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변의 묘
태종이 심복으로 총애했던 이숙번
이숙번(李叔蕃)이 택군(擇君)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
택군이란 신하가 어진 임금을 선택한다는 말이다.
여차하면 태종을 갈아치우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건 태종과 이숙번과의 관계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이숙번은 경기도 안산군(安山郡)의 지사로 있으면서
제1차 왕자의 난 때 태종의 명에 의해 사병을 동원하여 방석(芳碩 ;
태종의 이복동생) 형제와 정도전(鄭道傳), 남은(南誾) 등을 제거하였으며
그 공으로 정사공신(定社功臣) 2등에 책록 되었다.
2년 뒤, 공신책록에 불만을 품은 박포(朴苞)가
방간(芳幹 ; 태조의 넷째 아들, 태종의 형)을 부추겨 군사를 일으키자
(제2차 왕자의 난) 다시 사병을 동원하여 이들을 물리쳤다
. 이로 인해 이숙번은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이 되었고 1품인 의정부 찬성에 까지 올랐다.
이숙번은 돈의문(敦義門;서대문) 안에 큰 집을 짓고 살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과 말소리를 듣기 싫다고 하여 돈의문을 막아버렸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숙번의 집을 가리켜 색문가(塞門家) 즉 성문을 막은 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기사가 실록에 보인다.
1413년(태종 13) 6월. “한양성 서쪽에 백성들의 편의를 위해 새로 문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 길이 이숙번의 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이숙번이 인덕궁(仁德宮;정종이 거처하던 궁) 앞에 작은 동네가 있으므로
길을 열고 문을 세울 만하다고 말하매, 정부에서 그대로 따랐으니,
이숙번을 꺼려한 것이었다” 권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태종은 두 번씩이나 함께 사선(死線)을 넘은 이숙번을 동지이자 심복 중에 심복으로
총애했으며 비록 7살 아래이지만 아들처럼 여겼다.
그러므로 이숙번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권력이 태종의 절대적 비호 아래서 비롯된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1417년(태종17) 2월 24일. 근신 중인 세자에게 주색과 향응을 베풀면서
후일을 도모하려던 구종수(具宗秀)형제들이 대역죄인으로 몰려 참수될 때
구종수와 이숙번이 사사로운 일로 연루되어 있음이 드러났다.
태종의 눈 밖에 난 이숙번이 경상도 함양(咸陽)으로 추방되던 날,
이숙번은 절대 권력자인 태종에게 ‘생명을 보전해 주겠다’ 던
옛 약속을 상기시키며 목숨을 구걸하고 있다.
이날 이후 이숙번은 다시는 벼슬길에 나오지 못하였으나
1440년 67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태종과 세종대왕의 배려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숙번이 역사에 다시 등장하는 것은 헌릉(獻陵;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의 비문에
적혀있는 무인년(戊寅年;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 해)과
경진년(庚辰年;1400년,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 해)의 일들이 사실과 다르다 하여
세종대왕이 그때의 일을 묻고자 함양에서 불러올려서이다.
이숙번은 잠시 한양에 머무는 동안에도 인사차 찾아온 정승들을 하대(下待)하며
거만함이 전과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백제(百濟)와 고구려(高句麗)의 멸망과는 달리 고려는 내부 권력층에
의한 정권교체의 성격을 띠며 조선(朝鮮)으로 이어졌기에
백성들의 반감을 바탕으로 한 조직적 저항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다만 고려왕실의 후예나 충신들은 새 왕조에 힘으로 대항하기
보다는 낙향을 하거나 산골로 들어가 조선을 섬기지 않는 간접적 저항을 했을 뿐이다.
개성(開城) 근처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하며 세상을 등진 고려 유신 72인이 대표적인 예다.
건국 초 고려 왕족에 대해 유화적인 정책을 펴던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1394년(태조 3) 1월 16일, 국가의 안위와 왕 씨의 명운을 점쳤던
박위와 그 일당들을 모반죄로 다스리면서 태도가 급변하였다.
이해 4월 15일, 임금의 명을 받은 윤방경(尹邦慶)등이 왕 씨를 강화(江華)나루에 던져 죽였다.
4월 20일, 손흥종(孫興宗)등이 거제도(巨濟島)에 있던 왕씨 일족을 바다에 빠뜨려 죽였다.
같은 날 중앙과 지방에 명령하여 왕 씨의 남은 자손을 찾아 모두 목 베었다.
4월 26일 고려 왕조에서 왕 씨로 성을 받은 사람에게는 모두 원래의 성을 따르게 하고,
왕 씨의 성을 가진 사람은 비록 고려왕조의 후손이 아니더라도 모두 어머니의 성을 따르게 하였다.
10월 25일, 마침내 한양으로 천도(遷都)를 하였다.
명실상부한 고려와의 결별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후 고려사(高麗史)를 편찬하고 고려의 왕 씨를 위한 수륙재(水陸齋)를 봄? 가을로 거행하며
고려 왕조 충신들의 업적을 치하하는 등 전 왕조에 대한 마무리와 위무 작업이
진행되면서 고려와 왕 씨들은 세상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져 갔다.
<출처: http://www.sejongnewspaper.com/sub_read.html?uid=2521 /글 조성문>
Bilitis (빌리티스) (팬플룻)/Gheorghe Zamfir & photo by 모모수계
https://youtu.be/UUbXwx_dtx0
게오르그 잠피르(Gheorghe Zamfir, 1941년 4월 6일 ~ )는
루마니아의 작곡가이자 연주자이다.
첫댓글 양떼님님
태종이 심복으로 총애했던 <이숙번>
고운 역사글 다녀갑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오늘도
고운 화요일 되세요!~~~~~
지난 역사에서
공부도 많이 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헬렌 님
@양떼 양떠님
고운 댓글 다녀갑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고운 수요일되세요
멋진 폭포수와 함께 담아주신
태종이 심복으로 총애했던 이숙번
태종의 총애를 받았으면 겸손하게 지냈으면 좋았을 것을
태종의 총애를 받는다고 거만과 교만함에 가득차
다른 신하들을 하대하고 거만함을 떨어 많은 사람의 비난을 받았죠
오늘도 좋은 자료를 게시해주셔서 많이 배웁니다
여러가지 고맙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죠
늘 고맙습니다
아직도 추운 날씨가 이어집니다
따뜻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폭포 너무 멋지지요
저기 옮겨 봤어요
그런데 옛 역사를 봐도 인간의 심리는 똑같지요
현 시국의 오만을 보는 것 같아서요
역사 정보가 다르지만
그냥 이렇게 올려 본답니다
읽어 보는 역사요
배우면서 익힐것도 많은 옛정세를 보면서
현 시국도 다시 돌아 보게 되기요
감기약인 달고 살아요 ㅎ
비실이
남이 볼땐 멀쩡한데
그래요...
우 야 던
건강 하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