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깨우는 소리’법고치는 하유스님
저녁 예불을 알리는 부석사 무량수전의 종이 다섯번 울리자 범종루에 선 하유(何有·38)스님은 법고(法鼓)에 다가서서 양손의 북채를 들어올린다. ‘둥~두둥둥, 둥~두둥둥, 둥~두둥둥’ 끝없이 이어지는 네 박자의 울림은 저녁노을의 산사에서 저 산아래 마을 마을로, 그리고 저녁노을이 비춰지는 그 모든 중생들의 마을로 한없이 퍼져나간다. 금방이라도 에밀레종에 새겨진 비천상의 천인들이 그 소리를 타고 저녁노을 속으로 날아오를 듯한 이 시간, 불경 속 미륵부처의 도래가 현실로 이루어질 것만 같은 순간이다.
중생과 네발 달린 동물들을 위한 ‘법고’가 울리고 나면, 물속의 짐승들을 위한 ‘목어(木魚)’와 날짐승을 위한 구름 모양의 ‘운판(雲板)’ 소리가 차례로 이어지고 범종(梵鍾)이 마지막으로 욕계의 6천과 색계의 18천, 무색계의 4천을 합쳐 모두 스물여덟번 울린다. 이 ‘법(法)의 울림’을 듣고 미욱한 중생들이 저 목어의 눈처럼 깨달음의 눈을 활짝 뜰 수 있을는지. 해가 뜨고 질 때, 하루에 두차례씩 깨달음의 자리가 예 있음을 알리는 힘찬 법고와 더불어 사물(四物)의 소리가 이처럼 울려퍼진다.
“법고는 마음 심(心)자 모양으로 때려야 해요. 강~약약약, 강~약약약. 이렇게요. 마음의 눈이 뜨이도록 기도하면서 힘차게 때리는 거예요”
하유스님을 처음 본 것은 지난해 경북 봉화의 청량사에서 벌어진 ‘산사음악회’ 때였다. 성스럽고 웅장한 울림에다 하유스님 특유의 ‘신명’이 섞인 법고소리를 듣고 1만명이 넘는 청중은 신이 났다. 이윽고 산사음악회의 막이 내리면서 즉석 춤판이 자연스레 벌어지자 하유스님은 법고소리만큼이나 신명나게 춤을 추었다. 스님의 춤에 일반인은 물론이고 근엄한 스님들마저 어깨를 들썩였다. 법고를 치면서 춤을 출 때는 한국무용의 대가들도 스님의 고운 선에 감탄을 터뜨린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공연 요청이 많이 와요. 될 수 있으면 다 가요. 부처님 법을 전하는 일인데 제가 왜 마다하겠어요?”
1992년 문경 봉암사에서 원행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해인사 강원에 입학한 후 줄곧 고두(鼓頭, 법고 치는 소임)를 맡아왔다. 원래 고두는 승납이 얼마 안된 스님들이 돌아가며 맡는 것이지만, 스님의 북소리를 들은 어른스님들은 계속 그 일을 맡겼다.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할 즈음에는 여기저기 불교행사장에서 공연할 기회가 자연스레 생겨났다. 3년 전 고려대장경 전산화본 봉정식을 시작으로 지리산 위령제, 북한산 살리기 궐기대회를 비롯한 행사와 봉화 청량사, 해남 미황사, 남양주 봉인사 산사음악회에서 북을 쳤다.
“사람들이 제 북소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신명 때문일 거예요. 보통 법고소리가 강~약약약으로 평범한 데 비해서 제 북소리에는 엇박자가 자연스럽게 끼여들어서 신이 난대요. 고등학교 시절 밴드부랑 군대 군악대에서 드럼을 쳤던 리듬감 때문일 거예요”
‘불법(佛法)’과 ‘신명’이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요소가 삼투압되어 배어 있는 북소리처럼 하유스님의 출가 전 모습과 출가 후의 모습은 참 동떨어져 보이면서도 아주 편안히 어울린다. 스스로 “스님이 안되었다면 아마 연예인이나, 유명한 주방장이 되었을 것”이라는 하유스님은 한시도 주변을 웃기지 않으면 불안할 정도의 ‘끼’로 뭉쳐진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응원단장과 오락부장은 늘 떼논 당상이었고, 고3때 전국노래자랑에 나가 이은하의 ‘네가 미워’를 불러 인기상을 탈 정도였다. 177㎝에 80㎏의 거구인 사내가 윙크와 함께 한손으로 허공을 콕 찌르면서 콧소리를 섞어 “꼭 다문 입술이 미웠어~”로 시작하는 이 노래를 부른다고 상상해보라.
스님은 지금도 흥이 나면 불러젖힐 때가 있는데, 스님이 이 노래를 부르면 아무리 웃음이 없는 사람이라도 방바닥을 치며 웃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이후 상반기 결선에 한번 더 초대됐고, 경주호텔학교에 다닐 때도 주변의 권유로 다시 한번 출전해 모두 인기상을 받았다.
“제 ‘끼’를 보고 굉장히 노는 사람일 걸로 지레짐작하는데, 저는 사실 속가에선 술 담배도 전혀 하지 못했고 쉬는 날은 거의 집에만 있을 정도로 숙맥이었어요. 게다가 불가와 인연이 있었는지 여섯살때부터 초파일 제등행렬을 계속 신이 나서 쫓아다녔고, 고등학교땐 불교학생회 활동에 굉장히 열심이었어요”
‘불법’과 ‘끼’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이번 생에는 연예인이 되고, 다음 생에서 스님이 되자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호텔학교에 다니며 방송사 코미디언 시험을 치기도 했다. 그러나 불가와의 인연은 생각보다 깊었다.
“경주 보문단지의 한 호텔에서 일하던 시절, 자취방에서 연탄가스를 마시고 지옥을 다녀오는 체험을 했어요. 꿈인지 생시인지, 지옥불의 아비규환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어느 스님의 도움으로 그곳을 빠져나오는 경험을 한 겁니다. 간신히 눈을 뜨고 그 방을 빠져나와서 목숨을 건졌는데, 제가 방에 모시고 있던 부처님의 도움이라고 직감했습니다. 그래서 그길로 출가를 결심하고 1주일 후에 문경 봉암사에서 머리를 깎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김영진’이라는 속가의 이름 대신 ‘하유(何有)’라는 법명을 받게 되었다. 아마도 하유스님의 법명은 법고를 치는 일이 그의 평생수행이 될 것을 예언한 듯하다. ‘하처래 하처거(何處來 何處去, 마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와 오묘한 법의 세계를 말하는 ‘진공묘유(眞空妙有)’에서 한자씩 따온 법명인데, 즉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는 뜻이다. ‘마음’을 찾는 법명처럼 ‘마음을 찾고 불법을 전하라’고 ‘마음심(心)’자의 모양을 따라 법고를 치고 있으니.
“제 북소리를 듣고 마음이 저 밑에서부터 울리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74세된 속가의 모친보살도 제 북소리를 참 좋아하셔요. 지금도 우리 모친보살은 7남매의 막내인 절 위해 ‘중생제도 잘하라’고 축원기도를 올려주세요”
어스름한 저녁노을을 등진 하유스님의 신명에 찬 북소리가 울린다. ‘두~둥둥둥’ 울리는 북소리는 묻는다.
네 마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취재수첩]북의 소가죽은 축생의 깨달음 위한 제물인 셈-
법고를 덮은 것은 소의 가죽이다. 살생을 금하는 불가에서 소의 가죽으로 북을 만든 것은 좀 아이러니하다. 하유스님은 설명했다.
“법고는 인간만이 가는 깨달음의 길을 축생도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소가죽으로 만드는 거예요. 모든 축생의 대표로 제단에 바쳐지는 신성한 제물인 셈이지요”.
아침 저녁으로 그 ‘제단’에 올라 소의 가죽을 두드리는 ‘고두’스님들은 제사장의 역할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마음 심(心)자의 북채 리듬과 모양은 제사장의 신성한 칼질처럼 소가죽을 두드려 ‘깨달음’의 신성한 세계로 들어가는 문고리를 잡아 중생에게 넘겨주려는 몸짓이다. 하유스님이 중앙승가대 시절 교내 교지에 쓴 ‘법고’라는 시는 그 의미를 무척이나 잘 담고 있다.
‘두두~둥/소가 웁니다/축생(畜生) 하도 무거워/가죽으로 웁니다/때리는 채 두짝에/살갗 터져 아파와도/나고 죽고 어리석어/짐승 옷 입었음을/슬피 엎드옵니다
두팔 벌려 넉넉히/장삼 소매 저어 치면/말발굽 소리인양/놀라 달아나는/삿됨 물리쳤나이다/두~둥둥/속은 텅 비었으나/버릴수록 더 커지는/크나큰 울림따라/더불어 더 가야될/깨달음의 길이기에/아! 소가 또 웁니다/축생 아직 버거워/중중무진(重重無盡) 웁니다’
<경향신문, 이무경기자, 2/18일 매거진33면>
첫댓글 원행스님....저가 다니던 법주사에 잠시 기거 하셨는데....참 뵙고 싶습니다 그때 하유스님에 관한 이야길 가끔 들었던 기억에....좋은 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