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의 세계는 철학사를 아이들에게 쉽게 알려 주기 위해 쓰여진 소설로 1, 2, 3권이 나누어져 있다. 이번에 읽은 건 1권 뿐인데 소피라는 여자아이가 서로 안면이 전혀 없는 자칭 철학자란 사람으로부터 편지를 받으면서 철학 수업을 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야기적 재미를 위한 복선 같은 것이 있기는 한데 거의 비문학에 가까운 도서라고 느꼈다.
이야기에 앞서 나는 최근 철학을 되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생겼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이 철학자 선생이 하는 말들이 영 마땅찮아 보였다. 난 종종 철학적이다라는 말을 듣는데 확실히 내 사고경향은 철학에 가깝다. 주로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판단이나 기타 형이상학적인 고민을 꽤 많이 하는 편이다. 문제는 그런 것들에 이제 꽤나 진저리가 났단 것인데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제일 우선가는 이유는 못미덥다는 점이다..
시대가 지날 때 마다 다른 철학자들이 등장하고 그들은 매번 상충되는 의견을 들고 온다. 철학자가 아무리 똑똑해 봤자 의미가 없다. 검증이 불가능하다. 그러다보니 오류도 너무 많이 범한다. 데모크리토스가 원자의 존재에 대해 추리하는 대목에선 제법 놀랐지만 그렇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20세기가 다 되서야 과학으로 검증된 사실은 지난 시간 동안에 무슨 의미를 가졌을까? 지금에서야 인정된다 한들 또 무슨 소용인가? 정답을 맞춰서 기분이 좋을 수도 있겠지만 답안지는 너무 늦게 출간됬고, 그 답안지를 배포한 사람이 과학자들이라니 찝찝하지 않을 수가.
그럼에도 책 자체는 나름 재미있게 읽었다. 출간 후 각 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스테디 셀러로 선정된 이유를 알만했다. 나는 학교 교과 과정에 철학 수업이 포함되어 있어서 “청소년을 위한 서양 철학사”라는 책을 읽었었는데 진짜 책내용의 한 5퍼센트만 알아들은 것 같다. 그 책의 작가님을 디스하려는 것은 아니고 나와 전혀 다른 배경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말과 사고방식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 그 자체가 굉장히 난해했었다. 그런데 소피의 세계를 읽으면서 이 사람들이 현대인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 설명이 쉽고 사용하고 있는 비유들이 적절했다. 인터넷에서 ‘어린이들을 위해 쓰여졌지만 어른들에 의해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라는 소개문구를 봤는데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이 인정받게된 합당한 이유로는 수려한 설명 뿐만이 아니라 어른들에게 철학하는 인간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는 둥 하는 이유가 무조건 언급되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쪽에 공감이 가진 않는다. ‘철학하지 않는 인간은 행복하지 않단다’ 뭐 이런 식으로 모호하고 감정적인 말을 억지로 들이미는 문구들은 역시나 짜증난다. 이런 점만 제외하면 훌륭한 교과서로 꽤나 재밌게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는데 가장 많이 느꼈던 것이 그리스 사람들의 진보성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로 최초의 민주주의가 시작된 곳이란 점이 그렇고, 그리고 고대 사람 주제에 신이 인간의 필요성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말하는 점, 시대가 어느때인데 벌써부터 포스트 모더니즘 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점 등이 그랬다. 확실히 철학은 못미덥지만 대단하긴 하다. 현대 철학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을 과학적으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철학 공부를 할 마음이 있는데 책을 읽어도 감이 잘 안잡힌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말했듯이 훌륭한 철학 교과서 내지는 입문서라고 생각한다. 떡밥이나 복선도 여럿 있어서 책을 읽는 데 심심함도 덜하다. 음 이제 책 내용에 대해선 딱히 더 할 말은 없고 다음부터는 좀 긍정적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램을 남겨본다. 비판할 점만 보이는 것이 어쩌면 내 오랜 습관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나 스스로도 마음에 안들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