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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까지] 15
S#1. 결혼식장 (낮)
민혁, 은지, 주례 앞에 서 있다. 장회장 부부와 유리 모습이 보인다.
화려하고 성대한 식장 분위기.
사회 : 다음은 신랑 신부 맞절이 있겠습니다.
민혁, 은지, 서로 마주 보고 절한다. 박수치는 사람들. 유리, 민혁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S#2. 병원 소각장 (다른날 밤)
세준, 수거물 가득 안고 와서 태운다. 멀찌기서 보는 황교수. 다가온다.
황교수 : 이걸로 돈 벌이가 되겠냐? 이래가지구 어느 세월에 수술빌 벌어?
세준 : (씁쓸히 웃고)
황교수 : 돈두 문제구 골수두 문제구... 사면초가로구나.
세준 : ...골수이식 말고 다른 치료법은 전혀 없을까요?
황교수 : 제대혈이라구...골수처럼 태반을 이용하는 방법두 있긴 한데...그게 아직 우리나라에 인식이 안돼있어...
태반 은행만 생겨두 훨씬 치료율이 높을텐데 ...우리 사정이 이렇다...다들 자기 일이 돼야 발벗고 나서지...
지금으로선 골수이식 밖엔 도리가 없구나. 가족 좀 찾아봤어?
세준 : ...
황교수 : 백혈병 후원회가 몇군데 있어...내가 전화를 몇통 넣어보긴 했다만 워낙 신청자가 밀려서 낙관하긴 힘들거다.
다들 사정이 어렵거든...
세준 : ...알고 있습니다.
황교수 : 벌써 신청했어?
세준 : ...네.
황교수 : 내가 최대한 애는 써보마...집에 말씀 드려서 대출을 좀 받아보지 그래?
세준 : ...
황교수 : 어차피 결혼할 요량으루 사귄거면 어머니두 이해해주실거 아니냐.
세준 : ...
S#3. 거리 (밤)
세준, 정류장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착잡해지며 담배를 꺼낸다. 담배 하나도 안 남았다. 담뱃갑을 구긴다.
공중전화 보인다. 바닥에 털썩 앉아 고민하는 세준.
S#4. 민혁집 외경 (밤)
S#5. 동 식당 (밤)
민혁, 은지, 장회장 부부, 유리, 화기애애하게 식사한다.
은지 : (웃으며) 이탈리아 남자들이 다 멋있잖아요? 민혁씨가 계속 한눈 팔지 말라구 그러는 바람에요...
저 증말 경치구 뭐구 하나두 못보구 왔어요. 생각나는 거 딱 민혁씨 얼굴 밖에 없어요.
식구들 웃는다.
장회장처 : 은지가 밀라노에서 내 모자를 사왔는데요...당신 좀 있다 보세요...얼마나 감각있게 골랐는지, 놀랬어요.
당신 것두 있어요.
장회장 : 선물은 뭐하러 사와?
민혁 : (웃고) 대단한 것두 아닌데요, 뭐.
희미한 벨소리.
유리 : 오빠 핸드폰 울리는 거 아냐?
민혁 : 잠깐만요...
일어나 나간다.
S#6. 동 거실 (밤)
민혁, 테이블 위에 놓아둔 상의에서 핸드폰 꺼내서 받는다.
민혁 : 네에...
S#7. 거리 (밤)
세준, 공중전화 수화기 들고 있다.
세준 : ...민혁아, 나야..
민혁(E) : (멈칫 하다가) ...어어, 세준이구나?
세준, 한참 말 못하고 그대로 들고있다.
민혁(E) : 여보세요.
세준 : ...
민혁(E) : ...여보세요?
세준 : ...좀 만나자.
S#8. 클럽 (밤)
민혁, 바에 앉아 술 마시고 있다. 들어오는 세준, 민혁을 보자 복잡해진다. 다가온다.
세준 : 결혼식 못가 미안하다.
민혁 : (태연히 웃고) 불러놓구 기다리게 하는 건 뭐냐?
바텐더 잔을 가져다준다. 민혁, 술을 따라준다. 어색한 냉기 흐른다.
민혁 : 한잔 해.
세준 : (받으며 착잡해진다) 잘 지내?
민혁 : (본다) 잘지내냔 얘기 하자고 불러낸 건 아닌 것 같구... 무슨 일 있어?
세준 : ...(망설인다)
민혁 : ...유리한테 대충 들었어. 누가 좀...아프다면서?
세준 : ...(흠칫 본다)
민혁 : 그런 일 있었으면 진작 얘길 해주지...혼자서 끙끙 앓았어?
세준 : (참고) ...
민혁 : 한가지 궁금한게 있는데...그 몸으로 애를 꼭 낳겠다는 건 뭐냐?
세준 : (본다)
민혁 : (피식 웃고) 설마 뭐 나한테 분풀이라두 하겠다는 거야?
세준 : ...(떨린다)
민혁 : 아파 다 죽어간다면서 애 낳겠다는 심사가 궁금해. 왜그러는건데?
세준 : ... 그애 너하곤 아무 상관 없으니까 신경 끊어라.
민혁 : (허, 웃고 본다) 이세준,
세준 : (일어나며) 그만 갈께. 잘있어라. 너하구 할 얘기 없다.
민혁, 세준을 잡아 앉힌다.
민혁 : 잠깐만, 세준아...앉아봐.
세준 : ...
민혁, 봉투를 하나 꺼낸다.
민혁 : 오늘 나 보자고 한 용건이 이거지?
세준 : (굳는)
민혁 : 얼마 안돼...아버지께 말씀 드려서 조금 마련했어.
세준 : ...
민혁 : 이식 수술 받을 정도는 될거야. 대신 니가 방금 말한대로 앞으로 아이 문제, 내 앞에 들고 오는 일 없도록 해주라.
우리 우정 생각해서 주는거야. 나는 서희한테 애 낳으라고 한 적두 없고, 병 걸리라고 한 적도 없거든.
세준, 복잡해지며 본다.
민혁 : 받아.
세준 : ...(봉투 내려다본다)
민혁 : ...서희한테 완쾌 빈다고 전해주라.
세준 : ...
민혁 : (일어나며) 여기 계산해주세요...
세준 : ...
계산하는 민혁. 세준, 자리에 그대로 앉아 우두커니 봉투만 바라본다.
S#9. 클럽 앞길 (밤)
세준, 천천히 나온다. 한쪽에 털썩 앉아 봉투를 열어본다. 천만원권 수표 다섯장이 들어있다.
봉투 움켜쥐며 굴욕감에 휩싸여 고개 숙인다.
S#10. 서희집 앞 골목 (밤)
세준, 올라온다. 방의 불빛 올려다본다.
S#11. 서희방 (밤)
서희, 책 읽고 있다. (서양사책 같은것) 다소 헐렁한 옷 입고 있다.
세준(E) : 서희야,
서희, 얼른 일어나 문을 열어준다. 들어오는 세준. 짐짓 밝다.
세준 : 기분 좀 어때?
서희 : ....좋아.
세준 : 무슨 책 읽고 있었어?
서희 : ...옛날에 학교 다닐때 책. (머쓱한) ...갑자기 생각나서... (치우며)
세준 : (본다) 안 아퍼?
서희 : 하나두 안 아퍼... 이러다가 이식수술 안 받아도 그냥 다 낫는거 아닌지 몰라.
세준 : (웃고) ...좋은 소식 갖구 왔어.
서희 : 뭔데?
세준 : 놀라지마...돈 마련했어. 인제 너랑 맞는 골수만 찾으면 돼! 돈 걱정 끝이야.
서희 : ?
세준 : 며칠전에 병원 갔더니... 독지가 한사람이 백혈병 후원회를 새로 만들었다 그러드라구.
안되두 그만이다 하구 신청을 했는데, 니가 최우선으로 혜택을 받을 것 같다 그러잖아.
서희 : ...어떻게?
세준 : 너 부모두 없구 돈두 없잖아. 의료보험두 안되구... 심사했는데 니 사정이 제일 딱하니까 (웃으며 얼버무리는)
...야, 이럴땐 없는 것두 복 받은 거다 싶드라.
서희 : ...(믿기지 않는) 정말이야?
세준 : 그럼! 연락 받구 바로 달려오는 거야.
서희 : ...거짓말 아니지?
세준 : (손 와락 잡고) 임마, 내가 왜 거짓말을 해? 인제 아무 걱정 없어.
서희 : ...(눈물 핑돌며)
세준, 착잡함 감추며 웃는다. 가방에서 종이를 하나 꺼낸다. 빽빽히 메모가 돼있다.
세준 : 이거나 잘들어...인제부터 세균에 감염 되면 절대 안돼. 면역 관리 주의사항이야.
서희 : (본다)
세준 : (읽는다) 1, 생과일, 생야채, 제대로 익히지 않은 식품은 피한다.
서희 : ...
세준 : 2, 사람 많은 곳은 되도록 가지 않는다. 3, 음악을 듣거나 텔레비젼을 보면서 즐거운 기분을 갖는다.
(본다) 웃으면 엔돌핀이 막 나오거든. (다시 메모지 들여다보고) 4. 햄, 소세지도 안되고, 아이스크림도 안되고,
길에서 파는 순대나 튀김도 안되고...
서희 : (듣고 있다가 웃는) 먹을 게 하나두 없네?
세준 : 그러게...너 좋아하는 거만 먹지말랜다.
세준, 웃는다. 가슴 아파온다..
S#12. 소망원 마당 (낮)
세준 급히 들어온다.
S#13. 동 원장실 (낮)
들어오는 세준. 송원장, 서류 같은 것 읽으며 앉아있다가 본다.
송원장 : 자주 내려오는구나. (다시 일하고)
세준 : 어머니...서희 엄마 좀 찾아주세요.
송원장 : (본다)
세준 : 어머닌 찾으실 수 있어요. 서희 맡기구 가면서 어디 사는 누구구, 뭐하는 사람이구...그런 얘길 하나두 안 했어요?
기억해보세요.
송원장 : ...
세준 : (다가오며) 무슨 단서라두 있을거예요. 한번만 기억 더듬어보세요.
송원장 : 이녀석이 인젠 에밀 잡는구나, 잡아.
세준 : 서희, 골수만 찾으면 돼요. 가족 찾아서 골수만 얻으면 살 수 있어요.
송원장 : ...기억 없다. 너같으면 버리고 가면서 주절주절 자기 소개하구 가겠어?
세준 : 주소 남기구 가는 부모두 많잖아요.
송원장 : ...아무 단서두 안 남겼어. 그저 젊구 이쁘장한 여자였던 것만 기억난다.
내내 울기만 하다가, 곧 연락한다 그러구 가드라.
세준 : ...그래도 기억해보세요.
송원장 : ...(본다)
세준 : ...어머니, 서희 죽어요....제발 기억해보세요.
송원장, 착잡해지며 읽던 책 덮는다.
송원장 : 그만 올라가거라...내가 알면서두 이러는걸루 보이니? 난들 어쩌겠어?
세준 : ...
송원장 : 미안하지만 그게 다야. 한서희 애 이름 석자랑 나이만 적어놓구 갔어.
세준 : ...(절망하며)
송원장 : 세준아, 제발 정신 차려라...
세준 : ...
S#14. 도서관 (낮)
지영, 공부하고 있다. 옆자리 비어있다. 지영, 착잡해진다. 일어나 가방 챙겨 나간다.
S#15. 세차장 (낮)
재석, 승용차 세차하고 있다. 지영, 멀찌기서 본다.
어느 순간, 눈 마주치는 두사람. 재석, 굳는다. 지영 쪽으로 다가온다.
재석 : (어색한 듯 외면하고) 여기 어떻게 알았어요?
지영 : ...
재석 : 도서관 왜 안나오냐구요? 인제 안가요.
지영 : ...왜요.
재석 : 왜요는 무슨 왜욥니까? 공부 하기 싫으니까 그렇죠. 나는 호랑이거든요.
마늘만 먹고 굴 속에 살라 그러니까 미쳐서 도망친거예요. 사람 안돼두 되니까 나는 내 식으로 살겁니다.
지영 : ...
재석 : 미안합니다. 나 그런 놈이예요.
지영 : ...(실망스럽다)
재석 : 길가다가 오물 밟았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가끔 길가다 더러운 것두 밟구 그래야 사람이 강해져요.
화초두 비닐하우스 속에서 키워봐요. 눈 한번 맞으면 다 죽어요.
지영 : ...
재석 : 우리요...다 관둡시다. 솔직히 내 감정이 가짠지 진짠지 자신 없어서 그래요. 자꾸만 주눅이 드네요.
지영 : ...(쏘아본다)
재석 : ... 죄송합니다.
지영 : ....시,실망했어요.
재석 : ...나두 나한테 실망스럽습니다..
지영 : ...
재석 : ...앞으로 잘지내세요. 친구들두 만나구, 그러다 좋은 남자친구 생기면 연애두 하구요...(꾸벅 인사하고) 안녕히 가세요.
재석, 돌아선다. 지영, 바라본다.
S#16. 옥탑방 안 (낮)
세준, 민간요법, 기 치료, 등에 관한 책들을 수북히 쌓아놓고 읽고 있다. 울리는 전화벨.
세준 : 여보세요.
송원장(E) : 에미다.
세준 : ...무슨 일이세요?
송원장(E) : 무슨 일 있어야 전화하니? 좀 나오너라. 서울 올라왔다가 내려 가는 길이야.
세준 : ...
S#17. 커피숖 (낮)
세준, 서둘러 들어온다. 송원장, 한쪽에 앉아있다.
세준 : 언제 올라오셨어요?
송원장 :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녀? 전화해두 통 없구.
세준 : ...
송원장 : (한숨) 서희 좀 어떠냐?
세준 : ...(본다)
송원장 : 어떠냐구 묻잖니?
세준 : ...특별히 더 나빠지진 않았어요.
송원장 : 병원 다니구 있어?
세준 : 네.
송원장 : 앞으로 대책이 뭐냐?
세준 : ...걱정 마세요.
송원장 : 걱정을 말라니? 니가 걔 보호자야? 병들어 다 죽어가는 애랑 결혼이라두 할거야?
세준 : ...네.
송원장 : (굳는) 너 지금 뭐라 그랬니?
세준 : 결혼할거예요.
송원장 : (질리며 입 벌어진다) ...서희가 그렇게 하자든?
세준 : 아뇨...서흰 아직 아니예요. 저 혼자 매달리고 있어요.
송원장 : ...(멍한)
세준 : ...(고개 숙이고) 죄송합니다, 어머니. 전 서희 아니면 안되겠어요.
송원장, 기가 막혀 가슴을 친다.
송원장 : 너 미친 거 틀림없어...예전부터 알아봤지만 너 정상 아니야. 그지?
세준 : ...
송원장 : ... 결혼이 애들 장난이냐? 죽으면? 홀애비 돼서 혼자 살래?
세준 : ...안 죽어요.
송원장 : (본다)
세준 : 어떡하든 살릴거예요...
송원장, 한숨 쉬며 손수건으로 눈시울 닦는다. 가방에서 메모지 하나 꺼내서 테이블에 던져놓는다. 외면하며.
송원장 : 서희 엄마 찾아봐라.
세준 : !
송원장 : 창고 뒤져서 겨우 찾았다...맡겨놓구 한동안, 민선생한테 소포루 옷이랑 먹을거 부쳐오구 그랬다드라...민선생이 찾았어.
세준 : (떨리는 손으로 메모 들어본다)
송원장 : 너무 기대는 마라. 걔네 엄마 일하던 식당 주소라서... 벌써 몇년전이야? 아마 찾기 힘들지두 몰라...
그래두 물어물어 알아봐라. 골수이식인가 그거 해야할 거 아냐. 가족이라야 된다며?
세준 : ...
송원장 : 나는 니 얘기 못 들었어. 결혼은 무슨 결혼이야? 내가 널 그냥 둘 거 같애?
걔네 엄마 찾아내서, 자기 자식 일, 자기가 알아서 하라 그래. 혹시나 돈 많은 집에 시집이라두 갔을지 알어?
세준 : (멍하니 쪽지 보다가)...고맙습니다, 어머니.
송원장 : (속상한듯 다시 눈물 훔치며) ...미친녀석...뭐가 고마워? 누가 서희 위해 이런다니?
S#18. 서희집 앞 골목 (낮)
상기된 얼굴로 뛰어오는 세준. 문 탕탕 두드린다.
세준 : 서희야! 한서희!
서희, 밖으로 나온다. 손 흔드는 세준. 소리친다.
세준 : 얼른 옷 갈아 입고 나와! 깜짝 놀랄 일 있어!
서희 : ?
S#19. 고속버스 터미널 (낮)
세준, 차표 끊어서 뛰어온다. 서희, 한쪽 의자에 앉아서 떨리는 손으로 주소 적힌 메모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세준 : (곁에 앉으며) 표 끊었어. 얼른 가자.
서희 : (아직 멍한)
세준 : (상기된) 나두 첨엔 이게 무슨 영문인가 싶드라...뭐든지 간절하게 바라면 이뤄진다 그러잖아...하늘이 우릴 돕는거야.
서희 : ...정말...만날 수 있을까?
세준 : 그럼.
세준, 서희 손을 잡아준다.
서희 : 우리 엄마가...나 알아볼까?
세준 : 그럼.
서희 : 피하진 않을까? 피할지두 몰라.
세준 : ...그래두 넌 딸이야. 어머니하구 딸이야.
서희 : ...동생들두 있겠지?
세준 : 그럼...(손 잡고) 인제 니 병 다 나았어. 인제 너 살았어!
서희, 긴장된 얼굴로 다시 주소를 본다. 두려운 듯 세준을 본다.
서희 : (눈물 닦으며 웃고) 오빠 나 꿈꾸는 거 아니지?
세준 : (잡아끌며) 얼른 가자.
S#20. 지방도시 식당 앞 (낮)
허름한 한식당. 세준, 서희, 나란히 걸어온다. 세준, 주소를 확인한다.
세준 : 여기다! 여기 맞는것 같은데?
서희 : (본다)
서희 손 이끌고 들어가는 세준.
S#21. 식당 안 (낮)
세준, 서희 들어온다. 여주인, 카운터에서 졸고 있다. 손님 없는 시간.
세준 :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여기요...십몇 년 전에두 이 가게였습니까?
여주인 : 무슨 말이예요?
세준 : 죄송합니다만...사람을 좀 찾고 있어서요...박희숙씨라구..
여주인 : 여기 이사온지 오년 밖에 안됐어요.
서희 : ...(실망하며)
세준 : ...알겠습니다.
S#22. 식당 앞 (낮)
세준, 서희 나온다. 세준, 곰곰 생각한다.
세준 : 괜찮아...구청 가서 찾으면 돼.
서희 : (본다)
세준 : 가자. 문제 없어!
택시 잡는다.
S#23. 구청 복도 (낮)
서희, 피곤한 듯 한쪽 벤치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안에서 나오는 세준. 밝다.
세준 : 찾았어, 서희야.
서희 : (밝아지며 일어나는) 정말?
세준 : (쪽지 들어보이고) 여기서 안 멀어!
서희 : (기쁜)
세준 : 여러번 이사 하셨드라...이게 최종 주소지야...얼른 가자.
서희 : ...(글썽이는)
S#24. 언덕배기 골목 (저녁)
세준, 서희 손을 힘겹게 이끌고 올라온다. 오래된 한옥이 늘어선 허름한 동네. 서희, 주위를 둘러보며 착잡하다.
세준, 대문 앞 주소 일일이 확인하며 이윽고 어느집 앞에 선다.
세준 : (돌아보며 웃고) 백이번지 구십오호...여기다!
벨 누른다. 초조한 두사람.
중년 여자(E) : 누구세요?
서희 : (긴장)
세준 :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대문 열고 나오는 늙수그레한 여자.. 서희, 엄만가 유심히 본다.
세준 : 혹시 여기 박희숙씨라구...계십니까?
여자 : ......누구세요?
세준 : 저어...(서희 살피고) 좀 아는 사람인데요...
서희 : ...
여자 : 그래요?
세준 : 안계십니까?
여자 : 어쩌나...작년에 죽었는데요.
서희 : !
세준 : (굳는) 돌아가셨어요?
여자 : (한숨) 네...무슨 일로 그래요?
세준 : 아,아닙니다...몰랐습니다. 혹시 어떻게 되시는지요?
서희 : ...
여자 : 나요? 나랑 어떻게 되는건 아니구..혹시 일가붙이유? 문간방에 혼자 살다 갑자기 죽는 바람에, 우리집서 장례 다 치렀수..
그렇게 친척이구 누구구 찾아두 하나 없드니... 갑자기 어떻게 찾아 온 거예요?
세준 : ...구청에 사망신고두 안 돼있든데요...
여자 : 거기까지 우리가 신경을 못 썼죠...글쎄 무슨 일로 그러는데요?
서희 : 저어 혹시...산소는 있나요?
세준 : (본다)
여자 : 화장 치렀어요. 후손두 없는데 산손 만들어 뭐하게요? 화장두 우리가 우리 돈 들여서 다 치른거유.
서희 : ...
세준 : 죽었다는 분 박희숙씨 맞아요? 좀전에 혹시 잘못 들으신 거 아닙니까?
(버럭) 박희숙씨요! 구청에 사망신고두 안돼있었다구요!
세준 손을 얼른 잡아 끄는 서희.
서희 : 안녕히계세요, 고맙습니다.
여자 : ...이거봐요,
서희, 세준을 잡아끌고 급히 돌아선다.
S#25. 고속 버스 안 (저녁)
세준, 서희, 나란히 앉아있다. 침묵 흐른다. 세준, 서희를 아프게 본다.
세준 : 서희야,
서희 : (돌아보며 웃고) 괜찮아...
세준 : ...(본다)
서희 : 이럴 줄 알았어...뭐 어때? 여태 돌아가신 셈 치구 살았는데 뭐.
세준 : ...
서희 : 괜찮아, 오빠...오랫만에 멀리 나들이한 셈 치지 뭐.
세준 : ...
서희 : ...괜찮다니까?
세준, 눈물 흐른다.
서희 : 오빠두 참...오빠가 왜 울어? (웃고) 에이, 참...
세준 : ...
서희 : ...(덤덤히 창 밖 본다) 우리 엄마두 너무해...돌아가실 거면...한번 찾지두 않으셨을까? 너무했어, 그지? (씁쓸히 웃고)
세준 : (아프게 본다)
S#26. 서희집 앞길 (밤)
서희, 세준 올라온다. 대문 앞에 서는 두사람.
세준 : 피곤하지? 들어가서 일찍 자.
서희 : 응.
세준 : 약 먹구 자.
서희 : 응.
세준 : 갈께...잘있어.
서희 : 잘가, 오빠...(웃으며 손 흔들고) 오늘 고마웠어.
세준, 씁쓸한 미소 지어보이고 돌아선다. 서희, 세준 뒷모습 보다가 점점 어두워진다.
서희 : ...오빠,
세준 : (흠칫 돌아본다)
서희 : ...(떨구고)
세준, 돌아와서 끌어안는다. 서희, 이윽고 소리내서 서럽게 흐느낀다.
S#27. 패스트푸드점 (밤)
혜정, 젊은 남자 손님과 실랑이 하고 있다.
손님 : (고기 들어보이며) 이렇게 시커멓게 탄걸 누가 먹어? 바꿔달라면 바꿔줘야지.
혜정 : 이게요, 탄게 아니구 원래 소스 색깔이 이래요. 이런데 첨 와보세요?
손님 : (무안한) 야, 지배인 불러.
혜정 : 이 손님 봐? 지배인을 왜 불러요?
손님 : (카운터 향해) 여기 종업원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거야?
혜정 : 어우, 열받네...알았어요! 바꿔오면 될거 아냐!
손님 : 이게 어디서...이거 짤리구 싶어 환장했어?
매니저 달려온다.
매니저 : 무슨 일이세요?
혜정 : 아유, 아유 드럽다, 드러워. (앞치마 풀며) 내가 관둘께. 내가 관둔다.
지영, 들어온다. 혜정과 눈 마주친다. 혜정, 더욱 열 오른다.
혜정 : 나 찾아왔어요?
지영 : ...
S#28. 패스트푸드점 앞길 (밤)
지영, 혜정 걸어간다. 말없이 걸어가는 두사람.
혜정 : 말을 해요! 사람 찾아왔음 말을 해얄거 아냐! 되게 답답하네?
지영 : ...
혜정 : 야, 너 나랑 동갑이지?
지영 : (본다)
혜정 : 그냥 말 놀께. 너두 말 놔...
지영 : ...
혜정 : 재석이 땜에 그래? 재석이 너 가져.
지영 : (붉어지며 본다)
혜정 : 나는 걔한테 정나미 다 떨어졌어. 너 가져두 돼.
지영 : (멈추고) 우,우리...어,어디가서 차 한잔 할래요?
혜정 : (본다) 말놔.
지영 : (빨개지며 본다)
S#29. 호프집 (밤)
지영, 혜정, 둘이서 맥주 마시고 있다. 한잔 따라주는 혜정.
혜정 : 자, 한잔 또 받고...
지영 : ...(잔 받으며 본다)
혜정 : (훌쩍 마시며) 왜그렇게 봐?
지영 : 아,아뇨.
혜정 : 재석이가 혹시 나한테 무슨 미련이 남았을까봐 그러나본데... 재석이 너 되게 좋아해...무지무지 좋아해.
걔 발가락에 티눈으로두 나 안쳐다봐. 맘놔.
지영 : ...(덤덤하다) 아,알아요.
혜정 : (기막히며) 와아...할말 없다...야, 나, 궁금한게 있는데...너는 걔가 뭐가 좋니? 니가 아쉬울게 뭐 있냐?
나 그거 무지 궁금해. 나같으면 걔 안사귄다.
지영 : 마,맞아요...나,나는 혜정씨가 아니니까요.
혜정 : (본다)
지영 : ...
혜정 : ...찾아온 용건이 그거야? 지금 사람 놀리는 거야?
지영 : 아,아뇨...재,재석씨 일 아니예요.
혜정 : (본다)
지영 : 서,서희,몸 좀 어때요? 집,집을 좀 알고 싶어요.
혜정 : (무안해지며) ...
지영 : ...
혜정 : (일어나며 외면) ...같이 가..요...집 가르쳐줄께요.
S#30. 서희방 (밤)
불꺼진 방. 서희,누워있다. 이런저런 생각에 눈물을 훔친다. 열나고 땀 흐른다.
구역질 나는 듯 몇번 비위 상하더니 입을 가리고 얼른 일어난다. 밖으로 나간다.
S#31. 동 화장실 (밤)
서희, 변기에 대고 토한다. 핏물이 번진다.
서희 : (두려운) ...살려주세요...
울며 기진해서 바닥에 쓰러진다.
혜정(E) : 서희야! 한서희!
화장실 문을 벌컥 여는 혜정, 지영.
혜정 : 서희야!
지영 : (놀라서)
일으키는 혜정.
혜정 : (놀라며) 서희야!
S#32. 병원 외경 (밤)
S#32-1. 응급실 (밤)
지쳐 잠든 서희. 지영, 서희 손을 잡고 안쓰럽게 지켜보고 있다.
급히 문 열고 들어오는 세준. 지영, 일어나 인사한다.
세준 : 어떻게 된거예요?
지영 : ...
지영, 뭐라 말하려다가 목메이며 더욱 말 안나온다. 혜정 들어온다.
혜정 : (울먹이며) 어떡해요, 오빠...피를 막 토하구 까무라쳐 있드라구요...쪼끔만 더 늦었어두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어요.
오빠 서희 어떡해요...
세준, 멍하니 서희를 내려다본다.
S#33. 병원 로비 (아침)
지영, 눈물 뚝뚝 흘리고 있다. 난감한 듯 바라보는 황교수.
황교수 : 이 녀석아, 그만 좀 울어라...아빠 회진 돌아야 된다.
지영 : ...
황교수 : 다 그런거지 뭐...아픈 사람 아프구 싶어 아픈 거 봤냐? 사랑이구 병이구 원래 지멋대로 왔다 지멋대루 간다.
가서 위로 잘해줘라. 니가 먼저 울면 어째?
황교수, 지영을 안고 토닥거려 준다. 혜정, 멀찌기서 지켜본다. 씁쓸하다.
지영 : ...어,얼마나 살 수 있어요?
황교수 : (한숨) 모르겠다...인젠 큰 기대 안하는게 좋겠지 싶다...세준이 녀석이 마음 꽤나 아프겠다.
지영 : ...
S#34. 입원실 (낮)
조그맣게 웅크린 세준 뒷모습. 잠든 서희 앞에 고개 묻고 죽은 듯 앉아있다.
S#35. 까페 (저녁)
유리, 기다리고 있다. 들어오는 세준.
유리 : 여기야, 오빠.
세준, 마주 앉는다.
유리 : ...서희씨 좀 어때?
세준, 초췌하고 멍하다.
유리 : 좀 좋아졌어?
세준 : ...
유리 : (망설이다가) 돈...구했어?
세준 : ...음.
유리 : 어디서?
세준 : ... 너희집에서.
유리 : ...(멍하다가) 우리 오빠 만났어?
세준 : ...음.
유리 : 그랬구나...(한숨) 어쨌든 뭐....다행이야. 인제 수술만 받으면 되는 거네...
세준 : ...유리야,
유리 : (본다)
세준 : 병원에서 그러는데...(넋나간듯 허탈하게 본다) 인제 수술 소용없단다.
유리 : 무슨 말이야? 왜? 골순가...그거 못찾아서?
세준 : 아니...너무 늦었대.
유리 : (본다)
세준 : 병원에서 그러는데...인제 하루를 살지 이틀을 살지 아무두 모른대...
인제 부모 형제가 나타나두...돈이 억만금이 생긴대두...다 소용없댄다. 인제 늦었대.
사이.
세준 : 나, 서희랑 곧 결혼할거야.
유리 : (흠칫 본다)
세준 : 니가 축하해주면 좋겠어.
유리 : ...오빠,
세준 : 서희 안 죽어...병원에서 하는 얘긴...의학적으로 그렇다는거지...사람은 의학으루 사는게 아니거든.
유리 : (멍하다)
세준 : 의학 공부 해보니까 정말 그래...사람은 의지로 살아. 의학이 아니야. 서희 꼭 살거야.
유리 : ...
세준 : 유리야, 여러가지로 걱정해주고 신경 써줘서 고맙다.
S#36. 병원 복도 (저녁)
서희, 환자복 입은 채, 머리 하나도 없는 백혈병 꼬마 환자(7,8세 정도)와 장난치고 뛰어 다닌다.
세준, 들어오다가 지켜본다.
서희, 이윽고 꼬마를 잡는다. 빠져나가려고 키득거리는 꼬마.
서희,꼭 끌어안는다.
꼬마 : 놔주세요!
서희 : 에잇! 절대로 못놔준다!
꼬마 : (키득거리며) 알았어요! 줄께요, 줄께요...
꼬마, 주먹에 쥐고 있던 머리 묶는 끈을 내민다. 서희, 머리를 다시 묶는다.
꼬마, 의자에 놓아둔 블럭 상자를 들고 온다.
꼬마 : 누나, 블럭 쌓기 해요.
복도 바닥에 앉아 블럭을 풀어놓는 꼬마.
서희 : 이야, 많다! 뭐 만들기 할래?
꼬마 : 배요! 화물선!
서희 : 화물선, 좋아! 누가 먼저 만드나 내기 하자!
꼬마 : 좋아요, 진 사람이 꿀밤 열대 맞기!
서희 : 에이, 열 대는 너무 많다? 백 대!
꼬마 : 우와! (웃고)
둘이서 블럭 쌓는다. 세준, 다가온다. 서희와 눈 마주친다.
서희 : 오빠...
세준 : ...퇴원 수속 했어. 챙겨가지구 나가자.
서희 : 퇴원하래?
세준 : (주저 앉으며) 응.
서희 : ...(환해지며) 벌써? 그렇게 좋아졌대?
세준 : 응. (블록 하나 집어들고) 나두 끼워주라.
S#37. 민혁집 외경 (밤)
S#38. 동 거실 (밤)
불꺼진 거실. 유리, 홀로 멍하니 앉아있다. 민혁 이층에서 내려오다 본다.
민혁 : 뭐하고 있어? 안자?
유리 : (본다)
민혁 : 왜? 무슨 고민있어?
유리 : ...오빠 서희씨 죽는대...수술두 소용없나봐.
민혁 : (본다)
유리 : ...애 낳으면...그애 누가 키워? 우리가 데려와야하는 거 아냐?
민혁 : 애 얘기...함부로 입두 뻥끗 하지 말랬지?
유리 : ...
사이. 침묵 흐른다.
민혁 : 그애...내 애 아니야.
유리 : (멍하니 본다) 오빠,
민혁 : 세준이 애야. 니가 그동안 잘못 안 거였어.
유리 : 무슨 말 하는거야?
민혁 : (냉소 어리며) 그만 들어가서 자라.
부엌 쪽으로 가서 물 마신다. 유리, 두려운 듯 본다.
S#39. 포켓볼 클럽 (밤)
민혁,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있다. 잔뜩 취했다. 울리는 핸드폰.
민혁 : ...네에...누구냐? 은지가 누구야? (친구들 돌아보고) 야, 니네 은지가 누군지 아는 사람 있어?
S#40. 민혁집 외경 (밤)
S#41. 동 거실 (밤)
은지, 전화하고 있다. 마주 앉아있는 유리.
은지 : (한숨) 거기 어딘데?...데릴러 갈께, 얘기해...민혁씨? 여보세요?
전화 끊는다.
유리 : 끊어버렸어요?
은지 : 네.
은지 : 그전에두 자주 이랬어요?
유리 : 아,아니예요...요즘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많은가봐요...
안에서 나오는 장회장.
장회장 : 그럴 때두 있지...너무 호들갑 말아라...들어가서 먼저 자거라.
은지 : 예에...(일어나며) 안녕히 주무세요.
장회장 : 그래, 잘자거라.
은지 이층으로 올라간다. 난처한 듯 잠깐 장회장을 보는 유리.
장회장 : 왜? 무슨 할 말 있냐?
유리 : 아뇨...주무세요.
S#42. 클럽 앞길 (밤)
민혁, 친구들과 엉켜서 비틀거리며 나온다. 넘어질 듯 휘청거린다.
친구1 : 야, 안되겠다. 대리운전 불러.
민혁 : 됐어...걱정마.
친구1 : 안돼, 임마.
민혁 : (뿌리치며) 됐다...니들 걱정이나 해라.
유리, 경적을 울린다. 돌아보는 민혁. 차에서 내리는 유리.
유리 : 오빠, 타.
민혁 : 이게 누구냐? 내동생이구나? 너 유리 맞지? 아닌가? 얘들아, 인사해!
유리 : (끌어당기며) 얼른 타기나 해!
S#43. 거리 (밤)
유리, 차 몰고 간다. 곁에 앉아 창가에 기대고 있는 민혁. 죽은 듯 기대고 있다.
유리 : 은지 언니 화 많이 났어.
민혁 : ...
유리 : 왜 또 제자리로 돌아가? 오빠 회사두 안 나갔다며?
민혁 : ...유리야, 나 저기 좀 세워주라.
유리 : (본다)
민혁 : 세워...들를 데가 있어.
유리 : 세우긴 뭘 세워? 그냥 가.
민혁 : 차 세워!
유리 : 오빠,
민혁, 강제로 핸들을 꺾으려 한다. 유리, 놀라서 길 한쪽에 차를 세운다. 민혁, 비틀거리며 내린다.
민혁 : 이따 보자...걱정마. 나 택시 타고 갈께. (손 들어보이고 웃는)
유리 : 오빠!
S#44. 서희집 앞 골목 (밤)
세준, 서희와 함께 택시에서 내린다. 서희를 부축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멀찌기 골목 어귀에 서서 지켜보는 민혁. 복잡한 눈길로 본다.
S#45. 서희방 (밤)
세준, 서희 들어오며 불켠다. 세준, 이불을 깔아준다.
서희 : 내가 깔께, 괜찮아.
세준, 뿌리치며 어두운 얼굴로 묵묵히 이불을 깐다.
서희, 잠시 바라본다. 자리에 앉은 채 옆으로 비틀 쓰러지는 척 한다. 놀라는 세준.
세준 : 서희야!
서희, 눈을 뜨고 씩 웃는다.
세준 : ...(어이없는) 한서희...
서희 : ...놀랬지, 오빠?
세준 : (한숨) 그런 장난을 왜해?
서희 : ...오빠 하두 죽을 상을 하니까 내가 좀 놀려줄려 그랬지... 에이, 왜그래? 화난 사람처럼.
세준 : ...
서희 : (웃고)...오빠 그러지마...나 괜찮아.
세준 : (본다)
서희 : 있잖아, 오빠...소망원 살때 말인데, 우리 엄마가 혹시 날 다시 데릴러 오면 어떡할까..맨날 상상했거든?
혹시 부자돼서 나 데릴러오면 어쩌나...나 그땐 모른척 하고 따라가야지, 처음엔 막 화내는 척 하다가
못 이기는 척 하고 따라가야지...속으로 각본두 짜놓구 그랬어...온갖 구상을 다 했었는데...
세준 : ...
서희 : 근데 오빠, 나...엄마 죽었을거란 생각은 왜 꿈에두 못했을까? (짐짓 웃고) 아하, 우리 엄마가 부자가 못 돼놓으니까..
살아서는 날 차마 못 만나러 오구, 죽어서 만날려구 먼저 가 있나 봐. 엄마가 나 이렇게 죽을 거 알았나봐.
세준 : 죽긴 니가 왜 죽어?
서희 : (씁쓸히 본다) 아까 병원에서 얘기 대충 들었어...나...인제 얼마 안남았지?
세준 : (굳는)
서희 : 괜찮아...인제 나 속이는 거 그만해... 내가 내 몸 제일 잘 알지 뭐...
사이. 고개 숙인다.
서희 : 오빠, 차라리 이 애...살아서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세준 : 한서희,
서희 : (고개 들고) 아니야, 오빠 ...방금한 말 취소야...오빠 전에 그랬잖아? 살고 죽는거 마음대로 되는거 아니라면서?
아직은 누구두 나한테 뭐라고 말 못해.
세준 : ...
서희 : 그러니까 오빠두 기운내...나는 기운이 펄펄 나는데 뭐.
세준 : (본다)
서희 : 하는 데까지 해보는 거지 뭐...그러다 안돼두 그게 운명인가보다, 감사하게 여길께.
사이. 세준, 마음이 미어진다.
세준 : (손 잡으며) 서희야,
서희 : 응?
세준 : 이제 그만 나랑...같이 살자.
서희 : (본다)
세준 : 같이 살아...죽는게 아니구 사는거야...하루를 살아두, 나랑 같이...우리...같이 살면서 노력하자.
병이랑 우리랑 누가 이기나 해보자.
서희 : ...(글썽이며)
세준 : (본다) 너 나 원하잖아...옛날부터, 어릴때부터...우리 둘이 똑같이 바라던 거잖아.
서희 : ...
세준 : (미소 짓고) ...인제 그만 나 좀 받아들여라.
S#46. 서희집 앞 골목 (밤)
불켜진 창문을 올려다보며 골목 귀퉁이에 주저앉아 맥주캔 마시는 민혁. 승용차 한 대 지나가며 헤드라이트를 비춘다.
눈 부신듯 찌푸리며 일어나는 민혁. 이윽고 일어나 돌아선다. 다시 돌아서며 캔을 창문 향해 던져버린다.
S#47. 서희집 외경 (아침)
S#48. 서희방 (아침)
서희, 뭔가에 놀란 듯 반짝 눈을 뜬다. 일어난다.
아무도 없는 방안. 입구에 뭔가 보인다. 커다란 박스와 예쁜 부케 꽃다발.
서희, 끌어당겨 열어본다. 흰 실크 예복 원피스가 얌전하게 들어있다. 원앙 그려진 청첩장이 보인다. 열어본다.
세준(E) : 이세준과 한서희 저희 두사람은 오늘 드디어 한 가정을 이루려고 합니다. 부디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장소 : 성당, 시간 : 오늘 정오
서희, 조용히 카드 들여다보고 있다. 원피스를 꺼내서 들고 본다. 보다가 끌어안고 고개 숙인다.
S#49. 성당 외경 (낮)
S#50. 성당 안 (낮)
텅빈 성당 안. 세준, 맨 앞자리로 걸어온다. 정장 입고 있다.
눈을 들어 단상을 바라본다. 시계가 열한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S#51. 서희방 (낮)
서희, 원피스를 입고 있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는다. 착잡한 얼굴로 머리를 묶고 립스틱 등 화장품을 꺼내기 시작한다.
들어오는 혜정.
혜정 : 서희야?
서희 : (당황하며) 어어, 왔어?
혜정 : (보고) 뭐야?
서희 : (보다가) ...혜정아...나 화장 좀 해줄래?
혜정 : 어디 가?
서희 : 응...묻지 말구...
혜정, 의아하다. 립스틱과 화장품 지갑을 들이미는 서희.
서희 : 입술이랑 눈이랑 예쁘게 칠해줘.
혜정 : (어이없어 웃고) 야아, 뭐야? 어디 가는데?
서희 : ...(쓸쓸해지며)
S#52. 성당 앞 (낮)
원피스 입은 서희, 천천히 걸어온다. 착잡한 얼굴로 성당 건물 올려다본다. 부케를 뒷손에 들고 있다.
핼쓱한 얼굴 위에 연한 화장을 했다.
S#53. 성당 안 (낮)
서희, 입구에 들어선다. 맨 앞자리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있는 세준 모습이 보인다.
서희, 조용히 걸어가 그 곁에 눈 감고 무릎 꿇고 앉는다. 세준, 돌아본다. 기쁨으로 환해진다.
세준 : ...고마워, 서희야.
서희 : ...(눈 뜨고 조용히 웃는) ...결혼식 시작해, 오빠.
사이. 두사람, 손 잡는다.
세준 : ...(이윽고 천천히 단상 바라본다) ...저희 두사람, 오늘 이렇게...결혼합니다.
서희 : ...
세준 : 만일 신이 계시다면...저흴 용서해주세요...저희들...잘못이 있다면 서로 너무 사랑한 잘못 밖엔 없습니다.
서희 : ...
세준 : 그게 잘못이라면 조금 덜 사랑하겠습니다.
서희 : (눈 뜨고 본다)
세준 : 그대신...서희 살려주세요.
서희 : ...
세준 : 제 목숨 다 서희한테 주세요...둘이서 함께, 서른살까지만... 같이 살게 해주세요. 우리 두사람...덜 사랑하겠습니다.
미워하구 싸우겠습니다. 서른살까지만 살게해주세요. 그러다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함께 죽게 해주세요.
(고개 숙이고 더이상 말 못 잇는다)
서희, 아프게 보다가 이윽고 세준을 가만히 끌어안는다. 끌어안고 한참 눈물 짓는 서희.
세준, 천천히 고개 들고 서희를 일으켜 세운다. 잠시 어깨 감싸며 따뜻하게 바라본다. 눈물 닦아주며 환한 미소 짓는다.
세준 : ...결혼 축하해, 서희야.
서희 : ...(애틋하게 본다)
이윽고 조용히 입 맞추는 두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