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월요일 산행을 위해 임요한 목사님이 9시까지 아파트에 오기로 하고 여장을 느긋하게 준비했습니다.
태백산 가는 길 소도동 슈퍼에서 라면과 가스를 준비하여 배낭에는 점심꺼리가 담겼습니다.
태백산 매표소에서 "주민이요!"하는 암호를 대니 1인당 1500원하는 주민표를 두장 건네줍니다.
"봐라 나는 태백산에 오면 태백시민이다!"
산행 입장권에 태백석탄박물관 관람료까지 포함되어 부당하게 높은 입장료를 징수하는 처사가 늘 거슬려 이렇게라도 꼬아보는 것이지요.
짧게 걸으려면 반재로 천제단으로, 중간으로 걸으려면 샛길을 따라 문수봉과 천제단 중간을 거쳐 천제단 반재로 하산하자. 길게 걸으려면 소문수봉 문수봉 천제단 반재로 당골로 내려오자 어느 코스를 걷고싶나?
나의 3지선다형에 임목사님은 세번째 가장 긴 길을 걷고싶답니다.
시간도 많고 여장을 단단히 꾸린터라 아무 염려 없이 소문수봉을 향해 걸으며 샘터마다 앉아 물 한 모금 마시며 산을 오릅니다.
소문수봉과 문수봉 갈림길에선 제법 눈이 쌓여 아무도 걷지 않은 눈길을 설레임과 환희로 걸었습니다.
아무도 걷지 않은 하얀 눈길에 길을 만들며 나뭇가지마다 소복한 눈꽃을 이고 거니는 길은 참으로 아름답기 환상적입니다.
문수봉으로 천제단을 향해 걸으며 주목마다 나무마다 장관을 이루는 눈꽃 하얀 세상 참 아름답습니다.
일기가 좋지 않아 다행히 공군부대에서 비행연습을 하지 않아 고요한 태백산을 거닐어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종종 태백산 가는 길에 그놈의 비행기 소리에 귀가 찢어질듯 불쾌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통일을 준비해도 시원찮을 터에 누구를 향해 비행사격 연습을 한단 말인가?
누군가를 죽이고 파괴하기 위해 굉음을 내는 전투기 소리는 짜증이 납니다.
오늘따라 다행히 고요한 태백산이 더없이 좋습니다.
향도 피우지 않아 어느 때보다 단정한 천제단을 들러 망경사 툇마루에서 라면을 끓여 점심을 했습니다.
제법 부는 바람에 라면을 끓이는 동안에 몸이 식어 한기를 느낄 때쯤 따뜻한 라면은 산에서 맞는 호사스런 성찬이 되었습니다.
반재를 지나 단군성전 돌아보고 쉬엄쉬엄 내려와 재첩국과 올갱이 해장국으로 저녁을 먹으며 기다란 멸치젓 곰삭은 맛에 밥이 꿀맛이었습니다.
아이젠을 가져갔어도 그리 많지 않은 눈에 그냥 걷다가 뒤로 세 번 앞으로 한번 총 네 번이나 넘어지기도 하면서 잘 다녀왔습니다.
태백산 걷는 길에는 아무도 걷지 않은 길과 아무 소리도 없는 하늘과 텅 비어진 천제단이 있어 마음에 기쁨이 되었습니다.
무엇인가 꽉 차 있어 고운 것이 아니라 정갈하게 비어짐이 있어 고운 걸음을 만드는 것이겠지요.
채움보다 비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더 많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경건은 비움의 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