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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히브리서 3:7~14
지금까지 히브리서를 기록한 저자는 예수님을 천사와 비교하여 월등하게 크신 분으로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크고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형제가 되는 그리스도인들, 곧 혈과 육을 입고 죄로 말미암아 죽음의 종노릇하던 사람들을 구원하셨으니, 그가 동일하게 사람이 되시고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그러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가 죽기까지 하여 고난당하심으로 붙들어준 자는 천사가 아니요 아브라함의 자손 곧 택함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주의 백성들은 죽기까지 고난당하시어 죄에서 속량해주시고 시험당하는 자들을 도우시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 예수는 유대인들이 지극히 존중하는 모세보다도 더 크신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사환이요 종으로 섬겼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집을 섬겼으며, 그가 곧 하나님의 집을 만드신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오늘 본문 말씀 직전에 마무리하기를, 신실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거하는 성전으로 지어져가는 은혜를 입는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가르치는 까닭은 당시 복음을 전해들었던 신자들 가운데 신앙의 자리에서 이탈하여 옛 율법으로 돌아가려는 유혹에 넘어갈 위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자들 중에 일부가 이런 저런 시험을 받아서 복음을 내려놓고 유대교의 가르침으로 돌아가거나 이방 종교로 돌아가거나 우상 숭배로 돌아가거나 황제 숭배의 압력에 못이겨 신앙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돌아갈 우려가 커졌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히브리 저자는 오늘 본문 말씀의 단락에서 그들에게 다시 한번 예수님에 대한 신앙의 길을 계속 견고하게 나아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그는 강력한 경고의 말을 이 대목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7절로부터 11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고 증험하고 사십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이 히브리서 저자는 시편 95편 7~11절 말씀을 여기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리자고 권면하면서, 과거 출애굽 시절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행진할 때에에 하나님을 거역했던 일들을 상기합니다. 그들의 거역의 여러 일들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으로 출애굽 1세대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벌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 일을 기억하면서 이 시편 기록자는 거역했던 출애굽 백성들과 같이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의 저자를 다윗으로 일반적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7절 서두를 보면, 이 히브리서 기록자는 시편 95편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하기를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시편 95편의 말씀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고 하거나 다윗이 지은 노래라고 언급하지 않고 성령이 이르신 말씀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히브리서 10장 15절 이하에서도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또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그날 후로는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히브리서 10:15~17)
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레미야 31:33,34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선포하신 하나님의 이 새 언약의 말씀에 대하여서도 성령께서 증언하시는 말씀이라고 히브리서 기록자는 다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히브리서의 저자는 구약의 말씀이 비록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어지고 기록된 말씀일지라도 그것이 곧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신데, 그 말씀을 성령이 이르신 말씀이라고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성령님께서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성경의 원 저자이십니다. 모세거나 다윗이거나 엘리야거나 마태나 마가나 누가나 사도 바울이나 사도 베드로가 성경을 기록한 인간 저자들일지라도 그들을 감동 감화하여 오류가 없이 신성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증거하게 하신 이는 성령님이십니다. 성경의 저자가 곧 성령님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기록하신 성령께서도 완전하신 하나님이심을 항상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의 책이 그 안에 위대한 사상과 고귀한 철학과 아름다운 문학적 위트와 멋진 지혜와 인간의 다양한 경험과 감정과 직관이 담고 있어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많은 애독자를 갖고 있더손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이신 성령이 기록하신 성경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좋은 책들도 보고, 좋은 영화, 좋은 강연도 듣고 훌륭한 강사가 가르치는 강좌도 들어도 좋지만, 하나님의 성령이 기록해놓으신 성경의 말씀과 성경을 풀어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종들의 설교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합시다. 이 새상의 모든 것들은 잠시 있다가 지나갑니다. 그것들 위에 반짝거리는 빛의 어른거림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영원히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호흡 곧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명심하고서, 늘 성경을 사랑하여 가까이하고 그 말씀 한구절 한구절을 소중히 여기고 우리 영혼의 양식으로 삼고자 묵상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살고자 늘 힘쓰는 성경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시편 95편의 저자 다윗은 성령의 영감으로 그 시편을 기록하면서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다윗은 과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행진하면서 하나님께 불순종하였던 일을 회상하면서 다윗 당시의 동시대인들에게, 그리고 그 후세대를 겨냥하여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이라고 말씀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록자는 13절에서 다시 이르기를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히브리서 기록자의 ‘오늘’이라는 싯점을 강조하여 말씀한 것은 과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었던 시험이나 다윗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었던 시험이나 히브리서 기록자의 시대의 하나님 백성이 맞이하는 시험이 본질적으로 보면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시험이 그때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형태와 모양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본질은 동일한 각양 시험이 시대마다 하나님 백성들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것입니다. 그 때 그 때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말씀해주시고 있는데, 그 때마다 하나님 백성들은 출애굽 백성들처럼 거역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윗 시대 백성들도 동일하게 하나님 말씀을 듣고 듣지 않고 거역할 수 있는 것이요 히브리서 기록자의 초대교회 시대나 이천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오늘 이 시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을 완고하게 하였던 출애굽 백성들처럼 그렇게 거역하는 마음, 반발하는 마음, 싫어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95편 말씀은 가데스바네아의 반역 사건을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코앞에 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고 믿음없는 열 명의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서 울면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덜썩 주저앉아 울었고 모세를 돌로 치려고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동안도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열 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하고도 돌이키지 아니하고 이렇게 믿지 아니하므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가데스바네아에서 결국 맹세함으로 출애굽 1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전부 광야에서 죽게 하겠다고 말씀하셨고 그대로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직접 경험했고 시내산에 하나님께서 친히 번개와 흑암과 나팔소리 가운데 강림하신 것을 눈으로 보았으며 불기둥과 구름 기둥 가운데 임하시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귀로 들었으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습관적으로 거역하였다가 결국 이렇게 패망과 죽음으로 광야에서 종말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록자는 그들을 반면 교사로 삼아서 자기 시대의 성도들을 향하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12절 말씀은 시편 95편의 인용 후에 자기 시대의 성도들을 향하여 던지는 분명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여기서 히브리서 기록자는 그 경고를 주는 대상을 교회 안에 있는 믿음 없는 자들을 향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라고 하는 말씀은 그 편지와 권면을 듣는 자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가진 형제라 불리워지는 신자들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면서 함께 신앙 생활하면서 교회에서 함께 모이는 신앙인들입니다. 그들에게 히브리서 기록자는 오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형제들 중에 마음을 완고하게 먹는 자 곧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서 하나님에게서 떨어질 위험이 있는 자들이 있노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2절 말씀의 원문으로 보면, 가장 먼저 강조되어 나온 말씀이 무엇이냐면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조심하라, 형제들이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믿는다고 하지만 자칫하면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나가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 정신을 차리라는 경고의 말씀을 히브리서 기록자는 엄중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는 여기서 히브리서 기록자가 던지는 이 경고의 말씀을 받는 대상자가 구원받은 성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 성도라고 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택정함을 입은 사람은 영원전부터 예정을 입었기 때문에 결코 버림당하지 아니하고 영원히 지켜주심을 받으므로 결코 도중에 잃어버림을 당치 아니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이러한 경고는 믿는 성도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믿음 없는 자, 가짜 성도에게나 하는 경고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혹은 어떤 학자는 실제로 처음에 구원받는 믿음을 가졌다 하여도 도중에 시험에 들고 마음을 완고하게 가지면 가졌던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의 구원은 늘 흔들리고 도중에 잃어버리기도 하고 도로 찾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인간 본인의 믿음과 행위에 의하여 자기의 구원이 결정된다고 보는 아르메니우스주의라고 하는 신학사상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경은 신자들에게도 경고의 말씀을 계속 던져줍니다. 그렇게 신자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베푸는 이유는 그들이 넘어질 수 있어서가 아니고 그러한 경고의 말씀을 통하여 경계로 삼아서 구원을 지켜갈 수 있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으라고 권면하면서도 주님은 선한 목자로서 자기 양들을 그 오른손으로 꼭 붙들고 계시기에 절대로 잃어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주시곤 하셨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영원전부터 예정하시고 성령으로 인쳐주셔서 보증이 되어서 천국 가도록 지켜주십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아무렇게나 하거나 조심없이 행하여도 구원받는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항상 하나님의 수단들을 계속하여 잘 사용하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의 은혜의 수단을 사용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지중해의 유라굴로 폭풍에 휩쓸려 열나흘 동안이나 방황하던 배에 있는 사도 바울에게 주의 사자가 밤에 그에게 한 사람도 잃지 않고 다 구출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지만, 이른 아침에 어슴푸레 할 때를 틈타 선원들이 몰래 거룻배를 내려서 도망치려 하였을 때에 사도 바울이 로마 군인들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사도행전 27:31)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은 분명히 성취될 것이기에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적절한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분명히 이루어질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이 있지만 그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가 적절한 은혜의 방편을 끊임없이 사용해야 한다고 주님과 사도들이 가르치는 것은 합당한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 12절에서
“형제들아 혹시라도 너희 중에서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하라”
고 권면한 말씀은 분명히 히브리서 기록자가 그 당시에 교회의 믿음을 가진 형제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이요, 오늘날 우리도 명심해야 할 귀한 경고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러한 귀한 경고의 가르침을 베풀어주었으나 이것을 듣고도 자기도 혹 넘어질 수 있다는 거룩한 두려움을 갖고 조심하지 않고 마음을 완악하게 가지는 자들은 어떻게 될까요? 그들은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그러한 경고의 은혜의 수단을 경시함으로써 그들의 신앙이 진실한 신앙이 아니요 택하심을 입은 자가 아님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택한 백성이요 구원받은 하나님의 진실한 백성은 이러한 경고와 책망의 말씀을 들을 때 두려워하며, 마음을 깨뜨리고, 혹시라도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하여 믿음을 지켜갈 것이 분명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천안에 이단 신천지 지도자 이만희가 터미널 부근에 방문했던가 봅니다. 신천지 집단 사람들이 다 나가서 환영 퍼레이드가 대단했던가 봅니다. 제 이웃에 있는 카센타 하는 아저씨가 하도 사람들이 이상하게 행동하여 세 시간을 살펴보았다고 합니다. 자기가 볼 때에 꼭 북한 사람들이 김정은에게 하는 행동처럼 하더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모인 사람들 중에는 자기가 알던 사람들도 몇 사람 있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신천지 이단 집단에 넘어간 사람들 중에는 기성 교회에 다니던 집사 권사 장로 목사까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은 충분히 자주 그리고 심각하게 주님과 선지자들이 경고한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는 말씀을 듣고도 주의하지 않고 충분히 신앙 양심의 경고가 있었으나 그들은 듣지 않고 마음을 완악하게 가져서 결국 멸망의 길로 가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께서 베푸신 경고들, 사도들이 베푼 경고들, 조심하라는 말씀을 내 것으로 받아 참 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는 배교자가 되지 않도록 정말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혼자 힘으로는 안 되기에 우리에게 주님은 귀한 믿음의 동지들을 주셨습니다. 이것에 대하여 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여기서 혼자로서는 약해지고 분별력이 흐려지고 흔들리기도 하기 때문에, 믿음의 형제 자매들로 된 교회 공동체의 권면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매일 피차 권면하여서 죄의 유혹을 받아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믿음의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통하여 서로 권면하고 경고하고 격려해서 배교의 유혹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완악해지고 믿음을 저버리고 세상으로 내려가거나 이단 사이비에 빠지지 않도록 서로 붙들어 주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24,25 말씀이 동일한 취지의 권면의 말씀입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우리도 홀로 신앙 생활하게 되면 생활의 염려로 낙심이 되고 신앙의 의심으로 침체에 빠지게 되고 이단의 교활한 접근에 대하여 분별하지 못하고 넘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함께 하게 되어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며 말씀으로 격려함을 입고 분별의 지혜를 함께 나누게 되면 힘을 얻게 되고 세상을 이기고 마귀의 궤계를 물리치고 굳건하게 설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홀로 신앙의 시라소니처럼 다니지 말고 믿음의 동지들과 함께 모이기를 힘쓰십시오. 할 수 있거든 더 자주 공교회예배에 모이십시오. 주의 종에게 이런 저런 의심스러운 문제가 있을 때 기꺼이 상의를 나누십시오. 그리할 때에 우리는 배교의 위험과 마음의 완악함의 위험을 다 이겨내고 굳건히 서게 될 것입니다.
14절 말씀은 이 단락의 결론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그렇습니다. 처음 우리가 주 예수를 믿을 때 가졌던 그 믿음의 확신을 끝까지 견고하게 붙잡으십시오. 도중에 놓치지 마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 진리를 꼭 붙드십시오. 그리할진대 우리는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참여한 자’ 곧 공동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얻으신 그 놀랍고 풍성한 복음의 영광을 우리도 함께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 귀한 영광의 공동 상속의 축복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처음 들었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과 그의 약속하신 나라와 그의 재림과 그를 믿는 자들이 받아누리는 그 놀라운 영광의 축복들의 약속들을 끝까지 굳게 잡고 놓치지 맙시다. 도중에 어떤 시험과 유혹에도 넘어가지 맙시다. 늘 조심하고 홀로 신앙 생활하지 말고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 모이기를 힘쓰십시오.
그리고 이런 저런 죄의 유혹에 의하여 완고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유혹’이라는 말은 원어로는 ‘속임수’라는 뜻입니다. 속이는 자 마귀가 우리를 속여서 달콤한 것을 약속하고 화려한 행복을 약속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등지게 만들고 결국은 영혼과 삶이 망가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속지 않도록 늘 깨어 있읍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즐겨 듣고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늘 순종하도록 힘씁시다. 그리고 끝까지 말씀 붙들고 인내합시다. 그리할 때 우리는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영광 중에 오르신 주님과 함께 영원한 영광을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