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만화영화는 정말 다채롭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는 영웅신화와 실낙원, 인간과 자연의 공존 같은 거대 담론 구현의 대표자다. 인간의 본원적인 사랑과 관계의 복원을 지극히 서정적으로 그려내는 신카이 마코토. 2006년 <시간을 달리는 소녀>부터 시작하여 3년 주기로 문제작을 내놓는 호소다 마모루까지.
1980-90년대를 거쳐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미야자키 하야오가 선보인 영화들 면면은 정말 대단하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984), <천공의 성 라퓨타> (1986), <이웃집 토토로> (1988), <모노노케 히메> (1997),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 <바람이 분다> (2013) 등등. 가히 재패니메이션의 총화다운 목록이다.
신카이 마코토의 내공도 상당하다. <초속 5센티미터> (2007),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 (2011), <언어의 정원> (2013), <너의 이름은 (2017), <날씨의 아이> (2019)까지. <일본서기>의 이자나기와 이자나미 신화에 기초한 <별을 쫓는 아이>와 <만엽집>에서 취재한 <언어의 정원>은 그가 일본의 고대에도 관심을 돌리고 있다는 증거다.
가상세계 OZ와 일본의 한적한 농촌 나가노의 대가족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썸머 워즈>(2009)가 <용과 주근깨 소녀>와 일맥상통한다. 호소다 마모루 영화에서 가상공간은 현실 세계와 조응하면서 우리에게 두 세계의 공존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는 이미 가상공간과 현실 세계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진 세계에 거주하고 있다.
스즈와 벨
남녀공학 고교생 스즈는 남다른 아픔이 있다. 여섯 살 때 엄마를 잃은 것이다. 자신과 아무 관계도 없는 아이를 구하려 했던 엄마. 그날부터 스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린다. 그런 스즈를 오래도록 지켜보며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시노부. 하지만 스즈는 자신의 마음을 열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댄다. 둘의 사랑은 가능할 것인가?!
인기 많은 시노부처럼 공부 잘하고 몸매도 좋으며 고적대 대장인 루카가 학급의 대세 여학생이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루카. 스즈는 루카보다 히로와 마음을 주고받는다. 목소리는 아름답지만, 언제부턴가 노래하지 못하는 스즈. 히로는 그런 스즈를 가상공간 U로 불러들인다. <용과 주근깨 소녀>에서 가상공간 U는 그야말로 별천지다.
등록계정 50억이 넘는 초대형 가상세계 U는 ‘메타버스’이며, As는 또 ‘하나의 나’인 아바타로 이뤄진 가상공간이다. 스즈는 ‘벨’이란 이름으로 계정을 열고, 등장하자마자 가상세계의 슈퍼스타로 군림한다. 현실의 스즈와 달리 벨은 기막힌 가창력으로 가상세계를 사로잡는다. 그녀의 첫 번째 공연이 예정된 날 예기치 않은 사건이 벌어진다.
용과 케이
자칭 가상세계의 수호자인 ‘저스틴’과 그의 추종자들이 상처 입은 용을 추격한다. 공연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사라지는 저스틴 무리. 벨은 용의 심각한 상처와 괴로운 눈빛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리하여 관객은 객석에서 두 세계의 공존과 동시성을 확인한다. 가상세계에서 사람들은 하나같이 벨과 용의 정체에 대해 궁금증을 토로한다.
As의 실체이자 현실 세계의 접속자(사용자)를 ‘오리진’이라 부른다. As는 오리진의 생체정보와 연동해서 만들어지는데, 이것을 ‘보디 셰어링’이라 한다. 보디 셰어링을 저지함으로써 가상세계 U의 공간에 오리진의 실제 모습이 드러날 수 있는데, 이것이 ‘언베일’이다. 이런 기제들로 현실과 가상세계가 공존하는 영화가 <용과 주근깨 공주>다.
벨은 용의 상처가 예사롭지 않음을 보고 용에게 동질성을 느낀다. 용을 향한 동정과 연민으로 용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하는 벨. 하지만 용은 벨의 그런 관심이 조금도 탐탁지 않다. 계속해서 자신의 본심과 정체를 감추는 용. 누구에게도 동정 따위는 받지 않겠다는 오연(傲然)한 용과 그런 용을 한사코 위로하고 달래주려는 벨.
두 세계가 이어진다면?!
느닷없이 나타나 가상세계를 혼란으로 몰아넣는 용과 추적자 저스틴 무리 사이에서 벨은 교묘하게 중심을 잡는다. 그리하여 벨은 마침내 용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안아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 관계는 계속해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벨처럼 용도 무엇인가 남모를 아픔이나 상처로 인해 고통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벨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것처럼 스즈도 현실 세계에서 용의 실체를 알고 싶어 한다. 왜 저렇게 계속 도망치면서 타인의 손길을 거부하는 것일까, 궁금증이 커져만 간다. 그러다가 마침내 확인하게 되는 용의 실체. 그것은 가정폭력에 노출된 소년의 모습이었다. 아버지의 거칠고 잔인한 주먹질에 내던져진 어린 형제 가운데 형 K.
스즈는 히로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현실 세계의 케이를 찾아 나선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비 내리는 동경(東京) 거리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케이를 찾아 헤매는 스즈. 그런 스즈를 알아보는 케이. 그들을 막아서는 케이의 아버지가 휘두르는 폭력. 하지만 스즈는 케이 형제를 얼싸안고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다. 단호한 눈빛의 스즈.
메타버스의 신세계를 열어젖힌 호소다 마모루
가상세계의 두 인물 벨과 용이 현실 세계의 스즈와 케이로 대면하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엄마를 잃고 마음의 문을 오래도록 닫아걸었던 스즈가 마침내 아버지와 대화를 시작하고, 아버지의 무한폭력에 신음하던 케이는 다른 생의 가능성을 본다. 이것이야말로 영화 <용과 주근깨 공주>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주제 가운데 하나다.
“U는 또 하나의 현실. 세상을 바꾸고 새롭게 살아보자!
또 하나의 나로 살아보자! 두 세계가 이어질 때 기적이 일어난다!”
너무 어린 나이에 겪어야 했던 엄마의 상실로 크게 상처받은 스즈가 이제는 케이를 위로할 정도로 성장한다. 허공에서 흔들리기만 하고 때릴 대상을 찾지 못한 채 힘없이 내려오는 케이 아버지의 주먹. 그것은 유약해 뵈지만, 이미 훌쩍 성장한 스즈의 강력한 내면의 힘을 상징한다. 누구도 케이를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지 표명.
한쪽에서는 농촌의 아름다운 자연과 고교생들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다른 쪽에서는 복잡다단하고 거대한 가상세계가 펼쳐진다. 유장하고 느긋한 현실 세계와 신속하고 웅장하며 장대한 가상세계가 서로 교차하면서 영화는 이어진다. 완전히 분리된 현실과 가상세계가 서로 만나 대화하는 신기원의 영화 <용과 주근깨 공주>가 상영되고 있다.
마치면서
요즘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세계 곳곳에서 관심을 끈다고 한다. 실로 격세지감이다. 1990년대 천개가와 장예모 같은 중국의 5세대 감독들이 칸과 베네치아 영화제를 휩쓸고, 일본도 나름의 저력을 발휘한 때가 떠오른다. 중국의 고도성장과 5세대 감독들의 퇴장으로 중국 영화는 변방으로 밀려났고, 일본 역시 영화판에서 약자로 전락한다.
반면에 만화영화 부문은 일본의 독주가 여전하다. 연상호 감독의 문제작 <돼지의 왕> (2011)과 <사이비> (2013) 정도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만화영화가 하나도 없다. 혹자는 <마당을 나온 암탉>(2011)을 거명하지만, 초등학생 수준의 유치한 이야기로는 대중의 정서를 자극하거나 감동을 주지 못한다. 작화에 들인 노고가 눈물겨운 수준의 영화!
남녀노소 모두가 보고 좋아할 만한 만화영화에 필요한 첫 번째 조건은 탄탄하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엄마를 생각하면 언제나 힘이 난다는 유치찬란한 주제는 유치원 아이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다. 차고 넘치는 우리의 고전과 역사에서 이야기를 발굴하여 현대화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절실해 보인다. 충무로의 분발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