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여행의 신고식
서 영 복
우리나라에서 커다란 송곳을 땅에 대고 직선으로 뚫고 따라 들어가 본다면 지구의 반대편 남아메리카에 도착할 거다. 집 떠나 한 달 반 동안의 일정 중에 첫 번째 나라로 열흘 동안 페루여행을 하기로 했다. 비행시간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경유지인 미국에서 다음 비행기를 놓쳤다. 그 바람에 하루를 애틀랜타 여행까지 하고 돌아오게 되어 자그마치 2박 3일이나 걸려 페루의 리마에 도착했다.
게다가 페루에서 치른 신고식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다. 아타카마사막의 오아시스 마을에서 끝없는 사막을 만나보고 싶었다. 자동차를 타고 사막을 체험하는 현지의 당일 코스 사막투어 여행상품을 신청했다. 잔뜩 기대하고 들뜬 마음으로 각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 틈에 합류했다. 여덟 명이 함께 타는 두기카라는 자동차를 이용하여 사막을 질주하는 체험코스다.
몇 년 전 몽골에서 일명 백 차선을 신나게 달렸던 초원 질주를 상상하며 그때와 조금 다르게 더 설레는 마음을 달래며 젊은이들을 따라나섰다. 하지만 사막투어용 자동차는 몇 분 달리기도 전에 난데없이 완전 모래로만 이루어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자동차의 속도가 조금 주춤하기라도 하면 금방 바퀴가 모래 속에 파묻혀 버릴 것 같았다. 얼마나 과속을 하던지 아니 과속도 과속이지만 풀 한 포기 없는 몇 개의 사막 산을 오르내리는 동안 평탄한 곳이라곤 손바닥만큼도 없었다. 자동차에서 사람을 떨어내려고 작정이라도 한 것일까? 운전사는 우리를 차 안에 태우고 내동댕이치면서 1초도 쉬지 않고 까붐질하였다. 특히 산꼭대기에서 경사가 심한 산등성이를 폭풍처럼 미끄러져 내려올 때는 이러다가 심장마비가 되나 싶었다. 젊은 사람들은 흥분해서 괴성을 지르고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하늘과 끝이 맞닿은 넓은 사막을 달려보려던 것을 기대하고 투어에 덩달아 따라나선 것이 후회막급이었다. 창문도 없이 기둥과 지붕만 있는 차가 금방이라도 뒤집혀서 사고가 날 것만 같아 눈을 아예 감아버렸다. 배 속의 내장이 모두 밖으로 튀어나올 듯하여 한 손은 자동차의 손잡이를 잡고 다른 손은 뱃살을 움켜쥐었다. 심장이 약해 한번도 타본 적은 없지만, 놀이공원의 바이킹이나 제트열차도 이렇게까지 요란스럽진 않았을 것이다.
남미여행의 첫 코스인데 다치기라도 한다면 마추픽추와 꿈에 그리던 이구아수폭포며 우유니 소금사막이 물 건너가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되었다. 드디어 모래 산 정상에서 자동차가 멈추었다. 그리고는 꼭대기에서 한 명씩 샌드보드를 타고 내려간다고 했다. 경사도 심했지만 산 아래까지 족히 200미터도 넘을 거리였다. 젊은이들은 얼씨구나 하며 한 명씩 소리를 지르면서 샌드보드에 엎드려서 내려갔다.
내가 망설이면서 꽁무니를 빼는 사이에 야속한 남편마저 그걸 타고 쏜살같이 내려 가버렸다. 나는 어렸을 때 그네도 잘 못타던 겁쟁이였다. 자동차는 우리를 내려놓고 어느새 산 아래로 내빼버렸으니 어떻게든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내려가야 했다. 개미 크기만 하게 보이는 남편은 산 아래에서 남의 속도 모르고 얼른 샌드보드 타고 내려오라며 손짓을 한다. 울고 싶었다. 나는 할 수 없이 그 길고도 뜨거운 모래 산을 걸어서 내려갔다. 발은 푹푹 빠져가며 맨발에 신고 갔던 아쿠아 신발은 한쪽이 망가져 발가락이 나올 지경이 되었다.
여러 차례 주저앉기도 했지만 뜨거운 모래에 두 손이 데일 것 같아 모래를
짚을 수도 없었다. 사막 질주 투어는 그렇게 몇 개의 산을 더 오르고 몇 차례 샌드보드를 타는 것으로 끝이 났다. 나로서는 몸이 온통 땀과 모래 범벅인 지옥체험이었다. 그래도 허리가 부러지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겼다. 지나고 보니 이 또한 재미있는 여행의 추억담으로 기억되었다.
신고식을 된통 치른 덕분인지 어려움이 많았던 남미여행을 거뜬히 마치게 되었다. 어떤 이는 극심한 고산증에 며칠씩 입원까지 하거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하는 여행자들도 많았었다. 우리에게 혹독한 신고식은 예방주사처럼 고마운 일이 되었다. 하나 더 있다. 어떤 일이든 얕잡아보고 덤볐다간 큰코다친다는 교훈까지 얻었다. 요즘 나는 새삼스레 글쓰기의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퇴직하자마자 친구 따라 1년쯤 수필 공부를 하다가 신고식도 없이 덜컥 등단해놓고 이십몇 년이 지나갔는데 이제 와서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며 또 다른 나의 채근에 애를 써보지만, 언감생심 내 이름표를 달고 나올 생산물의 기대는 점점 멀어지기만 한다. 뭐든 날로 먹을 수는 없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천천히 차근차근히 해나가는 게 좋다는 나의 요즘 생각이다.