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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08
#.1 씬. 면접장 내. (낮)
7 회 연결 상황으로.
준석 : 왜 우리 회사에 입사하려고 합니까?
수찬 : (침 삼키고) 집이 없어섭니다.
준석 : 우리 회사가 건설회사이기 때문이란 뜻입니까?
수찬 : 현재 행복마을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준석 : 그런데요?
수찬 : 당장 이 마을을 떠나면 노숙자가 되야 할 처지구요.
준석 : 그런데요?
수찬 : 입사해서 3년을 근무하고 업무 평가 성적이 우수하면 사택에 입주할 조건이 있다는 걸 압니다.
준석 : 결국 살 데가 없어서 우리 회사에 입사하겠다는 건가요?
수찬 : 그만큼 절박하니까 죽기 살기로 일하지 않겠습니까?
준석 : (의미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고사장 : (미소를 짓고)
#.2 씬. 감자탕 집. (낮)
수찬, 윤희 감자탕(전골 아닌 1인분씩 탕으로)을 먹고 있는.
윤희 : 그, 그러니까 반응이 어땠는데?
수찬 : 야. 그 니 팀장이란 사람 왜 그러냐?
윤희 : 우리 팀장님이 뭐?
수찬 : 왜 말투가 그러냐구? 그런데요? 그런데요?
윤희 : 아, 그거 버릇이야. 요즘은 덜한 편이셨는데.
수찬 : 인상 좀 그렇드라. 젊은 친구가 빼초롬하니.
윤희 : 댁이 면접 본거야. 면접관들 관상 보러 간 게 아니라. 될 거 같아? 느낌이 어떠냐구?
수찬 : 내가 여자들한테는 좀 먹히는데 남자들한텐 좀 그렇거든.
남자들이 나만 보면 무조건 경계를 한다는 약점이 좀 있잖냐.
윤희 : 지금 여자 면접관들 없어서 떨어질 거 같다 뭐 그거셔?
수찬 : 느낌이 썩 좋지는 않다. 특히 네 팀장이란 그 친구 날 보는 눈빛이 좀 그렇더라구.
내 생각엔....
윤희 : 생각엔?
수찬 : 우리 동네에서 왜 그때 나랑 혜미씨랑 같이 있는 거 그 친구가 봤잖냐? 아무래도.....
윤희 : 아무래도 뭐?
수찬 : 라이벌 의식을 갖는 게 아닌가 싶던데.....
윤희 : 어라, 그러셔. 집도 절도 없어서 사택단지 들어가 사는 게 목표라고 떠들고 있는 댁한테
우리 팀장님이 라이벌 의식을 느끼시는 거 같으셔?
수찬 : 네가 남녀 관계에 대해서 뭘 알겠냐? 남자들은 동물적으로 적수를 알아보는 뭔가가 있거든.
윤희 : 동물적으로 댁을 제비구나 느끼시는 건 아니구?
#.3 씬. 준석의 사무실 휴게실. (낮)
윤희, 식탁을 보면 손도 대지 않은 채 놓여있는 밥상.
윤희 : (돌아보는)
#.4 씬. 준석의 사무실. (낮)
윤희. 휴게실에서 나오는.
준석, 책상 앞에 앉아 일하고 있는.
윤희 : 왜 식사 안하셨어요?
준석 : (모니터 보면서 일만 하고 있는)
윤희 : 혹시 제가 없어서....
준석 : (모니터만 보면서) 과대망상입니까?
윤희 : 아니요. 제가 앞에서 떠들어드리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고 하셔서.....
준석 : 그야말로 순수하게 입맛이 없었습니다.
윤희 : 아, 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돌아서는데)
준석 : 그 친굽니까? 백수찬이라는.
윤희 : (돌아보면)
준석 : (여전히 모니터만 보면서) 입사 시험에 그렇게 신경 썼던게.....
윤희 : 네. 한집에 살거든요.
준석 : (순간, 표정 약간 멈칫 하지만 여전히 시선은 모니터에 고정한 채) 더부살이 하는 처지라고 하던데?
윤희 : 그야말로 순수하게 저희 집에서 더부살이 하고 있는데요.
준석 : 나가보세요.
윤희 : 저기요, 팀장님?
준석 : (보면)
윤희 : 백수찬씨 붙었나, 떨어졌나 물어보면 대답 안 해주실 거죠?
준석 : ......알면서 왜 묻습니까?
윤희 : 그러게요. 근데 혹시나 해서요.
준석 : 혹시나 뭐요?
윤희 : 저랑 팀장님하고 꽤 친하다는 착각을 해서요. 그래서 혹시나.....
(얼른 고개 숙여 인사하고) 죄송합니다. 일하세요. (나가버리는)
준석 : ......(깊은 시선으로 문 쪽을 바라보는)
#.5 씬. 동네 길. (낮)
예전 단명희의 집 앞.
대한, 정숙 이삿짐을 내리고 있는.
장 보고 걸어오는 선우, 하니, 보경.
선우 : 새로 이사 들어오시나 보네.
정숙 : (인사하고) 네.
보경 : J건설 사원이 이사 들어오신다고 하던데?
정숙 : 네. 저이가 기획부에 근무해요.
보경 : 어머, 그럼 우리 그이랑 같은 부서네요.
대한 : (짐꾼하고 같이 커다란 상자를 내리고 있는)
정숙 : 여보? 인사해요.
대한 : (낑낑거리면서 고개로 인사만하는)
하니 : (대한을 향해 소리치는) 저희 남편도 같은 부서예요.
대한 : 아, 네. (고개로 인사만 하는)
하니 : 근데 왜 포장 이사를 안 하세요? 요즘 그냥 이사하시는 분들 별로 없던데.
정숙 : 네. 우리 그이가 좀 완벽주의라서요.
#.6 씬. 대한의 집 앞. (낮)
대한, 짐꾼들과 짐 나르면서.
대한 : 아, 거기 깨지는 물건이라고 씌여있잖아요. 조심들 좀 하시지.
정숙, 냉커피를 타서 쟁반에 받쳐 가지고 나오는.
정숙 : 시원한 것 좀 드시고 하세요. (쟁반 박스 위에 내려놓고, 컵 하나 들고 일하고 있는 짐꾼에게 건네려고 하는데)
대한 : (얼른 커피잔 뺏어서 짐꾼에게 건네는) 드시고 하십쇼.
정숙 : 나 슈퍼 좀 갔다올게.
대한 : 단추 풀렸다.
정숙 : (자기 옷 보면 짐 나르다 앞 단추 두 개가 풀려있다, 얼른 잠그면서 혼잣말로) 떠죽여라, 떠 죽여.
(단추를 잠그면서 돌아서는)
수찬 : (E) 정숙아?
정숙 : (보면. 수찬 반색하며 서있다)
수찬 : 너.
정숙 : (얼른 뒤 돌아보며, 대한이 들었는지부터 확인하는)
대한, 짐 나르느라 마당 쪽으로 움직여서 못 들은 상태다.
정숙 : (큰 소리로 집을 향해 외치는) 나 슈퍼 갔다 온다. (빠르게 걸으면서, 수찬에게 따라오라는 시늉)
#.7 씬. 동네 길 모퉁이. (낮)
정숙, 빠르게 걸어오는.
수찬 무슨 일인가 싶어서 뒤 돌아보며 따라오는.
정숙 : (얼른 수찬을 잡아끌고 자신의 집 쪽을 보는) 너. 여기 왜 나타나?
수찬 : 뭐?
정숙 : 네가 여기 왜 나타나냐구?
수찬 : 나, 이 동네 사는데.
정숙 : (인상 구겨지면서 낭패다 싶고)
수찬 : 야, 이게 얼마만이냐? 우리 대학원 졸업하고 처음이지. 몇 년 만이냐?
정숙 : (자기 집 쪽 연신 의식하면서) 몇 년 만이면 왜?
수찬 : 왜는 반가워서 그렇지.
정숙 : 난 너 안 반가워.
수찬 : 여전하다, 너. (정숙 어깨 툭 치며) 튕기는 게 여자의 매력이라는 촌스러운 속설 아직도 신봉하냐?
정숙 : 얘가 어딜 툭툭 치고 그래.
수찬 : 야, 야 너하고 나 사이에.
정숙 : 너 입 조심해.
수찬 : (의아하게 보는) 야, 오정숙. 나 백수찬이야, 백수찬. 너의 영원한 연인.
정숙 : 영원한 연인같은 소리 하고 있네.
수찬 : 튕기는 게 네 매력인 건 아는데.
정숙 : 나 결혼 했거든.
수찬 : 그때 나 찰 때 결혼한다고 했잖냐.
정숙 : 우리 남편 완벽주의거든.
수찬 : 뭐라는 거야, 얘가.
정숙 : 그러니까 너하고 난 모르는 사이라구. 절대 모르는 사이라구. 알아들었냐?
수찬 : 뭐냐? 지금?
정숙 : (핏대 세우며) 알아들었어? 알아들었냐구?
수찬 : (그 기세에 눌려) 아, 알았어. 눈에 힘 좀 빼라 무섭다.
정숙 : 지나다니면서 마주쳐도 아는 척 하지마. 알았지.
수찬 : 어. 야. 이 동네는 그렇게 안살아. 남의 집에 수저가 몇 갠지도 다 알고 사는데.
인사도 안하고 지내면 그걸 더 수상하게 여길 걸.
정숙 : (난감하고) 아, 그럼 그냥 인사만 해, 인사만. 알았지?
수찬 : ......
#.8 씬. 대한의 집 앞. (낮)
수찬 걸어오는.
대한 : (짐꾼들에게) 안방이라고 씌여있는 것부터 나르라구요. 안방 것부터.
안방 것부터 넣고 다른 방 것 넣자니까 그 양반들 참...
짐꾼1 : (다른 짐꾼에게만 들리게) 왜 저렇게 말이 많아?
수찬 : (힐끔 대한을 보는)
대한 : (수찬과 눈 마주치는)
수찬 : (놀라서 인사하는) 이사오시나 봅니다?
대한 : 네. (인사하고 짐을 나르는)
#.9 씬. 고사장 사무실. (낮)
고사장. 혜미 차 마시고 있는.
고사장 : 준석군 회장님 병실에 자주 들르는 거 같던데?
혜미 : (보고)
고사장 : 몰랐던 모양이구나. 병세가 어떠신가 알아보려고 오늘 낮에 잠시 들렀더니
아드님은 자주 들르신다고 하더구나.
혜미 : .....아버지를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고사장 : 정이 없다고 해도 부자지간이다. 내가 보기엔 그런 친구한테 점수 따는 거 어렵지 않은 거 같은데....
혜미 : ......
고사장 : 이런 결혼일수록 머리를 써야하는 거다.
혜미 : 죄송해요. 영리하게 굴지 못해서.
고사장 :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됐다.
혜미 : ......
#.10 씬. 비서실. (낮)
고사장, 혜미 자신의 사무실에서 나오는.
윤희, 미나 자리에서 일어서는.
혜미 : (인사하고 가면)
고사장 : 유팀장 자리에 있나?
윤희 : 네. 계십니다.
#.11 씬. 준석의 사무실. (낮)
준석, 일하고 있으면. 노크 소리.
준석 : 네.
고사장, 들어오는.
준석 : (일어서는)
고사장 : 바쁜가?
준석 : 아닙니다.
고사장 : 내일 저녁에 시간 어떤가?
준석 : .....
고사장 : 정비서한테 확인하니까 내일은 저녁 스케줄이 비어있던데.
준석 : 무슨 일로?
고사장 : 우리 집 사람이 말이야. 자네 불러서 밥 한번 먹자고 언제부터 성화였는데,
그동안 자네가 바쁜 거 같아서 말도 못 꺼내고 있었어.
어떤가? 우리 혜미는 몇 번 자네 집에서 밥도 먹고 그런 거 같은데
자네도 한번 오는 게 어떨까 싶은데...
준석 : ......
고사장 : 뭐 성가시면 할 수 없고.
준석 : 아닙니다, 가겠습니다.
고사장 : 그럴텐가?
준석 : .....
#.12 씬. 공사장. (낮)
덕길 열심이 지게 매고 간이 계단을 오르고 있는. 땀을 흘리며 죽을힘을 다하고 있다.
남자 : (위에서) 양씨 뭐해? 빨리 올라오지 않구?
덕길 : 야, 야, 올라가라. (서둘러 올라가려다 발이 꼬이고 미끄러지는) 어. 어.
#.13 씬. 동네 길. (낮)
덕길, 다리는 절면서 걸어오는. 팔에 붕대 감고, 얼굴에 반창고 붙이고.
옆으로 지나가는 미희의 차.
미희 : (고개 푹 숙이고 걸어가는 덕길을 룸밀러로 보는. 차 백해서 덕길의 옆에 세우는. 창문 내리고)
왜 그래요? 다치셨어요?
덕길 : 아. 야.
미희 : 타세요.
덕길 : .....
미희 : 타시라니까요.
덕길 : 고맙구만요. (차에 올라타는) 어구구, (신음하는)
미희 : 어쩌다 그렇게 다치셨어요?
덕길 : 공사장에서.
미희 : 병원에는요?
덕길 : 사진 찍어봤는디 부러진 디는 없다허네요.
미희 : 입원 안 해도 된대요?
덕길 : 입원은 무신.
미희 : 치료는 회사에서 알아서 해주는 거죠?
덕길 : 뭐 치료랄 거나 있간디요.
미희 : 그래도 자기 회사 일 하다 다친 건데?
덕길 : 일용직인디요 뭐. 지가 똘똘치 못혀서 그런 건디요.
이래서 아무나 쓰는 거 아니란 말만 배 터지게 들었네요.
미희 : 아니, 무슨......(갑자기 차 돌리는)
덕길 : 왜....왜......
#.14 씬. 공사장 내. (낮)
덕길, 차에 앉아 눈만 굴리고 있는.
미희 : (남자와 말하면서 핏대 세우고 있는)
남자 : (뭐라고 말하고)
미희 : (손바닥까지 탁탁 치면서 열을 내고 있다)
#.15 씬. 공사장 내. (낮)
덕길, 차에서 꼬박 꼬박 졸고 있는. 문 열리는 소리에 놀라 깨는.
미희 : (운전석에 올라타는) 대기업에서 말이야, 상도의라는 게 있는 거지.
덕길 : 지 땜시.....
미희 : (봉투 내미는)
덕길 : 이, 이것이 뭐래요?
미희 : 핏대 내세 싸우긴 했는데 많이는 못 받아냈어요.
인터넷에 억울한 사연으로 올리겠다고 엄포도 놓고 그랬는데.
보약 값 정도 될 거예요. 아, 이런 건 본인 좀 알아서 받아내셔야죠.
덕길 : 이거 요러콤 계속 신세만 져서 워쩐대요?
#.16 씬. 길. (낮)
달리는 미희의 차.
덕길, 감동한 눈길로 미희를 보고 있는.
미희 : (차 세우는) 내리세요.
덕길 : (보면)
미희 : 한약 한 재 지어 들어가자구요.
덕길 : 아, 아니여라. 이만 걸로 무슨 한약꺼정.
미희 : 그런 걸로 골병드는 거예요. 교통사고도 다친 그날보단 다음 날이 더 아픈 거 몰라요?
덕길 : 교통사고를 안 당해봐서리.
미희 : 내리세요. 우리 엄마 자주 다니시는 한의원인데.....
덕길 : 아니여라.
미희 : 아니, 이 양반이 왜 이렇게 쇠고집이야.
덕길 : 이걸로 우리 고니 가방 하나 사주야 쓰겄어요.
가방 밑구녕이 헤져서 꿰매도 꿰매도 자꾸 찢어지는 것이.....
미희 : 아, 가방은 내가 사줄테니까 한약이나 짓자구요.
덕길 : 싫구만이라.
미희 : 왜요?
덕길 : 사내놈이 여성분께 자꾸 그리 신세를 지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싶어서....
미희 : 지금 도리 찾을 때예요?
덕길 : 지는 한번 안한다고 하믄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하는 사람이구만요.
미희 : .....
덕길 : 가방 가게 요 근처에 없나요?
#.17 씬. 백화점 내. (낮)
덕길, 가방을 고르고 있는. 미희 그 옆에서.
덕길 : 워따, 하나같이 이쁘고 좋아라.
미희 : 내가 사다준다니까 말 참.....아프지 않아요?
덕길 : 돈 벌어서 새끼 가방 산께 아픈 것도 모르겄어요.
미희 : (여직원 힐끔 보면서) 남들이 들으면 자해공갈단인 줄 알아요.
#.18 씬. 윤희의 집 거실. (낮)
선우, 밥 하고 있으면, 미희 씻고 들어와 물마시면서.
미희 : 엄마? 저번에 우리 고객이 보내준 홍삼액 있지?
선우 : 왜? 엄마가 혼자 몰래 먹었을까봐?
미희 : 엄마는. 그거 고니 아빠 갖다 줘요.
선우 : (보면)
미희 : 공사판에서 왕창 다쳤드라구.
선우 : 그래? 얼마나?
미희 : 좀 깨졌어. 뭐 보약값 좀 받은 모양이던데 보약 대신 고니 가방 사가지고 오드라구.
선우 : 에고, 저런.
미희 : 슬쩍 갖다 줘요.
선우 : 그래. 네가 나 닮아서 불쌍한 사람은 그냥 봐 못 넘기지.
미희 : 아들 생각하는 마음은 끔찍하더라구. 같이 자식 키우는 입장으로 짠하드라구요.
선우 : 그래, 그래. 네가 마음 쓰는 걸로 보면 늦복이 있을 거다.
미희 : 늦복은 관두고 남자 복이나 좀 있으면 좋겠네. (나가는)
선우 : 세 번 액땜 했는데 당연히 있겠지.
#.19 씬. 유회장 병실. (밤)
유회장 누워있고, 혜미 정성스럽게 물수건으로 유회장의 손발을 닦고 있는.
준석, 들어오는.
준석 : (당황하고)
혜미 : .....준석씨 싫어할 줄 알면서도 마음이 그래서요.
준석 : ......
혜미 : 그냥 가라고 하면 갈게요.
준석 : ......아닙니다.
혜미 : (미소 짓고) 그럼 좀 앉아 계세요. 조금만 더 하면 끝나요.
준석 : (의자에 앉으면)
혜미 : (정성스러운 손길로 발가락까지 일일이 닦는)
준석 : (복잡한 시선으로 혜미를 바라보는)
혜미 : (준석의 눈길 의식하면서 열심히 닦는)
#.20 씬. 동네 길. (밤)
윤희. 희섭 걸어오는.
희섭 : 아, 됐어.
윤희 : 제가 이번엔 정말 극비로 한다니까요.
희섭 : 됐다니까.
윤희 : 정말요, 부장님 제가 궁금해서 정말 잠을.....
희섭 : 그냥 잠자지 마.
윤희 : (콧소리 내면서) 부장님?
#.21 씬. 회사 전경. (낮)
#.22 씬. 사무실. (낮)
희섭, 대한 직원들에게 인사 시키고 있는.
희섭 : 광주 지사에서 업무 평가 성적 4년 연속 1위를 해서 이번에 본사로 발령 받은 위대한 차장입니다.
처음이라 낯설 테니까 잘들 도와줘요.
영재 : 이름이 꽤 거창한 편이네요?
대한 : 네. 부모님께서 제게 거셨던 기대가 크셨던 거 같습니다.
희섭 : 이름이 좋으니까 승진도 빨랐나보네요. 자, 그럼 일들 합시다.
대한 : (자리에 앉고, 수화기 드는) 어디야?
#.23 씬. 대한의 집 거실. (낮)
정숙, 짐 정리하면서.
정숙 : 집이지 어디겠어?
대한 : (E) 전화 아직 개통 안됐어?
정숙 : 오후에 된대.
대한 : (E) 저번처럼 착신 전화 같은 거 해놓으면 안돼.
정숙 : (아, 답답하다 하는 표정으로) 안해, 안해. 그 난리를 당하고 내가 또 그걸 하겠어.
대한 : (E) 오늘 어디 나갈 일 없지?
정숙 : 살 거 많아서 슈퍼에 다녀와야 해.
대한 : (E) 몇 시에?
정숙 : (윽 하는) 조금 있다 1시에.
대한 : (E) 2시까지 와 있어. 전화 할게. (전화 끊기고)
정숙 : 아예 주리를 틀지 왜. 그래, 내가 내 발등 찍었다. 아예 포크레인으로 찍었다. 찍었어.
#.24 씬. 고사장 집 거실. (낮)
부엌에서 출장요리사 여자1,2 바쁘게 일하고 있고.
보경, 하니 야채 다듬고 있는.
영자 : (전화 중) 아니, 아니, 난하고 백합으로 세 개요. 특별히 부탁하는 거니까 꽃꽂이 좀 신경 써서 해 보내줘요.
(전화 끊고) 아니, 커텐은 왜 아직 안와.
보경 : 커튼도 새로 다시게요?
영자 : 칙칙한 거 같아서. 미리 좀 알려줬으면 좀 좋아. 어젯밤에 들어오셔서 내일 올거라니.
집에 있는 사람 생각은 통 안하시지.
보경 : 내 집 식구 될 사람이다 생각하고 편하셔서 그렇겠죠.
영자 : 사위가 편하긴 어떻게 편해. 달리 백년손님이라고 하겠어. 그나저나 괜히 고생들 하네.
하니 : 고생은요, 사모님두. 사장님 댁에 큰 손님 오신다는데 당연히 와서 도와야죠.
보경 : 그럼요. 창문 좀 다시 닦아야겠죠.
영자 : 아냐. 아줌마가 위층 치우고 내려와서 할 거야.
보경 : 제가 하면 되는데요 뭐.
영자 : 아니, 왜 그림은 아직 안와? 그렇게 급하다고 했는데.
보경 : 그림도 주문하셨어요?
영자 : 그림 대여해주는 업체 있잖아. 거기다 급하다고 연락해 놨는데 아직이네.
(부엌을 향해) 도미 탕수육 너무 무르지 않게 해줘요.
#.25 씬. 윤희의 집 마당. (낮)
선우, 정숙에게 떡 받고 있는.
선우 : 어. 다른 집들은 다 저 위 사장님 댁에 일하러들 갔을거야.
정숙 : 일이요?
선우 : 뭐 귀한 손님이 온다나 어쩐다나.
정숙 : 그런 것도 가서 돕고 그래야 해요?
선우 : 다 자기들 마음이지 뭐. 남편들 출세시키고 싶은 마음에서 그러는데.
새댁도 마음 있으면 가보든가.
정숙 : 이사 오자마자 그러면 너무 속보이지 않을까요?
선우 : 그거야 새댁 마음이지 뭐. 그래도 요새 사람이 세심하네, 이사 왔다고 떡까지 돌리고.
정숙 : 그냥 떡집에서 낱개로 포장 된 거 몇 개 사온 걸요.
보경, 하니, 어깨 두드리며 아고, 아고 하면서 들어오는.
선우 : 고생들 하네. 참, 여기 새댁이 이사 떡 돌리러 왔어.
보경 : 잘됐네. 배고파 죽겠는데.
선우 : 아침부터 가서 일했는데 밥도 안주던가?
보경 : 우리 밥 챙겨주실 정신이나 있으신가요? 잔치도 그런 잔치가 없는데.
선우 : 잔치 집에서 일 도우러 온 사람들 밥까지 굶기는 인심은 또 뭐야?
정숙 : 이거라도 드세요.
보경, 하니, 앉아서 떡봉지 뜯는데.
선우 : 가만들 있어, 시원한 물 좀 가지고 나올게.
정숙의 핸드폰 울리고.
정숙 : (번호 보고, 으 하는 심정으로 받는) 응? 왜? 떡 돌리러 왔어.
어디긴....(사람들 눈치보면서) 옆집이지.
#.26 씬. 회사 복도. (낮)
대한 : (핸드폰 중) 무슨 소리야? 우리 옆집은 우리 회사 사람 집도 아닌데 거기다 왜 떡을 돌려?
#.27 씬. 윤희의 집 마당. (낮)
정숙 : (한 켠으로 돌아서면서) 바로 옆집 아니고. 건너건너 됐어?
대한 : (E) 왜 말이 자꾸 틀려? 확실히 말해? 어디야?
정숙 : (선우, 보경, 하니에게 인사하면서) 전 그럼 가볼게요.
선우 : 왜, 떡 같이 먹지 않고?
정숙 : 아니예요.
대한 : (E) 지금 누구 목소리야? 남자 목소리 같은데.
정숙 : (뒤에 들리지 않게) 옆집 옆집 할머니다.
대한 : (E) 좀 바꿔봐.
정숙 : (이 악물면서) 정말 이럴거야?
#.28 씬. 동네 길. (낮)
윤희, 걸어오는데.
뒤에서 다가오는 준석의 차. 옆에 혜미 타고 있는.
윤희 : (무심하게 옆으로 비켜주다가 두 사람 보고 인사하는)
준석 : .....
혜미 : (우아하게 미소 짓고 고개 까딱하는)
준석의 차 윤희 옆으로 지나가는.
윤희 : .....
#.29 씬. 고사장 집 마당. (낮)
영자, 우아한 차림으로 나와서 맞는.
준석, 인사하는. 그 옆에 혜미.
영자 : 어서와요. 진작 초대를 했어야 하는데. 내가 그동안 경황이 없어서요.
준석 : 초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30 씬. 고사장 집 식당. (낮)
준석, 식탁을 보는. 그야말로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의 휘황찬란한 식탁이다.
영자 : 앉아요.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퓨전식으로 준비 했는데 입에 맞을는지 모르겠어요.
준석 : .....
고사장 : (앉으며) 앉지.
준석, 혜미, 영자, 앉는.
영자 : 내가 솜씨가 없어서 이렇게 밖에 못했으니 이해해줘요.
고사장 : 들지.
영자 : 여보? 와인부터.
고사장 : 그럴까? (고사장, 준석의 잔에 와인을 따라주는)
영자 : 귀한 손님 오면 대접하려고 아껴두던 건데.....
고사장 : (영자를 보면)
영자 : (입 다물고)
#.31 씬. 고사장 집 거실. (밤)
고사장, 준석, 혜미, 영자 앉아있는.
각자 앞에 가지각색의 과일들 담겨 있는 과일 접시, 은식기에 준비 되어 있고.
우아한 모습으로 홍차를 은찻잔에 내리고 있는 영자.
영자 : 내가 영국 문화원에 가서 배우긴 했는데 제대로 우려났나 모르겠어요. (준석 앞에 내주고)
준석 : (차를 조금 마시면서 슬쩍 고개를 돌리는데)
영자 : (그때를 놓치지 않고) 그림 좋아해요?
준석 : ......
영자 : 우리 얘가 미국에서 그림 공부를 했잖아요.
그래서 그런가 벽에 거는 그림 하나에도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고사장 : (헛기침)
영자 : 차 좀 더 드려요?
#.32 씬. 고사장 집 앞. (밤)
영자, 혜미 배웅하고 있는. 준석 인사하는.
준석 :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영자 : 어째 대접이 시원치 않아서 영 마음에 걸리네요.
혜미 : (따라 나오려고 하면)
준석 : 그냥 있어요, 피곤할텐데. (돌아서서 나가는)
영자 : (얼른 따라가라고 등을 미는)
#.33 씬. 동네 길. (밤)
선우, 보경, 하니 모여 서있는.
보경 : 예슬이 할머니는 뭐 하러 나와 계세요?
선우 : 난 뭐 그 회사에 식구 없나?
보경 : 윤희씨야 더 출세 할 게 뭐 있다구요? 금방 시집가면 그만인 사람인데.
선우 : 하도 변변치 않은 물건이라 모시고 계신 분한테 잘 좀 봐달라고 하려고 그래.
난 오신다고 해도 대접할 것도 없고. 그냥 인사만 하고 들어갈 거야.
하니 : 어른이 나와서 인사한다고 기다리고 계신 건 좀 그렇다.
선우 : 못난 딸년 둔 에민데 별 수 있나.
준석의 차 다가오는.
보경, 선우, 하니 인사하는.
준석 : (차에서 내리는, 선우에게 인사하는)
선우 : 사장님 댁에서 저녁 하신다는 말씀 듣구요, 인사나 드릴까 해서.
준석 : 네.
보경 : 시간 괜찮으시면 저희 집에 가서 차라도 한잔 하시고 가시면 어떨까 싶은데.....
하니 : 팀장님 대접하려고 과일 화채 해놨는데....
준석 : (선우에게) 차 한 잔 주시겠습니까?
선우 : (놀라고)
#.34 씬. 윤희의 집 거실. (밤)
윤희, 예슬 오징어 다리 하나 붙잡고 싸우고 있는.
미희, 소파에 누워 오락 프로그램 보면서 얼굴에 오이 붙이며 낄낄 거리고 있는.
예슬 : 이모는 몸통 먹으면 되잖아?
윤희 : 싫어, 네가 몸통 먹어.
예슬 : 이모 다리 다섯 개나 먹었잖아.
윤희 :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거다. 이모가 오징어 다리 하나 더 먹는 게 그렇게 배가 아프니?
예슬 : 공평해야지, 공평.
윤희 : 공평하기로 치면 나이 많은 이모가 다리는 다 먹고 너는 몸통만 먹어야 하는 거야.
미희 : (윤희 발로 밀면서) 그만 좀 해라, 그만 좀. 넌 어린 조카하고 오징어 다리 붙잡고 그러고 싶니?
윤희 : 얘가 양보를 안 하잖아.
문 열고 들어서는 선우와 준석.
윤희 : 빨리 안놔. 안놔.
예슬 : 이모가 놔, 이모가.
선우 : (질겁하고) 저....저.....팀장님 오셨다.
다들 놀라서 돌아보는.
예슬이가 오징어 다리를 놓는 바람에 뒤로 벌러덩 넘어가는 윤희.
준석 : (고개 돌리며 미소 짓고)
미희 : (놀라서 일어서며) 아니, 어떻게 우리 집엘.....
선우 : (자기 얼굴을 손으로 만지며 오이 좀 떼라는 시늉)
미희 : (뭐?)
선우 : 오이 좀....
미희 : (얼른 오이 떼고)
윤희 : (그 사이에 일어서서 짧은 반바지 내리며 인사하는) 어쩐 일이세요?
선우 : 우리 집에서 차 한잔 하시겠다고 하셨어.
준석 : 갑자기 찾아와서 실례를 하는 거 같네요.
선우 : 아, 아니예요. 저희가 이러고 살아요. 어서, 어서 들어오세요.
미희 : 네. 이리로.....(얼굴에 오이 떼 내면서 분주한)
#.35 씬. 예슬의 방. (밤)
윤희, 장롱을 마구 뒤지는. 예슬 한심하게 보는.
예슬 : 그러니까 진작 양보 했으면 뒤로 벌러덩 나가 떨어지지도 않고 좋았잖아.
윤희 : 입을 게 하나도 없네, 하나도.
예슬 : 엄마 꺼 훔쳐다 입어.
윤희 : 니네 엄마 옷은 다 정장이잖어. 집에서 그런 거 입고 있는 사람 봤니?
선우, 문 열고.
선우 : 뭐하니? 팀장님 혼자 계신데.....
윤희 : 입을 게 없잖아, 엄마는 빨래 좀 해놓지.
선우 : 내놔야 하지. 입던 걸 맨날 장롱에 쑤셔박아놓더니 꼴 좋다.
#.36 씬. 윤희의 집 거실. (밤)
준석, 미희 멀뚱하게 앉아있는.
선우, 윤희, 예슬 방에서 나오는.
윤희, 월남 치마같은 펑퍼짐한 치마 입고.
준석 : (그 모습 보고 고개 돌리고 피식 웃는)
선우 : 차를 뭐로 대접해야 하나....
선우, 미희, 윤희 얼른 부엌 쪽으로 움직이고.
예슬 : (준석 앞에 앉는) 저희 이모랑요.
준석 : 응?
예슬 : 매일 오징어 다리 갖고 싸우진 않거든요.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거든요.
우리 이모가요, 그렇게 푼수는 절대 아니거든요.
준석 : (웃는)
부엌 쪽에 서있는 선우, 미희, 윤희.
윤희 : 쟤 지금 왜 저런 말 하는데?
선우 : 못난 이모 카바 해보려고 지딴엔 노력하는거 보면 모르냐.
근데 어쩌냐. (커피 믹스 몇 개 꺼내 보이며) 대접할 게 이것 밖에 없는데....
윤희 : 우리 팀장님 이런 거 안 드시는데. 원두커피만 드시는데....
준석 : 아무 거나 주십쇼.
시간 경과.
준석 앞에 놓여있는 커피. 삶은 고구마 놓인 접시. 떡 몇 개 놓인 접시.
선우 : 이거 죄송해서, 오실 줄 알았으면 뭐라도 좀 준비를 해놓는 건데.
이건(떡 접시 준석 앞에 놓으며) 마침 이사온 집에서 인사를 와서.
준석 : 네.
#.37 씬. 보경의 집 거실. (밤)
보경, 뿌루퉁해서 앉아있는. 희섭 발톱 깎고 있는.
영이 방에서 띵똥 거리는 피아노 소리 백으로 깔리고 있고.
보경 : 인사만 하겠다고 나와 있던 양반이 왜 넙죽 그럼 들어오세요. 하는 건 뭐냐구. 다 속 보이는 짓이지.
희섭 : 우리 집에 오는 건 부담스러우셔서 윤희씨네로 가신 거겠지.
보경 : 팀장님도 그래요, 못이기는 척 우리 집으로 오시면 어떻냐구요?
그래도 직급으로 보나 뭐로 보나 우리 집에 오시는 게 제일 모양 그럴싸하지 않냐구요.
희섭 : 아, 거참 직급 때문에라도 우리 집에 오는 건 부담스러우셨을 거라니까.
선, 들어오는.
보경 : 넌 왜 이렇게 늦어. 레슨 끝난지가 언젠데?
선 : 애들하고 팥빙수 사먹었어요.
보경 : 네가 지금 팥빙수 같은 거나 사먹으면서 시간 보낼 때야. 지정곡도 마스터 못했으면서....
선 : (방으로 들어가는)
희섭 : 애 좀 닦달하지 마.
보경 : 좋겠어요, 당신은 만사태평이니.
영 방에서 나오며.
영 : 엄마, 치킨 시켜 먹자.
보경 : (버럭) 밥 먹은지 얼마나 됐다구 치킨이야? 치킨은?
#.38 씬. 영재의 집 거실. (밤)
영재, 하니 앉아서 과일 화채 먹고 있는.
하니 : 좀 이상한 거 아닌가?
영재 : 뭐가?
하니 : 아니, 예슬이네로 가신 거 말이야. 우리는 그래도 남자 직원 집이지만 예슬이네는 여직원 집 아니냐구?
영재 : 비서라 더 편한가보지.
하니 : 예슬이 할머니 인사만 하시겠다고 하더니 그 집으로 가겠다고 하니까 좋아하시는 거 보면. 노인네가 내숭이야.
#.39 씬. 윤희의 집 거실. (밤)
준석, 고구마를 내미는 선우를 보다가 받는.
윤희 : 우리 팀장님 입 짧으셔. 벌써 몇 개 째야?
선우 : 배부르세요?
준석 : 아닙니다.
미희 : 권한다고 자꾸 드시지 마세요. 사장님 댁에서 저녁 대접 잘 받으셨을텐데.
준석 : 처음 먹어보는데 맛있네요.
선우 : 고구마를 처음 드셔 보신다구요? 설마....
준석 : 이렇게 찐 고구마는 처음입니다.
모두 신기하게 준석을 보는.
준석 : (내가 무슨 말을 잘못 했나 하는 표정으로)
선우 : 아니, 어쩌다가 찐 고구마도 못드셔 보셨을까나.
미희 : 상류층 자제 분이시잖아요. 그런 거 언제 드셔보실 기회가 있으셨겠어요.
윤희 : 모르죠 뭐. 워낙 입이 짧으셔서.
선우 : 그럼 찐 감자는 드셔보셨나? 찐 옥수수는?
미희 : 엄마, 왜 그래요?
선우 : 신기해서 그러지.
준석 : (웃고)
선우 : 그럼 옥수수 좀 쪄드릴까요? 가시면서 드시게? (일어나는데)
윤희 : (선우 치마 잡으면서) 지금 어디 수학여행 가신대요?
선우 : (치마 흘러내리고, 놀라서 윤희의 등 때리면서) 에미, 망신을 줘라, 망신을.
준석 : (웃는)
선우 : 얘가 이렇게 매를 좀 버는 스타일이거든요.
준석 : 들었습니다.
선우 : 너 회사에 가서 에미한테 맞고 산다고 광고 하고 다니니?
(등 때리면서) 자랑 할 게 없어서 그런 걸 자랑이라고? 아이고, 이 빙충아.
윤희 : 아파.
예슬 : 매일 맞는 건 아니구요. 하루 걸러큼씩 맞는다고 할 수 있어요. 절대 매일 맞는 건 아니예요.
윤희 : 너 그거 도와주는 거 절대 아니거든.
준석 : (웃는. 이 집안 식구가 마음에 든다)
수찬 : (E) 계세요?
선우 : 미스터 백 목소리 아니니?
윤희 : 왜요?
수찬, 문 열면, 꽃다발 한아름 안고 있다.
준석 : (보고)
수찬 : (준석을 보고, 약간 놀라는, 어색하게 인사하는)
선우 : (일어나며) 웬 꽃이야?
윤희 : (일어나 받아들며) 나 주려구요?
준석 : .....
수찬 : (준석에게) 또 뵙네요?
준석 : 네.
수찬 : 내일은 못 파는 꽃이라서요. 저희 방엔 둘 데도 없고해서.
선우 : 아이고, 고마워라. 들어와서 고구마 좀 먹어.
수찬 : 아닙니다. 그럼 말씀들 나누세요. (문 닫는)
선우 : 거기 큰 항아리 하나 꺼내서 담가둬라.
윤희 : 많기도 하네.
선우 : 참, 아시죠? 이번에 입사 시험 봤는데.
준석 : 네.
선우 : 대학 교수까지 하던 사람인데 어쩌다 일이 꼬여서 지금은 꽃집에서 일을 하고 있거든요.
원예학과 교수였어요. 사람이 얼마나 싹싹하고 좋은지 몰라요. 어른 알아보고 예의 바르고.
예슬 : 동네 아줌마들한테도 인기 좋아요.
미희 : (예슬 입 막으면서) 동네 아저씨들한테는 인기 없니.
저 이런 말씀드리면 부담스러우시겠지만 뽑아만 주시면 정말 열심히 일할 사람이예요.
준석 : ......
#.40 씬. 동네 길. (밤)
준석의 차 앞에 서있는 준석, 윤희.
윤희 : 괜히 저희 엄마한테 끌려 들어오셔서 고생 하셨죠?
준석 : 내가 들어가겠다고 했는데요.
윤희 : 안 봐도 비디온데요 뭐.
준석 : 정말입니다, 제가 차 한잔 주십사하고 부탁했는데.
윤희 : 아, 됐네요. 안 먹던 고구마 먹고 체하셨을지도 모르니까 가셔서 꼭 소화제 드시고 주무세요.
준석 : 나 정말 맛있게 먹었거든요, 고구마.
윤희 : 아, 됐다니까요. 그래요, 팀장님 보기보다 착하세요, 됐죠?
준석 : 왜 그렇게 사람 말을 못 믿습니까? 기분 좋았다구요.
윤희씨 집 가족들 다 재미있고, 고구마도 맛있었고.
윤희 : 그럼.....고맙구요.
준석 : 지금 누가 할말 누가 합니까?
윤희 : .....
준석 : 고마웠어요. 갑니다. (차에 타는)
떠나는 준석의 차.
윤희 : (바라보고 있는)
준석 : (룸밀러로 서있는 윤희를 바라보는)
#.41 씬. 준석의 집 거실. (밤)
준석, 들어오면, 한여사 앉아있는.
준석 : 안 주무셨어요?
한여사 : 저녁은 잘 먹었니?
준석 : 네.
한여사 : 이제 상견례도 다 끝났으니 약혼식 날을 잡는 게 어떻겠니?
준석 : 아직은.....
한여사 : 시간 끌어봐야 뭐 하겠다구?
준석 : 아직은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회사에 적응하는 것도....
한여사 : 고사장 말로는 어느 정도 적응은 한 거 같다고 하던데.
넌 그럼 신경 쓰지 말고 네 일이나 하고 있어라. 나머진 고사장하고 내가 알아서 처리 할테니.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가는)
#.42 씬. 준석의 방. (밤)
준석, 웃옷을 벗고 책상 앞에 앉는.
혜미 집에서 조용했던 식사 장면이 떠오르고.
고개를 돌리는데.
오징어 다리를 잡고 뒤로 벌렁 넘어지던 윤희의 모습이 떠오른다.
준석 : (막막한 심정으로 눈을 감는)
#.43 씬. 동네 길. (아침)
수찬, 바쁘게 걸어가는데. 정숙 신문을 들고 돌아서는데.
수찬 : (어 하는 표정으로 보는)
정숙 : (들어가려고 하면)
수찬 : 너 눈이 왜 그러냐? 울었냐?
정숙 : (집 쪽 의식하면서) 아는 척 하지 말라고 그랬지?
수찬 : 눈이 왜 퉁퉁 부었냐구?
정숙 : 네가 무슨 상관인데? 제발 아는 척 좀 하지마. (얼른 집으로 들어가는)
#.44 씬. 대한의 집 거실. (아침)
대한, 부엌 창문 앞에 서서 물을 먹으며 밖을 보고 있는.
정숙, 신문 들고 들어오는.
대한 : 누구야?
정숙 : 누가?
대한 : 지금 문 앞에서 얘기한 놈?
정숙 : 동네 사람이지 누구야?
대한 : 동네 놈을 당신이 어떻게 알아서?
정숙 : 안녕하냐고 해서, 안녕하다고 했다, 왜?
대한 : (물을 마시며 식탁에 앉는) 이리 와 앉아봐.
정숙 : 그만 좀 하자.
대한 : 앉아보라니까. (식탁 위에 놓여있는 핸드폰 사용 내역) 이 번호 말이야. 하루에 세 번이나 했던데?
정숙 : 잘못 걸린 전화라구, 잘못 걸린 전화.
대한 : 잘못 걸린 전화가 왜 세 번이나 오냔 말이야?
정숙 :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구? 직접 걸어서 물어보면 되잖아.
대한 : 내가 할 일 없어서 이러겠니?
정숙 : 매달 핸드폰 사용 내역 뽑아서 사람 주리 트는 거 뻔히 아는데
내가 머리가 돈 년 아니면 딴 짓을 하겠니?
대한 : 딴 짓을 해서가 아니라, 만사 불여튼튼이라구.
정숙 : 정말 왜 이러니? 내가 결혼해서 이날까지 한눈 한번 판 적 있니?
대한 : 한눈을 팔아서가 아니라.
정숙 : 좀 살자, 좀 살자구. 이러면 나 죽어. 지레 말라 죽는다구.
대한 : 내가 왜 이러겠니? 당신 사랑하지 않으면 이런 짓 안해.
정숙 : 아는데. 제발 적당히 좀 사랑해 달라구. 적당히 좀.
#.45 씬. 윤희의 집 거실. (아침)
윤희, 욕실에서 씻고 나오면. 2층에서 내려오는 미희.
미희 :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니? 어떻게 엄마가 두들겨 깨우지도 않았는데 일어나니?
윤희 : 살다보면 별 날이 다 있는 거야.
선우, 빈 그릇 가지고 들어오는.
선우 : 저러다 골병드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미희 : 누가요?
선우 : 누구긴, 양씨 말이지. 김치 가져다주러 갔더니 식은땀을 흘리면서 끙끙거리고 있드라.
미희 :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제대로 치료 받아야 한다니까.
이따가 엄마가 한의원 좀 데려가서 침이라도 좀 맞게 해봐요.
선우 : 침도 침이지만 맥이 빠져서 더 그런 거 같드라. 당장 일하러 나갈 데도 없다는 게 맥이 빠지는 모양이야.
#.46 씬. 창고. (아침)
고니, 누워있는 덕길 안타깝게 보면서.
고니 : 지 오늘 학교 가지 말어라?
덕길 : 왜?
고니 : 아부지가 아픈께.
덕길 : 니가 의사냐?
고니 : 그려도 지가 옆에서 간호를 좀 하는 것이......
덕길 : 그러코롬 아부지가 걱정 되믄 공부 열심히 혀서 의사나 되든가.
고니 : 그것은 좀....
덕길 : 그것은 좀 뭐?
고니 : 지 성적이 거기까진 좀 무리다 싶어서라. 간호사라면 모를까.
덕길 : 젊은 놈이 넌 야심도 없이. 초등학교 공부가 전부가 아니여.
너는 에비 닮아서 늦공부가 트일 수도 있는겨.
고니 : 아부지가 늦게 공부 잘혔어라?
덕길 : .....아, 그려. 됐냐?
고니 : 그런 말 통 못들은 거 같은디.
덕길 : 지각 할겨?
고니 : 가요. 몸조심하고 기서요.
덕길 : 나가 이 몸으로 혼자서 레슬링이라도 할까봐 그러냐?
고니 : 지 말은요 그 뜻이 아니고.
덕길 : 지발 좀 학교나 가분져.
고니 : 야, 다녀오겄어요. (나가는)
덕길 : 이 놈아, 너 진짜 에비 말이여. 너 에비도 초등학교 땐 뒤에서 빌빌 거렸어.
그려도 늦공부 트여서 대학교수꺼정 안혔냐?
노크 소리.
덕길 : 니 학교 안가고....
문 여는 미희.
덕길 : (엉거주춤 일어나며) 웬일이시래요?
미희 : (딱하게 보며) 좀 어때요?
덕길 : 그만 해여라.
미희 : 뭘, 그만하지 않은 거 같은데요. 것봐요, 내가 뭐랬어요. 교통사고도 다음날이 더 심하다고 그랬죠.
덕길 : 그려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구만요.
미희 : 이력서 같은 거 쓸 줄 알아요?
덕길 : 야?
미희 : 이력서요? 이력서?
덕길 : 어디 어디 학교 나왔다 뭐 그런 거 쫙 쓰는 거요.
미희 : 쓸 줄 알아요?
덕길 : 그런 거 써본 적은 없는디.
미희 : (딱하고) 그거나 하나 써 둬 봐요.
덕길 : 그것은 뭐에 쓰시게라?
미희 : 내가 국 끓여먹으려고 그러겠어요? 그냥 써둬요. (휑하니 나가는)
덕길 : 뭐에 쓸라고 그러실까나.
#.47 씬. 준석의 사무실 옆 휴게실. (낮)
윤희, 물 따라놓고 있으면, 준석 들어오는.
준석 : (밥그릇 옆에 놓여있는 삶은 감자 보는) 이게 뭡니까?
윤희 : 감자 모르세요?
준석 : (앉으며) 내가 감자를 몰라서 묻겠어요?
윤희 : 제가 오지랖 넓은 거 우리 엄마 닮아서 그렇거든요.
준석 : 감자하고 오지랖이 무슨 상관 입니까?
윤희 : 우리 엄마가요. 찐 감자도 못 드셔본 팀장님 짠하시다고 아침부터 쪄서 제 가방에 넣어주셨거든요.
정말 어쩔 뻔 하셨어요? 저같이 하늘이 내린 천사를 비서로 두지 않으셨으면.....
준석 : (물끄러미 보면서) 그러게요. 정말 어쩔 뻔 했을까요?
윤희 : ......(이 눈빛은 뭐지?)
준석 : (눈길 피하고 감자 먹는)
윤희 : 감, 감자 잘 삶아졌죠?
#.48 씬. 비서실 옆 탕의실. (낮)
윤희, 컵을 씻으면서.
윤희 : 뭔가 가슴에서 쿵하고 떨어진 거 같은데.....
#.49 씬. 꽃집 앞. (낮)
수찬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 윤희, 멍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수찬 : (지나가려는 윤희를 보는) 웬일이냐? 참새가 방앗간 앞을 그냥 지나가고?
윤희 : (보고)
수찬 : 내가 네 모이 아니냐? 틈나면 쪼아대는?
윤희 : (플라스틱 의자에 털썩 주저 앉는)
수찬 : 더위 먹었냐?
윤희 : 있지.
수찬 : 찬 물 한 컵 주랴?
윤희 : 어떤 사람이랑 눈이 부딪혔는데 말이야. 정말 아무 일도 없었거든.
근데 있지, 가슴에서 이따만한 뭔가가 쿵하고 떨어지는 거야.
수찬 : ......
윤희 : 그게 뭘까?
수찬 : 너 심장병 있냐?
#.50 씬. 예슬의 방. (낮)
윤희, 거울 앞에 앉아있는.
준석과 같이 새벽 여명의 보던 모습.
길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모습.
레스토랑에서 같이 식사하던 모습이 스치는.
윤희 : (머리 쥐어뜯으며) 미쳤어. 미쳤어. 백수찬 그 인간한테 첫사랑 어쩌고 해서 당한지 얼마나 됐다구.
#.51 씬. 경찰서. (낮)
김형사, 형석 앞에 놓고 조서 꾸미고 있는.
형석 : 정말이라니까요. 그 누나가 너무 오래 안 들어와서.....
김형사 : 그래서? 남의 방에 들어가서 물건을 들고 나오냐? 이거 절도야, 절도?
강형사, 반장 들어오는.
반장 : 아, 그래서 설렁탕 사줬잖아?
강형사 : 나보다 월급도 많이 받는 놈이....
반장 : 놈이라고 하지 말랬지?
강형사 : 정감 있잖냐?
반장 : 난 너랑 정 떨어진지 오래 됐거든. 점심 사라고 해서 사줬으면 됐지 뭔 말이 그렇게 많냐?
(김형사 보면서) 뭐냐? 어린애 앞에 놓고?
김형사 : 이 놈이 지 집에 세 들어 사는 누나가 오랫동안 안 들어와서 궁금해서 들여다봤다가
시계 하나 들고 나와 팔다가 금은방 주인이 신고해서 잡아왔어요.
형석 : 전 정말 그렇게 비싼 시곈 줄 몰랐다니까요.
김형사 : 싼 거면 들고 나와도 되고?
형석 : 그 누나 진짜 가난했거든요. 그런 누나가 무슨 돈으로 그렇게 비싼 시계를.....
강형사 : 가만....가만....
#.52 씬. 수연의 셋방. (낮)
강형사, 김형사 방을 둘러보는.
형석 문가에 서있는.
형석 : 우리 엄마한테는 비밀로 해주시면 안돼요?
강형사 : 가만 좀 있어봐라. (케비넷 뒤지고. 작은 화장대 서랍 뒤지고)
형석 : 근데요, 그 누나 이름 연수연 아니거든요. 박미숙인데.
우리 엄마 시골 갔다 오시면 전세 계약서 보여달라고 하세요. 거기 박미숙이라고 씌여있다니까요.
강형사 : 가만 좀 있으라니까.
김형사 : 그래도 선배 감이 아주 꽝은 아니예요. 어떻게 그렇게 연결을 지었어요?
강형사 : 오죽 했으면 이름이 강역개겠냐? 우리 부모님이 형사 만들자고 작정하지 않으셨으면
그런 이름 함부로 못 지으시지. (캐비넷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액자 하나 꺼내고.
연수연과 여자. 가운데 2살 정도 먹은 여자 아이가 앉아있는 사진이다)
#.53 씬. 혜미의 방. (낮)
혜미, 옷을 갈아입는데, 그 옆에서 영자.
영자 : 말이 되야 말이지, 말이. 우리 집에서 그렇게 대접 잘 받고 가서
윤희네서 고구마를 몇 개나 먹었다는 줄 아니?
혜미 : (보는)
영자 : 예슬이 할머니 사윗감이 참 서글서글하니 좋더라고 하면서
슬쩍 슬쩍 그 댁에서 잘 먹고 나오셨을텐데 고구마를 어찌나 맛있게 드시던지 하면서.....
혜미 : (서늘해지는)
영자 : 우리 집에선 입에 풀칠 한 것처럼 그러고 있더니 예슬이네 가서는 우스개 소리도 하고 그랬나보더라.
내가 정말 낯이 뜨거워서.
혜미 : .....
영자 : 정말 사람이 왜 그런다니? 동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냐구?
혜미 : 뭘 어떻게 생각해요?
영자 : 우리가 얼마나 형편없이 대접을 했으면 그랬을까 그러지 않겠냐구?
혜미 : ......
#.54 씬. 동네 약국 앞. (밤)
혜미, 약을 사가지고 나오는. 걸어오던 수찬.
수찬 : (혜미를 보는)
혜미 : .....(어색하게 미소 짓는)
수찬 : 아직도 많이 안 좋은가봐요?
혜미 : ......
수찬 : 집에단 여행 간다고 하고 며칠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 게.....
혜미 : 약 먹으면 괜찮을 거예요.
수찬 : 안 됐어서 그래요.
걸어오던 윤희, 두 사람을 보는.
혜미와 수찬은 윤희를 보지 못한.
윤희 손에 두부 봉지 정도 들고 있는.
수찬 : 혜미씨 보면 속이.....좀 아려요.
혜미 : 내 생각 해주는 사람은 수찬씨 밖에 없네요. 그런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는 게 나쁘지 않아요.
(그러다 윤희를 보고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걸어가버리는)
윤희 : (수찬 옆으로 다가오는)
수찬 : 심부름 나왔냐?
윤희 : 뭐셔?
수찬 : 뭐가?
윤희 : 제비짓 청산 한 줄 알았더니, 새로 작업 들어가신 건가?
수찬 : 뭐냐? 지금 질투 하냐?
윤희 : 어랍셔.
수찬 : 너하곤 차원이 다른 여자다.
윤희 : 어떻게 무슨 차원이 얼마나 다른데?
수찬 : 아.....여자같잖아, 혜미씨는.
윤희 : 난 남자같냐?
수찬 : 여자의 탈을 쓴 머스마 같다, 됐냐?
윤희 : 괜히 찝쩍거리지 마라.
수찬 : 여자애 입에서 나오는 말 보라지.
윤희 : 우리 팀장님하구 결혼할 여자다.
수찬 : 그래서 더 안됐다. 됐냐?
윤희 : 뭐가 안됐는데?
수찬 : 부모끼리 정해줘서 마지못해 사랑도 없는 결혼 하는 게?
윤희 : 저 여자가 그러디? 마지못해 하는 결혼이라구?
수찬 : 그....그걸. 혜미씨가 너처럼 아무 말이나 막 하고 다닐 사람으로 보이냐?
윤희 : 근데 마지못해 하는 결혼인 건 어떻게 아냐구?
수찬 :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먹어야 봐야 아냐? 분위기 보면 바로 알아버리는 거지.
윤희 : 난 저 여자 마음에 안들어.
수찬 : 너보다 이쁜 여잔 다 마음에 안들지?
근데 말이다. 친구로써 충고하는 건데, 너보다 안 이쁜 여자 흔치 않거든.
윤희 : 저 여자 얼굴이 꼭 가면 같아서 싫어.
수찬 : 왜 성형 수술 한 것처럼 이뻐서 싫다고 솔직하게 말하시지.
윤희 : 사람마다 다른 얼굴의 가면을 쓰고 대하는 거 같아서 싫다구.
수찬 : 그냥 솔직하게 너보다 이뻐서 밸이 꼴린다고 해라. 그게 너답다.
f.o
#.55 씬. 동네 전경. (낮)
#.56 씬. 윤희의 집 앞. (낮)
출근하는 미희, 덕길 다가서는. 많이 회복 된 상태로.
덕길 : (종이 내밀면서) 저 써보라고 하서서 써보긴 혔는디....몇 날 며칠 붙잡고 있었긴 혔는디.....
미희 : (받아들고 보면) 이거 쓰려고 몇 날 며칠 붙잡고 계셨어요? 고등학교 중퇴세요?
덕길 : 야. 그때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미희 : 자격증 갖고 계신 건 없구요?
덕길 : 없는디요.
미희 : 운전 면허증도 없으세요?
덕길 : 아, 그것이요, 그것은 있죠.
미희 : 됐어요. (명함 주면서) 이따 오후에 한번 나와보세요.
덕길 : 어디로요?
미희 : 명함에 있잖아요.
덕길 : 아, 야. 근데 여기 갈라믄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남요?
#.57 씬. 여행사. (낮)
덕길, 두리번거리며 들어가는.
덕길 : 저기.....정미희 사장님 뵈러 왔는디....
강형사 : (E) 양덕길씨?
덕길 : (돌아보고)
강형사 : (팜플렛 들고 일어서는)
덕길 : 워매, 강형사님이 여긴 워쩐 일이시래요?
강형사 : ......
미희 걸어오는.
#.58 씬. 미희의 사무실. (낮)
미희, 강형사, 덕길 앉아있는.
수민 차 가져다 놓고.
미희 : 내일부터 출근 하셔서 청소도 좀 하시고 허드렛일 하시면서 일 좀 배우세요.
덕길 : 그, 그럼 지가 취직이 되는 건감요?
미희 : 월급은 많이 못 드려요.
덕길 : (벌떡 일어나서 고개 숙이며) 고마워라. 이 은혜를 참말 워찌 갚아야 헐는지....
미희 : 앉으세요, 민망하게 왜 이러세요.
강형사 : 여기서 일하면 자주 보겠네요.
덕길 : 야?
강형사 : 저도 정사장님하고 의논할 일이 많아서 자주 들르게 될 거 같거든요.
미희 : 아직 아무 것도 정확하게 계획된 게 없으시다면서요?
강형사 : 그러니까요. 구체적인 계획안을 짜서 제가 제출을 하겠다 그거죠.
덕길 : 근디요, 강형사님?
강형사 : 네?
덕길 : 연수연 살인 사건 범인 잡는 일이 워째 좀 진척이 있어라?
지가 고향 친구라서 마음이 좀 쓰여 그러는디.
강형사 : 아, 그게요. 단서가 좀 있긴 한데....
덕길 : 단서요? 워떤?
강형사 : 수사 기밀이라서...(핸드폰 울리고) 어? 어, 만나봤어? 출장 갔다 왔대? 뭐래? 어디 잠깐만...
(수첩에 적는) 어디? J 건설?
미희 : J 건설이면 우리 윤희 회산데.....
강형사 : 구매자가 연수연이 아니래? 확실해? 알았어, 내가 지금 들어갈게. (전화 끊고)
이거 제가 바빠서 오늘은 이만.....
덕길 : (잡으며) 강형사님? 강형사님? 지가요, 저번에도 말씀을드렸지만 수연이하고 지는
친남매지간이나 다름없는사이였구만요.
지가 참말 친 동생 잃은 것만큼이나 속이 타서 그러는디 수사가 워째 진행 되고 있는지 좀.....
그 불쌍한 것 죽인 범인놈이 누군지 알아야 지가 맺힌 속이 좀 풀릴 것 같아서라.
강형사 : 이거 수사 기밀인데.....연수연씨 방에서 시계가 하나 나왔거든요.
덕길 : 시계요?
강형사 : 네. 그게 무지 비싼 고가의 시곈데, 다행이 그 시계가 고유 넘버가 있다 그겁니다.
덕길 : 그것이 뭔 말씀이래요?
미희 : 명품 시계엔 그런 게 있어요.
덕길 : 아, 야, 근디 그게 무슨 상관인지....
강형사 : 무슨 상관인지는 이제부터 알아봐야죠.
덕길 : 갸가 무슨 재주로 그렇게 비싼 시계를 차고 살았을까요?
강형사 : 담당자가 출장 중이어서 나도 오늘 알았는데, 그게 한꺼번에 10개가 판매된 시계랍니다.
미희 : 그럼, 그게 J 건설에 팔렸다는 건가보네요?
강형사 : 아, 머리 좋으시네? 그걸 어떻게 아세요?
미희 : 전화 하시는 거 들었잖아요?
#.59 씬. 창고. (밤)
고니, 잠들어 있고, 수찬, 덕길 얘기하고 있는.
수찬 : (덕길을 보는)
덕길 : 형사님한테 들은 말인께 틀림없는 거여.
수찬 : .....
덕길 : 인연이라는 것이 참말로 묘하지? 워째 수연이가 차고 있던 시계가
윤희씨 다니는 회사에서 한꺼번에 10개를 사들인 시계 중 하나랴?
수찬 : 다른 말은 또 들은 거 없어?
덕길 : 읍어. 사건이 하도 오리무중이라서 형사님도 것다 희망을 걸고 있는 눈친 것이.
수찬 : (잠든 고니를 보는)
덕길 : (고니 보면서) 나도 그랴. 어쨌든가나 불쌍하게 죽은 그거, 범인도 못 잡고 이대로 묻혀불믄 한스러워서 워쪄?
누가 뭐 땜시 죽였는지나 알았으면 속이 시원하겠구만서도.....
수찬 : 알면 뭐하겠어. 이미 죽어버린 걸.....
덕길 : 그래도 그렇냐. 수연이 죽인 놈이 멀쩡하게 활보헌다고 생각허면 내 속에서 열불이 나는디.
니도 잡기나 했으믄 좋겠다 싶지라?
수찬 : 난, 걔 생각 안해. (나가버리는)
덕길 : (혼잣말로) 맴에 없는 소리 마라. 지 새끼 낳아준 여자 죽인 범인이
워떤 인간인지 안 알고 싶다믄 그게 사람이여?
#.60 씬. 윤희의 집 마당. (밤)
수찬, 멍하니 서서 밤하늘을 보고 있는.
과거 회상씬.
새벽에 검은 승용차를 타고 떠나던 수연의 모습.
무릎을 꿇은 채 오열하던 자신의 모습.
#.61 씬. 회사 복도. (낮)
영재, 강형사 얘기하고 있는.
걸어오는 희섭. 대한.
영재 : 제가 그때 구매과에서 근무하긴 했지만 그런 시계 구입 했던 기억은 없는데.....
강형사 : 부서가 통합 되서 그때 일을 알고 계신 분이 없어서 그럽니다.
영재 : 글쎄요. 전 그때 신입 사원이어서 윗분들이 전결로 처리하신 일은 잘 알수 없죠.
희섭 : 무슨 일이야?
영재 : 강북서에서 나오신 형사분이신대요.
희섭 : 형사분이 무슨 일로?
영재 : 10년 전에 우리 회사에서 고가의 시계를 10개 구입 했던 일을 알고 싶으시다구요.
희섭 : ......
강형사 : 살인 사건과 관련 된 일이라서 그렇습니다. 꼭 좀 알아야 하는데.....
희섭 : 글쎄요, 워낙 오래 전 일이라 자료가 있을라나.....알아봐드리긴 하겠습니다.
들어가지, 회의 있는데.
영재 : 네.
영재, 희섭, 대한 들어가면.
강형사 :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62 씬. 고사장 사무실. (낮)
고사장, 앉아있고, 희섭 옆에 서있는.
희섭 : 어떻게 할까요?
고사장 : 뭘 어떻게 하나? 자료가 없으면 없다고 하면 그만이지.
희섭 : 우리 회사에서 구입 했다는 자료가 시계 회사에.....
고사장 : 글쎄, 모르겠다고 하면 그만 아닌가?
희섭 : .....
고사장 : (보면)
희섭 : 알겠습니다. (인사하고 나가는)
고사장 : (깍지를 끼고 생각에 잠기는)
#.63 씬. 윤희의 집 전경. (낮)
덕길 : (E) 시간 안즉 안 됐어라?
#.64 씬. 윤희의 집 거실. (낮)
선우, 미희, 윤희, 수찬, 덕길, 고니, 예슬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윤희 : (벽시계 보면서) 12시 정각부터 된다고 했어요.
선우 : 영이 아빠도 그렇네. 미리 좀 알려주면 안 되나.
윤희 : 엄마가 동네방네 필기시험 합격 했다고 떠들어서 그런 거잖아?
선우 : 그래, 다 내 탓이다, 내 탓.
덕길 : 12시다.
윤희 : (수화기 들고. 버튼 누르는) 나온다, 나와.
덕길 : 됐어라? 붙었다 혀요?
윤희 : 수험 번호, 수험 번호.
수찬 : 1077번.
윤희 : (버튼 누르는. 긴장한 표정으로)
미희 : 됐어?
덕길 : 됐어라?
윤희 : ......(시무룩하게 수화기 내려놓는)
선우 : (윤희 표정 보고) 떨어졌어?
예슬 : 이모 얼굴 보니까 떨어진 거 같은데요.
고니 : 아저씬, 말 좀 잘하지 그러셨어라.
수찬 : (힘없이 일어서는) 나 꽃 집 나가.
윤희 : 첫월급 타면 나 내복 사줘야 해.
수찬 : (돌아보면)
선우 : 뭐, 뭐야? 된거야?
윤희 : 빨간 걸루다.
덕길 : 된거지라? 붙은거지라?
윤희 : (일어나서 수찬 어깨 툭 치며) 자네가 시험 운은 좀 있나보네.
수찬 : 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잖아?
윤희 : 심장병 있나 친구?
미희 : (일어나서 수찬 손 잡으며) 축하해요, 축하해요. 수찬씨.
수찬 : 고맙습니다.
덕길 : (울먹이며) 이것이 다 여러분들 덕분이여요.
미희 : 왜 덕길씨가 울먹이고 그래요? 붙긴 수찬씨가 붙었는데?
덕길 : 그러게요. 눈물이.....(와락 수찬 껴안으며) 장허다, 장해. 나는 니가 해낼 줄 알았어야.
선우 : (울먹이며) 이제 취직도 됐으니 큰 고비는 넘긴 거 같네.
윤희 : 아, 왜들 좋은 날 (그러면서 자신도 울먹이며, 와락 수찬과 덕길을 끌어안는)
이제 내가 좀 마음이 놓이네, 친구.
수찬 : 야, 야, 콧물 묻어.
#.65 씬. 회사 전경. (낮)
#.66 씬. 회사 복도. (낮)
수찬. 신입 사원들과 걸어나오는.
윤희 기다리고 있다가 수찬을 잡아끄는.
수찬 : 야, 야, 회사에 이상한 소문 퍼진다.
#.67 씬. 회사 옥상 계단 정도. (낮)
수찬 끌고 오는 윤희.
윤희 : 무조건 연수 성적이 좋아야 한대.
수찬 : 알아, 안다구.
윤희 : 인사 꼬박 꼬박 잘하고.
수찬 : 내가 니 아들이냐?
윤희 : 연수 성적이 좋으면 좋은 데로 발령이 난다니까.
수찬 : 그만 좀 해라.
윤희 : (주머니에서 식권 몇 장 꺼내주는)
수찬 : 뭐냐?
윤희 : 식권. 월급 탈 때까진 돈 없을 거 아냐?
수찬 : (보는)
윤희 : 다른데 가서 사먹지 말고 구내식당에서 먹어. 우리 구내식당 반찬 좋아.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구.
수찬 : 나중에....
윤희 : (보면)
수찬 : 제일 비싼 걸로 사줄게. 속옷.
윤희 : 당근이지.
수찬 : 가자. 내가 점심 사줄게. 내가 구내식당에서 팍팍 쏠게. 먹고 싶은 만큼 먹어라.
윤희 : 내가 준 식권으로 댁이 인심 쓰나?
수찬 : 나 줬으면 내 꺼지.
#.68 씬. 준석의 사무실 옆 휴게실. (낮)
준석, 식탁 앞에 멍하니 앉아있는.
혜미, 들어오는.
준석 : (보면)
혜미 : 나가서 같이 점심 하자고 왔는데 벌써 시작하셨네요.
준석 : (일어서며) 나가죠.
#.69 씬. 감자탕 집. (낮)
혜미, 멍하니 전골 그릇을 보고 앉아있는.
준석 : .....
혜미 : 이런 거 좋아하시는 줄 몰랐어요.
준석 : 처음입니까?
혜미 : 네.
준석 : 그냥 먹어봐요. 먹을만 합니다.
혜미 : ......(마지못해, 수저 들고 국물을 조금 먹는)
사장, 직원 멀리서 보고 있는.
국물을 깨작거리며 떠먹는 혜미, 젓가락으로 살을 조금씩 발라먹는 준석.
사장 : 우리 감자탕이 저렇게 맛이 없냐?
#.70 씬. 호텔 로비. (낮)
준석, 윤희 걸어가는.
윤희 : 뭘 저까지?
준석 : 회장님이 당신 며느리 득남까지 챙긴 비서 얼굴 좀 보자고 하셔서요.
윤희 : 그걸 말씀 하셨어요?
준석 : 난 거짓말은 못하는 사람입니다.
윤희 : 어련하시겠어요.
준석 : 비싼 밥 먹여주러 데려 왔으면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윤희 :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려고.....
준석 : (굳어진 표정)
윤희 : (준석의 눈길을 따라가면)
화사한 차림의 이미란 걸어오고 있다.
미란 : (예의 바르게 웃으며 인사하는) 오랜만이네요.
준석 : ......
미란 : (손 내밀어 악수를 청하지만)
준석 : (굳어져서 서있는)
미란 : .....무안하다. 그럼 난 모임이 있어서.....(걸어가 버리는)
윤희 : (굳어져 있는 준석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71 씬. 한강변. (밤)
준석, 윤희 앉아있는.
윤희 : 아직도 그 정도세요?
준석 : ......
윤희 : 회장님 말씀 하시는데, 대답도 안하고 생각에 빠져 계셨잖아요?
준석 : 한심해 보이죠?
윤희 : 네.
준석 : (보고 피식 웃는)
윤희 : 저도 좀 알아요. 여성지마다 도배를 했던 스캔들이잖아요. 그때 진짜 결혼 하시는 줄 알았는데.
준석 : 집안에 연예인을 들으려면 차라리 상속을 포기하라고 하시더군요.
윤희 : 그래서 그만두셨어요?
준석 : 같이 떠나자고 했었습니다.
윤희 : ......
준석 : 싫다고 하더군요.
윤희 : 왜요?
준석 : 나란 인간 하나한테만 전부를 걸만큼 사랑을 믿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윤희 : 말은 멋있다.
준석 : (보고 웃는)
윤희 : 사람들은 다.....
준석 : 말해요?
윤희 : 팀장님이 잘나가는 탈렌트 하나 데리고 놀다가 차버린 줄 알아요.
준석 : ......사랑을 믿습니까?
윤희 : 언제 해봤어야 믿든 말든 하죠.
준석 : 난 안 믿어요.
윤희 : 하긴 그렇게 아픈 상처가 있으시니. 하지만요, 그래도 안 믿는 것보단 믿는 게 났지 않나요?
속고 상처 받고 그래도 믿어주는 게. 그래야 살맛이 나지 않나요?
저도 얼마 전에 웬 웃기는 인간한테 첫사랑이니 어쩌니 해서 잠시 혹 한 적이 있었는데요.
나중에 알고 보니 게임 하는 것처럼 가지고 논 거드라구요.
준석 : 어떻게 됐습니까?
윤희 : 직살나게 패주고 친구 먹었어요.
준석 : (보는)
윤희 : 인간이 나쁘진 않더라구요. 제가 물러서 그런진 몰라도 친구는 먹어도 괜찮겠다 그래지는 거예요.
준석 : 정말 대책 없는 사람이군요.
윤희 : 다들 모자라고 오지랖만 넓고 실속 없고, 등신이라고
우리 엄마한테 허구헌날 얻어터져도 전요. 제가 싫지 않아요.
이렇게 생겨 먹었는데 어쩌겠니, 이렇게 살다가 가자.
그래도 밤에 잠 잘 자는 거 보면 지은 죄 없어 편한 거 아니냐. 뭐 그러면서 살아요.
준석 : 나 알콜 중독이었어요, 미국에서.
윤희 : 말씀.....하셨잖아요.
준석 : 잠을 자고 싶어서.....잠이 들 때까지 마셨어요.
윤희 : ......
준석 : 근데 요즘 가끔.....다시 마시고 싶습니다.
윤희 : 왜요? 불면증이세요?
준석 : (웃고) 어떤 여자가 있는데......자꾸.....생각이 나서 성가십니다.
윤희 : 고혜미씨랑 열애 중이신 거.......
준석 : (자르며) 내 뺨을 찰싹 때리며 모기를 잡는 이상한 여자가 자꾸 머리 속을 헤집어서......성가셔요.
윤희 : (굳어지고)
준석 : 수학여행 때 말고는 해 뜨는 걸 본 적 없다고 하는 게으른 여자가 떠올라서
피식거리느라 잠을 설칩니다.
윤희 : ......아, 늦었다. 너무 늦었으니까 오늘은 택시 타고 갈게요. (일어서는데)
준석 : (앉은 채 윤희의 팔을 잡는)
윤희 : (그런 준석을 멍한 시선으로 보는 표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