陸軍中將 安東權公 追慕碑
公의 諱는 丙植이요 字는 雨慶이며 姓은 權이고 本貫은 安東이다. 始祖는 高麗朝 太師 諱幸이며 中世祖 諱 仲和는 領議政으로 諡號가 文節이요 號가 東皐이다. 公의 十一代祖이며 立巖의 入鄕祖이신 諱 克立은 號가 東峰이고 壬亂原從功臣 贈工曹參判이다. 高祖 諱 秉述은 分家祖先이고 曾祖는 通政大夫 諱 焜이며 祖考 諱 周鎬는 號가 白雲으로 文行이 있다. 考 諱 錫兌는 解放後 初代 竹長面長으로 德望을 얻었으며 妣 驪江李氏의 四男二女 중 公은 四男으로 甲戌年에 태어났다.어린시절부터 聰敏하고 容姿端正하여 남다른 指揮力을 보였던 公은 명문 慶北高를 나와 戰亂中 軍人으로서 祖國에 寄與코자 하는 一念으로 陸軍士官學校에 入學하여 十五期로 卒業하였다. 公은 任官후 여러 重要 補職과 師團長을 歷任하고 陸軍第三士官學校 校長 首都防衛司令官 陸軍參謀次長 合同參謀本部 本部長의 重責을 遂行하신 후 陸軍中將으로 豫編하였다. 公은 延世大學校 大學院에서 經營學 碩士學位를 取得하는 등 文武를 겸비한 德將으로 名望이 높았으며 國家로부터 仁憲武功勳章 保國勳章三一章 保國勳章國仙章등을 受勳하셨다. 軍門을 떠나 韓國道路公社 社長에 就任하여서는 當時 難工事였던 中央高速道路를 成功的으로 完工하는 偉業을 達成하였다.
公은 寡默하고 剛直한 軍人의 面貌를 보이면서도 內面의 性稟은 溫和하고 仔詳하여 宗孫의 學業을 採根하며 챙기시고 우리 家門에 대한 無限한 矜持를 가지셨으며 門事에 적극 참여하여 宗親會長 在任 時에 永慕堂을 重修하는 등 많은 功績을 남겼다. 公은 文化柳氏 乭福의 따님 世玉女史를 夫人으로 맞아 一男三女인 子 熙哲 女 鈴倞 鈴仁 鈴善을 두었다. 嗚呼哀哉라! 公께서 二0一八年 戊戌 四月十八日 永眠 하셨으니 享年 八十四歲이다. 나라를 위해 平生獻身하신 우리의 등불이자 큰 별을 잃은 哀痛함을 이기지 못해 立巖門中은 諸彦의 뜻을 모아 公의 崇高한 愛國氣像과 높은 經綸을 後世에 길이 빛내고 그 功德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하여 어린시절 公의 발길이 수없이 닿았던 故鄕生家터 入口양지바른 곳에 이 碑를 세운다.
二0一九年 己亥 四月 下浣
安東權氏僕射公派 立巖宗中 十三代宗孫 永進 謹撰

첫댓글 웬만한 문장가는 쓸수 없는 명문입니다. 그리고 장군할배의 높으신 업적과 함께 종손회장님과 부회장님의 깊으신 뜻 또한 문중역사에 영원히 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평안히 집에 앉아서 사진으로만 보기가 송구합니다.
종손 동암의 비문이 더욱 빛이 납니다.
추모비 건립에 수고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