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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염화실 원문보기 글쓴이: 慧明華
無比스님과 함께 하는 유마경 공부(2020.09.14.PM7시)
유마경 불국품
보적의 게송
시간이 자꾸 가니까 무턱대고 방송을 계속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서 오늘 시간표를 한 번 짜봤다.
실시간 방송은 월화수목 4일간 기존대로 오후 2시, 오후7시에 하고, 나머지 금토일은 복습하는 시간을 갖도록 정했다.
일주일에 3일은 다른 일도 하고 숨도 쉬고 예습도 하는 시간을 갖고 4일간은 지금까지 해오듯이 생방송을 한다.
이번주에도 오늘부터 목요일까지는 변함없이 실시간 방송을 하고 금요일부터 금토일 3일은 쉬는 것으로 되어있다. 유튜브방송의 특징은 바로 저장되어 언제든지 다시 골라서 들을 수가 있다. 어떤 분은 한 방송을 몇 번씩이나 듣는다고 한다. 고마운 일이다.
*
생각해 보니 이 시간에 전세계적으로 유튜브 방송이 얼마나 여러 개겠는가? 최소한 수백만 개일 것이다. 어쩌면 수천만 개일 수도 있다.
들어보면 대개 자기계발서를 읽고 자기계발 하는 문제를 많이 이야기 한다.
여기저기 개인방송에서 많이 한다.
문학서적을 전문적으로 읽어주는 이들도 많다.
또 성공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성공담을 실은 저서를 소개하고 자기 성공담을 이야기 하는 것을 상당히 많이 본다.
그런데 염화실TV 방송은 화엄경을 읽고 유마경을 공부하는 방송이다. 그것만으로도 하늘을 찌를 듯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는다. 여기 동참하신 분들도 그런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33천 하늘도 높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수백만 수천만 방송이 있는데 그 가운데 염화실TV 방송국은 화엄경을 공부하고 유마경을 공부한다, 얼마나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는가?
염화실(拈花室)은 뭔가?
꽃을 들어 보인 방이다.
한 사찰이나 한 총림이나 거기에서 가장 법이 높고 덕이 있는 스님이 거주하면서 법을 펴는 방이 염화실이다.
염화실은 조실스님이 계시는 방이고, 방장스님이 계시는 방이다.
2004년 11월 22일 다음포털사이트에 까페를 개설하면서 그때 내 방에 염화실 편액이 걸려 있었는데 ‘염화실이라는 이름의 인터넷 까페가 있는가?’ 하고 상좌에게 물었다. 아직 못들어 봤다고 하길래 ‘그럼 내가 염화실이라는 이름의 까페를 개설해야 겠다’
그래서 <다음Daum>에 <염화실 yumhwasil> 까페를 개설하고 우리가 상당한 시간 거기서 공부를 해왔다.
다시 이번에 유튜브에 TV방송국을 개설하면서 이름도 그대로 <염화실TV 방송국>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니 이름값을 해야 한다.
자기계발서나 성공담이나 문학서를 읽어주는 정도는 염화실TV에서 할 일이 아니다.
최소한도 염화실TV 방송국에서는 화엄경을 이야기 하고 유마경을 이야기 해야 <염화실TV 방송국>의 격에 맞는 다.
이 점에 대해서 저도 마찬가지고, 동참하신 여러 시청자 여러분들, 또 실시간 방송에 매일매일 오시는 분들은 말할 나위 없이 정말 하늘을 찌를 듯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방송국이 아닌가 이런 말씀도 나눠본다.
*
오늘 유마경, 보적의 게송이라.
7. 보적의 게송
<1>
이시(爾時)에 일체대중(一切大衆)이 도불신력(覩佛神力)하고 탄미증유(歎未曾有)하며 합장예불(合掌禮佛)하고 첨앙존안(瞻仰尊顔)하되 목부잠사(目不暫捨)러라 장자자보적(長者子寶積)이 즉어불전(卽於佛前)에 이게송왈(以偈頌曰)
그때에 일체 대중이 부처님의 신력을 보고 처음 보는 미증유한 일이라고 찬탄하며 합장하고, 부처님께 예배하고 존안을 우러러보며, 눈을 잠깐도 떼지 않았다. 장자의 아들 보적이 곧 부처님 앞에서 게송을 설하였다.
장자의 아들 보적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부처님의 위대하심을 잘 알고는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을 설한다. 이 게송의 내용이 좋고 상당히 길기도 하다.
목정수광여청련(目淨修廣如靑蓮)하고 심정이도제선정(心淨已度諸禪定)이라
구적정업칭무량(久積淨業稱無量)하사 도중이적고계수(導衆以寂故稽首)니다
눈은 맑고 길고 넓어 마치 푸른 연꽃 같고
마음은 텅 비어 이미 모든 선정(禪定)을 다 성취하였네.
오랫동안 청정한 업을 쌓아 한량이 없으사
고요히 대중들을 인도하실새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다시 한 번 읽겠다.
눈은 맑고 길고 넓어 마치 푸른 연꽃 같고
마음은 텅 비어 이미 모든 선정(禪定)을 다 성취하였네.
오랫동안 청정한 업을 쌓아 한량이 없으사
고요히 대중들을 인도하실새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장자의 아들 보적이라는 사람이 부처님을 뵙고 당신이 아는 대로 부처님의 덕화에 대해서 이렇게 읊었다.
부처님 눈은 푸른 연꽃같다. 안장유학(眼長有學)이라. 상서(相書)를 제가 탄허스님에게 공부를 좀 했는데 그 때 ‘눈이 길면 학문이 있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푸른 연꽃은 인도에 많다고 한다.
부처님의 눈동자 안에 푸른색이 좀 감도는 모양이다.
백련이나 홍련은 연꽃잎이 도톰하게 생겼는데 푸른 연꽃인 청련은 길게 생긴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부처님 눈이 그와 같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긴 눈은 상학적(相學的)으로도 상당히 길상인 모양이다.
‘마음은 텅 비어 모든 선정(禪定)을 다 성취하였네’
부처님 마음은 항상 텅 빈 상태인데 선정이 아니면 그렇게 안되고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부처님은 늘 선정 속에 있다.
‘오랫동안 청정한 업을 쌓아 한량이 없으사’ 훌륭한 업을 쌓아서 한량이 없으사 ‘고요히 대중들을 인도하실새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부처님께 머리숙여 예배할 일이 한 두 가지겠는가?
보적이 부처님을 처음 뵈었을 때 눈이 안장유학(眼長有學)이라 ‘학문이 있겠다. 공부 참 잘하시겠다. 공부 많이 하신 분이다’ 이렇게 느꼈다.
또 부처님 마음을 보적이라는 장자의 아들이 어찌 다 알수 있을까마는 1차적으로 부처님을 보고는 ‘아, 부처님은 선정에 고요히 들어계시는구나. 오랫동안 훌륭한 업을 한량없이 쌓으셨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오랫동안 그런 자세로 중생을 인도하니 내가 머리숙여 예배할 수밖에 없다’ 이런 표현을 했다.
기견대성이신변(旣見大聖以神變)으로 보현시방무량토(普現十方無量土)하며
기중제불연설법(其中諸佛演說法)커늘 어시체실견문(於是一切悉見聞)이니다
이미 큰 성인이 신통과 변화로
시방의 한량없는 국토를 널리 나타냄을 다 보며
그 가운데 모든 부처님이 법을 연설하는데
여기에서 모든 것을 다 보고 듣습니다.
보적이 부처님을 찬탄하는 두 번째 게송이다.
이미 큰 성인이 신통과 변화로
시방의 한량없는 국토를 널리 나타냄을 다 보며
그 가운데 모든 부처님이 법을 연설하는데
여기에서 모든 것을 다 보고 듣습니다.
부처님이 시방국토에 전부 다 나타나서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 그런 것을 여기에서 모든 것을 다 보고 듣는다고 하였다.
좋은 게송이다.
장자의 아들 보적이라고 하는 이 사람도 상당한 안목이 있다.
부처님을 이해하는 것은 그 사람 안목만치 이해한다.
뿐만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것도 그 사람의 안목만치 이해한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만치 보고 듣고, 초등학생은 초등학생만치 보고 듣고 알고, 중학생은 중학생만치 보고 듣고 알고 평가를 한다.
정신세계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더 그렇다.
그전에 제가 통도사 극락암 경봉스님 회상에서 좀 살았다.
신도님들이 경봉스님 명성을 듣고 많이들 왔다.
그때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가 ‘여기에 오는 신도님들에게는 아무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경봉스님 한 분만 눈에 들어온다’ 왠고하니 경봉스님 이외의 어떤 스님도 그 옆을 지나가거나 가고 오고 마주쳐도 인사도 안한다.
그러니까 젊은 스님들은 조금 섭섭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들어와서는 ‘여기 다니는 신도들은 경봉스님밖에 몰라’ 그런 것이다.
자기 아는만치만 보이고, 보이는 데 까지만 예배를 올릴 수밖에 없는 경우다.
우리가 화엄경을 공부하고 유마경을 공부하는데 내자신의 그릇과 내 자신의 실력이 얼마만치인가에 따라서 이해가 되는 것이 다르다.
내가 자주 인용하지만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중생수기득이익(衆生受器得利益)’ 우리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듯이 보석이 사정없이 쏟아지는데 중생들은 자기의 그 그릇만치만 이익을 얻는다.
그릇이 간장종지만 하면 간장종지만치 다이아몬드를 담을 수 있고, 큰 세수대야만하면 세수대야만치 다이아몬드를 담을 수가 있다. 큰 바께스라면 바께스만치 담을 수가 있다. 우리가 불법을 공부하는 것도 그렇다.
자꾸 공부를 해서 우리의 그릇을 키우는 방법밖에 없다.
그릇을 키워야 불법의 심오한 이치를 많이 담을 수가 있다.
법왕법력초군생(法王法力超群生)하사 상이법재시일체(常以法財施一切)하며
능선분별제법상(能善分別諸法相)하나 어제일의이부동(於第一義而不動)이로다
이어제법득자재(已於諸法得自在)일세 시고계수차법왕(是故稽首此法王)이로다
법왕의 법력은 온갖 중생을 다 뛰어넘으시어
항상 법의 재물로써 일체중생에게 보시하며
모든 법의 행상들을 능히 잘 분별하나
제일의(第一義)에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미 모든 법에 자유자재함을 얻었나니
그러므로 이러한 법왕에게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법왕의 법력은 온갖 중생을 다 뛰어넘으시어
항상 법의 재물로써 일체중생에게 보시하며’ 부처님은 보시의 왕이다.
재물하면 우리 귀가 번쩍 뜨인다.
부처님도 재물로써 중생들에게 보시한다. 무슨 재물인가? 법의 재물, 진리의 재물, 가르침의 재물, 각자 지혜가 활짝 열리도록 하는 좋은 이치를 가지고 우리에게 보시한다. 부처님은 밥 한 그릇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경제적인 능력은 없었다. 그래서 밥 한 그릇까지도 늘 얻어먹었다. 그러면서도 늘 법을 가지고 보시하는 일을 하셨다.
물론 부처님은 다른 어떤 것도 얼마든지 베풀 수가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하고 무엇보다 시급한 것을 생각하시고는 당신이 깨달으신 진리의 가르침를 가지고 늘 보시하셨다는 것이다.
우리 불자들, 지금 이시간에 동참하신 불자들 지금 벌써 76명이나 시청자가 와 계신다.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도 어떻게 하더라도 정말 값진 것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마음을 가지셨으면 한다.
그래서 저도 법공양실에 법공양할 거리들을 많이 준비해 놓고 늘 기다린다. 여러분도 뭔가 법공양 할 거리를 준비해 놓고 사람들을 만나면 작은 책 하나라도, <108자재어> 하나라도 전해주는 마음가짐이 정말 필요하다.
<2>
설법불유역불무(說法不有亦不無)나 이인연고제법생(以因緣故諸法生)하며
무아무조무수자(無我無造無受者)나 선악지업역불망(善惡之業亦不亡)이라
설법은 있지도 않고 또한 없지도 않으나
인연인 까닭에 모든 법이 생기며
나도 없고 지음도 없고 받는 자도 없으나
선과 악의 업은 또한 없지 않습니다.
의미심장한 말씀이다.
설법은 있지도 않고 또한 없지도 않다. 부처님은 49년 또는 45년동안 쉬지 않고 설법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는 ‘나는 한 글자, 한 마디도 말한 바가 없다’ 고 하셨다. 그런 이치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면 저 팔만대장경은 어찌하라는 말이냐?
그런 가운데서도 ‘나는 한 마디 한글자도 설한 바가 없다’ 그런 이치가 분명히 있다.
‘설법은 있지도 않고 또한 없지도 않으나 인연인 까닭에 모든 법이 생기며’ 인연의 이치다.
‘나도 없고 지음도 없고 받는 자도 없으나’ 법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서로 주고 받고, 오고 가고, 또 받고 준다. 지금도 그렇고 부처님도 그렇게 하셨다.
‘나도 없고 지음도 없고 받는 자도 없으나, 선과 악의 업은 또한 없지 않도다’ 그 가운데 우리가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감동할 부분에는 이렇게 감동한다.
‘선과 악의 업은 또한 없지 않다’
분명히 있다. 없는 가운데 있다.
한 글자도 설할 바 없는 가운데 팔만대장경이 있고 선도 있고 악도 있고 그것을 우리가 취하고 버릴 업이 또한 역력하게 너무나게 분명하게 있다고 하는 사실, 그런 이치다.
시재불수력항마(始在佛樹力降魔)하고 득감로멸각도성(得甘露滅覺道成)하며
이무심의무수행(已無心意無受行)하야 이실최복제외도(而悉摧伏諸外道)로다
처음 보리수 아래에서 마군들을 항복받고
감로의 열반을 얻고 깨달음을 이루고 나니
이미 심의식과 수상행이 벌써 사라지고
모든 외도까지 다 항복받았습니다.
보적이 부처님을 찬탄하는데 이 대목을 빠뜨릴 수 없다.
부처님은 처음 보리수 아래서 마군을 항복받고, 감로의 열반을 얻었다.
감로의 열반을 얻었다는 것이 무엇인가?
모든 번뇌가 다 사라졌다. 그 사라진 상태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겠는가? 시원한 감로수를 마신 것과 같이 표현한 것이다.
감로의 열반을 얻고 깨달음을 이루고 나니 이미 심의식과 수상행식이 벌써 사라지고 모든 외도까지 다 항복받았다. 부처님을 찬탄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부처님이 마지막 선정에 들었을 때 외도들이 그 선정을 방해하려고 무수한 애를 썼다.
별별 험상궂은 사람들과 마귀들 악귀들을 보내서 위협도 하고 다른 어떤 모습으로써 또 수행을 방해하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다 안 할 수가 없다.
낱낱이 자세하게 설명하기로 하면 끝이 없다.
삼전법륜어대천(三轉法輪於大千)하시니 기륜본래상청정(其輪本來常淸淨)이라
천인득도차위증(天人得道此爲證)하니 삼보어시현세간(三寶於是現世間)이로다
대천세계에 법륜을 세 번 굴리시니
그 법륜은 본래 항상 청정함이라.
천신과 사람들이 도를 얻어 깨닫게 되니
삼보(三寶)가 이로부터 세간에 나타났습니다.
삼보는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다. 세 개의 보물, 다이아몬드보다도 더 값진 보석이다.
‘법륜을 굴리니 법륜은 본래 항상 청정함이라
천신과 사람들이 도를 얻어 깨닫게 되니
삼보가 이로부터 세간에 나타났습니다’ 참 반가운 소식이다.
여기 세 번 굴린다는 것은 삼전법륜(三轉法輪)인데 법화경에도 나오고 여러 곳에서 나오는 말이다.
이것은 시전(示轉) 권전(勸轉) 증전(證轉)이다.
시전이란 보통 사람들은 늘 고통 속에서 산다는 것을 설명해 보이고[示], 성인(聖人)들은 늘 행복과 즐거움을 누린다는 것을 설명해 보이는 것이다.
보일 시(示)자 구를 전(轉)자 시전이다.
권전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빨리 수행을 해서 고통을 없애고 즐거움을 얻으라고 권(勸)하는 설법이다.
보여주고 그것을 권하고 그다음에 증전이라고 하는 것은 증득할 증(證)자인데 부처님께서 스스로 깨달음을 성취하여, 모든 고통을 떠났으며 일체 낙(樂)을 누리고 있음을 증명[證]해 보이는 설법이다.
그것이 시전 권전 증전이다.
오늘 동참하신 여러분들도 ‘야 그 염화실TV 괜찮다. 들을만하다. 소설 읽어주는 것 듣는다든지 무슨 음악방송이나 듣고 그런 것들도 간혹 필요하겠지만 그런 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이런 좋은 유익한 방송이 있는데 한 번 우리가 들어보자’ 이렇게 보여주는 것이다.
또 그것을 권하기도 하고, ‘아 그거 정말 들어보니 좋다’ 하고 마음에 딱 계합을 하면 그것이 자기 살림살이가 되고 자기의 삶이 된다,
그런 것이 증전이다.
그것을 삼전법륜(三轉法輪)이라 한다.
‘대천세계에 법륜을 세 번 굴리시니
그 법륜은 본래 항상 청정함이라’
부처님 법문 청정할 수밖에 없다. 훌륭할 수밖에 없다.
‘천신과 사람들이 도를 얻어 깨닫게 되니’
도를 얻어 깨닫게 된다.
‘삼보(三寶)가 이로부터 세간에 나타났습니다’
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문, 그 가르침을 따르고 그 가르침에 눈을 뜬 사람들이 삼보다.
여기는 대승경전이기 때문에 출가 재가의 분별이 없다.
누구든지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이 열리고, 삶의 가치를 거기서 찾게 되면 그것이야말로 삼보중의 하나인 승가가 된다. 그때의 승가는 출가한 승려라는 뜻이 아니고 사부대중이다.
이사묘법제군생(以斯妙法濟群生)하시니 일수불퇴상적연(一受不退常寂然)이라
도노병사대의왕(度老病死大醫王)이여 당례법해덕무변(當禮法海德無邊)이로다
이 미묘한 법으로써 온갖 생명을 제도하시니
한 번 받아 가지면 물러서지 않고 항상 적연함이라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해결하시는 큰 의왕이시니
법의 바다 가없는 공덕에 마땅히 예경합니다.
참 좋다. ‘이 미묘한 법으로써 온갖 생명을 제도하시니’
부처님의 설법은 어떤 설명도 미묘하기 이를 데 없고 훌륭하기 이를 데 없다. 부디 그 사실을 아셔야 된다.
자꾸 이것을 공부하고 듣다 보면 알게 된다.
자꾸 접하다 보면 길이 난다.
길이 나니까 익숙해 진다.
익숙해 지면 거기에 눈을 뜨게 된다.
그러면 ‘부처님 법은 참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이구나’ 알게 된다.
그 무상심심미묘법으로써 온갖 생명을 제도한다.
‘한 번 받아가지면 물러서지 않고 항상 적연함이라’
한 번 받아 지니면 더 이상 물러서지 않는다. 불법을 제대로 우리가 이해하면 물러설 까닭이 없다.
물러서라 해도, 쫓아내도 안나간다.
*
제가 해인사에 방부를 드릴 때 이야기다.
저는 범어사에 있다가 은해사 강원에 가서 은해사 강원이 깨지고 해인사 강원에 갔다.
해인사 강원에서 그 때 내 앞에 한 40명 학인이 다녀갔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저는 객실에서 있으면서. 울력할 시간에 먼저 나가 빗자루를 들고 울력하고, 또 산에 불이 났다 하면 그때 가을 무렵이었는데 불이 잘났다. 그래 불났다 하면 먼저 대중들과 나가서 불을 껐다.
다른 강원에서 같이 공부하던 도반들이 이미 몇 명 있었다. 그러니까 그 도반들하고 어울려서 같이 불 끄러 다니고, 청소도 같이하고 그랬다.
‘중이 절에서 사는데 누가 나가라고 할 수 있나?’
누더기도 빨아서 짜지도 않고 척 걸어놨다. 오래오래 시간 걸리면서 마르라고 그렇게 했다.
어떻게 그렇게 어릴 때 배짱이 있었는지, 본래 타고 난 절집안 식구라고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맹랑한 일이다.
산감하는데 따라다니면서 산의 나무 지키고, 산에 불을 잘 끄고 하니까 마지 못해서 ‘한철간 산감하게 되어 있었는데 두 철 하겠느냐?’ 고 내게 물었다.
‘두 철 아니라 2년이라도 하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상당히 성실해 보였든지 ‘그럼 산감해라. 두 철 산감하고 강원에 방부드리도록 하라’ 이런 명령이 떨어졌다.
그때 영암스님이라고 사판스님으로는 아주 훌륭한 스님이 총무를 보실 때였다. 그렇게 허락이 떨어졌다.
그래 저는 해인사에 방부를 들여서 강원생활 무사히 잘 마치고 일주문도 안나가서 선방에 올라가서 선방도 살았다. 그런 경험이 있다.
그렇게 우리가 한 번 받아 지니면 물러서지 않는다.
이 말이 그때 생각을 하게 한다.
*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해결하시는 큰 의왕이시니’ 그래서 부처님은 의사의 왕이다. 늙고 병들고 죽는 문제를 잘 해결하는 의사의 왕이다.
관세음보살을 흔히 우리가 찬탄할 때 관음보살대의왕(觀世音菩薩大醫王) 이런 표현을 한다.
관세음보살은 큰 의사의 왕이다.
여기도 대의왕이라고 하였다.
‘늙고 병들고 죽는 문제를 해결하는 큰 의왕이시니
법의 바다 가없는 공덕에 마땅히 예경합니다’
부처님의 살림살이를 보적이라고 하는 이 장자의 아들이 잘 알고는, 아마 수준 높은 장자의 아들인 것 같다. 부처님의 덕을 드러내고 ‘이러이러한 것 때문에 나는 진실로 예경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
앞에서 말씀드렸는데 우리공부 시간이 정해졌다.
실시간은 월화수목 일주일에 4일간 오후 2시 7시에 한다. 금토일은 복습하고 예습하는 시간으로 정해졌다.
간혹 저의 사정이라든지, 또 비대면 법회가 끝나고 대면해서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으면 월요일에 스님들 공부하는 날, 또 다른 일들이 있을 수가 있으니까 그때는 공고를 하겠다. 공고를 하면 거기에 맞춰서 들어오시고, 꼭 실시간이 아니라도 언제든지 유튜브에 법문들이 올라와 있으니 골라잡아서 듣고 싶은 것, 듣지 못한 것들을 들으시면 되겠다.
보적의 게송이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는 내용인데 너무 훌륭하다. 제 욕심 같아서는 밤새도록 이야기 하고 싶은데 그럴 입장이 아니니 이쯤에서 오늘 공부 마치겠다.
지금 82명이 동시에 시청하고 계신다.
아까 들락날락 하신 분들까지 합하면 한 95명쯤 다녀가신 듯하다. 상당하다.
많은 분들이 지금 이렇게 들어와서 채팅방에 서로들 인사를 나눈다. 저에게도 인사를 나눈다.
대선스님이 “역시 수행의 구심점입니다.”라고 하셨다.
그래야 한다. 고맙다.
정말 귀하고 귀한 불법인데 이것을 인연닿는 우리라도 열심히 공부하고 마음 담아서 널리 전할 수 있는 길들이 있으니, 요즘은 신심과 열정만 있으면 방법이 얼마든지 많이 있다. 불법을 널리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코로나도 2.5단계에서 2단계로 낮췄고 확진자도 숫자가 조금씩 조금씩 줄고 있으니까 좋은 소식이 있을 줄 믿는다.
끝까지 조심 잘하셔서 이 어두운 터널을 잘 빠져 나가시기를 간곡히 바란다.
*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부처님의 태양이 더욱더 빛나고
진리의 수레바퀴는 항상 굴러가서
미몽에 허덕이는 중생들 하루 빨리 마음의 눈을 활짝 떠서 모두들 이치대로 살고 인과의 법칙대로 살고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악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만 모두 다 같이 행하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