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죄
어거스틴은 중생한 신자 안에 남아 있는 부패함을 죄(sin)라고 부르지 않고 연약(weakness)이라고 부르는 것에 만족하였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한 이유는 펠라기우스파를 두려워하여 죄라는 말의 사용을 회피한 것이다. 그렇지만, 어거스틴도 이것을 죄라고 부를 때가 있었다. 그러나, 칼빈은 우리 안에서 욕망(desires)이 생기게 하는 부패성(depravity) 그 자체를 "죄(sin)"라고 부른다.
칼빈은 성도들은 그들의 육 속에 의와 싸우는 육욕의 부패성(depravity of inordinate desiring)이 거하는 육체 안에 이 살고 있다고 말하였다.
칼빈은 신자 안에 아직도 죄가 남아 있기 때문에 신자에게 중보자의 계속적인 의의 전가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칼빈은 사람에게 있는 미세한 악의 경향(a slight of inclination)이나 육체의 모든 욕망도 죄(all desires of the flesh are sins)라고 말한다. 욕망이 무질서(disoder)하고 과도하기(inordinate, 무절제한, 지나친) 때문에 죄인 것이다.
칼빈은 로마서 3장 18절 주석에서 성도들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육적인 본성의 잔재 속에서 그러한 악의 씨앗들이 남아 있음을 주장한다.
칼빈은 로마서 7장 18, 22절 주석에서 '육신'이라는 용어는 성령의 성결케 하는 것 이외의 모든 것, 즉 인간 본성의 모든 자질과 그리고 인간 안에 있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대로 '영'은 일반적으로 육신과 대조를 이룬다. '영'은 하나님의 성령이 악을 깨끗이 씻어주고 그래서 아주 잘 개조된 까닭에 하나님의 형상이 그 속에서 빛나는 영혼의 부분, 즉 영혼 가운데서 중생된 부분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영은 사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법에 순종할 수 있게 해 주지만, 육신은 그를 반대 방향으로 이끌어간다고 말한다. 이렇게 믿는 자들은 이러한 욕망들에 의하여 마음이 흩어져 있는 이중의 존재(a twofold being)라는 것이다라고 한다.
또한 칼빈은 갈라디아서 5장 14-18절 주석에서 우리는 평생 죄와 욕심과 연약함의 짐을 질 것이며, 이것들이 없어지는 것은 주님께 갈 때뿐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