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무엇이냐
요한복음 18:37,38,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나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지금 이 말씀은 예수님을 신문하는 광경에서 나온 말입니다. 빌라도는 이미 대제사장의 집안에서 재판을 받고 그 종들을 통하여 심하게 매를 맞고 기진 맥진한 몸을 가지고 자기 앞에 나온 예수님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심문석 밖에는 예수님을 끌고 온 대제사장 무리들이 예수님을 고발하면서, 그는 행악자요 사형판결을 받아 마땅한 자라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는 질문을 던졌으나 예수님께로부터 도리어 질문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네가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내게 하는 것이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 질문에 대하여 회피하면서 짜증을 냅니다. “내가 유대인이냐? 나를 끌어들이지 말라.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한 일이나 변명하라”고 다그칩니다. 그 때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대답하므로, 자기의 왕권이 지상적인 것이 아니요 초월적인 것이라고 빌라도에게 대답합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그 뜻을 알지 못하니까, 되묻습니다.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빌라도의 생각은 왕이라는 존재는 지상적 권력, 육신적 권력을 가진 존재라고만 생각하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설명해줍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이 말을 듣자 알쏭달쏭해진 빌라도는 되묻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빌라도는 이 질문을 던졌으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자기 수준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대적자들의 주장과 달리 실정법을 범한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자기 식대로 예수님을 심히 때려서 사람들의 마음을 좀 누그러뜨려서 풀어주려고 하다가 실패하자, 예수님이 죄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십자가 형을 언도합니다. 자기의 총독의 자리를 위태롭게 하는 폭동이 일어나면 안되니까, 그는 비겁하게 세숫대야에 자기 손을 씻으면서 깨끗이 그 사건에서 손을 떼버립니다. 그 모든 과정 중에 빌라도의 행적 중에 그가 던졌던 질문인 ‘진리가 무엇이냐’는 질문만이 덩그렇게 남아서 여운을 남기고 우리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빌라도에게 있어서 진리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기에게 이로운 것이 곧 진리였을 것입니다. 자기의 권력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출세를 위하여 옳고 그름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죄함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폭동이 일어나는가 아닌가 하는 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당시 로마 황제인 디베료의 눈밖에 나지 않는 것만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의 진리 기준은 자기 자신의 행복이었고 세상의 정치 권력판에서 권력을 얻고 출세하는 것이 진리의 기준이었던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리라는 말 자체가 우습고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영원 불변한 진리, 이 세상을 뛰어넘어 영원한 세계에까지 이어져 있는 참된 가치 체계가 있고, 윤리 체계가 있다는 것, 영원한 세상을 다스리는 진리의 법이 있다는 것을 그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해도, 그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분별력도,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미 그의 마음은 이 세상이 점령해 있었고, 자기 자신이 그 흔들림없는 기준점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은 빌라도처럼 진리라는 개념은 시대에 뒤떨어진 케케묵은 개념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잠깐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에서 진리라는 개념을 붙들고 살아가면, 비웃음과 따돌림과 뒤처짐을 당하기 십상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적당하게 타협하고, 적당하게 거짓말하고, 자기를 부풀려 포장하고, 사람들에게 자기의 진실이 아닌 또 다른 자기의 모습들을 사람들에게 이중 삼중으로 연출해야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거짓말을 거짓말 아닌 진실처럼 잘하는 것이 성공의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이 시대는 절대 진리를 주장하면, 거의 코웃음을 치는 시대입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중세 시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주장, 모든 생각은 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다 어느 만큼 진리라고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상대화시킵니다. 모든 것은 다 변하고 진리도 시대에 따라 변하고 환경과 상황에 따라 변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내가 판단하고 내 마음에 들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내가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이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옳은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 ‘진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 듣는 사람들이 다 우습게 여기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회가 행복할까요? 그러한 개인이 행복할까요? 그러한 사람들이 참된 평안과 안정을 누릴까요? 그들이 참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까요? 자기 좋은 생각대로 판단하고, 거짓을 능수능란으로 사용하고, 내가 좋으면 좋고, 내가 싫으면 싫은 그러한 자유로움이 참으로 행복하고 자유로울까요?
진리가 없다면, 도리어 이 세상은 참으로 힘이 지배하는 정글이 되고 말 것입니다. 진리가 없으니, 내 마음대로 살면 그만이니까, 결국 선도 악도 없어집니다. 법도, 윤리도, 기준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위험해지고 말 것입니다. 자유가 없어지고, 불안하고, 삶의 기준도 행복도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결코 진실과 진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진실은 숨겨지지 않습니다. 진실은 힘이요 진리가 가장 오래 남습니다. 일본이 아무리 거짓말로 위안부 문제를 가릴려고 해도, 그럴수록 증거들은 더 속속히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까? 독일 사람들이 유태인들을 인간 말종으로 여기고 자기 민족 게르만 민족은 선택된 혈통이라고 거짓 망상을 불어넣어서 유태인들을 가스실에서 학살하고 그 시체들을 한 장의 비누로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역사는 그들의 가진 생각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추악한 망상이고 죄악이라고 단죄하고 있지 않습니까?
진리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절대 진리는 분명 존재합니다. 비록 불의가 진리를 잠시 가릴 수 있어도, 진리는 엄숙하게 살아 있습니다.
그 진리는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성품과 통치의 원리입니다. 이것은 시대와 상황에 불구하고 영원합니다. 하나님이 불변하시듯이, 진리도 불변합니다.
우리는 그 불변의 진리에 우리의 욕망과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켜야 합니다. 내 욕망과 내 뜻과 내 감정에 진리를 굴복시키지 말고, 도리어 내 모든 판단, 내 감정, 내 계획, 내 생각을 진리에 일치시키려고 애써야 합니다. 진리에 굴복하는 것이 종종 자아 중심적인 우리로선 힘들고 어렵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그것이 곧 진정한 자유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러한 결단과 노력이 참된 행복과 평안에 이르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 뜻입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32)
사도 바울도 말씀하였습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 3:7)
진리는 우리를 구속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진리를 거슬러 행하려는 자에게만 구속감이 느껴질 따름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을 거슬러 내 자아와 내 욕망을 따라 행하면 도리어 불안과 고통과 파멸의 희생물이 될 따름입니다. 반면에 진리를 굳게 붙들고 그 진리를 따라 살려고 몸부림칠 때 도리어 자유로움과 평안함과 행복과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현대인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빌라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위하여 태어났고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참으로 오늘날 주님께서 말씀해주신 이 ‘진리’라는 말은 따분하게 느껴지고 고리타분한 옛 시대의 잔재물처럼 느껴지는 시대입니다. 모든 것이 다 뒤섞이고, 자기 중심적이고, 상대적이고, 다 나름대로 옳은 것이 있다고, 다 나름대로 논리가 있다고 인정해야 합리적이고, 현대적인 것 같고, 적당히 산뜻한 거짓말로 자기를 포장하여 사람들에게 자기를 잘 드러내야 멋진 것 같은 이 시대 분위기에 너무나 동떨어진 것 같은 단어입니다.
하지만 실로 ‘진리’라는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더 큰 삶의 비밀을 쥐고 있는 단어입니다. 진리를 붙잡는 것이 가장 견고한 삶입니다. 진리를 뒤따라 살려고 애쓰는 삶이 가장 힘있는 삶입니다. 그것들은 모든 위선과 불안정함과 변덕과 거짓들을 무너뜨리면서 가장 멀리, 가장 오래 남는 삶입니다.
우리 모두 진리의 실체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그의 교훈을 굳게 붙들고 살아갑시다. 그 진리로 우리의 매일의 삶 전체를 이끌어가게 내어드립시다. 그리할 때 우리는 이 불안정하고 정체가 불명하고 모호한 이 세상에서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가장 자유로운 삶을 살 것이며 가장 영향력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주님, 이 불안정한 이 세상에서 견고하게 붙들고 살아갈 수 있는 영원 불변의 진리를 주신 것 감사합니다.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오니, 진리로 우리의 삶 전체를 온전히 또한 영원히 사로잡아 이끌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