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하고 청하였다.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 마르 6,25-27
한 남자가 꿈을 꾸었다. “꿈이 필요한 사람에게 꿈을 선물하고 싶다.” 남자는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6명의 또래 청년들을 모아 난생처음 아프리카 잠비아로 떠났다. 목적은 단순했다. 난민촌 아이들에게 일회용카메라를 나눠주고 자유롭게 사진을 찍게 한 다음 필름을 회수한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사진을 인화해 다시 보내주고 전시회를 연다. 그런데 잠깐, 비용을 따져보니 항공료와 일회용카메라 구입비용만 합쳐도 2천만 원이 훌쩍 넘는 일이다. 이렇게 비효율적인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너무나 무모해 보이지만, 남자와 청년들은 4년째 잠비아를 거쳐 몽골, 부룬디, 라오스, 스리랑카, 차드에서 꿈을 이뤘다. 벌써 서른 번째 전시회를 앞두고 있다. 의정부교구에서 청소년 사목을 담당하며 ‘꿈꾸는 카메라’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차풍 신부를 만났다. - <가톨릭 지금여기>, “꿈꾸는 카메라, 꿈꾸는 사제”
아프리카, 몽골, 부룬디, 라오스, 스리랑카, 차드... 이런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는 가난이다. 그럼 먹을 것을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받아먹은 빵의 만족감은 그리 오래가질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아름다워 보이는 이런 선택과 행동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체면, 허세 때문에 자신이 존경하는 의인을 죽이고야 마는 헤로데처럼, 무엇이 옳고 중요한 것인가를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