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맴 돌고 도는 감사
맥추감사주일이다. 시간의 매듭을 기억하고 사는 일은 지혜로운 삶이다. 무엇보다 그 고비고비마다 감사드리는 일은 얼마나 소중한가? 감사하는 일은 가장 인간적인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다. 세상에! 올해도 벌써 반년이 흘러갔다니, 너무 속도가 빠르다. 아마 인생의 달력을 살펴보면 더 빨리 흐른다고 느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내 시간의 속도를 줄일 수 있을까? 대개 사람들은 시간을 깨소금처럼 아낀다면서 오히려 더 재촉하며 사는 경향이 많다. 늘 ‘바쁘다 바쁘다’, ‘죽겠다 죽겠다’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일수록 그렇다. 아마 시간이 돈처럼 보이고, 눈앞에서 속절없이 사라지듯 하니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빈 수레는 요란한 법,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조차 누리지 못한다면 그저 세월은 덧없이 흘러갈 뿐이다.
농경사회도 아닌데, 여전히 맥추감사절기를 지키는 것은 생뚱맞게 느껴진다. 다만 감사를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에게, 시간의 이정표를 일깨워 주는 것이라 생각하면 조금 이해할 수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 일 년 365일, 날마다 감사절이 아닌가? 교회의 전통이 감사절을 제정한 뜻은 내 마음의 지도에서 길을 잃지 말고, 은혜의 이정표를 찾으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맨 처음 배우는 단어는 인사말이다. 무엇보다 감사에 대한 표현은 기본에 속한다. 포르투갈어로 ‘오브리가도’(Obrigado)는 ‘빚을 많이 졌습니다’란 뜻이다. 여성형 ‘오브리가다’(Obrigada)도 같은 의미다. 스페인어 ‘그라시아스’(Gracias)는 ‘은혜를 입었습니다’이다. 우리식으로 하면 모두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라고 옮길 수 있다.
한낱 지나가는 말로 하는 감사인사일망정 가볍지 않게 느껴진다. 감사에는 ‘사랑의 빚진 자’ 의식이 담겨 있다. 살면서 이런 빚진 마음 때문에 머리를 숙이고, 겸양을 차리며, 양보도 하게 되는 법이다. 다시 말하면 감사는 ‘사랑의 빚진 자’임을 고백하며 그 빚을 갚으려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우리말 ‘고맙습니다’ 역시 ‘은혜가 충분하니 이제 그만하십시오’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과분함’이다. ‘과분’(過分)은 분에 넘친다, 기대 이상이란 의미이다. 가령 조금 모자라다 싶으면 감사하는 마음이 생길 리 없다. 그러니 기왕 인정을 베풀 거라면 기대 밖에 조금 더 인심을 쓸 필요가 있다. 상대방이 과분하다고 느끼면 그때는 신세라는 생각이 들고, 서로 사랑의 빚을 갚으려고 하면 각박한 사회조차 ‘고마운 세상’이 될 듯하다.
감사할 이유를 찾지 못할 만큼 각박한 까닭은 인정(人情)의 가치마저 계량화(計量化)했기 때문이다. 허구 헌 날 남과 비교하는 삶은 스스로 ‘루저’(실패한 인생)임을 자백하게 하고, 그런 사회는 남을 끌어 내리려는 지옥과 다름없다. 경제적 이유로 다른 사람의 삶을 볼모로 잡은 결과 발생하는 사고사건 소식이 날마다 들린다. 하루 벌이를 위해 온갖 악조건에 내몰린 사람들은 다가오는 지옥의 저승사자라도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한다.
‘세계문화지도’는 국가별 가치관 조사이다. 장덕진 교수는 이를 소개하며 “왜 한국은 민주화이후 탈물질주의 가치가 늘지 않는가?”란 사회학적 질문을 던졌다. “한국사회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지난 30여 년 동안 경제 수준이 향상됐는데도 ‘탈물질주의’ 가치가 늘어나지 않은 거의 유일한 국가이다. 북한의 위협, 성장에 대한 강박, 사회안전망 결여로 인한 불안, 사회적 자본의 약화, 낮은 정치 효능감 등의 요인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났어야 할 탈물질주의의 확산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먹고 사는 문제’는 극적으로 해결했으나, ‘함께 사는 문제’는 전혀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가 됐다.”
당장 명목상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10위권에 진입했다고 마치 열 손가락에 꼽히는 선진국인 양 생각할 수는 없다. 최근 3년 치 평균 국가행복지수는 전체 조사 대상 149개 나라 중 62위, OECD 37개국 중 35위일 뿐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세계 10위 경제대국인 한국이 국민 삶의 만족도는 OECD 최하위권”이라고 분석했다.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만큼 인간미를 누리는 삶을 위해 발길을 더 재촉해야 한다.
선진국은 남의 삶에 공감하고, 배려하며, 돕는 사람이 많아야 진짜 선진국이다. 홀로 서기는 물론 가족이 울타리가 되고, 이웃과 지역사회의 사회적 안전망이 촘촘한 그런 사회이다. 정녕 자신의 삶에서 감사의 조건을 확장해 나가고, 그런 과분함 때문에 이웃과 더불어 살려는 ‘감사의 공동체적 순환’을 이룰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선진국다울 것이다. “누가 가장 풍족한 사람인가? 늘 감사하며,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탈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