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통로
우리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생명을 나누어 줄 수 있는가에 관해서는 이미 언급했다. 하지만 사람들을 살리고 양육시킬 생명이 우리 안에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생명의 원천이 아니라 단지 생명의 통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생명은 우리를 통해 흘러 나간다. 우리는 통로이기 때문에 절대로 막혀서는 안 된다. 수로가 막히면 물이 흘러 나가지 못하듯이,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를 통과할 수 없게 된다.
십자가의 역사가 우리를 열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역사는 우리에게서 아담에게 속한 것과 육신적인 요소들을 모두 씻어 냄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성령의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 성령으로 충만해짐으로써 우리의 영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계속적으로 지닐 수 있다. 그 결과 우리의 생명은 십자가의 생명이 된다(이 점에 관해서는 뒤에서 더 언급하겠다).
그리고 일단 성령 충만을 받고 십자가의 생명을 소유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 쓰임을 받게 된다. 즉 우리에게서 십자가의 생명이 발산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퍼지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서 십자가의 역사가 더욱 깊어짐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진정으로 성령 충 만하게 되면, 자연히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우리의 대화나 이야기에서 그 생명을 발산시켜 우리와 접촉하는 사람들을 부유하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자기 노력이나 의지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가장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예수께서 요한복음 7:38에서 선포하신 말씀에 성취 이다. "나를 믿는 자는.....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이 성경 구절은 많은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그 배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먼저 그 배가 십자가의 완전한 역사를 통하여 비워져야만 한다. 또한 그 배는 생수로 가득 채워져야 한다. 그의 속에 있는 그 생명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생명은 너무나 풍성하고 충만하여 생명수의 강같이 흘러 넘쳐 다른 사람들에게 공급되어야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특별히 "흐르다"라는 단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말은 강단의 화법이나 어떤 어조나 심층 심리학이나 웅변이나 논설이나 학문 등의 사용을 암시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때때로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그 자체는 생수도 아니고 생수가 솟아나게 하는 기구도 아니다.
"흐르다"라는 말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을 암시한다. 그것은 인간의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다. 그냥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관한 말씀을 충실히 선포하기만 하면,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없는 그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성령의 생명과 능력이 우리의 영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흘러 나간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가 아무리 열정적으로 설교해도 청중들은 수동적으로 들을 것이다. 심지어 어떤 때에는 청중이 집중해서 듣고 이해하고 감동을 받는 것 같이 보이나, 실상 우리가 외치는 설교는 그들의 입술에서 칭찬을 자아낼 뿐이지 들은 바를 실행할 수 있는 생명과 능력을 주지 못한다. 우리는 오늘날 하나님의 생명을 전하는 통로 들이 되어야겠다.
통로가 되려면 우리는 경험을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역사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받은 이후에 행하는 일은 증언의 성격을 지닌다(누가복음 24:38~49을 보라). 사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주 예수님을 증거한다.
증거하는 사람은 자기가 보지 못한 것을 증거할 수 없다. 어떤 말을 듣고 말하는 사람도 충분히 증거할 수 없다. 개인의 경험이 없이는 아무도 증거할 수 없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선포하는 사람은 거짓 증인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성령은 그런 사람들과 일하기를 거절하신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또 한 가지 있다 성령이 일하실 때 필수 조건은 사람이 그 능력의 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선포할 때에는 성령께서 그의 생명을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전달하는 통로로서 우리를 사용하실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포하는 그 십자가에 우리가 못 박혀야 한다. 우리가 전하는 그 십자가를 우리가 져야 한다. 우리가 타인들에게 나누어 주려는 그 생명을 먼저 우리가 받아야 한다. 우리가 선포하는 그 십자가는 우리의 생애 가운데서 날마다 경험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가 영원한 결과를 가져오려면, 먼저 그것이 우리 영혼의 양식이 되어야 한다.
일상생활의 시련을 통하여 그 십자가가 바로 우리의 존재에 아로새겨질 때, 우리는 모든 행동에서 십자가의 흔적을 지니게 된다. 자기 몸에 예수님의 흔적을 가진 자만이 예수님을 선포할 수 있다(갈 6:17).
내가 일깨워 주고자 하는 것은 책이나 연구를 통해서 쉽게 얻어낸 사상이나 지식은 일시적으로 청중을 즐겁게 할 수는 있어도 영원한 감명은 남겨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만일 우리의 사역이 단순히 인간의 감상만을 만족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면, 우리는 지적이고 감성적인 자료들을 제시한 것으로 이미 할 일을 다 한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의 사역은 그런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말씀사에서 발행한 "십자가의 전달자" 중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