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기도는하나님이중심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의 기도가 “나”로 충만할 지라도 우리는 분향단과 함께 지성소로 자라게 되어 언약궤와 마주 보게 된다. 여기 분향단의 중심은 언약궤이다. 즉 하나님과 사람이 연합된 기도는 하나님 자신과 그분의 운행하심에 촛점을 둔다. 이것이 신약이다. 히브리서 9장 3-4절은 분향단이 지성소에 있다고 말한다. 분향단이 지성소로 움직인 후 우리의 기도는 더이상 우리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기도로 충만할 것이다. 우리는 “주님 당신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에 대하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무엇을 갈망하십니까? 주님이 얻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당신을 만족하게 할 수 있습니까? 무엇이 당신을 축복할 수 있습니까? 주님 당신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나는 모든 것을 내려 놓습니다. 오 주 예수님 당신은 영화롭고 아름다우시며 놀랍고 사랑스런 왕이십니다”라고 기도하게 된다. 이러한 기도는 더이상 사람의 필요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필요에 둔 것이다. 새로운 교회의 간증을 위한 기도, 성도들의 필요를 위한 기도, 복음의 확산을 위한 기도, 성도들의 성장을 위한 기도, 주님의 빛나는 간증을 위한 기도, 주님의 일의 번성을 위한 기도 등등이다. 이러한 기도는 조금도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주님의 갈망으로 충만한 기도이다. 이것이 분향단의 아름다움이다. 시작에는 사람과 사람의 필요에 중심이 있다가 결국 중심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경륜을 위한 기도가 된다. 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고 행하는 사람이 되었다.
5) 합병된다는 것은 주님과 하나된다는 것임 분향단이 지성소 안으로 자란다는 체험을 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합병된 생활을 체험한다. 무엇이 합병인가? 주님이 나요 내가 주님인 것이다. 하나님의 인격 안에서 우리는 주님과 하나이다. 물론 신격에서는 아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 14:20)의 말씀과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 요17:23)란 말씀은 우리가 삼일 하나님과 인격 안에서 합병됨을 잘 보여준다. “나는 주 예수와 하나 성령안에 하날세. 주의 모든 것은 내것 주는 내 안에 사네. 주님과 하날세”라는 찬송 역시 합병을 갈망하는 마음을 담고있다. 합병의 실재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교통하고 중재하는 기도의 생활로 그분의 권위를 행사한다. 주님의 긍휼로 인하여 분향단이 지성소의 영역으로 확대하여 자라고 지성소에서 우리는 언약궤 앞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하는 기도를 할 것이다 (계 8:3). 그러한 기도를 통해서 생명과 본성과 인격과 운행과 사역과 간증과 표현에 있어서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그분이 역사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고 하나님을 간증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분향단의 구조
1) 조각목을 금으로 입힌다 1. 너는 분향할 제단을 만들지니 곧 조각목으로 만들되 (출 30:1) 조각목을 금으로 입혀진 그림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중재하는 생활은 그분의 새롭고 높이신 인성에 근거하여 하나님 자신이 표현되어 졌음을 보여준다. 건강한 교통과 중재는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하나님의 연합과 합병에서 산출된다. 다른 말로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기도이고 주님이 실제로 우리를 통하여 기도하시는 것이다. 2) 한 규빗으로 네모가 반듯하게 하고 높이는 두 규빗 2. 길이가 한 규빗, 너비가 한 규빗으로 네모가 반듯하게 하고 높이는 두 규빗으로 하며… (출 30:2) 그리스도의 중재하시는 생활은 확증과 완전함과 간증을 뜻한다. 건강한 교통과 중재는 하나님을 간증하고 하나님과 사람 모두를 만족하게 하고 , 균형이 있어야 하며, 포괄적이어야 함을 가리킨다. 분향단의 길이와 너비가 일 규빗으로 네모 반듯하다. 즉 정사각형이라는 것은 완전함을 뜻한다. 게다가 높이는 이 규빗이다. 길이 너비 높이가 일 규빗 입방체가 두 개라는 것은 중재하시는 그리스도의 생활은 확증을 주시고 완전하며, 간증임을 함축한다. 분향단은 두 규빗 높이로 진설상이나 법궤보다 더 높다. 진설상과 증거궤는 일 규빗 반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최고로 높은 곳에서 중재하고 계시다는 것을 가리킨다. 건강한 교통과 중재는 우리의 봉사와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과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관점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서 행해야 한다. 분향단의 높이의 체험함으로 하나님과 연합하고 동역하는 한 그룹을 산출하게 된다.
사실 우리는 매우 편협하여 우리와 실행이 다르거나 다른 교리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매우 편협하게 대한다. 우리의 중재는 우리의 간증이 완전하고 또한 포괄적이어야 한다. 진정한 중재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갈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풍성을 추구하는 자녀라면 하나님이 그분의 자녀에 대하여 편협하지 않은 것과 같이 우리도 모든 그리스도인을 품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와 추구와 수고에 있어서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에게 포함하는 것을 배워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