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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을 쓰기 전에.
내 관점이 우선 분명해야 할 것 같다.
내 관점은 연기력이나 발레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정신병'에 관련한 거다. 난 영화볼 때 발레의 아름다움을 평가할 정도로 고급스러운 눈을 가진 사람은 아니라서. 그렇게 밖에 못봤다. 그점을 감안하고 일단 적어본다.
자. 우선 블랙스완. 이건 기존 백조의 호수라는 작품을 뒤틀었다. 즉 백조와 상반되는 흑조를 등장시키면서 철저히 '자리뺏김'의 구조를 등장시킨다.
그리고 백조가 흑조랑 바람나서 그걸 버티지 못한 백조가 자살한다는게 그 내용이다.
그런데. 이 백조의 호수. 주인공이 초반부터 좀 이상하다.
등에 이유없는 할퀸 상처가 있질 않나. 손가락에서 피가 나지 않나.
그래. 그럼 과연 그 상처들은 어디서 온건가? 왜 이유없이 생겨났는가?
물론 영화속에서는 엄마가 '또 긁었니?'라는 말로써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자해의 의미로 그랬다는 거다.
자 이 포스터에서 니나의 얼굴. 가면같은 저 화장을 가르는 틈새속에 무엇이 있는가?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볼 때 계속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은.
저 틈새속의 진실이다.
어떤 진실이 관객을 그렇게 전율로 몰아넣을 수 있는가?
이런 부분. 충분히 고려해볼만하다.
그렇다면 영화속에서 그녀에게 일어난 주요사건들을 통해서 조금 알아봐야 할 것들이 있을거다.
일단 영화속 그녀. 성실한 발레리나. 백조만 한다면 더 없이 좋을 듯한 그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순수하다.
그런데. 이 여자에게는 치명적인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다.
백조의 쌍둥이 동생인 흑조를 연기함에 있어서 관능미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 바로 그 점이다.
그래서 감독인 토마스는 그 부분을 지적한다.
처음에는 키스도 하고
그 담엔 경험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자위를 추천하기도 한다.
무엇을 위하여 이것들을 추천했는가?
무엇이 소녀를 여성으로 탈바꿈 시키게 되는가? 이런 문제에 직면하여.
니나는 그런 경험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왜?
니나의 생활에서 드러나듯이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금욕적인 생활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단순한 추측을 해보지만 이 것은 여지없이 영화속 진실의 하나로 드러난다.
그것을 말해주는 것은 구토로 대변되는 그녀의 성적 혐오감의 표출로써의 히스테리 증상들이 그것을 설명해 준다. 맨 처음에 말했듯이 그녀의 증상에서 그런 히스테리 증상들이 나타난다.
그런데. 니나가 관능적인 요소들을 가지기 위해서는 분명 '경험'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토마스는 말한다. 그것은 그의 행동에서도 ,말에서도 그리고 주변 동료들의 이야기에서도 나오게 된다.
눈 앞에 두고 듣기에 부끄러운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소녀같아서. 그래서 오데트 공주는 완벽하게 소화할 지언정 팜프파탈적인 그런 매력은 동시에 갖추질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흑조로써의 자격에는 완전히 미달되는 셈이다.
게다가 이 발레 공연에는 또 그녀의 라이벌이 있다. 릴리라는 새로 입단한 신인이다.
정교하진 않으나 카리스마적이고 관능적인 동작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이 릴리라는 여자.
니나와 친해지고 함께 나이트에 가기도 한다.
거기서 톰과 제리(?)도 소개해준다. 물론 니나는 제리와 잘 될 뻔 한다.
유혹하는데는 성공했으니까 말이다. 이것도 어떤 구조적인 문제에 들어가서 설명은 되겠으나 일단 넘어가자. 너무 길어진다.
이런 관능의 문제에서. 니나는 릴리와의 경쟁관계에서 심한 불안감을 느낀다.
확실히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서 타인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릴리가 위협을 해온다. 그리고 그런 현실이 그녀에게는 너무나 견디기 힘들다.
나이트에서 나와서 릴리와 함께 집에가는 니나.
거기서는 엄마를 삼류무용수였다고 비하하면서 자기 방에서 릴리와 동성애적 관계를 가지는 장면들이 묘사가 되는데. 이 때 릴리 등에 새겨진 문신들이 움직인다.
어떻게? 왜? 이건 니나 시선의 해석문제다.
뒤에 릴리가 자기는 함께 간적이 없었다고 말했기 때문에 드러나는 밝혀지는 것이지만.
릴리와 함께한 동성애적인 시간들은 니나와의 나르시시즘 동일시에 의거한. 하나의 현상이었던 거다.
나르시시즘 동일시가 일어나는 이유는 하나다.
릴리가 가지고 있는 흑조로써의 매력. 그것을 자신의 자아속에 병합시키기 위해서는 동일시가 일어나야 하고 그 동일시는 어떤 성적 행위들로 인해서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니나는 앞서 말했듯이 히스테리 증상들이 있었고 그 히스테리 증상들에 의거해서 그녀가 경험했다고 생각하는 성적 장면들은 환상의 장면들이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것이 체험되었다는 것. 이 것은 또 다른 증상으로 이동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결정적인 장면일 거라고 생각이 된다.
이 포스터는 그녀가 얼마나 강렬하게 관능의 요소를 열망하고 있는지 잘 말해준다.
흑조의 깃털들. 어쩌면 향락의 원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저 깃털들을 니나는 강렬하게 원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게 해주는 것이니까 말이다.
만족이 없는 그녀의 텅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그것을 바로 '발레'기술로써 채웠고 그것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타인들의 시선들이 필요한 셈이다.
그녀는 자기 나름대로 스스로에게 관능이란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의거해서 스스로 답을 찾는다. 그것을 찾기위해서 나르시시즘의 부추김이 동원이 된다.
발레 공연할 때, 그녀는 늦는다. 간밤에 불현듯이 찾아온 증상들과의 싸움에서 간신이 버티고 공연을 하러 간다. 그녀가 여자 무용수로써 자신의 자리매김을 할 때는 무대위에서 공연을 하고 있을 때가 될테니까 말이다.
여기서. 공연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잘 되지만. 중간중간 그녀는 그녀의 환상과 싸운다.
그 환상의 모델은 릴리였으며 그 릴리는 니나에게 도발적인 멘트를 던진다.
'흑조를 내가 대신 연기하는거야!!'
이 말 한마디는 니나에게 분노의 감정을 끌어올리고. 둘을 싸우게 만든다.
그래서 살해가 벌어지지만 이는 모두 니나의 환상체계 하에서만 이루어지게 된다.
니나는 흑조를 완벽하게 연기한다. 그리고 영화속에서 간간히 보이던 그녀의 히스테리 증상들 역시도 거기에 일조하듯이 흑조의 깃털로써 완벽하게 어우러지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백조가 자살하는 장면을 연기할 때, 니나는 릴리의 환상과 싸우면서 생겼던 유리조각에 찔린 상처에서 본격적인 출혈이 시작되게 된다.
그리고 다 완벽해졌다는 말로 영화는 끝 마무리가 되는데.
어쩌면 이 장면을 보고 '이 영화 뭐야?'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정말 끔찍한 장면은 바로 이 장면. '다 완벽해졌다.'라는 한마디다.
완벽해진것은 무엇인가?
그 완벽해 진것. 그 것은 현실이 아닌 자신의 편집된 세계. 자신이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세계라는 점이다.
기존에는 히스테리가 중심이었던 증상이 발전하여 편집증으로 이동되었다는 것이고,
이는 겉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그 만큼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든 것을 표현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무튼, 영화보는 내내 뭔지 모르게 장면에 집중하면서 분석하는 그런 즐거움이 있엇던 영화였다.
첫댓글 재밌네요.. 이영화 볼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꼭 보고싶어요.
ㄳㄳ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찾았다는 것을 말하는게 아닌가 하네요,,,,,피카소가 2년동안 아뜰리에 문을 잠근 것과 같은,,,!
짱구엄마랑 보고 다시 올릴께요,,,^^
새로운 자아가 나타난거라기보다는. 증상의 이행이라고 봤습니다. 자아자체가 구분이 잘 안되거든여. 자아는 잠자리의 눈처럼 되어 있다고도 해요. 새로운 자아가 출현하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요...
남대문은 안가본 사람이 더 잘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