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연걸. 1963년생.
8살부터 북경 체육학교에 입학하여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중국무술대회에서 무려 5연패를 달성한 사나이. 그런 그의 무술실력에 영화계가 가만히 놔두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1979년 <소림사>로 영화계에 입문한 그는 영화의 대성공과 함께 스타로서의 길을 걷게 될 것 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후 출연한 작품은 <소림사> 시리즈 이외에 딱히 기억나는 작품이 없을 정도로 1980년대를 보내게 되지요.
<용행천하>
<황비홍2-남아당자강>(1992) <황비홍3-사왕쟁패>(1993) <황비홍-철계투오공>(1993)
이렇게 이연걸의 인기를 실감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황비홍2>의 수입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황비홍3>보다 늦게 개봉하는 촌극이 벌어진 것이지요. 수입사의 과당경쟁이 낳은 사건이지만, 그만큼 영화의 인기를 대변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홍콩영화가 한국에서의 흥행순위를 보면 1위가 <취권>, 2위가 <황비홍>, 3위가 <동방불패>였습니다.
<황비홍2>에는 같은 무술의 달인인 견자단이 등장하지요. 그래서인지 2편도 무척이나 애착이 갑니다. 백련교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나온 무영각도 그의 전매특허이지요.
하지만 3편에 와서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너무 탈만 쓰고 나오는 장면이 많아서인지 다소 산만하더군요. 하지만 이후 4편부터 등장한 조문탁에 비하면 역시 이연걸이 있을때가 좋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잠시 서극과의 결별 후 왕정과 찍은 <황비홍-철계투오공>은 그에게 첫 실망감을 받았습니다. 영화가 왠지 무게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지요. 원래 왕정 감독이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를 영화에 녹여내는 재주가 많음을 인정하지만, 이 작품은 인기에 편승하여 만들었다는 느낌이 강하네요.
그 사이 황비홍에서 벗어나 다른 캐릭터가 그를 찾아 갑니다.
<방세옥2-대도무문>(1993)
그의 또다른 히트시리즈인 <방세옥>은 황비홍의 근엄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캐릭터였지요.
하지만 마음껏 그의 무술실력을 감상할 수 있는 영화였고, 극장에서도 <황비홍>만큼은 아니지만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이때부터 이연걸의 작품들이 대박급으로 분류되어 엄청난 사랑을 받은 것으로 기억되네요.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절, 영화 제목을 대도무문으로 쓴 건 사실 조금 우스웠습니다.
한가지 더 말씀드리면, 변발이 아닌 이연걸의 모습이 상상이 안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론 <동방불패>에선 변발이 아니지만 머리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죠. 언제쯤 그가 정상적인 머리로 등장할까 내심 기대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당시 이연걸이 없음에도 약간의 인기를 끈 무협영화를 조금만 살펴보면
<신용문객잔> <절대쌍교> <독고구검>
이런 영화들이 있었지요.
그리고 지나가면 서러울 작품 <태극권>과 <의천도룡기>, <소림오조>가 있습니다.
<태극권>(1993)
양자경과 함께 한 <태극권>에서 드디어 그의 변발이 아닌 모습을 보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검법이 우세였던 것 같은데 권법을 전면을 내세운 무협영화가 참으로 새로웠지요.
태극권이란 건 기껏해여 TV에서 나이드신 분들이 하시는 걸 본 게 다였는데, 절도있게 휘두르는 그의 팔은 그렇게 기운차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연걸의 영화 중 이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던데, 사실 극장에서 보곤 다소 실망도 했습니다. 점점 이연걸의 포스도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거의 실제 무술연기를 하던 그가 어떤 감독을 만나느냐에 따라 와이어도 쓰고, 영화의 무게감도 떨어지는 것이 보이기 시작해서였죠.
그런 아쉬움을 더욱 배가시킨 것은 <의천도룡기>였습니다.
<의천도룡기>(1993)
시작만 해놓고 마무리 짓지 못한 프로젝트가 돼버린 <의천도룡기>는 사실 이쁜 여배우들 말곤
이연걸의 솜씨를 볼만한 장면이 그리 많지 않지요. 극장을 나오면서 엄청 실망했던 나머지 지금 생각하면 김구라씨 말투로 "뭐야 이게~~"정도겠네요.
제 기억엔 가장 실망스런 그의 작품이 아닌가 생각되고, 왕정에게 2번째 당한 꼴이 됐습니다.
(개봉은 의천도룡기가 먼저 했습니다)
<영웅>(1995) <탈출>(1995)
<보디가드> 이후 다시 원규와 호흡을 맞춘 <영웅>은 그의 전형적인 슈퍼맨 컴플렉스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황비홍>에서 비롯된 그의 캐릭터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그에 따른 사랑 표현도 포기하기도 함과 동시에 이젠 가정과 일도 완벽히 처리해야 하는 전형적인 슈퍼맨 콤플렉스 성향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 역시 일을 위해 가정을 소홀히 할 수 밖에 없는 설정들이 조금은 작위적이지만, 후반부 보여주는 우영광과의 액션씬들은 상당히 박진감이 넘칩니다. 특히 같은 무술인 출신인 원규 감독과 만나면 왕정의 영화들에 나오는 황당한 장면없이 뚝심있게 액션을 그려서 좋게 보았습니다.
그런데 <탈출>은 장학우를 아주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코믹적인 요소를 강화했으나 많은 물량을 투입한 영화치곤 지나치게 가볍고 또한 황당한 액션장면들이 많아 눈쌀을 찌푸리게 됐습니다.
영화 속의 어설픈 이소룡 흉내처럼 영화도 헐리우드를 벤치마킹 하려다 어설픈 영화로 끝나버렸지요. 이렇듯 왕정만 만나면 죽을쑤는 이연걸입니다.
<모험왕>(1995)
성룡이 <용형호제>를 만든 것처럼 그 역시도 아시아의 인디아나존스가 되고 싶었던건지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모험왕>으로 한껏 기대를 부풀리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험영화에선 대체적으로 주인공이 코믹한 이미지나 유들유들함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인디아나존스의 해리슨포드나 용형호제의 성룡, 미이라의 브랜든 프레이저처럼) 사실 우리가 봐온 그는 지나치게 근엄하고 딱딱한 이미지라 이런 영화에 어울린다고는 보기 힘들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군대 시절 개봉한 영화라 극장에서 보지 못해서 평가절하하는 느낌도 있지만, 사실 투입된 자본 대비 썩 만족스런 작품은 아니고 정통 무술영화도 아니기에 살짝 실망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후 홍콩에서 찍은 작품은 세 작품입니다.
<흑협>(1996)
<황비홍-서역웅사>(1997) <히트맨>(1998)
나름 변신을 꾀했던 <흑협>은 괜찮은 컨셉이었으나 이상하게 마스크가 생뚱맞고 촌스러운 느낌 때문에 그리 좋지 못한 기억이 나며, 초심으로 돌아감과 동시에 미국진출 이전 마지막 영화였던 <황비홍-서역웅사>는 뜬금없이 황비홍이 미국으로 간다는 설정에 다소 어이없어 했는데, 그래도 서극감독과 다시 만난 작품이라 내심 기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유행이 지나버린 황비홍이란 소재는 크게 관객들에게 어필하진 못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다시 황비홍으로 돌아온 이연걸을 반갑게 맞아준 건 홍콩인들이었습니다. 역대 홍콩영화 흥행순위 TOP100위권에 있는 이연걸의 영화는
41위 동방불패 / 62위 방세옥 / 63위 황비홍2 /
64위 황비홍-서역웅사 / 66위 무인곽원갑 / 69위 황비홍
이렇게 6편입니다.
순위에도 볼 수 있듯이 다시 돌아온 황비홍에게 무척이나 관심이 컸고, 아울러 많은 뉴스거리를 제공했던 <무인 곽원갑>도 반갑게 맞이해 준 홍콩인들이었습니다.
(역대 홍콩영화 흥행순위를 보시려면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movie.naver.com/movie/board/review/read.nhn?nid=1068370
이후 1998년 이연걸은 헐리우드의 명 제작자인 조엘실버에게 픽업되어 세계시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의 인생에서 <소림사>로 데뷔하던 시절과 <용행천하>로 재기했던 때, 그리고 승승장구하다 헐리우드로 건너간 1998년이 세번째 도전이라고 생각되는군요.
그가 헐리우드 진출작으로 선택한 건 <리쎌웨폰4>였습니다.
<리쎌웨폰4>(1998)
이제 미국으로 건너간지 벌써 10년이 되었군요. 당시 이연걸이 이 영화에 출연한다는 사실은 국내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악당으로 출연했던 그의 모습에선 선하디 선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냉혈한 같은 동양인 범죄자의 모습만 비춰졌습니다. 그의 무술실력을 세계에 알린 것도 좋았지만, 다 늙은 멜깁슨 아저씨한테 죽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헐리우드의 벽이 높은 건 사실이겠지만, 아시아를 호령했던 최고의 무술스타를 그런식으로 소비해 버리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지요.
성룡 역시 1980년대 초반 혹독한 신고식을 치루고 다시 홍콩으로 돌아온 후 1994년이 된 후에야 미국에 제대로 입성했으니 이해할만도 합니다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의 차기작은 <매트릭스 리로디드>가 될거란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결국은 하차하게 되고 조엘실버와는 두 작품을 같이 하게 되지요.
<로미오 머스트 다이>(2000)
<크레이들2그레이브>(2003)
이른바 동양인과 흑인의 조합, 그리고 힙합음악이 흐르는 잡종교배 같은 영화 컨셉은 일부 관객들에게 어필해서 어느 정도 흥행수익은 보장되나 크게 히트하지는 못합니다. 사실 이연걸의 무술씬들은 화려하지만, 대결하는 악당이 소수인 관계로 그리 화려하지도 못하고 아울러 서양인들이 이연걸에게 함부로 명함을 내밀수도 없다는 생각에 대결도 그리 흥미진진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봐왔던 건 단지 이연걸에 대한 깊은 신뢰였기 때문이지요.
2001년 개봉한 <더원>도 SF란 장르가 이연걸에게는 그리 어울리는 옷이 아님을 보여줬습니다.
<더원>(2001)
하지만 조엘실버와의 조합은 다소 얼밸런스 했는지 다소 의외의 인물이 그를 찾아옵니다.
바로 뤽베송이지요.
<키스오브드래곤>(2001)
<더독>(2005)
뤽베송이 각본과 제작에 참여한 위의 두 작품은 사실 이연걸이 홍콩을 떠난 후 만든 작품 중에 상당히 뛰어난 작품들입니다. 액션에 대한 센스가 탁월한 탓인지 이연걸을 활용하는 방법을 제대로 파악한 뤽베송은 <키스오브드래곤>이란 아주 만족할만한 작품을 생산해 냅니다.
아마도 2000년 이후 이연걸의 영화 중 최고의 작품이라 생각이 들며 위의 사진은 흡사 자신의 작품인 <정무문>에 대한 오마쥬 같은 느낌도 들고 후반부의 대결 장면들은 지금봐도 새롭습니다.
<더독>은 <키스오브드래곤>에는 조금 못미치지만, 조엘실버의 작품들보다는 훨씬 좋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렇게 헐리우드로 진출했던 그가 잠시 아시아로 돌아온 적이 있어서 무척 반가웠던 기억이 있지요? 장이모우 감독의 대작에 출연하면서 다시 한번 예전의 포스를 보여줍니다.
<영웅>(2002)
다시금 무협월드로 돌아온 그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습니다. 예전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뿜으며 동적인 무술을 선보인 건 아니지만,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고요한 수면 같은 느낌의 칼솜씨를 선보였지요. 언제나 회자되는 견자단과의 대결장면은 진정 남자의 대결이 예술로 승화되는 순간을 목격하는 희열을 맞보게 했습니다. 무술을 예술로 승화시킨 이연걸 당신이 진정한 영웅입니다. 그렇게 <영웅>은 국내에서 2백만 관객을 동원하며 그의 최고 히트작에 등극합니다.
<무인곽원갑>(2006)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무인곽원갑>은 결국 더 이상 무협영화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이연걸의 얘기로 일단락 되었습니다. 상당히 호기롭게 한눈 팔지 않고 무술영화의 순수성을 보여준 이 영화는 결말이 다소 약했지만, 옛 시절의 이연걸을 기억하는 팬들에겐 좋은 선물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정말 변발인 그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죠.
(사실 명장에서도 변발이군요-_-;)
그가 올해 우리에게 찾아올 영화는 무려 네편입니다.
<명장> <워>
<포비든킹덤> <미이라3>
하나같이 기대되지 않는 작품이 없습니다.
유덕화, 금성무와 함께한 전쟁 서사극 <명장>, 막강 액션스타 제이슨 스타뎀과 함께하는 <워>
그리고 꿈의 동반 출연인 성룡과 함께하는 <포비든 킹덤> 그리고 올여름을 뜨겁게 달굴 <미이라3>에서 양자경과 함께 호흡을 맞춥니다.
우리에게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한 액션스타가 아닙니다.
미국의 액션스타들처럼 반짝 인기끌다 비디오배우로 전락하는 그런 모습을 원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그는 20년간 우리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했고, 그의 예술같은 무술동작에 감탄했으며, 그의 선한 눈빛에 어린이 같은 순수함도 보아 왔습니다. 그것은 과거형이 아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그래서 우리는 그의 다음 작품이 항상 기다려집니다.
첫댓글 네이버에서 퍼왔어요... 이연걸을 넘 좋아하는데... 이거보니 안본 영화도 좀 돼네여 이연걸 헐리웃 진출 영화 두편은 못봤네여
이연걸~!!!!! 완전 조아라하는데..~~~~~~ 연걸씨 킹왕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