝송을 샘플링한 노래들로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이현우 '헤어진 다음날'에 나오는 '사계' 멜로디, 신 화 'T.O.P'에 나오는 '백조의 호수' 테마도 그런 샘플링 사례다. 이런 샘플링은 표절에 대한 전통적 기준 자체를 뒤흔들만큼 큰 영향 을 끼치고 있다.
16. 재즈(Jazz)
재즈는 1900년 전후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났다. 뉴올리언스는 16세기 이후 스페인, 프랑스, 영국 지배를 거친 도시다. 거기에 노예 로 끌려온 흑인 문화가 가미됐다. 그처럼 복잡한 문화 배경을 지닌 뉴올리언스 흑인들은 아프리카 리듬에 대한 기억, 노동가와 블루스, 백인민요와 클래식이 뒤섞인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초기 재즈는 '스트로빌'이란 홍등가에서 번성했다. 당시 공창은 2층부터만 영업 (?)이 허용됐다. 1층은 매춘부와 손님이 만나는 장소였다. 여기가 초 기 재즈맨들의 주된 일터였다. 피아노 솔로나 현악트리오로 무드음악 을 연주했다. 유곽 주변 싸구려 캬바레, 선술집, 클럽도 중요한 일터 였다.그러나 뉴올리언스 홍등가는 1917년 미국의 1차 대전 참전과 함 께 폐쇄됐다. 실업자가 된 재즈맨들은 일자리를 찾아뿔뿔이 흩어졌고, 재즈는 미국 전역에 퍼졌다.
17. 퓨전 재즈
전설적 재즈 뮤지션 마일즈 데이비스는 60년대 말 재즈에 전자 사운드와 록 비트를 접목한 새로운 음악을 선보였다. 줄여서 흔히 '퓨전'이라고 말하는 '퓨전 재즈'의 탄생이었다. 60년대 후반 재즈는 상업적으로 무척 우울한 상황이었다. 많은 뮤지션들이 실험적 이고 난해한 '프리 재즈'에 몰입해 대중들과 유리되고 있었다. 바로 이때 마일즈 데이비스는 젊은이들을 사로잡던 록 사운드와 재즈에서 금기로 여기던 전자악기를 과감히 도입한 획기적 앨범 '비치즈 브루(Bitches Brew)'를 발표했다. 일부 평론가들은 '재즈의 타락'이라고 혹평했지만, 대중들은 환호했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씨를 뿌린 재즈-록 퓨전은 70년대 들어 만개했다. 록과의 만남으로 장르벽을 허문 재즈는 이후 다양한 음악들과 융화하며 지평을 넓혔고, 거꾸로 록뮤지션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18. 헤비 메틀
'헤비 메틀'은 시끄럽고 공격적인 '하드 록(Hard Rock)'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드 록'이란 용어는 70년대 들어 '헤비 메틀'로 대체되 기 시작했다. 강력한 기타, 광포한 드럼, 고음으로 내지르는 샤우팅 보컬이 특징이다. 영국에선 '레드 제플린' '주다스 프리스트' '블랙 사바스', 미국 에선 '에어로스미스' '키스' '앨리스 쿠퍼' 같은 밴드가 여기 속했다. "그것은 록이 아니었다. 중금속(heavy metal)을 내리치는 소리 같았다"는 평론가의 경멸적 표현에서 탄생했다는 어원에서 보듯, 원래는 정통 록 범주를 벗어난 음악으로 취급됐다. 그러나 백인 노동계급 청년들과 10대의 하위문화로 각광받으면서 70년대 중반 이후엔 양적 으로나 질적으로 록음악의 주류로 떠올랐다.
19. LA 메틀
70년대 태동한 '헤비 메틀'은 "록음악이 아니다. 중금속 (heavy metal)을 내리치는 소리같다"는 초기 혹평에도 불구 하고 몇년만에 록음악 주류로 떠올랐다. 이후 황금기를 누리던 헤비 메틀 진영은 70년대 말 일부 밴드가 우중충한 가죽재킷과 굉음 대신 화려한 의상에 소녀 취향 록발라드를 선보이며 내분에 빠졌다. 격한 사운드로 블루 컬러 백인 10대의 저항을 대변하던 '메틀 정신'에 대한 반란이었다. '본 조비' '포이즌' '스키드로' '데프 레퍼드' 같은 이런 밴드 들의 음악은 '헤비 메틀'과 대비해 '라이트 메틀'이라고 불렀다. 그중 LA 지역에서 활동한 '머틀리 크루' '래트' 같은 밴드들은 따로 'LA 메틀'이란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선 '라이트 메틀' 계열 음악을 뭉뚱그려 'LA 메틀'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20. 펑크(Funk)-ⅰ
흑인 특유 체취를 뜻하는 속어 펑크(funk)에 뿌리를 둔 말이 다. 50년대 흑인 연주자들은 백인화된 테크닉 위주 재즈에 반발, 가스펠과 블루스에 회귀하는 재즈를 모색했다. 그 음악에 대해 흑인 몸냄새가 난다는 의미로 '펑키(funky)'란 속어 형용사를 붙였다. 명사화한 '펑크'는 '소울'과 같은 뜻으로도 썼다. 그러나 60년대 후반 소울이 상업적 댄스로 퇴색하자 본바닥(하드 코어) 블랙뮤직을 펑크라 부르게 된다. '소울 아버지' 제임스 브라운을 '펑크 선구자'로도 꼽는 것은 그래서다. 고무공처럼 탄력있는 리듬이 특징인 펑크는 70년대 '케이시 앤 더 선샤인 밴드' '어스 윈드 앤 파이어'가 대중적 성공을 거두며 절정을 구가했다. 한글 표기가 같은 펑크(Punk)와 혼동하기 쉽다.
21. 펑크-ⅱ
너덜너덜 찢어진 옷차림, 형형색색 기괴한 머리, 쇠사슬처럼 음 울한 장신구…. 펑크 룩(Punk Look) 스타일에서도 보듯, 펑크는 음악 차원을 넘어 70년대 구미 청년세대의 문화 현상이었다. 음악적으로 펑크 발생지가 미국인지 영국인지는 논란거리다. 하지만 76년 영국서 불붙었다는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섹스 피스톨스'는 우악스럽 고 충동적인 사운드로 뒷골목 노동계급 청년들을 불러 모았다. 모든 기존 질서에 시비와 조롱을 퍼부은 펑크는 당시 영국 사회의 암울한 상황을 자해적으로 표출한 '부정의 음악'이었다. 하지만 그런 야생성은 현실과 부대끼며 퇴조했고, 80년대 들어 사실상 소멸됐다. 런 던 펑크는 70년대 말 미국으로 건너가 인디록의 축이 됐다.
22. 크로스오버 (Crossover)
`크로스오버'(Crossover) 다른 장르가 교차한다는 뜻의 음악용어 크로스오버가 본격적으로 쓰인 건 80년대 들어서다. 그러나 시기나 정의에 대해선 견해가 다 양하다. 미국 캐서린 찰튼 교수는 80년대초 컨트리 가수들이 대거 팝차트에 진출하며 크로스오버란 말이 음악적 의미로 보편화됐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 앞서 70년대 재즈 뮤지션 마일스 데이비스가 재 즈와 록을 결합해 대중화시킨 퓨전재즈도 오늘날엔 크로스오버로 일 컫는다. 재즈를 포함한 대중음악 연주자-가수가 클래식을 변주하거 나, 반대로 클래식 연주자-오케스트라가 팝을 연주해도 크로스오버 라 한다. 80년대 로열필하모닉이 팝넘버로 선풍을 일으켰던 '훅트 온 클래식스'가 그런 예다. 그 뒤로 의미가 더 넓어져, 같은 대중음 악 장르간 교차도 크로스오버라 부르고 있다. 반면, 빌보드 '팝-클 래시컬 크로스오버' 차트는 런던필하모닉이 연주한 레드 제플린 히 트곡처럼 대중음악과 클래식이 교류한 음악에 한정해 다룬다.
23. 테크노 (Techno)
요즘은 전자음을 이용하는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을 뭉뚱그려 '테크노' 라고 부른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테크노'는 70년대 독일 전자음악 영향을 받아 80년대 초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탄생한 장르를 따로 일컫는다. 빠른 속도로 '붐-붐-붐-붐' 하며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리듬이 '테크노' 특징이다. 같은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이라도 '하우스(House)'는 디스코-소울-펑크(Funk) 같은 흑인 댄스음악을 믹스하는 과정에서 나와 태생과 리듬이 다르다. 테크노와 하우스는 80년대 중반 '애시드 하우스 (Acid House)'를 파생시켰고, '애시드 하우스'는 유럽으로 건너가 백인 청년들의 댄스파티 레이브문화를 낳았다. 전자사운드를 힙합 비트와 섞어 몽롱한 분위기가 나는 '트립합(Triphop)'은 영국 브리스톨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24. 트랜스 (Trance)
요즘 한국에서도 유행하는 '테크노'에서 파생한 '일렉트로니카(전자음악)' 장르다. '테크노'가 댄스음악을 주도하고 있는 유럽이 주된 무대다. '황홀경' '무아경'이란 사전적 뜻처럼, 90년대 초반 일부 종류 마약이 합법화된 네델란드 클럽가에서 생겨났다는 게 정설이다. 차갑고 기계적인 정통 '테크노'에 비해 따뜻하고 서정적인 느낌이 강해 '부드러운 테크노' 라고도 불린다. 멜로디가 두드러지고, 한 곡 안에 격한 감정과 서정성이 뒤섞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템포도 갑자기 빨라졌다 느려졌다 하는 식이다. '트랜스'의 급격한 감정 기복은 마약으로 몽롱한 환각 상태를 반영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에는 유럽 인기 차트를 휩쓴 '로버트 마일즈'나 '세시' 등이 소개됐다. 반면, '테크노' 계열 전반이 약세를 면치 못하는 미국 주류 음악시장에선 별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25. 어쿠스틱 (Acoustic)
음악 기사에선 '어쿠스틱 악기' '어쿠스틱 연주' 같은 표현을 종종 접하게 된다. 사전적으로 '어쿠스틱'은 '음향의'란 형용사, 복수 '어쿠스틱스'는 '음향학'이다. 그러나 음악에서 얘기할 때는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자연적 악기 소리를 가리킨다. '일렉(트릭) 기타'와 대비되는 통기타를 비롯, 전기적으로 소리를 증폭시키지 않은 드럼 피아노 베이스 관악기 현악기 등이 '어쿠스틱 악기'다. 반면, '일렉 베이스'나 '일렉 바이올린'처럼 전기 증폭 장치를 달면 어쿠스틱이 아니다. 그래서 '어쿠스틱 연주'는 '전기 플러그를 뺀다'는 의미인 '언플러그드(Unplugged)'와 동의어로 쓰인다. 일렉 기타-베이스 등을 사용한 라이브 연주로 녹음한 음반을 갖고 컴퓨터 샘플링과 구별하려고 '어쿠스틱'이라고 하는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잘못된 표현이다.
26. 인디펜던트 (Independent)
정확한 명칭은 '인디펜던트 레이블', 줄여서 '인디'라고 한다. '메이저'로 불리는 대형 음반사 축에 끼지 못하는 소규모 음반사 를 말한다. 우리말로는 '독립 음반사'인 이런 소규모 음반사는 흔히 '음악산업 혈맥'이라 일컬어진다. 몸집이 커서 유연성이 부족한 메이저들과 달리 새로운 음악 장르와 스타일을 시도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인디'라고 하면 흔히 '실험'과 '저항'을 떠 올리는 이유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음악산업이 발달된 나라일수 록 '인디'들의 역할이 크다. '인디 밴드'는 그런 인디 레이블을 거점으로 음반을 내고 활동하는 언더그라운드 밴드를 뜻한다. 영국 '버진''아일랜드' '크리살리스', 미국 '아리스타' '게펜' '사 이어'처럼 인디로 출발해 중견 레이블로 발돋움하기도 한다.
27. 디스코(Disco)
복고 바람을 타고 디스코 음악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70년대 초 미국에선 라이브 연주 대신 레코딩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디스코 텍이 유행했다. 이런 디스코텍에서 틀어주는 음악을 디스코라고 했다. 흑인음악 펑크(Funk)에 뿌리둔 상업적 댄스곡 디스코는 70년대 중반 '도나 서머' 같은 스타가 탄생하고 수퍼그룹 '비지스'가 가세하면서 단숨에 팝계를 평정했다. 특히 영화 '토요일밤의 열기'는 전세계에 디스코 열병을 퍼뜨린 기폭제가 됐다. 하지만 미국에서 디스코는 80년대 들어 자취를 감췄다. 명맥은 유럽에서 '유로 디스코'로 이어졌다. 80 년대 중반 '모던 토킹'같은 밴드들이 선풍을 일으켰다. 지금도 '유로 댄스'에 리듬이 살아있다. '싸구려 댄스'로 매도하던 시각을 벗어나 음악적으로 재평가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28. 인더스트리얼(Industrial)
70년대 중-후반 잉글랜드 북부 공업지대에서는 상업화-보수화되던 대중음악 경향을 거부하는 급진적 실험이 움텄다. 전자음향을 음악에 이용해 현대 산업사회의 인간 상실을 고발하려는 흐름이었다. 이들은 전통적 록음악 리듬과 코드를 철저히 무시하고, 전자적으로 왜곡시킨 온갖 소리와 잡음을 음악에 도입했다. 무대에선 충격적 퍼포먼스도 벌였다. '인더스트리얼' 음악은 80년대 중반 미국에 건너가 헤비메틀과 만나며 새롭게 꽃을 피웠다. 밴드 '미니스트리'를 이끌던 알 주르겐슨은 '인더스트리얼'의 전자음향 기법을 헤비메탈 기타와 코드에 연결시켰다. 뒤이어 90년대 트렌트 레즈너는 원맨 밴드 '나인 인치 네일즈'를 통해 돌풍을 일으키며 '인더스트리얼의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 계보는 마릴린 맨슨으로 이어지고 있다.
29.사이키델릭
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부터 요즘의 '테크노'까지, 많은 장르가 크게 영향받은 록 장르다. 마약에 취한 황홀경을 뜻하듯, 60년대 합성마약 LSD와 히피의 반문명사상이 맞물려 태어났다. 1943년 발명된 LSD는 미국과 영국에서 1966년 법적으로 금지됐다. 히피문화가 물결치던 대학가와 문화계에 널리 퍼진 뒤였다. 록계에선 환각 상태의 '자유 체험'을 색채감 풍부한 비선형적 사운드로 그리려는 욕구가 움텄다. 전통적 작법을 무시한 동양적 음계와 악기, 기타 이펙트와 기계적으로 변조된 사운드 등으로 몽환적 의식 상태를 표현했다. 미국 '버즈'와 영국 '야드버즈'의 실험에 이어, 비틀스가 새로운 음악 방법론으로 발전시켰다고 평가된다. 반면, 포크록-블루스록 틀을 유지한채, 자연회귀-반문명 사상을 노래한 그룹들도 '사이키델릭' 계열로 분류한다.
30. 로큰롤(Rock & Roll)
'로큰롤'이란 용어는 40년대 미국 흑인들 사이에 유행한 육감적 춤 이름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진다. 말 뜻 자체가 성행위를 암시한다. 55년 빌 헤일리가 '리듬 앤 블루스(R&B)'와 '컨트리 앤 웨스턴'을 섞어 만든 '록 어라운드 더 클록'이 인기를 얻으며 '로큰롤'이란 용어가 확산됐다는 게 정설. 하지만 초기엔 R&B와 동의어처럼 쓰였다고 한다. 백인 청중을 확보했던 R&B 계열 흑인 뮤지션 리틀 리처드와 척 베리가 '로큰롤 선구자'로 꼽히는 것도 그래서다. 비틀스, 롤링 스톤스 같은 60년대 백인 록밴드 대부분이 이들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척 베리는 짧고 강렬한 기타 리프를 이용한 자극적 연주로 록사운드 전형을 보여줬다. '로큰롤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는 반항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음악과 이미지로 로큰롤을 대중화시킨 주인공. '로큰롤'은 영국 등 유럽으로 건너가 청년 하위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31.프로듀서(Producer)
원래 의미는 '제작자'다. 영화가 '감독 예술'이라면, 음반은 '프로듀서 예술'이다. 성공한 음반 뒤엔 유능한 프로듀서가 있다. 로큰롤이 음악산업의 지평을 넓힌 60년대부터 다양한 제작자들이 등장했다. 그전까지 프로듀서는 대개 레코드사 직원이었다. 하지만 '음반 스타'가 쏟아지면서 레코드사 간섭을 벗어나 음반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고개 들었다. '독립 프로듀서'의 등장이었다. 프로듀서는 자금 조달부터 기획-음악 작업까지 도맡는 '전천후형', 음악 작업만 전문적으로 의뢰받아 하는 '전문가형', 아티스트가 음악 작업까지 직접 하는 '예술가형' 등 여러 유형이 있다. 전체 기획과 자금 조달을 주로 하는 '사업가형'이 전면에 나설 경우, 음악 작업을 지휘한 사람은 따로 '디렉터(Director)'로 구분하기도 한다. 어떤 음반이건 속지에 '프로듀서' 또는 '디렉터'를 밝힌다.
32.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요즘 가요계엔 웅장한 클래식 교향악 같은 사운드를 가미한 노래가 유행이다. 장르는 조금씩 달라도 뭉뚱그려 보면 그런 스타일은 70년대 초-중반 융성했던 '프로그레시브 록'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프로그레시브'의 사전적 뜻은 '진보적'. 60년대 후반 상업적 조잡함을 탈피한 음악을 가리켜 나온 용어다. 그중 '프로그레시브 록'은 '예술음악'을 접목한 록음악 장르로, '아트 록'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 전통이 강한 영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60년대 후반 '비틀스' '무디 블루스' 등이 처음 시도했고, 70년대 들어 정규 음악교육을 받은 록밴드들이 대거 등장하고, 전자음향이 록음악에 본격 도입되면서 만개했다. '예스' '제니시스' '킹 크림슨' 같은 밴드는 앞의 경우고, '사이키델릭 록'의 전자음향 실험을 발전시킨 '핑크 플로이드'는 뒤의 경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