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외갓집
백석
내가 언제나 무서운 외가집은
초저녁이면 안팎마당이 그득하니 하이얀 나비수염을 물은 보득지근한 복쪽재비들이
씨굴씨굴 모여서는 짱쨩쇳스럽게 울어대고
밤이면 무엇이 기와골에 무리돌을 던지고 뒤울안 배나무에 쩨듯하니 줄등을 헤여달고
부뚜막의 큰솥 적은 솥을 모주리 뽑아놓고 재통에 간 사람의 목덜미를 그냥그냥 나려
눌러선 잿다리 아래로 처박고
그리고 새벽녘이면 고방 시렁에 채국채국 얹어둔 모랭이 목판 시루며 함지가 땅바닥에
넘너른히 널리는 집이다
* 씨굴씨굴: 수두룩하게 많이 들끓어 시끄럽고 수선스런 모양.
* 쇳스럽게: 카랑카랑하게.
* 무리돌: 많은 돌. 길바닥에 널린 잔돌.
* 쩨듯하니: 환하게.
* 재통: 변소.
* 잿다리: 재래식 변소에 걸쳐 놓은 두 개의 나무.
* 모랭이: 함지 모양의 작은 목기.
* 넘너른히: 이리저리 제각기 흩어서 널브러뜨려 놓은 모습.
백석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김소월과 동향인 평안북도 정주 출신인 그가 해방 후 특별하게 고향을 두고 내려올 이유가 없어 북쪽에 남았다는 이유로 그의 글을 읽는 것이 우리에게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시의 특징을 몇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 먼저 평안도 사투리를 즐겨 사용함으로써 북방 정서를 드러내고 나아가 민족의 공동체 의식을 심화시켰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토속적인 소재를 선택하여 향토색 짙은 서정의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 시도 그와 같은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화자는 ‘내가 언제나 무서운 외갓집은 ○○한 집이다’라고 한다. ‘○○’은 외갓집을 무섭다고 말하는 이유이면서 동시에 외갓집의 풍경을 드러내 주는 것이 된다. 그것을 화자는 ‘초저녁→밤→새벽녘’으로 시간적 순서에 따라 보여 준다. 초저녁이면 복쪽제비들이 울어 대고 밤이면 ‘무엇’이 무릿돌을 던지고 새벽녘이면 목판 시루나 함지가 땅바닥에 흩어져 널브러뜨려져 있는 집이 바로 화자가 떠올리는, 무서운 외갓집이다. 이 시를 읽으면 외갓집에 관한, 이제는 잃어버린 옛 추억이 떠오른다. 외갓집은 어떤 모습일까? 시에 들어 있는 몇몇의 단어가 시를 읽어 가는데 어려움을 주지만, 그것을 읽어 내면 시의 의미는 쉽게 다가온다. 이 시에 나오는 생물, 무생물 들이 모여 만든 풍경은 1930년대적인 상황에서 모두 유년의 체험과 맞닿아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사물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따뜻하게 모여 유년의 외갓집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첫댓글 내 외갓집도 시인의 외갓집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